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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5

       “화령님의 기준이 너무 높은 거라고 생각해요.”

       “내가 과한 것을 바라고 있단 소리더냐?”

       “네. 저보다 아피스 잘하는 사람들은 이미 다 프로로 활동 중이에요. 아마추어 선에서 그 정도면 굉장한 라인업이라구요.”

       “그럼 무얼 하느냐. 본인에게 상처 하나 입히지 못할 아이들인데.”

       “그… 렇죠?”

       

       하린은 내 말을 차마 부정하지 못했다. 결국 그 정도 수준에 불과하다는 이야기였다.

       

       하아. 그래. 이게 어디더냐.

       

       가지고 노는 맛은 있을 터이니 그걸로 만족을 해야겠지.

       

       “그 중 그나마 괜찮은 이가 누구더냐?”

       “다들 쟁쟁하신 분들이지만 그 중에선 권존님이나 요즘 유명해진 이순님 정도일 거에요.”

       

       권존이라는 오만한 이름이 신경 쓰이긴 했으나 그보다 내 귓가를 사로잡은 것은 이순이라는 이름이었다.

       

       그것은 분명 얼마 전 카리스포라는 자가 자신을 쓰러트렸다 했던 검사의 이름 아닌가.

       

       가열찬 환검의 주인이 대회에 나온다고?

       

       언젠가 만나리라 생각하긴 했으나 이리도 빨리 만나게 될 줄이야. 가라앉았던 의욕이 다시 부풀어 오르는 걸 느꼈다.

       

       “화령님. 일부러 힘을 뺀다거나 하진 않으실 거죠?”

       “적당히 가지고 놀아줄 생각은 있다만 왜 그것을 묻느냐?”

       “기왕 이기실 거면 압도적으로 이겨주셨으면 해서요.”

       

       하린은 최근 나를 낮게 보는 이들이 많이 늘었다고 했다.

       

       내가 활약을 보인 곳과 대회는 전혀 다른 전장이라며, 나도 대회에 처음 나가면 제대로 된 성과를 내지 못할 거라 떠들고 다니는 이들이 있다는 모양이다.

       

       흐음.

       

       저런 말이 나온다는 것은 아직 본인의 권위가 세워지지 못했다는 이야기겠구나.

       

       진정 사람들이 본인의 실력을 존중해 주었다면 저런 말이 나올 리가 없으니.

       

       아직 가르침을 전하기엔 이른 시간인 것일까.

       

       어렵구나.

       

       이 곳이 무림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랬다면 최고수들의 멱을 따고 다니기만 해도 절로 본인의 권위가 세워졌을 터인데. 현대에서는 그런 포악한 행동을 할 수가 없으니 원.

       

       뭐어. 그래도 이번 대회에서 우승을 거머쥐고 나면 의심이 줄지 않겠느냐.

       

       *

       

       아피스 유명 스트리머인 데케이가 여는 천하제일 무술대회는 매 달마다 주기적으로 열리는 컨텐츠였다.

       

       대회의 형식은 그 때 그 때마다 달랐다.

       

       일반인과 프로를 가리지 않고 수백에 가까운 사람을 모아 최고를 가릴 때도 있었고.

       

       특정 캐릭터의 장인들만을 모아 가장 뛰어난 장인을 가릴 때도 있었다.

       

       브론즈 실버만을 모아 최악 중의 최악을 가리는 순간이나, 데케이가 자신의 인맥을 활용해 눈정화를 해줄 때도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 열리는 천하제일 무술대회의 컨셉은 이러했다.

       

       데케이가 초청한 16명의 기 캐릭터 고수들이 서로 싸움을 벌여 최고를 결정하는 것.

       

       그야말로 천하제일 무술대회라는 이름에 걸맞는 형식이라 할 수 있었다.

       

       데케이는 이번 대회를 위해 여러모로 힘을 쏟았다.

       

       대회의 참가자들도 고생을 하며 끌어 모았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협찬을 구한 덕분에 평소보다 상금의 규모도 컸다.

       

       절정은 VR캡슐이었다. 가히 차 한 대 값이라 해도 무방한 이 물건이 상품으로 걸린다는 건 프로 대회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었다.

       

       이런 노력이 결실을 맺은 건지 이번 대회는 평소보다 많은 관심을 끌었다.

       

       당장 대회 시작을 삼십 분이나 앞둔 상황임에도 데케이의 방송에 만 명에 달하는 시청자가 몰려들었을 정도로.

       

       “다 여러분 덕입니다!”

       

       데케이는 미리 모인 참가자들을 앞에 두고 감사 인사를 전했다.

       

       누구 하나 뒤처지는 이가 없는 쟁쟁한 멤버들이었다.

       

       모두들 아피스를 하다 보면 한번쯤 이름을 들어보았을 네임드 유저들 밖에 없었다.

       

       그나마 화령이 이 중에서 가장 경력이 적은 축에 속했으나 그녀가 여태 벌인 인들은 그 적은 경력을 채워 줄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실제로 이 곳에 모인 유저 중에서는 화령을 신경 쓰는 이가 여럿 있었다.

       

       그녀의 열성 팬을 자처하는 냥냥권법은 화령의 옆에 딱지마냥 붙어서 재잘대는 중이었고.

       

       편사 러브는 자기 지인과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슬쩍슬쩍 화령을 지켜보고 있었다.

       

       다른 이들도 비슷했다. 모두들 화령을 신기한 동물을 보는 것처럼 구경하는 중이었다.

       

       이 곳에 있는 모두가 기캐릭터만을 플레이해서 최상위에 올라온 이들이다.

       

       여러 영상 속에서 화령이 보인 위업이 얼마나 말이 안 되는 것인지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러니 그들의 관심이 화령에게 쏟아지는 것은 지극히 당연했다.

       

       허나 정작 관심의 중심이 된 화령은 그저 사람들의 얼굴을 슬쩍 훑었을 뿐 다른 이들에게 접근하지 않고 냥냥권법과 잡담을 나눌 뿐이었다.

       

       기묘한 대치가 이어지던 중 그걸 깨부순 건 권존이었다.

       

       그는 우선 익숙한 얼굴인 냥냥권법에게 인사를 건넨 후 자연스레 화령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안녕하십니까. 권존이라고 합니다.”

       “백화령이라 한다.”

       

       자연스레 흘러나온 하대에 사람들 사이에서 소근거림이 샜다.

       

       아무리 컨셉에 진심인 사람이라지만 남들이 보지 않는 자리에서까지 저럴 것이라고는 예상치 못한 것이다.

       

       다행히 화령의 앞에 선 권존은 유들거리는 사람이었다. 그는 자그마한 무례에도 오히려 웃음을 지었다.

       

       “영상으로 자주 뵈었습니다. 정말 대단하시더라고요.”

       “좋게 봐주었다니 고맙구나.”

       “특히 외신의 즉사기를 막아서던 그 권이 놀라웠습니다. 혹시 나중에라도 좋으니 그 권에 관해 이야기를 해주실 수 있나요?”

       “내 어지간한 것에는 다 대답을 해주겠다만 그것은 일종의 절기 같은 것이라 말이다.”

       “그럼 어쩔 수 없죠.”

       

       화령은 말투만 오만했을 뿐 정상적인 대화가 통하는 상대였다.

       

       마스터 구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해병대마냥 완벽히 컨셉에 잡아먹힌 사람은 아닌 모양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하나 둘 서로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권존의 말이 끝나면 누가 먼저 화령에게 다가갈지에 관해서.

       

       다들 화령이라는 신성에 대해 궁금한 것이 한 둘이 아니었으니까.

       

       열 셋의 경쟁자 중에서 선두를 빼앗은 것은 편사러브였다. 그는 권존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화령의 근처로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90도를 넘어 아예 정수리로 땅을 찍을 듯 허리를 숙인 그의 모습엔 정중함 이상의 무언가가 담겨 있었다.

       

       “편사러브라고 합니다.”

       

       화령은 그의 눈을 보면서 기시감을 느꼈다.

       

       편사러브라 자신을 소개한 이의 눈에 담겨있는 것은 분명 광신의 기미였다.

       

       *

       

       내 이곳에 와 딱히 한 것도 없거늘 어찌하야 광신의 씨앗이 뿌려진 것일까.

       

       본인은 광신을 혐오했다.

       

       호의는 괜찮다. 그것은 인간과 인간 사이에 자연스레 생겨나는 것이니.

       

       적의도 괜찮다. 사람이 남을 미워하는 게 무어 이상한 일이겠는가.

       

       평범한 신앙도 이해해줄 수 있다. 인간은 미약한 존재이기에 어딘가에 기대고 싶어 하는 것을 잘못되었다 할 수는 없었다.

       

       허나 광신은. 특히 나에 대한 광신은 이해할 수 없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은 것이었다.

       

       광신자들은 종교를 믿는 것처럼 보이나 실상은 다르다. 그들은 자신이 믿는 것만을 믿는다.

       

       그들은 스스로의 안에 제멋대로 조형해낸 신의 뜻만을 듣는다.

       

       이게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를 아는가.

       

       신교의 광신도들은 본인을 신으로 추대하면서도 본인의 말을 듣지 않았다.

       

       내가 무어라 하던 간에 그들은 자신의 머릿속에서 내 말을 곡해하여 자신이 만들어 낸 신이 하는 말로 바꾸어 버렸다.

       

       웃기는 이야기다.

       

       그 누구보다 천마가 필요함을 소리치던 그들이 실상 그 누구보다 천마를 필요로 하지 않던 이들이었다.

       

       하긴 그 정도로 미친 이들이 아니었다면 자신의 손으로 완벽한 신을 만들어내겠단 생각을 하질 않았겠지.

       

       지금 내 앞에 선 이 남자에게선 그러한 광신의 기미가 보였다.

       

       아직 개화하지는 않았다만 분명 씨앗은 심어졌다. 가만히 두면 싹을 틔울 것이 분명했다.

       

       이런 이들을 보기 싫어 은거를 택한 것인데 왜 현대까지 와서 광신을 마주해야 하는 것인가.

       

       내가 보란 듯 표정을 찡그렸음에도 불구하고 편사러브라는 자는 나를 신경 쓰지 않고 제 말만을 이어 나갔다.

       

       좋게 생각을 해보자꾸나. 피어나기 전에 광신을 마주했으니 광신의 개화를 막을 수 있지 않겠는가.

       

       문제는 어떻게 막아야 할지를 모르겠단 것이지.

       

       아니. 애초에 믿음이라는 것이 막으려 한다 막아지는 것인가?

       

       신교의 놈팽이들을 생각해보면 내가 어지간한 일을 저지른다 하여 믿음이 사라질 것 같진 않다만.

       

       “화령님?”

       “이런. 미안하구나. 잠시 생각할 것이 있어서.”

       “그렇군요.”

       

       내가 생각하기에도 서투른 변명이었거늘 편사 러브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저 내 말이라면 당연히 믿어야 한단 것처럼.

       

       편사러브가 하는 이야기는 대개 내가 데케이와 십선을 할 적에 보였던 위업에 관한 것이었다.

       

       내가 채찍을 휘두르는 모습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는 그의 어투에선 진한 열성이 느껴졌다.

       

       설마 데케이에게 좌절을 주기 위해 했던 선택이 이런 결과를 초래할 줄이야.

       

       아무리 나비의 날갯짓이 태풍을 만들어 낸다 하지만 이것은 너무하지 않으냐.

       

       이러다 아주 내가 숨을 쉬기만 해도 광신도가 태어나겠구나!

       

       내 표정에서 무언가를 느낀 것인지 권존이라 자칭한 자가 편사러브를 억지로 이끌고 자리를 떴다.

       

       그의 배려가 참으로 고마웠다.

       

       편사러브의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숨이 턱하고 막히는 기분이었으니.

       

       “화령님. 괜찮으세요?”

       “그래. 괜찮다.”

       

       괜찮다. 이런 우울도 저 광신도 무림에서 지겹도록 겪어 본 일이니.

       

       “여러분! 준비해주세요! 이제 방송을 시작하겠습니다!”

       

       데케이가 그리 외치자 저들끼리 이야기를 하던 자들이 입을 다물었다.

       

       대회의 시작이었다.

       

       *

       

       아피스에 존재하는 수많은 자칭 천마 중 하나인 당소일은 절찬리에 두 손을 모으고 기도를 하는 중이었다.

       

       그의 염원은 하나였다.

       

       다른 누구를 만나도 좋으니 제발 화령만은 피하게 해달라고.

       

       자신은 16강에서 광탈하고 싶지 않으니 다른 희생양을 그녀의 앞에 데려다 주라고.

       

       – 별토끼님이 1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아니. 님도 자칭 천마잖아요. 다른 천마를 피하면 어쩌자는 거야.]

       

       “상식적으로 생각을 해 봐! 너 같으면 맨 손으로 외신을 잡는 괴물을 이길 수 있겠냐?!”

       

       당소일은 결코 약한 유저가 아니었다.

       

       그는 천마 하나만을 플레이해서 프로 리그까지 진입한 사람이었으니까.

       

       수많은 자칭 천마 중에서 그가 데케이에게 선택받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당소일은 아마추어 천마 유저 중에서는 최고라 불릴 법 한 사람이었다.

       

       실제로 그는 아마추어 기캐릭 장인들이 모인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충분히 우승을 할 수 있겠다고 생각을 했다.

       

       아마추어 장인들 중에서 데케이가 부를 만한 사람은 다 거기서 거기고, 그 중에서 당소일이 쓰러트릴 수 없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출전 멤버 리스트에서 화령의 이름을 마주한 순간 그는 가뿐하게 우승을 포기했다.

       

       그녀의 존재는 말도 안 되는 밸런스 붕괴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오늘도 보러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핑키빈님! 40코인 후원에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더 나은 글을 쓸 의욕을 얻은 것 같습니다.
    항상 지켜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노력하는 작가가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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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천마님 방송하신다
Status: Completed Author:
He couldn't pass his habits to others upon his return. The Heavenly Demon remained a martial ar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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