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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5

        

         “콜록…! 큽… 콜록!!”

         

         뿌연 연기가 시야를 어지럽혀 정확한 상황을 분간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직전에 착용한 경찰 바이저가 흙먼지를 막아줬는데도 충격에 휘말린 몸은 호흡곤란을 호소하며 미친듯이 기침할 것을 명령했다.

         

         당장 내가 멍하니 쳐다보고 있는 마감재 가루가 천장에서 떨어지는 건지, 아니면 그냥 벽이나 바닥에서 바람 따라 나뒹구는 건지도 구분 못할 만큼 정신없는 와중에도 살고 싶으면 숨부터 쉬라고 난리치는 게 퍽 우스웠다.

         

         “아샤! 당장………!!”

         

         숫제 비명에 가까웠던 최초의 한마디만 가까스로 알아들었을 뿐, 물 속에 잠수한 것 마냥 귀가 먹먹해져서 뒷말은 똑바로 들리지도 않았다.

         

         징수 부대가 본격적으로 침입자 구제에 나서겠다는 건 알겠는데…! 씨발, 그게 자기네들 엘리베이터에 폭탄을 부착해서 내려 보낸다는 개떡 같은 발상으로 연결한 놈은 도대체 누구일까?

         

         “으극…!!”

         

         삐걱거리는 몸을 간신히 뒤집어 팔꿈치로 상반신을 지탱한다.

         

         불행 중 다행이라면, 적어도 이만한 폭발이 일어났는데 안에 병력이 타고 있지는 않았을 테니 침착하게 맞서 싸울 준비를 하면 괜찮을….

         

         “……하.”

         

         까드득… 까드드득…!!

         

         흩어진 유리 조각이 육중한 기계 다리에 밟혀 곱게 으스러졌고, 텅 빈 공동이 되어버린 승강기 통로로부터 음산한 기운을 풀풀 풍기는 망령이 잔해를 헤집고 일어나고 있었다.

         

         안에서 뭐가 터졌다고 하기엔… 어딘가 어색한, 지붕이 완전히 내려앉은 형태를 띤 엘리베이터의 망가진 출입문을 튀어나온 금속 손아귀가 붙잡고 거칠게 틈을 벌렸다.

         

         끼이이이익—!!

         

         사방으로 파편이 비산한다.

         부실공사가 의심될 급으로 쉽게 철판이 찌그러지고… 필시 파라다이스 사에서 지급했을 게 분명한 강철의 신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강화외골격 장갑(Powered Exo-Skeleton Armor).

         기계성애자 집합소인 엑사테크에서 개발한, 사용자가 탑승하는 무기이자 현대전의 정수.

         

         외부를 이루는 정밀 합금이 제공하는 방어능력과 각종 저항성.

         장착된 대용량 배터리와 울트라 커패시터는 괴력과 기동성을 보조.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건… 특별한 재능이나 자질이 없어도, 훈련을 통해 그 성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다는 것.

         

         하지만 정작 가장 신중하게 보호해야 할 머리는 시원하리만치 개방한 시점부터 이 파멸 희망자의 목적은 명백했다.

         

         “내가… 내가 이런 결말을 납득할 리가 없잖아…?! 레나!”

         

         “지랄도 유분수지!!”

         

         쌍소리가 저절로 튀어나온다.

         

         폭발물 같은 게 터진 게 아니었다.

         사람이 날아갈 수준의 충격파가 발생한 원인은 단순한 강하 운동. 중력의 힘이 더해졌다지만 변변한 개조도 못 받은 앤이 불편한 곳도 없이 태연하게 움직이는 시점에서 슈트의 스펙을 짐작할 만했다.

         

         “대체 왜 이렇게까지…!!”

         

         “죽여주지도 않겠다면… 죽일 수밖에 없게 만들어 주겠어…! 하다못해 그렇게라도 함께……!!”

         

         장장 5년, 이천일에 가까운 시간동안 멋대로 쌓인 집착-애증-의 무게를 아직도 구체적으로 자각하지 못한 헬레나의 말을 앤이 끊어버렸다.

         

         아무래도 친절히 인생에서 꺼져 달라고 부탁받은 게 그녀에겐 중대한 결격 사유였던 모양.

         

         하지만 그렇게 무방비하게 헬레나만 보고 있으면… 세번째로 주어진 발사 기회(Clean Shot)를 놓칠 만큼 나는 무르지 않다.

         

         일어나려던 몸을 다시 바닥에 누인 채로 천천히, 품에 돌아온 내 피스메이커 권총을 그러쥔다.

         

         …이제는 당사자가 바라는 대로 안식을 선사해도 되리라.

         

         “…….”

         

         호흡을 고르고 운명의 상대를 탐닉하듯 응시하는 앤의 머리를 겨냥한다.

         

         권총을 든 오른손의 반대편을 덮듯 왼손으로 쥐고 목표물을 찌를 기세로 두 엄지를 나열한다.

         곳곳에 놓인… 쓰레기더미 화한 시설물들이 여러모로 거슬리지만 빗나가기 어려울 정도로 가깝다.

         

         원래 사격실력도 나쁜 편은 절대 아니라고 생각했으나, 전투경찰에 지원한다고 말하자마자 자부심이 분출한 헬레나의 손에 이끌려 반강제로 가르침 받았던 경험을 떠올린다.

         

         그 과정에서 반동제어는커녕 똑바로 견착만 지속해도 피곤한 소총은… 전문가 평가로 인해 탈락.

         차라리 손에 익은 무기로 경무장을 유지하되, 정확하고 확고한 실력을 기르라며 반복한 훈련을 바탕으로 이 악연에 종지부를 찍겠다.

         

         탕—!!

         

         방아쇠가 당겨지고.

         

         깡!!

         

         “뭐?!”

         “!!”

         

         벼락처럼 휘둘러진 앤의 팔이 총알을 쳐냈다.

         

         완벽한 사각으로부터의 기습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떻게…? 누구처럼 총구를 보고 미리미리 반응하는 것도 아니고!

         

         의문을 상세히 재확인할 틈 따위는 없었다. 죽음을 완벽하게 회피하고도 스스로의 기량에 놀란 표정을 지은 앤이 정신을 차리고 포효했으니까.

         

         “너는…! 이제 끼어들지마아아아…—!!”

         

         “미친…!!”

         

         짐승의 발톱처럼 날카로운 슈트 손가락이 뜯겨진 엘리베이터 문짝 파편 중 큰 놈을 번쩍 집어 든다. 사실 집어 들었다고 하는 것보단, 갈고리로 낚아채듯 가볍게.

         

         순식간에 내가 쏜 쪼끄만 총알과는 비교도 안 될 크기의 탄환이 앤의 발사대에 장전되었다.

         

         다급하게 엎드린 몸을 일으켜보려 했으나 늦었다.

         비행기 엔진이 가동하는 것 같은, 공기가 찢어지는 괴음과 함께 질량폭탄이 사출된다.

         

         ……아, 시발. 이건 죽었다. 날아드는 운석이 시야를 가득 채운 걸 보고 확신했다.

         그러고보니… 네오 헤이븐의 강화외골격 장갑에는 환경 자동 인식 시스템이 있었다.

         

         가끔 입는 데미지를 무시하게 해주고… 방어력이나 좀 올려주는 당연한 옵션이라 명칭을 바로 떠올리지 못했는데 이제야 기억났다.

         

         나도 나중에 크레딧이 흘러 넘쳐서 저런 사치품을 유지할 여력이 되면 꼭 장만해야지… 하는 현실도피가 끝나가던 찰나.

         

         콰드드득!!

         

         “으겍?!”

         

         “아샤!! 왜 멍하니 있어?! 큰일날 뻔했잖아!”

         

         이식된 저가형 강화 임플란트만으로도 비슷한 동작이 가능한 우리 초인님께서 내 허리를 휘감아 대피시켜 주셨다.

         

         갑자기 목이 꺾일 만큼 빠르게 이동한 탓에 골이 흔들리고, 하마터면 혀도 깨물 뻔했지만… 누가 물어보더라도 자신 있게 확답할 수 있었다. 몸이 으깨지는 것보다는 꼴이 조금 우스운 게 낫다고.

         

         “레나… 레나…!”

         “…….”

         

         더는 섞을 말조차 떨어진 헬레나는 나를 피신시키자마자 명실상부한 적이 되어 나타난 앤과 끝을 보기 위해 다시 정면으로 뛰쳐나갔다.

         

         현재 내 위치는 저 멀리 구석, 그러니까… 이 난장판 속에서도 기절한 상태인 중년 수염남 옆자리.

         

         …신체능력적으로 체급차이가 좀 심하게 나는 건 인정하나 이런 취급을 받을 만큼 못나지는 않았다고 주장하겠다.

         

         그러므로 이건 어디까지나 작전상 후퇴도 아닌, 전장 변경이다.

         총보다 더 효과적인 공격수단의 확보와 붕괴한 3번 엘리베이터 대신 다른 곳으로 진입하기 시작한 징수부대에 우선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전투.

         

         콰직!! 쿵!

         까드드드득!!

         

         두 사람의 격전이 점점 멀어져간다.

         설마 또 배려 받는 건가 싶었으나, 더 이상 헬레나 외의 것은 아무 상관도 없다는 듯 주변을 거의 분쇄할 정도로 무지막지하게 퍼붓는 앤의 맹공을 보면 그럴 여유는 없어 보였다.

         

         그녀가 지는 건 상상하기 어렵지만… 그녀의 칼까지 무적을 아닐 테니 곧 내 조력이 필요해질 것이다.

         

         – 3번 출입구의 경비를 담당한 분대가 제대로 된 브리핑조차 못하고 몰살당한 걸 명심하도록. 또한… 만약의 상황엔 시험품 PK-013의 자율 투약을 허가한다. –

         

         당연히 내 얘기는 아니고… 사고 친 헬레나를 노리는 거겠지 이건.

         

         “후우… 금방 정리하고 돌아올게.”

         

         이미 멀어진 사람이 들을 리는 없었지만, 스스로에게 약속하듯 호기로운 다짐을 하고 정신을 집중한다.

         

         권총과 자리를 맞바꾼 물건은 바쁜 와중에도 회수해온 내 단말기.

         

         풍덩… 하는 환청과 동시에 의식을 가라앉힌다.

         광활한 가상 세계에 비한다면 덧없이 작은 인간 뇌에서 벗어나 연산 장치로. 회로의 신호 발생기를 거쳐 아까 뚫어 놓은 백도어를 통해 수확 구역 네트워크로.

         

         깊게… 깊게… 더 깊게. 오랜만의, 사실상 연구소 이후 처음으로 행한 어비스 다이브임에도 불구하고 순조로운 잠수가 이어졌다.

         

         오히려 암흑으로부터 빚어낸 내 자리(Throne)에 앉아 가벼운 손짓만으로도 모든 걸 살피고 있으려니 자아가 명료해지는 느낌마저 들었다.

         

         “자, 저것들을 어떡한다…….”

         

         각 출입구에 설치된 보안 카메라를 통해 몰려드는 징수 부대의 규모를 확인했다.

         

         이 미친 전쟁광 새끼들. 겨우 침입자 한 명을 상대로 전쟁이라도 벌일 심산인지 무슨 스마트 유도확산탄에 실내용 고폭 수류탄까지 바리바리 챙겨온 게 카메라에 전부 노출됐다.

         

         이거… 아무리 권한 탈취에 성공했다지만 혼자서 감당할 수 있는 병력이 맞나…?

         

         병기고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검색되는 구조물 이래봐야 감옥에 의료기기 비스무리한 장비만 산재한 여기서 내가 쓸 만한 게 남았다면……… 잠깐, 뭐가 이렇게 많아.

         

         조회되는 수술실만 수십 군데. 거기에 더해 시스템에 연결된 각종 로봇들.

         

         “…니들은 재수도 없다.”

         

         쌔끈한 최신식 장비로 벌일 시가전이라도 상정하고 쳐들어온 모양인데… 미안하지만 이런 조건하에서 나는 한낱 개인이 아니다.

         

       

       

         그런고로 환경 그 자체, 주변 모든 기계가 너희들을 적대하는 전례 없는 공포를. 뼈저리게 느낄 수 있도록 몸소 도와주겠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정작 엔지니어 시험엔 사격술 항목이 없었다.)

    …오늘도 면목없이 많이 지각했습니다.

    연재를 하면서 이런 경우가 없어서 어떻게 안내해드려야 할지 모르겠는데… 이번 에피소드 17화, 바로 이전 화가 약간(?) 개고되었습니다.

    총 1500자 가량이 추가 및 변경되어 지나치게 은유적이라 불쾌감을 드렸던 아샤의 내면 묘사를 명확하게 바꾸고, 앤과의 전투씬에 디테일을 더했습니다.
    결국 17화는 약 7천자가 넘어버렸네요.(…)

    항상 재밌게 봐주시고, 응원해주시는데 보답드리지 못하는 것 같아서 죄송합니다.

    다음화 보기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Status: Ongoing Author:
No matter how many times I repeated the episodes, I couldn't clear the true ending of the open-world shooting RPG, Neo Haven. Just when I thought I finally cleared the hidden true ending... they want me to actually clear it without any help from the game system or save/load fe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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