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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5

       “교, 교관님, 호, 혹시 훈련시간을 늘려주실 수 있을까요?”

       “?”

         

       7번 병아리, 이름이 로즈였나?

       레비 폴트 이후 등장한 열정적인 여생도.

       기특한 건 맞지만, 이한은 안다.

       저러한 부탁이 기사가 되고 싶어서 하는 부탁이 아니라.

         

       “그, 그리고 가능하다면 체력과 운동능력을 향상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호, 혹시 가능할까요?”

       “단기간에 그게 가능하려면 아마 여러모로 힘들 텐데?”

       “부, 불가능하단 말씀은 안 하시네요, 그럼 할게요.”

       “…운동 과목이 아슬아슬한가 보군.”

       “네에.”

         

       생존을 위한 발버둥임을.

         

       몇 명째더라?

         

       오늘로만 벌써 열 명이 넘는 인원이 훈련 트레이닝을 새롭게 짜달라 부탁을 넣고 있었다.

       청탁처럼 포션이나 고급 초콜릿, 혹은 위스키를 가지고 오는 생도들도 있을 지경.

       허나 이게 뭐 진짜 청탁도 아니고, 그냥 어떻게든 체력이랑 운동신경만 높여달라는 애원임을 알기에 이한은 허탈할 따름이었다.

         

       이건 뭐, 헬스장도 아니고.

         

       그것도 여름이 다가오니 다급하게 복근 만들고 싶어 집중강의를 부탁받는 느낌이다.

       그래도 뭐.

         

       “청탁은 다들 그만하고, 체력 증진과 운동능력 향상 등을 원하는 이들은 매일 아침 7시까지 하루도 빼먹지 말고 오도록. 운동능력 향상은 몰라도 체력은 확실히 키워줄 테니.”

         

       -네, 네에!

         

       병아리들은 기쁜 낯빛으로 돌아갔다.

       자신이 도와준다고 하니 천군만마를 얻었다는 표정.

       그러나 이한의 밑에서 본격적으로 구른 사람은 알 것이다.

       뱀을 피하려다 절벽을 만난 격이란 것을.

         

       “후회할 짓을 하는군.”

       “내일 여럿 죽을 것 같군요.”

         

       병아리들이 곡소리 낼 광경이 벌써부터 선하다며 안쓰러운 표정을 짓는 가란드와 아르노였다.

         

       다만.

         

       “으으윽!”

       “외, 외울 게 뭐가 이리 많은 거야!”

       “…그냥 검만 잘 다루면 되는 거 아닌가? 왜 기사가 공부를 해야 하냐고!”

       “아직 기사가 아니니까.”

       “……그러네.”

         

       내일 곡소리를 낼 이들이 있는가 하면, 지금부터 곡소리를 내는 이들도 상당히 널렸으니.

         

       사각, 사각.

         

       원래라면 거친 목검의 파공성과 줄넘기 소리만 났어야 했을 연무장에는 목검 대신 볼펜과 흑연을 잡은 채 공부하는 이들이 많았다.

       도서관이나 자습실의 경우 이미 다 자리를 빼앗겨 저리 쭈그려 앉아 공부하는 것이었다.

       곰돌이들 같은 경우 곰 가죽을 영리하게 활용하듯 돗자리마냥 깔아서 공부했는데, 상당히 공부하기 편한 듯하다.

         

       …갑옷 대신 이용하라니까.

         

       “그래도 돈 낭비하는 놈들보단 나은가?”

         

       그러나 저들보다 더 도구를 낭비하는 건 책상을 구매하여 아예 연무장에다 자습실을 만들어버린 도련님들이었다.

       이한은 자기가 마음대로 사용하도록 허가하긴 했지만, 저게 무슨 돈지랄인가 싶어 떨떠름할 따름.

       하여튼 부잣집 도련님 티를 못 내서 안달이 났다.

         

       “이러니 내가 도련님이라고 부르지.”

       “다, 다 들립니다, 교관님.”

       “들으라고 하는 거야, 이것들아. 그러니까 평소에 공부하지, 지금에 와서 그러고 있냐?”

       “…바빴습니다.”

       “혓바닥만 길어선, 쯧쯧.”

       “…….”

         

       그들은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더는 그와 어울리지 않았다.

       입씨름을 하기보단, 하나라도 더 암기하기 위하여.

         

       “…흠.”

         

       이한은 때 아닌 학구열 열풍이 부는 연무장을 보며 문득 명언이 하나 떠올랐다.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더니.”

         

       그 말대로 웃기긴 한데, 차마 웃을 수 없는 장관에 이한은 고개를 저으며 묵묵히 스쿼트나 하기로 했다.

         

       딱 만 개만 하자며.

         

       * * *

         

       팬드래건 왕립 아카데미의 시험은 왕도의 시민들에게 있어 유명한 ‘빅(Big)-이벤트’다.

         

       왜 갑자기 놀처럼 짖냐고?

       아니, 짖는 소리를 한 게 아니라 진짜 사실을 말하는 거다.

         

       물론 왜 시험 기간이 빅 이벤트로 분류될 수 있나 물을 수 있겠지만, 이건 어떻게 보면 전날 이루어진 워 게임과 비슷한 맥락이라고 보면 된다.

         

       “토론회가 언제 열리는지 아나?”

       “간만에 폴로(Polo) 시합을 보겠구먼, 아! 테니스 시합과도 겹치는 건가?”

       “으음, 난 크리켓이나 기다리겠네.”

       “그 재미없는 크리켓은 왜? 차라리 요트 ‘시험’을 보면 봤지.”

       “크리켓은 크리켓만의 매력이 있어!”

       “중증이구먼.”

         

       문무겸비를 중시하는 왕립 아카데미 특성상, 생도들 90% 이상은 필수교양 과목으로 반드시 스포츠 과목을 들어야 했다.

       건강한 육신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던가?

         

       어디서 많이 들어본 얘기가 아닐 수 없다.

         

       어찌 됐건, 중요한 건 이러한 문무겸비를 위해서인지 생도들은 필기시험만이 아니라, 스포츠에서도 우수한 성적을 보여야만 했다.

       못해도 평균은 되어야 한다는 의미.

         

       허나 생도들에겐 성적을 받기 위한 필사적인 시험일지라도, 평민들에겐 보기 드문 고급 레저 스포츠 관람의 기회일 따름이었다.

         

       그래, 우습게도 중간평가와 같은 시험기간에는 아카데미가 개방되는 것이었다.

       워 게임과 마찬가지로 대중의 참가가 허락된 것.

         

       개방의 목적은 일반 대중에게 생도들의 수준을 보여주는 홍보이자 권위를 보여주기 위함도 있다고 하지만, 실상은 귀족들이 자신들의 우월함을 보여주기 위해서란 게 정설이란 소문이 확신처럼 돌았다.

         

       그래도 이러한 스포츠 관람은 백성들에게 큰 오락이 되는 바.

         

       시대가 어떻건 간에, 스포츠만큼 군중의 심리를 파고들어 조화롭게 하는 것이 없으니까.

         

       …어쩌면 이러한 군중의 심리를 안 누군가가 일부러 스포츠 과목을 넣은 것이 아닐까 싶었다.

         

       백성들의 마음을 모으기 위하여.

         

       허나 이러한 막대한 이벤트인 스포츠조차 그저 곁다리에 불과할 뿐.

       이 나라의 지식층과 지배층이 기대하는 최대 이벤트는 다름 아닌.

         

       “이야, 필기시험을 토론이랑 발표로 대체한다는 발상은 누구한테서 나온 걸까?”

         

       토론회와 전시회, 그리고 발표회 등이야말로 생도들의 성적을 평가하는 최대의 평가 과목이라 할 수 있으리라.

         

       지독했다.

       만약 법률, 군사학, 문학, 예술 쪽으로 가면 토론은 기본 100분 이상 진행해야 하며.

       100분 동안 무조건 수업 중 배운 용어와 사례, 논문 등에서 예시를 들어야만 하는 것이다.

         

       평가 기준은 교수들을 비롯한 정식 초대장을 받은 저명한 학자들에게 주어지며, 토론을 통해 강한 인상과 이지적 면모를 보이지 않는다면 바로 점수가 깎이는 것.

       나머지 전시회와 발표회 등도 마찬가지다.

       각 분야의 전문가와 교수들이 모여 그 모든 걸 평가한다.

         

       토론과 마찬가지로 얼마나 전문성이 있고, 준비가 철저한지.

         

       또한 지식을 얼마나 제 것으로 만들었는지가 중요하며, 질문을 비롯한 갑작스러운 상황에서 어찌 대처하는지 등등.

         

       시험보단 ‘실전’이 아닌가 싶었다.

         

       이러한 감상에.

         

       “아카데미는, 아니 왕국은 원하는 겁니다. 그저 시험 성적만 좋은 인재가 아니라, 실전에서 충분히 써먹을 수 있는 훌륭한 인재를요. 어차피 공부야 암기와 이해력만 좋으면 성적이 잘 나오는 흔해빠진 것에 불과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아카데미는 토론회와 같은 거대한 무대에서 생도들이 얼마나 대응력과 판단력이 좋은지 확인하며, 그동안 배운 학문을 얼마나 제 것으로 만들었는지를 주의 깊게 보는 겁니다. 그리고 이러한 시험 덕분에 항상 아카데미는 양질의 인재를 세상에 내놓는 것이죠.”

       “…….”

       “왜 그렇게 보십니까?”

       “재수 없는 발언이다 싶어서.”

       “예에?”

         

       데미안 폴렛은 자기가 무슨 이상한 발언을 했나 싶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당연한 발언만 했는데 뭐가 이상하단 걸까?

         

       생긴 거랑 다르게 수재는 되는 데미안 폴렛이었고, 이한은 하늘도 무심하다 싶었다.

       성격이 저런 놈이 왜 저리 다재다능한지, 원.

         

       ‘그럼 암기도 못하는 놈은 금붕어냐?’

         

       그 암기와 이해력을 발휘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데, ‘따위’로 표현할까.

       이한은 이놈의 주리를 당장 틀고 싶었으나, 참았다.

       일 시킬 놈이 사라지면 안 되니까.

         

       ‘그래도 실전성은 좋네.’

         

       인정할 건 인정하자면, 이 나라가 얼마나 인재를 육성하는 데 진심인지 알겠다.

       실전적인 방식으로 확실한 인재만 졸업시키겠단 의지.

         

       이른바 인재 조기교육의 성지가 아닐까?

         

       ‘내가 여기 다녔으면 바로 그만뒀을 것 같긴 하다만.’

         

       다른 건 모르겠는데, 토론회나 발표회 등은 그가 감당할 게 아니었다.

         

       “토론이랑 발표를 학생마다 다섯 개 이상은 해야 한다는 거지?”

       “무조건은 아닙니다만, 좋은 모습을 보여줄 자신이 없다면 양으로 때우는 게 최고긴 하지요.”

       “그런데도 평균 이상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면 퇴학인 거고.”

       “토론회 자체보다 교수들과 지식층의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못하는 이들은 바로 탈락이지요. 그래서 평소 공부가 부족한 자들은 불리한 점이 많을 겁니다.”

       “넌 문제없고?”

       “귀족들은 가정교사를 통해 이미 사전에 나올 예상 질문과 토론 주제에 대해 공부하고 아카데미에 입학하는 경우가 많지요, 그러니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편입니다.”

       “와아, 어쩐지.”

         

       병아리들, 그러니까 귀족 영애들은 다들 토론회나 발표회 준비보다 스포츠에 열정적인 이유가 있었다.

       그것들은 이미 가정교사를 통해 조기교육을 확실히 해놨으니 걱정이 덜한 거다.

       그러니 약한 과목에만 집중하는 것이지.

         

       “영악한 것들.”

       “원래 귀족 영애들이 그렇습니다. 겉보기론 청초하고 순진해 보이지만, 여우나 다름없지요.”

       “그 말 그대로 병아리들에게 전달해주마.”

       “!!?”

       “농담이다.”

       “교, 교관님이라면 진짜 하실 것 같아 심장이 다 떨렸습니다.”

       “엄살은.”

       “…엄살 아닙니다.”

         

       한차례 안색이 질리는 데미안을 무시한 채, 이한은 아카데미에서 퇴학생이 미치도록 많은지 이해가 갔다.

       이러한 시험만 치는데 졸업자가 10%나 있는 것도 놀랍다.

         

       “……응?”

         

       그렇게 지독한 시험 일정을 확인하던 중, 이한은 눈을 의심했다.

         

       이상한 걸 본 것 같은데.

         

       “뭐냐, 이거? 왜 이래?”

       “뭐가 말입니까?”

       “아니, 시험 마지막 날 말이야.”

         

       거의 2주 내내 치러지는 시험일.

       한데 유난히 마지막 날만큼은 그 어떤 시험도 없다.

       오로지.

         

       “왜 검술학부 시험이 메인처럼 돼 있냐?”

         

       검술학부 시험.

       그 시험이 마지막 대미를 장식하듯 일정에 적혀 있었으며, 이한은 눈을 끔뻑거렸다.

       그러나 데미안은 당연하다는 듯.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사실상 가장 큰 볼거리, 아니 시험 일정인데.”

       “지금 볼거리라고 했냐?”

       “차, 착각입니다. …그, 그보다 보십시오! 교관님이 일정을 저한테 다 맡기시고, 본인이 확인하지 않으시니 정보가 늦은 거 아닙니까.”

       “어디서 잔소리야.”

         

       빠악!

         

       “아아아악!”

         

       노예, 아니 조교 주제에 감히 대들다니.

       여전히 버르장머리가 없다.

         

       이한은 뒤통수를 부여잡은 채 고통에 몸부림치는 조교에게 관심을 끄며 일정과 계획을 제대로 읽어보았다.

       왜 검술학부 시험이 대미인지 이유를 알기 위하여.

         

       그리고 잠시 후.

         

       “…이러니 자퇴하는 놈들이 많지.”

         

       어처구니가 없었으며, 왜 검술학부 평민 생도들이 줄줄이 자퇴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이건 평민이, 투기법을 배우지 않은 검사는 절대 통과하지 못할 시험이었으니까.

         

       [‘트롤’과 단독 전투].

         

       이른바 마물 토벌.

         

       한데.

         

       “……왜 찝찝하지?”

         

       ‘친근감’이 느껴지는 트롤이 토벌된다는 내용에서 느껴지는 씁쓸함.

         

       이한은 왜 트롤에게 친근감이 드는지 영문을 몰랐으며, 오묘한 떨떠름함과 함께 고개를 갸웃거렸다.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It Was a Romance Fantasy?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It Was a Romance Fantasy?

환생 30년, 알고 보니 장르가 로판이었다?
Status: Ongoing Author: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the genre was romance fantasy? ...Really, how? I lived as a magician's slave, experimented on, then as an assassin, mercenary, soldier, and even a knight. This is a story where I'm in a genre all by my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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