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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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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가볍게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을 치워버렸다. 그리고는 어서 대사를 읊으라며 침대 위를 철컥철컥 구르는 마검을 붙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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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리 그래도 그런 대사는 못해.”
    [ ….! 어째서냐!? 어째서 이 멋진 대사를 외치지 못한다는 거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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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잠시 입을 다물고 생각했다. 여기서 “대사가 너무 오글거린다.”라고 대답하면 마검은 100% 삐져서 힘을 안 빌려줄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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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론, 계약한 상태라서 억지로 마검의 힘을 사용할 수 있지만 오랜 시간 파트너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만큼 마검을 존중해줄 필요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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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으..런 멋진 대사는 아무래도 내가 치기 좀 그렇지. 그..멋진 대사는 역시 마검이 외치는 게 맞다고 생각해.”
    [ 끄응, 확실히 위대한 이 몸이 멋진 대사를 외치면 하늘이 시샘하고 땅이 떨릴 테니. 하지만 내 목소리는 파트너에게만 들리지 않은가? ]
    “아니야, 가르간도아는 분명 멋진 마검이잖아? 중요한 상황이 되면 분명 너의 목소리가 상대한테 들릴 거야!”
    [ 그,그럴 수 있다고? ]
    “그으러엄. 당연하지. 위대한 가르간도아의 말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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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거? 없다.
    논리? 없다.
    있는 거라고는 가르간도아를 칭찬하는 말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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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행히 단순한 마검은 내 칭찬에 흐물흐물 녹아 잘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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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크흐흠, 그런 거라면 어쩔 수 없지! 대사는 내가 외치도록 하겠다. ]
    “그래 잘 생각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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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검은 이내 어떤 대사를 외쳐야 멋있을지 혼자서 고민하기 시작했다. 매달려서 좋은 아이디어 좀 생각해보라며 떼쓰는 것보단 훨씬 나았기에 마검을 그대로 두고 아이리스 쪽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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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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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옆에 앉아있는 아이리스를 바라보자, 아이리스가 내 옷자락 끝을 잡은 채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치 “왜?”라고 물어보는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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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리스 배는 안고파? 졸리지는 않고? 혹시 불편한 데는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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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질문할 때마다 아이리스가 고개를 양옆으로 저었다. 하얀 머리카락이 흔들렸다. 주인공답게 따로 향유를 쓰지 않았음에도 좋은 향기가 나는 데다가 비단결처럼 찰랑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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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반사적으로 부스스해진 머리카락을 빗겨주었다. 아이리스가 눈을 내리 깐 채 머리를 맡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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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하는 게 있으면 언제든지 말해. 알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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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 말하며 손을 떼자 아이리스가 내 손을 덥석 붙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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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거.”
    “응?”
   “이거,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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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 말에 눈을 깜빡거리다가 선선히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아이리스가 내 손을 가져가 제 얼굴에 문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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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에…아이리스 너무 귀여워! 그리고 볼이 너무…말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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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잡티 하나 없는 하얀 피부는 로션 하나 바르지 않았음에도 말랑하고 촉촉하고 부드러웠다. 순간 정신을 잃고 찹쌀떡 만지듯 주물럭거릴 뻔했다. 마성의 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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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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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리스는 기분이 좋은지 작게 웃음을 흘리며 한참 동안 내 손에 얼굴을 문질렀다. 고양이가 애교를 부리는 것 같은 모습에 나는 얌전히 힐링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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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후훗, 그 녀석을 구하고 싶다면 나를 이기고 가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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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간중간 어디 악당이나 칠 법한 대사를 연습하는 마검의 목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느긋하게 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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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허기가 느껴질 즘 아이리스와 함께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방으로 돌아왔다. 소파에 늘어져 기분 좋은 나른함을 즐기다가 배가 꺼질 때쯤에 아이리스와 같이 낮잠을 잘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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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똑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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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화가 다 되기도 전에 손님이 찾아왔다. 나는 마른침을 삼키며 아이리스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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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님이 오신 거 같으니까 잠깐만 여기 있어. 알았지?”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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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이리스는 내 옷자락을 만지작거리다가 미련이 뚝뚝 떨어지는 눈을 한 채 옷을 놓아주었다. 나는 가볍게 심호흡을 한 후 문으로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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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세요?”
    “나야. 빨리 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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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익숙한 쥐 수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등 뒤로 식은땀이 흘러내리는 걸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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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마 들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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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머릿속에 깔끔하게 베어진 연무장 벽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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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냐, 만약 그랬으면 노크할게 아니라 문을 부쉈겠지! 그,그냥 새 경기 잡혔다고 알려주러 온 걸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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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동자는 물론 온몸이 마구 떨렸지만, 최대한 속을 진정하며 문손잡이를 붙잡았다. 그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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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드드드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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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이 나랑 같이 떨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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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친, 이게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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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쥐 수인이 욕설을 내뱉는 소리가 들렸다. 어쩐지 그 목소리를 들으니 마음이 안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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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너도 저런 말을 했었지.’
    ​
    ​
    머릿속에 손바닥만 한 쥐가 떠오른다. 나와 쥐는 둘도 없는 친구였다. 둘이 같이 놀이동산도 가고, 밥도 먹고, 노래방도 가고, 서로의 여자친구도 소개해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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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야, 누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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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있을 수 없는 장면이 떠오르자 정신이 들었다. 생각해보니 나에게 쥐 수인을 닮은 쥐 친구는 없었다. 가짜 과거 회상을 하고 나니 떨림이 멎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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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연성도 논리도 없는 과거 회상은 개그 세계에서 종종 볼 수 있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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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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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을 열자 바짝 꼬리를 세운 쥐 수인이 열린 문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뒤로는 무표정한 얼굴을 한 두 명의 사람이 서 있었다. 한명은 여자였고 다른 한명은 남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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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금 문이 왜 -….아니,아니다.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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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쥐 수인은 흔들리던 문에 의문을 가지다가 이내 가볍게 고개를 저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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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마 진짜…연무장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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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쥐 수인의 입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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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님께서 부르니까 얌전히 따라와.”
    “아..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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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무장 얘기가 아니라는 사실에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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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꾸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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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 순간 옷자락이 잡아당겨졌다. 뒤를 돌아보자 어느새 다가온 아이리스가 두 손으로 내 옷자락 끝을 잡은 채 눈을 내리깔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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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미리 말하고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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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마터면 아이리스에게 제대로 설명도 안 하고 떠날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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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리스 잠시 나 찾는 사람이 있어서. 금방 다녀올게. 혼자서 기다려줄 수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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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말에 아이리스는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혹시 어디가 아픈 건 아니겠지?’라는 걱정이 들려는 순간 아이리스가 조심스럽게 내 옷자락을 놓더니 고개를 끄덕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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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대한 빨리 다녀올게. 집 잘 지키고 있어 줘. 아, 함부로 모르는 사람 문 열어주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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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리스는 몇 번이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쥐 수인은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는 듯 내 손목을 잡아당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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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방 다녀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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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지막 인사를 건네자 문이 닫혔다. 쥐 수인은 나를 끌고 저번에 갔던 적 있는 목욕탕으로 데려갔다. 온몸이 씻겨진 후 노곤하게 엘리베이터를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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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나저나… 이 사람들은 정말 반응이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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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내 앞과 뒤에 선 남자와 여자를 바라보았다. 그들은 지금까지 단 한 번의 표정 변화 없이 묵묵히 움직이고만 있었다. 마치 아무런 감정도 없는 인형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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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막 암살자 같은 거 아니야?’
    ​
    ​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엘리베이터가 멈췄다. 이후에도 몇 번 더 복잡한 이동을 거친 후 좀비를 만난 적 있는 장소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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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좀비는 잘 지내고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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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며 쥐 수인의 뒤를 따라갔다. 저번에 만났던 좀비를 만나러 가나 조금 기대했는데, 가는 길이 전혀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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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들어가서 손님이 명령하는 대로 따르면 돼. 돌아갈 시간에는 알아서 데리러 올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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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쥐 수인은 왠지 저번보다 조금 더 친절해 보였다. 아마 내 가치가 더 늘어난 덕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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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끼이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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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앞, 뒤에 서 있던 두 사람이 문을 열어주었다. 두 개의 문짝이 활짝 열리고 내부가 훤히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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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번이랑 비슷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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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좀비를 만났던 장소와 비슷하게 생긴 내부를 보며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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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끼이익, 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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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좀비네와 달리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닫히는 문을 흘긋거렸다. 문을 닫은 둘은 말없이 문 옆에 서서 움직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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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들어가면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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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시 고민하다가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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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어떤 사람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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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번에는 좀비였으니 이번에는 천사 같은 사람이 나오지 않을까? 작은 기대를 안고 안으로 쭉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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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
    “끌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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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는 노인의 얼굴을 보곤 나도 모르게 탄성을 뱉고 말았다. 그 모습이 재미있던 건지 노인이 기분 나쁜 웃음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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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앉아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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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인이 지팡이로 바닥을 탁탁 두드리며 하는 말에 나는 자연스럽게 그의 맞은편에 앉으려 했다. 그러자 길쭉한 지팡이가 막 소파에 엉덩이를 붙이려는 내 허리에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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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엉거주춤한 자세로 그를 바라보자 노인이 축 늘어진 주름을 휘며 웃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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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히 노예가 나와 같은 자리에 앉을 수 있을 리 없잖느냐. 너의 자리는 여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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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인이 지팡이를 거둬들인 후 바닥을 툭툭 두드렸다. 그 모습에 내 얼굴이 굳어버렸다. 노인은 히죽히죽 웃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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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 어서 앉아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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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말에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결국 노인이 툭툭 두드렸던 바닥에 주저앉았다. 눈앞에 노인의 가느다란 무릎이 보였다. 노인의 다리 바로 앞에 앉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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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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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인이 원한 그림은 이게 아닌 듯, 노인이 잔뜩 당황한 목소리로 주춤 뒤로 물러났다. 나는 순간 노인이 뒤로 넘어지는 줄 알고 잡아주고자 몸을 앞으로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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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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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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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으로 몸을 내밀고자 손을 앞으로 뻗은 순간, 무언가가 손에 걸려 작동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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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였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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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이 건드린 장치가 무엇인지 몰라 눈동자를 빠르게 굴리고 있는데, 노인이 앉아있던 소파 등받이가 뒤로 휙 넘어갔다. 소파의 등받이 각도를 조절하는 장치를 건드리고 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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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으허억,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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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갑작스러운 상황에 노인은 대응하지 못하고 그대로 소파에 엎어졌다. 지팡이를 놓친 탓에, 지팡이가 하늘을 날아 바닥에 나뒹굴고, 우두둑하는 소리와 함께 노인이 소파에 늘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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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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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슬금슬금 몸을 뒤로 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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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혈소연님! 익명님! 후원감사합니다! 연재 열심히 하겠습니다!

Ilham Senjaya님! 오늘도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가련하게 쓰러지는 반숙씨…

추천과 선작은 사랑입니다!다음화 보기

나는 가볍게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을 치워버렸다. 그리고는 어서 대사를 읊으라며 침대 위를 철컥철컥 구르는 마검을 붙잡았다.

“아무리 그래도 그런 대사는 못해.”

[ ….! 어째서냐!? 어째서 이 멋진 대사를 외치지 못한다는 거지?! ]

나는 잠시 입을 다물고 생각했다. 여기서 “대사가 너무 오글거린다.”라고 대답하면 마검은 100% 삐져서 힘을 안 빌려줄지 몰랐다.

물론, 계약한 상태라서 억지로 마검의 힘을 사용할 수 있지만 오랜 시간 파트너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만큼 마검을 존중해줄 필요가 있었다.

“그으..런 멋진 대사는 아무래도 내가 치기 좀 그렇지. 그..멋진 대사는 역시 마검이 외치는 게 맞다고 생각해.”

[ 끄응, 확실히 위대한 이 몸이 멋진 대사를 외치면 하늘이 시샘하고 땅이 떨릴 테니. 하지만 내 목소리는 파트너에게만 들리지 않은가? ]

“아니야, 가르간도아는 분명 멋진 마검이잖아? 중요한 상황이 되면 분명 너의 목소리가 상대한테 들릴 거야!”

[ 그,그럴 수 있다고? ]

“그으러엄. 당연하지. 위대한 가르간도아의 말이잖아!”

근거? 없다.

논리? 없다.

있는 거라고는 가르간도아를 칭찬하는 말뿐.

다행히 단순한 마검은 내 칭찬에 흐물흐물 녹아 잘 넘어갔다.

[ 크흐흠, 그런 거라면 어쩔 수 없지! 대사는 내가 외치도록 하겠다. ]

“그래 잘 생각했어.”

마검은 이내 어떤 대사를 외쳐야 멋있을지 혼자서 고민하기 시작했다. 매달려서 좋은 아이디어 좀 생각해보라며 떼쓰는 것보단 훨씬 나았기에 마검을 그대로 두고 아이리스 쪽을 바라보았다.

“…?”

내 옆에 앉아있는 아이리스를 바라보자, 아이리스가 내 옷자락 끝을 잡은 채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치 “왜?”라고 물어보는 것처럼 보였다.

“아이리스 배는 안고파? 졸리지는 않고? 혹시 불편한 데는 없어?”

내가 질문할 때마다 아이리스가 고개를 양옆으로 저었다. 하얀 머리카락이 흔들렸다. 주인공답게 따로 향유를 쓰지 않았음에도 좋은 향기가 나는 데다가 비단결처럼 찰랑거렸다.

나는 반사적으로 부스스해진 머리카락을 빗겨주었다. 아이리스가 눈을 내리 깐 채 머리를 맡겼다.

“원하는 게 있으면 언제든지 말해. 알겠지?”

그리 말하며 손을 떼자 아이리스가 내 손을 덥석 붙잡았다.

“이거.”

“응?”

“이거,필요..해.”

그 말에 눈을 깜빡거리다가 선선히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아이리스가 내 손을 가져가 제 얼굴에 문질렀다.

‘세상에…아이리스 너무 귀여워! 그리고 볼이 너무…말랑해!’

잡티 하나 없는 하얀 피부는 로션 하나 바르지 않았음에도 말랑하고 촉촉하고 부드러웠다. 순간 정신을 잃고 찹쌀떡 만지듯 주물럭거릴 뻔했다. 마성의 볼이었다.

“히…”

아이리스는 기분이 좋은지 작게 웃음을 흘리며 한참 동안 내 손에 얼굴을 문질렀다. 고양이가 애교를 부리는 것 같은 모습에 나는 얌전히 힐링 당했다.

[ 후훗, 그 녀석을 구하고 싶다면 나를 이기고 가라. ]

중간중간 어디 악당이나 칠 법한 대사를 연습하는 마검의 목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느긋하게 시간을 보냈다.

허기가 느껴질 즘 아이리스와 함께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방으로 돌아왔다. 소파에 늘어져 기분 좋은 나른함을 즐기다가 배가 꺼질 때쯤에 아이리스와 같이 낮잠을 잘 생각이었다.

똑똑.

소화가 다 되기도 전에 손님이 찾아왔다. 나는 마른침을 삼키며 아이리스를 바라보았다.

“손님이 오신 거 같으니까 잠깐만 여기 있어. 알았지?”

“…응.”

아이리스는 내 옷자락을 만지작거리다가 미련이 뚝뚝 떨어지는 눈을 한 채 옷을 놓아주었다. 나는 가볍게 심호흡을 한 후 문으로 다가갔다.

“누구세요?”

“나야. 빨리 열어.”

익숙한 쥐 수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등 뒤로 식은땀이 흘러내리는 걸 느꼈다.

‘설마 들켰나?’

내 머릿속에 깔끔하게 베어진 연무장 벽이 떠올랐다.

‘아냐, 만약 그랬으면 노크할게 아니라 문을 부쉈겠지! 그,그냥 새 경기 잡혔다고 알려주러 온 걸 거야.’

눈동자는 물론 온몸이 마구 떨렸지만, 최대한 속을 진정하며 문손잡이를 붙잡았다. 그러자.

드드드드득!

문이 나랑 같이 떨리기 시작했다.

“미친, 이게 뭐야!?”

쥐 수인이 욕설을 내뱉는 소리가 들렸다. 어쩐지 그 목소리를 들으니 마음이 안정되었다.

‘너도 저런 말을 했었지.’

머릿속에 손바닥만 한 쥐가 떠오른다. 나와 쥐는 둘도 없는 친구였다. 둘이 같이 놀이동산도 가고, 밥도 먹고, 노래방도 가고, 서로의 여자친구도 소개해주고 -…

‘뭐야, 누구야?’

있을 수 없는 장면이 떠오르자 정신이 들었다. 생각해보니 나에게 쥐 수인을 닮은 쥐 친구는 없었다. 가짜 과거 회상을 하고 나니 떨림이 멎었다.

개연성도 논리도 없는 과거 회상은 개그 세계에서 종종 볼 수 있는 일이었다.

달칵.

문을 열자 바짝 꼬리를 세운 쥐 수인이 열린 문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뒤로는 무표정한 얼굴을 한 두 명의 사람이 서 있었다. 한명은 여자였고 다른 한명은 남자였다.

“방금 문이 왜 -….아니,아니다.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

쥐 수인은 흔들리던 문에 의문을 가지다가 이내 가볍게 고개를 저어 보였다.

‘설마 진짜…연무장 때문에..?’

나는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쥐 수인의 입을 바라보았다.

“손님께서 부르니까 얌전히 따라와.”

“아..네!”

연무장 얘기가 아니라는 사실에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꾸욱.

그 순간 옷자락이 잡아당겨졌다. 뒤를 돌아보자 어느새 다가온 아이리스가 두 손으로 내 옷자락 끝을 잡은 채 눈을 내리깔고 있었다.

‘아, 미리 말하고 가야지.’

하마터면 아이리스에게 제대로 설명도 안 하고 떠날 뻔했다.

“아이리스 잠시 나 찾는 사람이 있어서. 금방 다녀올게. 혼자서 기다려줄 수 있지?”

그 말에 아이리스는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혹시 어디가 아픈 건 아니겠지?’라는 걱정이 들려는 순간 아이리스가 조심스럽게 내 옷자락을 놓더니 고개를 끄덕거렸다.

“최대한 빨리 다녀올게. 집 잘 지키고 있어 줘. 아, 함부로 모르는 사람 문 열어주지 말고!”

아이리스는 몇 번이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쥐 수인은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는 듯 내 손목을 잡아당겼다.

“금방 다녀올게!”

마지막 인사를 건네자 문이 닫혔다. 쥐 수인은 나를 끌고 저번에 갔던 적 있는 목욕탕으로 데려갔다. 온몸이 씻겨진 후 노곤하게 엘리베이터를 탔다.

‘그나저나… 이 사람들은 정말 반응이 없네.’

나는 내 앞과 뒤에 선 남자와 여자를 바라보았다. 그들은 지금까지 단 한 번의 표정 변화 없이 묵묵히 움직이고만 있었다. 마치 아무런 감정도 없는 인형처럼 보였다.

‘막 암살자 같은 거 아니야?’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엘리베이터가 멈췄다. 이후에도 몇 번 더 복잡한 이동을 거친 후 좀비를 만난 적 있는 장소에 도착했다.

‘그 좀비는 잘 지내고 있으려나?’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며 쥐 수인의 뒤를 따라갔다. 저번에 만났던 좀비를 만나러 가나 조금 기대했는데, 가는 길이 전혀 달랐다.

“들어가서 손님이 명령하는 대로 따르면 돼. 돌아갈 시간에는 알아서 데리러 올 테니까.”

쥐 수인은 왠지 저번보다 조금 더 친절해 보였다. 아마 내 가치가 더 늘어난 덕분일 것이다.

끼이익.

내 앞, 뒤에 서 있던 두 사람이 문을 열어주었다. 두 개의 문짝이 활짝 열리고 내부가 훤히 보였다.

‘저번이랑 비슷하네.’

좀비를 만났던 장소와 비슷하게 생긴 내부를 보며 발걸음을 옮겼다.

끼이익, 탁.

좀비네와 달리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닫히는 문을 흘긋거렸다. 문을 닫은 둘은 말없이 문 옆에 서서 움직이지 않았다.

‘들어가면 되나?’

잠시 고민하다가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오늘은 어떤 사람이려나?’

저번에는 좀비였으니 이번에는 천사 같은 사람이 나오지 않을까? 작은 기대를 안고 안으로 쭉 들어갔다.

“아…”

“끌끌..”

나는 노인의 얼굴을 보곤 나도 모르게 탄성을 뱉고 말았다. 그 모습이 재미있던 건지 노인이 기분 나쁜 웃음을 흘렸다.

“앉아봐라.”

노인이 지팡이로 바닥을 탁탁 두드리며 하는 말에 나는 자연스럽게 그의 맞은편에 앉으려 했다. 그러자 길쭉한 지팡이가 막 소파에 엉덩이를 붙이려는 내 허리에 닿았다.

엉거주춤한 자세로 그를 바라보자 노인이 축 늘어진 주름을 휘며 웃어 보였다.

“감히 노예가 나와 같은 자리에 앉을 수 있을 리 없잖느냐. 너의 자리는 여기다.”

노인이 지팡이를 거둬들인 후 바닥을 툭툭 두드렸다. 그 모습에 내 얼굴이 굳어버렸다. 노인은 히죽히죽 웃으며 말했다.

“자, 어서 앉아라.”

“…”

그 말에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결국 노인이 툭툭 두드렸던 바닥에 주저앉았다. 눈앞에 노인의 가느다란 무릎이 보였다. 노인의 다리 바로 앞에 앉은 것이다.

“뭐,뭐야?!”

노인이 원한 그림은 이게 아닌 듯, 노인이 잔뜩 당황한 목소리로 주춤 뒤로 물러났다. 나는 순간 노인이 뒤로 넘어지는 줄 알고 잡아주고자 몸을 앞으로 숙였다.

철컥.

“어?”

앞으로 몸을 내밀고자 손을 앞으로 뻗은 순간, 무언가가 손에 걸려 작동되었다.

‘뭐였 -…아!’

자신이 건드린 장치가 무엇인지 몰라 눈동자를 빠르게 굴리고 있는데, 노인이 앉아있던 소파 등받이가 뒤로 휙 넘어갔다. 소파의 등받이 각도를 조절하는 장치를 건드리고 만 것이다.

“으허억,컥…!”

갑작스러운 상황에 노인은 대응하지 못하고 그대로 소파에 엎어졌다. 지팡이를 놓친 탓에, 지팡이가 하늘을 날아 바닥에 나뒹굴고, 우두둑하는 소리와 함께 노인이 소파에 늘어졌다.

“어…”

나는 슬금슬금 몸을 뒤로 뺐다.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나 혼자 장르가 다르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n the world of comedy anime, I was living an ordinary life until I became possessed by a dark fantasy novel I was reading before falling asleep. ‘Hahaha! Don’t hold a grudge -..!’ ‘Ugh, cough cough…seriously…my clothes are ruined.’ ‘…!?’ Though I was stabbed in the stomach, I calmly stood up and pulled out the spear. Originally, residents of the comedy world are a race that can be torn into 100 pieces and still come back to life the next day. ‘Stop it! Stop now! How long do you plan to sacrifice me?’ ‘No…I mean..’ ‘I’ve become strong to protect you…what have I become?’ Residents in the comedy world are just a race that vomits blood even if they stub their toe. I never made any sacrifices..but my delusion deepens and my obsession grows. One day, while I was half-imprisoned and taking care of some pitiful kids… ‘Are you the boss?’ ‘Excuse me?’ Before I knew it, I had become the behind-the-scenes boss of a huge underworld organ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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