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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5

   태초의 정령사.

   그리고 지금까지 딱 한 명밖에 존재하지 않았던 정령사.

   정령과 계약을 통해 정령 마법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낸 이.

     

   그는 이그리트 가문의 한 남성이었다.

     

   그는 정령과 함께 영웅이라 불릴만한 업적을 더러 세웠다.

   하지만 정령 계약은 세계에서 완전한 금기 사항이 되고 말았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태초의 정령사가 죽은 후, 홀로 남게 된 정령은 주인을 잃은 채 뒤틀려 버렸다.

     

   그들은 죽음의 개념을 몰랐고, 주인이 자신을 버렸다는 생각 속에서 폭주하고 말았다.

   그 결과 그 폭주는 이내 도시 하나를 통째로 날려 버렸다.

     

   그 일로 인해 세계는 확실하게 깨달았다.

   정령은 세계 침식종이며 그들은 절대 상종해서는 안 될 존재들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 기록은 현재도 고스란히 이어져 오고 있으며 이그리트는 여기에 책임감을 느껴 지금까지도 정령왕의 숲을 관리하고 있었다.

     

   크림슨가든이 착잡한 눈으로 하늘을 바라보았다.

     

   “나는 폭주한 그 정령을 당시의 종들을 모아 사로잡았다.”

     

   정령의 폭주를 보고, 책임감을 느낀 그녀는 종의 뒤처리를 위해 어떻게든 정령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정령왕의 숲에 돌려보냈지.”

     

   정령왕의 숲이라면 정령도 원래대로 되돌아와 줄 것이라 믿고, 말이다.

   하지만 그렇지 못했다.

     

   주인을 잃어버린 정령은 하염없이 주인을 그리워했으며 그 폭주를 멈출 줄을 몰랐다.

   그리고 그 결과 정령의 정신은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다.

     

   그렇게 탄생하게 된 것이 바로 혼돈의 정령이었다.

     

   “그렇다면 지금 이곳으로 오는 게.”

   “……정령이 사람을 판단하는 눈은 다르다. 태초의 정령사는 내 종이었으니 녀석에게 내 기척이 묻어 있었다. 그러니 녀석은 그걸 알아보고, 자기 주인이 돌아왔다고 느껴 이쪽으로 오고 있는 거다.”

     

   태초의 정령사가 죽은 지도 벌써 수많은 시간이 지났다.

   그럼에도 정령은 그를 잊지 못해 크림슨가든의 기척을 느끼자마자 이쪽으로 오고 있는 것이었다.

     

   “혼돈의 정령에게 이성은 없다. 도시를 날려 버리는 과정에서 너무 많은 악의를 삼키기도 했고, 스스로 정신이 붕괴하였으니까. 그러니 사리 분별 따위 못 한다. 내 종은 물론이고 네 녀석도 휘말리겠지. 그러니 그러기 전에 빠져나간다.”

     

   분명 지금도 다시 기척을 쫓아 이쪽으로 오고 있을 것이었다.

   그러니 크림슨가든은 크라슈를 데리고 나가고자 재차 마법진을 펼치려 했다.

     

   그러나 크라슈는 크림슨가든의 옆구리를 푹 찔렀다.

     

   “꺅!?”

     

   생각보다 귀여운 비명이 흘러나왔다.

   크림슨가든이 황당한 눈으로 크라슈를 보고 있자 크라슈는 혀를 찼다.

     

   “아까 한 말 기억 안 나냐. 알을 가져가야 한다니까.”

   “내 말 못 들었느냐?”

   “들었어.”

   “네가 정녕 죽고 싶구나.”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크라슈는 어느샌가 검을 확인하고 있었다.

     

   “……잠깐, 너 설마.”

   “혼돈의 정령이 뭔지는 나도 잘 알아.”

     

   크림슨가든의 눈이 흔들렸다.

   크라슈가 혼돈의 정령과 싸우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저대로 둬봤자 망가진 놈이 돌아오지도 못할 거라는 것도 말이야.”

     

   크라슈는 그렇게 말하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저 하늘 끝 또다시 새까만 것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다시 봐도 엄청난 속도다.

   아니, 이건 집념이라고 봐야 할까.

     

   “……정말로 할 수 있겠느냐. 난 이 몸으로 전투는 못 한다. 돕지도 못 해.”

     

   혼돈의 정령은 이제 이성 없이 날뛰는 침식종일 뿐이다.

   크림슨가든도 그것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그녀는 그저 옛정으로 정령을 정령왕의 숲에 풀어줬을 뿐, 이미 애저녁에 포기한 것이 현실이니까.

     

   그러니 그녀는 크라슈에게 물었다.

   혼돈의 정령을 끝맺어줄 수 있냐고.

     

   “미안한데.”

     

   동시에 크라슈의 몸에서 검은색 불길이 치솟아 올랐다.

   세계 침식의 힘이 이그니스를 만나 타오르기 시작한 것이었다.

   

   “애초에 그 녀석을 마무리한 게 나야.”

     

   비록, 지금처럼 혼자서는 아니었지만 말이다.

     

     

   * * *

     

     

   크라슈는 예전에 정령왕의 숲에 왔던 일을 회상했다.

   정령의 숲에서 가장 골치 아픈 존재를 말하라면 그건 다름 아닌 혼돈의 정령이었다.

     

   혼돈으로 변질한 정령은 통상적인 공격이 통하지 않는다.

   그런 혼돈의 정령에게 줄 수 있는 공격은 딱 하나.

     

   ‘스킬.’

     

   신의 힘이 담긴 스킬밖에는 없었다.

   하지만 스킬이라 할지라도 만능적인 건 아니다.

     

   공격적인 스킬도 있지만 보조적인 스킬들도 많았으니까.

   오직 스킬 하나로 혼돈의 정령을 상대하라고 하면 창공의 세대에서조차 혼돈의 정령과 맞설 수 있는 이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런 혼돈의 정령을 바라보며 크라슈는 무슨 생각인가.

   아이러니하게도 사실 크라슈는 혼돈의 정령을 상대할 최적의 상태라고 봐도 무방했다.

     

   그가 현재 지닌 스킬은 두 가지.

     

   하나는 블랙 후드.

   둘은 이그니스다.

     

   블랙 후드는 공격과 거리가 멀지만, 이그니스는 다르다.

   모든 것을 불태우는 신의 불길.

     

   이그니스는 수많은 스킬들 중 가장 공격성이 강한 스킬이었다.

   거기다 이그니스가 지닌 특성은 혼돈의 정령에게 모든 통상 공격을 통하게 만들어 주었다.

     

   ‘그러니 잡으려면 지금 잡는 게 차라리 나아.’

     

   혼돈의 정령은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정령왕의 숲 내부에서 세계 침식을 흡수해 강해졌었다.

   그렇기에 당시에 창공의 세대가 정령왕의 숲을 방문했을 때 혼돈의 정령은 걷잡을 수 없는 괴물로 성장했었다.

     

   ‘당시에는 안쪽에 있었으니까 지금은 잡지 못할 거로 생각했는데.’

     

   크림슨가든 덕분에 초입 지역까지 나와줬으니 이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하나 골치 아픈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됐으니 말이다.

     

   겸사겸사 정령왕의 알 또한 말이다.

     

   쿠구구구구궁!

     

   황금빛 하늘을 뒤덮는 새까만 어둠이 이곳을 향해 몰려들기 시작했다.

     

   “온다.”

     

   크림슨가든의 목소리가 조용히 울려 퍼진 그 순간.

     

   쿠웅!

     

   크라슈와 그녀의 앞에 새까만 액체 덩어리가 투욱 하니 추락했다.

   그것은 어둠을 한껏 농축시켜 만들어낸 존재 같았다.

     

   그리고 그러한 액체가 쭈욱 길게 이어지며 사람의 형태를 만들기 시작했다.

   비록 다리 아래는 여전히 검은 액체 덩어리였지만 상체는 어엿한 사람의 모습이 된 존재는 긴팔을 늘어트렸다.

     

   [ 아그, 니. ]

     

   그 순간 머릿속에 혼돈의 정령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 미약한 두통을 일으키는 걸 보니 거의 저주에 가까운 절규였다.

     

   그런 혼돈의 정령을 보며 크림슨가든은 씁쓸히 눈을 아래로 향했다.

   자기 종을 통해 세계를 보는 그녀에게 있어 혼돈의 정령도 예전에는 동료였다.

     

   그런 동료의 말로를 이런 모습으로 보는 건 그녀도 달갑지 않은 것이다.

     

   ‘하여튼 정 많은 녀석.’

     

   저러니 아서에게 종들이 고문당하는 걸 못 견디고, 결국 본체의 위치까지 알려준 거겠지.

   하지만 이번에는 다를 거다.

     

   ‘내가 아서를 뛰어넘는 최강이 될 때까지 도와줘야 할 테니까.’

     

   그런 식으로 크림슨가든이 끝을 맞이하게 둘 생각은 없었다.

   그리고 그런 크림슨가든의 족쇄를 끊어줄 첫 번째가 바로 눈앞에 있었다.

     

   투둑, 툭-

     

   검은색 액체를 뚝뚝 흘리며 혼돈의 정령이 손을 들어 올리기 시작했다.

   혼돈의 정령은 자의 없이 무분별적으로 공격을 퍼붓는다.

   놈에게 남은 건 파괴 의식밖에 없으니까.

     

   [ 아, 그니. ]

     

   또 한 번 목소리가 울려 퍼진 순간 크라슈가 오러를 끌어 올리며 바닥을 박찼다.

   그 순간 혼돈의 정령의 손끝에서 검은색 액체가 화살처럼 쏟아 나왔다.

     

   파바바바박!

     

   크라슈가 몸을 틀어 피하자 검은 화살이 바닥에 박히며 그 바닥을 새까맣게 물들였다.

     

   크라슈는 그것이 저주의 일종임을 알았다.

   닿는다면 그 즉시 몸이 새까맣게 썩어들어가는 저주 말이다.

     

   그사이 쏘아 내는 데 제한이 없다는 듯이 검은 화살은 계속해서 날아들었다.

   사방에서 쏟아지는 검은 화살 비는 장대비와도 같아 보였다.

     

   그러나 크라슈는 그 화살 비를 보며 뒤로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곡예에 가까울 정도로 화살 비의 세례를 피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의 제 육감은 기존의 감을 아득히 넘어선 영역이다.

   펼쳐진 감각은 자신의 주위 반경 모든 물체를 인식하고, 거기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최단 루트를 만들었다.

     

   화륵!

     

   거기에 세계 침식의 힘을 태운 이그니스는 검은 화살조차 불태웠다.

   이 정도 하위 저주는 이그니스의 불길에 역으로 잡아 먹힐 뿐이다.

     

   자신이 가진 수단을 확실하게 이해하고 응용하는 크라슈의 집중력이 한껏 끌어 올려졌다.

     

   ‘된다.’

     

   검은 화살을 맞받아치며 알았다.

   혼돈의 정령은 지금 그때보다 약해도 한참 약해져 있다.

     

   ‘아직 세계가 세계 침식으로 뒤덮이지 않았으니까.’

     

   당시에 정령왕의 숲은 이그리트가 지키던 성벽조차 파괴하고, 엄청나게 증식했다.

   그 결과 정령왕의 숲이 삼킨 영역이 커짐에 따라서 혼돈의 정령도 덩달아 강해졌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쩌면 정령왕의 숲이 가장 작은 시대.

   혼돈의 정령이 흡수하는 세계 침식의 힘도 한계가 있었다.

     

   챙강!

     

   끊어낸 화살 사이로 혼돈의 정령과 크라슈가 마주쳤다.

   크라슈의 푸른색 눈이 번뜩이자 혼돈의 정령도 위압감을 느꼈다.

     

   검은 화살은 크라슈에게 통하지 않는다.

   그 사실을 깨달은 순간 혼돈의 정령이 대응 방식을 바꿨다.

     

   쿠웅!

     

   그 순간 혼돈의 정령 발아래 울림이 퍼져 나왔다.

   그 울림을 따라서 혼돈의 정령 아래로 떨어지고 있던 먹물 같은 어둠이 벽처럼 치솟아 올랐다.

     

   한순간 태양 빛을 가릴 만큼 하늘 높이 치솟아 오른 벽은 그대로 크라슈를 향해 쓰러져오기 시작했다.

   화살 비가 안 통한다면 벽으로 짓눌러 죽여 버리겠다는 작정이었다.

     

   거대한 해일처럼 쏟아지는 어둠의 벽을 바라보며 크라슈가 바닥을 지르밟았다.

   그 순간 크라슈의 몸에서 세계 침식의 힘과 오러가 동시에 맞부딪쳐 회전하기 시작했다.

     

   크라슈의 다리 근육이 거칠게 부풀어 올랐다.

     

   콰앙, 일어난 연기와 함께 크라슈의 몸이 일직선으로 쭈욱 뻗어 나갔다.

   그사이 그의 머리 위를 향해 검은 벽이 쓰러져 내려왔다.

     

   무너져 오는 벽 아래, 엄청난 각력으로 달린 크라슈가 어느새 검을 검집으로 되돌렸다.

   그러자 검집 내부로 밀려든 오러가 마구잡이로 부딪쳐 나가며 그 힘을 점차 응축시켜 나가기 시작했다.

     

   화륵!

     

   그 순간 세계 침식의 힘이 검집 속으로 흘러 들어감과 함께 이그니스가 불붙었다.

   그 폭발적인 힘이 검집을 터트릴 만큼 부풀어 올랐을 때.

     

   크라슈가 벼락같이 발검했다.

     

   키기기기기기긱, 콰아아앙!

     

   뻗어나간 크라슈의 검이 검은 벽의 밑단을 절단했다.

   크라슈의 머리를 지나친 검은 벽이 추락하며 숲 일대에 연기를 일으켰다.

     

   그런 크라슈의 코앞에 혼돈의 정령이 보였다.

     

   설마하니 검은 벽까지 절단할 줄 몰랐던 혼돈의 정령이 즉시 크라슈를 향해 손을 겨누자 정령의 발아래에서 수십개의 검은 팔이 치솟아 올랐다.

     

   하지만 크라슈의 제 육감은 그런 팔들의 움직임을 모조리 인식했다.

   팔들이 덮쳐오는 모든 방향을 따라 크라슈의 검이 움직였다.

     

   다름 아닌 둔검의 영역이었다.

     

   크라슈의 검이 닿을 때마다 이그니스로 인해 검은 팔들은 모조리 불태워져 나갔다.

   둔검은 혼돈의 정령이 지닌 모든 공간을 장악해 끝내는 크라슈를 혼돈의 정령 앞까지 이끌었다.

     

   쿵!

     

   어느샌가 혼돈의 정령 앞까지 크라슈가 도착한 그 순간.

   크라슈의 정신이 한순간에 물아일체의 경지까지 떨어졌다.

   그의 검이 크라슈의 정신에서 시작된 파문을 따라 용솟음친 오러를 머금었다.

     

   [ 아그……. ]

     

   혼돈의 정령이 마지막 발버둥을 담아 팔을 내뻗었을 때.

   이윽고, 크라슈의 검 위에 검은 불길이 치솟아 올랐다.

     

   일검(一劍)

   

   

   

   

     

   검은 실선이 허공을 갈랐다.

   갈라진 틈을 타고 점차 검은 불길이 휘몰아친 순간.

     

   [ 아그, 니이……. ]

     

   절규가 섞인 혼돈의 정령의 목소리가 선명히 울려 퍼짐을 끝으로 혼돈의 정령이 갈라졌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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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Became a Munchkin skill thief meonchikin seukil dodug-i doeeossda 먼치킨 스킬 도둑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used to think that my stealing skill only worked on what was worthless to a person.

But just before I died, I realized that I could also steal the skills.

So I stole the reg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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