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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5

   EP.55

     

   청린이라는 위험을 피해 동굴을 떠나거나,

   청린이라는 위험을 감수하면서 이곳에 잠시 머문다는 양자택일의 선택.

     

   그리고 이미 동굴에 발을 들인 서세영과 한가민의 선택은 만장일치로 후자였다.

     

   ‘동굴 밖이라고 안전하다는 보장이 없어.’

     

   동굴을 떠나는 즉시, 추위라는 위기에 노출된다.

   게다가 눈보라 속에 어떤 미지의 위협이 있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추위를 피할만한 공간을 언제 다시 찾을 수 있을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이곳에 머물면 저 청린이라는 어인만 신경 쓰면 됐다.

   그는 무슨 이유에선지 곤히 잠들어 있었고 큰 소리만 내지 않는다면 굳이 몸을 일으켜 우리를 공격할 것 같지도 않았다.

     

   그런데 서세영이 예상하지 못한 것이 있었으니.

     

   크르르…

     

   동굴 깊숙한 곳에서 옅은 울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서세영은 당연히 저기 앉아서 잠들어 있는 어인이 동굴의 안전을 미리 확인 했을 것이라 생각했다.

     

   다른 플레이어들과 경쟁을 해야 하는 위험한 장소.

   그런 곳에서 3층까지 살아서 도착한 플레이어가 무방비 상태로 잠을 자고 있을 것이라고는 도저히 상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저벅저벅.

     

   하지만 그 모든 예상을 깨고 진짜 집주인의 그림자가 동굴 안에서부터 슬금슬금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

   “……”

     

   서세영과 한가민은 숨을 가만히 죽인 채, 소음이 들려오는 동굴의 안쪽을 향해 신경을 곤두세웠다.

   그리고 잠시 후, 그곳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은빛 갈기가 예사롭지 않은 거대한 늑대였다.

     

   “……언니, 저거 늑대맞아요?”

     

   한가민의 속삭임에 서세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늑대라…… 생긴 것만 보면 늑대가 맞기는 했다.

   그런데 사람 정도는 어금니만 이용해 오독오독 씹어 먹을 것 같은 무식한 체급을 보면 저걸 늑대라고 부르는 게 맞을지 약간의 의문이 생긴다.

     

   띠링.

     

   [Lv.4 보물 몬스터를 발견하셨습니다.]

     

   —

   [굶주린 대장 흰늑대 Lv.4]

   : 은빛 갈기가 특징인 설산의 늑대다. 보통 사냥감이 많지 않은 겨울엔 동굴 밖으로 잘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과도하게 허기가 지면 먹이를 찾아 터를 벗어나며 그때 노린 사냥감은 결코 놓치는 법이 없다.

   – 사냥에 성공할 시, 보석이나 귀고리를 드랍합니다.

   —

     

   일본 만화 영화에 등장하는 사람 말을 하는 이리가 떠오르는 거대한 자태.

   놈이 등장하자 넓어 보이던 동굴의 내부가 좁아진다는 착각이 든다.

     

   스윽.

     

   “어, 언니 지금 뭐해요?”

   “저 사람 깨워야지.”

     

   서세영은 주변에 보이는 돌을 하나 집어 들었다.

   사람이 된 도리로 위험에 처한 타인을 돕기 위해서 같은 이상적인 이유가 아니었다.

     

   배고픈 짐승은 음식에 대해 광적인 집착을 보인다.

   특히 육식을 주로 하는 맹수의 경우 그 사나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지금 저 어인의 목숨을 끊은 늑대의 다음 타깃은 무엇이 되겠는가?

   현재 동굴에 침입하고 늑대와 가장 가까이 있는 사냥감. 바로 두 사람이 될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다면…’

     

   이이제이 以夷制夷

     

   청린을 깨우기만 하면 된다.

   저 어인을 깨워 늑대와 대치 구도를 만들어야 최대한 도망갈 틈을 마련할 수 있었다.

     

   “흐읍!”

     

   서세영은 청린을 보며 입맛을 다시는 늑대를 향해 얼음이 덕지덕지 붙은 돌을 허리에 힘을 실어 힘껏 집어 던졌다.

     

   노린 것은 늑대의 눈.

   허나 짐승의 본능을 무시할 수는 없었던지 늑대는 돌이 날아오는 소리를 듣자마자 급하게 고개를 비틀었다.

     

   퍼어억!

     

   – 크어엉!

     

   치명상을 피하기는 했지만 서세영이 던진 돌이 머리에 적중하자 늑대가 고통을 담은 포효를 내질렀다.

     

   늑대가 고개를 거칠게 저으며 돌을 던진 범인이 누구인지 색출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다행히도 늑대의 울음소리를 놓칠 정도로 어인은 둔감하지 않았다.

     

   파파팟!

     

   어인이 눈을 뜨자마자 옆에 세워둔 창을 집어 들며 늑대를 겨눴다.

   그렇게 늑대의 관심이 청린에게 쏠리는 것은 순식간이었고 둘의 격돌은 창을 내지른 청린의 선공으로 시작됐다.

     

   ***

     

   “허억… 허억…”

     

   인간형 물고기와 거대 늑대의 싸움은 놀랍게도 물고기의 승리로 돌아갔다.

   늑대는 압도적인 무력과 내구성으로 청린을 몰아붙였고 청린은 신기에 가까운 창술과 수속성 마법으로 늑대를 상대했다.

     

   처음에는 승리의 향방이 체력이 강한 늑대 측으로 기울어 간다 싶었다.

   하지만 지성을 가진 존재에게는 언제나 비장의 카드가 있는 법.

     

   언제부터 준비한 것인지 모를 날카로운 마력이 청린의 창에서 쏘아지자, 결국 늑대는 배를 관통당하고 서서히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젠장, 진짜 죽을 뻔했군…”

     

   아슬아슬한 승리를 거머쥔 청린이 숨을 고르며 자신을 도와 전투를 치른 두 인간을 돌아봤다.

   잠에서 깨자마자 전투를 치르느라 몰랐지만 인간의 도움을 받았다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았다.

     

   “도와줘서 고맙기는 하지만… 왜 나를 도운 거지?”

     

   두 사람은 처음에 도망을 치려는 듯싶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전투에 합류해 청린과 함께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경쟁이 주를 이루는 무대에서 경쟁 상대를 돕는다.

   청린은 그것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고 그의 물음에 서세영은 숨을 고른 후, 미소를 지으며 답변했다.

     

   “그냥 도움이 필요해 보여서요.”

     

   사실 서세영 또한 처음부터 이 어인을 도와 전투를 치를 생각을 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청린이 늑대와 전투를 시작하자마자 서세영의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저 어인… 어인들 중에서는 꽤 지위가 높지 않았었나…?’

     

   어린 왕에게 하명하라며 짜증을 낼 수 있는 존재.

   어린 왕을 옆에 두고 가르침을 내리며 조언을 할 수 있는 존재.

     

   ‘거의 섭정이잖아?’

     

   그녀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하며 앞으로 있을 경쟁전에 대한 계산을 시작했다.

     

   ‘개인전’이 있다면 ‘단체전’도 있을 것이 분명했다.

   개인전도 이렇게 복잡하고 까다로운데 인원이 훨씬 많이 동원되는 단체전이 쉬울 리가 없었다.

     

   그리고 그런 대규모 컨텐츠가 준비되어 있다면 다른 좌표의 실질적 리더와 친분을 쌓는 것은 결코 나쁜 선택이 아니었다.

     

   “어이가 없군. 돕고 싶어서 돕는다? 내가 누군 줄 알고?”

     

   청린이 그녀에게 묻는다.

   그리고 그녀는 미리 준비해 둔, 탑을 오르는 사람이라면 공감할 수밖에 없는 답변을 그에게 툭 하고 던졌다.

     

   “세상이 멸망하면서 억지로 탑에 끌려온 플레이어죠.”

   “……”

   “그리고 당신은 어인들의 대표 격이 되는 분이시고요.”

     

   서세영의 말에 청린이 이제야 그녀의 뜻을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전략적 동맹?”

     

   가끔 사람들은 이해관계를 통해 친구가 되고 동료가 되기도 한다.

   게다가 상대가 부족한 왕의 자질로 인해 고통 받고 있는 섭정이라면 뛰어난 인재가 속해 있는 그룹의 손을 무작정 내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일단 앉지,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으니.”

   “오, 저도 앉아도 되죠?”

     

   청린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가 피워 놓은 모닥불 근처에 자리를 잡는 한가민.

   그리고 그들의 대화는 한가민의 뜬금없는 질문으로 먼저 시작됐다.

     

   “왜 이런 곳에서 주무시고 계셨어요?”

     

   ***

     

   설산 지역을 발견한 내가 그곳에 들어서려 하자 금린이 조금 곤란하다는 뉘앙스로 나에게 어인들의 특징 한 가지를 설명했다.

     

   “추우면 동면을 한다고?”

   “네, 저희 어인들은 그래요.”

     

   참으로 물고기다운 특성이 나온 것이 아닌가 싶었다.

   우리 인간들도 날씨가 더우면 땀을 흘리고 날씨가 추우면 몸을 떨듯, 어인들은 날씨가 추우면 잠이 쏟아진다는 것이 녀석의 설명이었다.

     

   “근데 그 청린이라는 어인이 설산에서 개인전을 시작했으면 우리가 어떻게 찾아?”

   “……어?”

     

   녀석의 반응을 보니 내가 앞서 말한 상황은 상정한 적은 없었던 모양이었다.

     

   “그럴 수도 있지 않나? 갑자기 추운 곳에 떨어져서 잠이 솔솔 오는 거지. 그러다 보니 우선 따뜻한 동굴 같은 곳을 찾아 들어갔는데 거기에서 자신도 모르게 잠이 들고 그곳에는 마침 괴물이……”

   “그, 그만 해요!”

     

   내가 청린의 암울한 시간을 상상하며 떠들어대자 금린이 손사래를 치며 목소리를 높였다.

     

   “청린께서는 어인 무수면 수련을 수석으로 통과한 엘리트 중에 엘리트셨어요! 고작 추위 따위에 지실리가……!”

     

   녀석의 반응을 보니 더 놀리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뭐랄까, 괜히 귀여운 것을 보면 볼을 한 번 찔러보고 싶은 심리라고 해야 하나.

     

   하지만 이쯤 되니 피어오르는 한 가지 의문이 있었다.

     

   “농담이야. 그런데 도대체 그 사람… 아니, 어인이랑 너는 무슨 관계인 거야?”

     

   왕이 존칭을 꼬박꼬박 써 주는 신하.

   왕의 신뢰를 한 몸에 받고 있지만 정작 왕을 제대로 믿지 못하는 신하.

     

   그리고 나는 잠시 뜸을 들인 녀석의 입을 통해 드디어 궁금했던 그들의 관계를 직접 들을 수 있었다.

     

   “그…… 제 숙부님 되세요.”

   “엥?”

     

   아버지의 남동생을 이르는 말.

   하지만 그쯤 되니 머릿속에 또 다른, 아주 근본적인 의문이 하나 생기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도 너한테 왕의 자리를 맡겼다고?”

     

   리더의 자리는 정말 중요했다.

   고작 대학교에서 조별과제를 할 때도 조장의 재량에 따라 성적이 천차만별로 갈리는데 목숨이 걸린 데스 게임에서의 리더는 아무리 못해도 조별과제 조장 보다는 유능해야 한다.

     

   하지만 그는 이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송이에게 최고 통치자의 자리를 맡긴 상태였다.

     

   ‘이 녀석이 무능하다는 말은 아니지만……“

     

   아니, 무능하지 않은 것을 넘어 이 정도면 충분히 능력이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허나 그럼에도 한참 부족했다.

     

   생명의 무게는 감히 타인은 감당할 수 없을 무게를 가지고 있었고 그들이 보내는 원망은 고작 이런 꼬마가 견디기에는 너무나도 가혹했다.

     

   기술의 문제가 아니었다.

   이것은 조금 더 근본적인 정신력과 카리스마에 대한 문제였다.

     

   “혹시 조금 더 자세히 들려줄 수 있어?”

     

   다른 세상의 이야기.

   나는 그동안 사냥한 괴물들의 보물을 장착하며 녀석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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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You to Climb the Tower? 누가 탑 오르라고 협박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sudden message arrived, heralding the end of humanity.

[Climb the tower. If you refuse, you will die.]

We are being threatened by a mysterious b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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