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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5

    <55 – 고단한 월요일의 끝>

     

    눈을 뜨면 침대도 딱딱하고 시종도 없는 불편한 아카데미 대신 고향의 성에 있을 거야.

    아카데미 입학 이후로 귀족 학생들은 매일 밤마다 그런 상상을 하고는 했다.

    하지만 그 상상이 정말로 이루어지다니.

     

    “오셨습니까. 티토소가 아가씨.”

    “엉엉 집사장 하라부지. 저 너무 힘들어쪄요.”

    “저런 고생이 많으셨군요.”

     

    고향성에 있을 집사장 할아버지가 인자한 얼굴로 웃으며 그녀의 등을 다독여주었다.

    잠자리는 불편하고 먹을 건 맛이 없고, 또 어떤 게 어떠어떠해서 힘들고.

    끝날 줄 모르는 하소연에 집사장이 난처해하며 웃음을 지었다.

     

    “티토소가 아가씨 하소연을 다 들어주다간 해가 저물겠군요.”

    “아직 한참 남았는걸요!”

    “나머진 다음에 듣기로 하죠.”

    “왜요? 조금만 더 들어주면 안 돼요?”

    “벌써 밤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네?”

    “보십시오. 모험가의 야간행동 강의를 들을 정도로 바깥이 어두컴컴해지지 않았습니까.”

     

    해가 저문 창밖에 깜짝 놀라 뒷걸음질을 치는 티토소가.

    그녀의 등 뒤로 말라붙은 고목처럼 차갑고 딱딱한 손이 닿았다.

     

    “하, 하라부지…?”

     

    아니야. 할아버지 손은 이렇게 차갑지 않아.

    내 어깨를 덮을 정도로 머리카락이 길지도 않아.

    속이 불편해지는 방부제 냄새가 나지도 않아.

    그럼 이건 뭐야?

    지금 내 뒤에 있는 건 누구야?

    공포에 질린 그녀의 귓가에 낯선 여자의 목소리가 섬뜩하게 속삭였다.

     

    “강의가 시작했다. 일어나지 않으면 너를 무덤에 묻어주마.”

    “흐갸아아악!!”

     

    비명을 지르며 눈을 뜬 티토소가.

    그녀의 뒤에 예의 무시무시한 생김새의 소복녀가 서있었다.

    당장이라도 혼비백산해서 달아나고 싶은 그녀였지만 이번에는 반대쪽에서 더욱 생각지도 못한 반응이 연달아 날아들었다.

     

    “저기, 빨리 앉지 않을래? 이런 무서운 강의시간, 그만 발목 잡히고 빨리 끝내고 가고 싶거든.”

    “이리로 와서 앉아!”

     

    가면을 쓴 여자아이가 빨리 자리에 앉으라고 구박을 하더니 A그룹에서 가장 유명한 최연소 수석 오크노디가 제 옆에 앉으라며 자리를 손으로 팡팡 쳤다.

     

    “어어…….”

     

    빨리 자리에 앉지 않아서 민폐를 끼치는 기분에 홀린 듯이 자리에 앉은 티토소가.

    자신의 조명대를 조명삼아 강의를 하는 교수와 경청을 하는 학생 사이에서 얼을 타는 사이에 엉겁결에 강의를 듣게 됐다.

     

    “모험가는 밤의 위험성을 알기에 낮에 주로 활동을 하지만…… 때와 장소에 따라서는 피치 못하게 야간행동을 할 때도 있지……”

    “가령 어둠 속에서 모험가들을 쫓아오는 극도로 위험한 몬스터가 있다거나……”

    “붕괴하는 동굴 속에서 급히 지상으로 탈출을 해야 하거나……”

    “태양이 사라진 어둠 속에서 무한히 솟아오르는 언데드에게 쫓겨 다니는……”

    “……아아, 부러워. 겁에 질려 도망 다니는 모험가들의 내장은 얼마나 신선할까.”

     

    티토소가는 웃는 낯으로 생각했다.

     

    ‘집사장 할아버지. 지금 다시 만나러 가요.’

     

    교수님이 너무 무서운 나머지.

    눈 뜬 채로 기절한 티토소가였다.

     

     

    * *

     

     

    이름을 듣자마자 느낌이 왔다.

    이 아이의 이름은 나랑 뭔가 비슷해!

    조명대에 새겨진 이름을 보고 더욱 확신했다.

    티토소가Ttosog-a.

    또속아.

    이 아이는 잘 속는 아이구나!

     

    ‘하긴 보통은 인싸가 되고 싶다고 저딴 조명대를 아카데미에 들고 오지는 않지.’

     

    비행기는 신발을 벗고 타야하고 총기는 PX에서 구입하며 대학교에 입학하면 갑자기 남자친구 여자친구가 사귀고 인생만사 행복해진다는 거짓말에 속는 것과 다름없는 레벨의 순진함이 아닌가!

    이런 불쌍한 친구하고는 친하게 지내서 손해 볼 일은 없다.

     

    [공포의 빨간조명을 보았습니다.]

    [10분간 정신이 +2 상승합니다.]

     

    인싸가 되는 건 모르겠고 조명기의 성능이 예상 외로 너무 뛰어난 것도 한 몫 한다.

    능력치 하나 올리겠답시고 시험시간 10분 전에 지능이 오르는 간식을 먹는 도핑에 비하면 빛 한 번 쫙 쬐고 들어가는 것이 훨씬 편리하지 않은가.

    도핑을 해도 만복도가 오르지 않다니, 고인물도 모르는 능력치 도핑계의 신상아이템이다.

     

    “다음 강의부터는 특정 야간상황에서의 대응요령을 듣고 이를 실제로 체험하는 시간을 가질 거야. 준비물은 없고……. 저녁은 가급적 먹고 오지 마.”

    “왜요?”

    “이상하게 강의를 듣는 학생들은 뭘 많이 흘려. 소변까지는 괜찮지만 구토는 참아줬으면 좋겠어…….”

    “…….”

    “조금 요 앞의 묘지에서 방부처리 된 시체를 파왔을 뿐인데 너무 심약하지 않아……?”

     

    음…….

    역시 정신건강에는 좋지 않은 교수님이다!

     

    “오늘은 첫 날이니까 이상으로 끝. 해산이야.”

     

    그 대신 강의시간이 짧고 굵다.

    2시간 같은 20분이었어!

     

    “오크노디. 수요일에도 또 들으러 올 거야?”

    “당연히 듣지.”

    “실은 무서운데 무섭지 않은 척 허세부리는 거지?”

    “즈앙은 무서워?”

    “아닌데? 하나도 안 무서운데? 그냥 다음 강의 때 혼자 가면 심심하니까 같이 가자고 권유하고 싶었을 뿐인데?”

     

    사회에서는 그걸 혼자가기 무섭다고 말하기로 약속했어요.

    두렵지만 두렵지 않은 척 애쓰는 즈앙의 팔을 티토소가가 붙잡았다.

    즈앙이 자신을 잡은 손을 가면 너머로 빤히 쳐다보며 물었다.

     

    “암살자의 팔을 붙잡는다는 건 역시 그거지? 한쪽 팔을 봉인하고 그 틈에 조명대로 머리를 깨부수겠다는…”

    “전혀 아니거든!”

     

    놀라서 큰 소리를 쳤던 티토소가가 다시 줄어든 목소리로 소심하게 물었다.

     

    “저, 저기…… 그냥 같이 강의를 포기하지 않을래? 솔직히 너무 무서운데…….”

     

    용케도 사다코 교수님에게 조명기를 돌려받은 티토소가가 즈앙에게 동반드랍을 권유했다.

    아주 좋은 생각이라며 고개를 번쩍 든 즈앙이었지만 이내 내 눈치를 보더니 애꿎은 돌멩이를 걷어찼다.

     

    “싫어. 마지막 한 명이라면 기꺼이 포기하겠지만 나보다 담력이 좋은 학생이 남아있다고 인정하기는 좀 그런걸.”

    “오크노디이. 셋이 같이 포기하자. 너만 포기하면 얘도 같이 포기한대.”

    “왜요? 전 재밌는데.”

    “그게 재밌어?! 언데드 교수님이라니, 신성모독이라고. 중앙제국에서도 남부만신전에서도 만신이 공노할 불경한 생물이라고?!”

    “교수님은 학점을 주지만 신들은 학점을 주지 않는걸요.”

    “!!”

     

    아카데미에 왔으면 신들 눈치 보지 말고 교수님들 눈치 보면서 학점이랑 포인트를 챙겨야지!

     

    “아카데미 나온 뒤에는 평판이 나락으로 떨어져있을 텐데 그땐 어떻게 하려고 그래…? 오크노디는 평생 아카데미에서 살 거야…?”

    “무슨 큰일 날 소릴! 절 대학원생 취급하지 말아요. 아카데미는 무조건 졸업할 예정이라고요!”

     

    이건 니가 말 너무 심하게 했어.

    사과해!

     

    “미, 미안. 잘은 모르겠지만 많이 화나게 했구나. 사과할게.”

    “흥. 알면 됐어요. 앞으론 조심하세요.”

     

     

    * *

     

     

    7시부터 9시까지 이어지는 5교시가 끝난 뒤에는 9시부터 11시까지 이어지는 6교시 강의가 있지만…… 이걸 들으면 키가 자라지 않는다.

    이미 자랄 대로 자란 230cm 자이언트 슈퍼아머 근육남캐라면 모를까 133cm 오크노디한텐 곤란해!

     

    그런 관계로 긴 하루일과를 끝마치고 초주검이 되어서는 기숙사에 돌아왔다.

     

    “밤 늦게까지 열심히 수련했구나.”

    “강의 끝나고 왔는데요.”

    “…이 시간까지?!”

     

    이사벨이 어떻게 그런 비인간적인 스케쥴을 짤 수 있냐며 충격 받았지만 5일 내내 시간표를 강의로 채우는 것보다는 4일만 몰아서 고생해야 즐겁다.

    월수 화목 금토.

    대부분의 강의는 주 2회에 정해진 요일마다 강의를 들으니, 내 계획대로라면 시간표는 월화수목에 전부 모아진다.

     

    “으그그. 지친다.”

     

    훌러덩 교복을 벗어던지고 개인실에 붙은 샤워룸에 들어갔다.

     

    쏴아아.

     

    판타지에 샤워기가 무슨 소린가 싶지만 바구니에 물 퍼서 찬물로 등목하고 싶으세요, 샤워기에 따뜻한 물로 샤워하고 싶으세요, 하는 제작진의 물음에 유저들은 군소리 않고 문명의 이기를 받아들였다.

    적절한 편의성은 쾌적한 판타지 라이프를 위해서는 필수적이다.

    여거, 판타지이기 전에 기본적으로 게임세계니깐.

     

    “…뭔가 심란해.”

     

    벨런스 좋은 몸이지만 키가 너무 작아.

    가슴이 보이지만 하나도 에로하게 느껴지지 않아.

    물을 맞으며 거울에 비친 몸을 보다가 그냥 샤워를 마치고 나왔다.

     

    위이잉

     

    드라이기(마법아이템)으로 머리를 말리고 있자니 벽에서 갑자기 목소리가 들렸다.

     

    -심심해.

     

    <대답하는문>이 드라이기의 소리를 질문으로 취급하고 대답을 빙자해 하고 싶은 말을 한다.

    여자기숙사 111호와 112호 입주생이 하루종일 벽에 말을 걸지 않으면 등장하는 이벤트다.

     

    “언니 바쁘다~”

     

    물기를 말리고 속옷을 챙겨 입으니 어느덧 9시 반이 되었다.

     

    “흐마뫄뫄뫄…”

     

    하루종일 열심히 머리를 써서 그런지 지친 몸에 저절로 하품이 나온다.

     

    -새벽 2시 22분에 본관 2층으로 향하는 중앙계단을 오르면 숨겨진 방에 도착할 수 있어.

     

    소통이 간절했던 문이 자발적으로 플레이어를 유혹하는 히든피스를 실토했다.

     

    “응 알아~”

     

    착한 어린이는 잘 시간이야.

    폭신폭신한 침대에 몸을 누이니 극락이 따로 없다.

    이불 속에서 꼬물거리다가 기분 좋게 잠들었다.

     

     

    * *

     

     

    헤스티아는 침대에서 눈을 깜빡거렸다.

    째깍. 째깍.

    시계바늘 돌아가는 소리가 거듭 귓전에 울린다.

     

    -새벽 2시 22분에 본관 2층으로 향하는 중앙계단을 오르면 숨겨진 방에 도착할 수 있어.

     

    잠을 자고 싶어도 벽 너머에서 갑자기 들렸던 말이 신경 쓰여서 도무지 잘 수가 없었다.

     

    ‘새벽 2시 22분에 중앙계단으로 본관 2층에 오르면 대체 무슨 방이 나오는데?!’

     

    대답하는 문의 천기누설에 시달리는 것은 헤스티아도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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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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