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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5

        윈터러가 꺼낸 ‘살인 안 하겠다’라는 협상 조건.

        설하연이 되물었다.

        

        

        “…내가 잘못 들은 건가? 빌런이 살인을 안 하겠다고?”

        “늙어빠져서 귀 처먹은 거 아니니까 안심하세요!”

        “허어.”

        

        

        귀를 의심케 하는 대답은 여전.

        

        설하연은 즉시 직감했다.

        저건 자신을 꼬드기기 위한 함정이라는 걸.

        그저 말뿐일 뿐, 속으론 자신을 끌어들여 죽일 속셈이라는 걸.

        

        

        ‘들을 가치도 없는 거짓말이지만… 시간 벌기엔 딱 좋군.’

        “당장 어제, 각성자 서유진을 빌런 다섯이 습격했다만. 그 꼴을 보고도 그딴 말이 나오는가?”

        

        

        하지만 그녀는 대화의 여지를 남겼다.

        저 소시오패스의 수작질은, 앨리스와 시아가 얼음 폭탄을 해체하는 시간을 벌어줄 테니까.

        

        윈터러의 미소가 진해졌다.

        

        

        “그야, 너희들이 존나게 괴롭혀대잖아요. 도망쳐 다니는 와중에 그딴 버러지 년들까지 관리는 못 해.”

        “지배하겠다는 자가 아랫것들 관리도 못 하는데. 내가 그걸 들어줘야 하는 이유는?”

        “너희들이 안 괴롭히면. 아니, 날 정식으로 인정해 주면 얘기는 달라. 일단….”

        

        

        그러며 그녀는 제 계획을 이야기했다.

        

        우선, 빌런은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빛이 있으면 어둠도 있듯. 각성의 순간 빌런은 태어날 수밖에 없으니까.

        

        

        “우리에게 무슨 잘못이 있지? 그저 잘못 각성한 죄인가? 태어난 게 죄예요?”

        “…….”

        “각성 전까지, 우리는 그냥 존나 평범한 사람들이었다고. 가족이 있고, 친구가 있는.”

        

        

        빌런이 되고 싶어 된 것도 아니다.

        우리도 너희와 같았다.

        

        

        “솔직히, 너희들이 그러는 이유는 알아요. 사람 죽이면서 느끼는 년들이 우리인데. 뭣같을 만 하지.”

        “잘 아는군.”

        “그래서 이 윈터러 님이 나서겠다 이거야. 이 가여운 괴물들을 지배, 통제하고자.”

        

        

        내가 나서 다스리겠다.

        민간인을 죽이지 못하게 하겠다.

        범죄도 저지르지 못하게 막겠다.

       ​

        그러니…

        

        

        “우리가 원하는 건 단 하나. 공존이에요. 서로 죽고 죽이는 걸 멈추고,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함께 살아가자.

        동화처럼 아름답게 들리는 제안.

        

        하지만 설하연은 단박에 고개를 저었다.

        수많은 역경을 거치며, 그녀의 동심은 진즉 닳아 없어졌다.

        

        

        “살인 충동을 거스르겠다니. 헤로인 중독자보다 몇 배는 더 심각한 게 빌런이다. 가능할 리가 없어.”

        “인정. 우리는 사람을 죽여야 해요. 안 그러면 참다가 폭발하거든.”

        “……?”

        “그런데, 꼭 우리가 니들을 죽일 필요는 없거든? 다른 나라에 많잖아요. 죽여도 싼 괴물들. 빌런.”

        “……!!!”

        

        

        설하연의 시큰둥함을 느낀 걸까.

        윈터러의 동화는 갑자기 현실적인 논의로 바뀌었다.

        

        살인 충동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겠다.

        그 살인 충동을, 이 나라 밖의 빌런들에게 풀겠다.

        타국의 빌런을 처리해 주는 빌런 용병이 되겠다.

        

        설하연조차 순간 당황한 제안이었다.

        

        

        ‘하긴. 한국쯤 되니 빌런 인권이니 뭐니 해서 생포하는 거고, 보통 즉결 처형이 원칙이니까….’

        

        

        다른 나라, 가령 미국에선 빌런으로 인한 사망자가 매일 몇백 명씩 나온다.

        그런데 빌런 목숨 따위를 신경 써줄 리가.

        다른 나라에서 빌런은, 보이는 족족 잡아 죽여야 하는 벌레 취급이었다.

        

        한데, 한국에서 빌런 용병을 파견해 빌런을 처치하면?

        탈주하지 않고, 헛짓거리 하지 않고. 정말 제 살인 충동만 풀고 온다면?

        

        각성자 투입 따위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효율로 죽일 수 있겠지.

        각성자가 마물을 죽이는 스페셜리스트라면, 빌런은 사람을 죽이는 전문가니까.

        그로 인한 국가적 이득이야 말할 것도 없을 테고.

        

        유일한 문제는,

        

        

        “말도 안 돼. 빌런이 살인을 가려 할 수 있을 리가.”

        

        

        가당키나 하겠냐는 것.

        

        지난 40년간, 인류는 빌런을 품고자 노력했다.

        제 가족이, 친구가. 동료가 하루아침에 살인귀가 되었는데. 그걸 어찌 단칼에 죽이겠는가.

        빌런을 교화하고자 인류는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불가능했다.

        인류와 빌런은, 공존할 수 없…

        

        

        “말이 안 되긴. 이 대머리, 내가 안 죽이고 있는 거 보면 몰라? 골라 먹는 정도는 한다고. 우리도.”

        “히, 히익….”

        

        

        의심을 부정하듯, 윈터러가 인질의 대머리를 슥슥 문질렀다.

        그녀의 능력을 생각하면 지금 당장 살인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 광경.

        

        하지만 인질, 일본 총리는 그저 멀쩡.

        윈터러 본인도 무심한 표정이었다.

        꼭 살인 충동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처럼.

        

        설하연이 인상을 팍 썼다.

        

        

        “하.”

        ‘헛소리로군.’

        

        

        확실히 그럴듯한 말이긴 했지만…

        그녀의 육감은 저게 새빨간 거짓이라 외쳤다.

        허울 좋은 헛소리.

        인질을 미끼로 자신이라는 대어를 낚으려는 수작질에 불과하다고.

        

        설하연의 미간에 주름이 생겼다.

        윈터러의 의도가 읽히지 않아서였다.

        

        

        ‘내 성향은 알려져 있을 텐데. 왜 이딴 수작을….’

        

        -웅성웅성.

        

        “진짜인가?”

        “확실히 들어볼 만 한 것 같은데.”

        “협회장님! 정말 윈터러가 빌런을 제어할 수 있으면…!”

        “자네들까지 왜 그러… 흐음?”

        

        

        주름이 조금 더 깊어졌다.

        자신을 에워싼 각성자들의 동요 때문이었다.

        

        

        ‘애초에 나 들으라고 하는 소리가 아니었군. 각성자 최강국 한국에서 자란, 빌런을 겪지 못한 각성자들을 흔들려고 한 소리였어.’

        

        

        그녀야 안다. 빌런이 구제 불가능한 쓰레기라는 걸.

        초기 각성자로서 온갖 참상을 겪었는데 어찌 모를까.

        

        하지만… 요즘 젊은 것들은?

        빌런을 직접 겪은 이들은 소수.

        그나마도 빌런 추적 부대 인원 한정.

        

        경험 없는 각성자들은 헛된 희망을 가진다.

        어디서 만화 같은 거나 보고 와서, 빌런을 교화시킬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모두가 행복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한숨이 절로 나왔다.

        

        

        [빌런의 교화 가능성은 어찌 생각하지?]

        [장담컨대, 절대 불가능합니다.]

        

        ‘유진 그 녀석이 유별난 것뿐. 요즘 것들은 다 이 모양인가.’

        

        

        새삼스러운 유진 칭찬은 덤.

        

        그러나 윈터러는 태연자약하게 손을 내뻗었다.

        마치 화해하자는 듯이.

        

        

        “마음에 든다면, 이리 와서 악수해 주세요!”

        “굳이 악수가 필요한가?”

        “아하핫. 이렇게 말하는데도 기어코 괴물 취급? 그럼… 이쪽도 괴물이 되는 수밖에 없다? 너희들이 바라는 대로. 영원히.”

        “…….”

        “골라. 저랑 악수하고, 앞으로 빌런 걱정 없는 한국을 만들거나. 폭탄 전부 터트려서 사람 만 명쯤 죽고, 앞으로 계속 나올 빌런들이랑도 죽고 죽이거나.”

        

        

        우릴 괴물로 여기지 않는다면, 나와 악수해라.

        우릴 괴물로 여긴다면, 원하는 대로 괴물이 되겠다.

        극단적인 양자택일.

        

        주변이 술렁였다.

        

        

        “…이야기라도 나눠보시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윈터러가 말한 대로라면, 민간인 피해는 겉잡을 수 없을 겁니다.”

        

        

        오죽하면 그녀의 부관조차 ‘일단 받죠?’ 라고 할 정도.

        

        한숨 쉰 설하연이 휴대폰으로 슬쩍 시간을 확인했다.

        현장에 도착하고 딱 20분 지난 시간.

        그녀의 육감대로였다.

        

        

        ‘…3분이라도 더 벌어볼까.’

        

        -저벅. 저벅.

        

        “협회장님?”

        “따라오지 마. 나 혼자 간다.”

        

        

        각성자 무리를 빠져나와 천천히 걸었다.

        깨지고 갈라진 도로 위를 지나. 윈터러 쪽으로.

        

        윈터러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잘 생각했어요. 저희도….”

        “———늙은이가 옛날 얘기 하나 해주지.”

        “……?”

        

        

        마침. 설하연의 입가에도 미소가 걸렸다.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네. 33년 전. 빌런이 그저 힘에 취한 범죄자가 아니란 게 밝혀졌을 무렵이었어.”

        “잠깐. 그게 무슨.”

        “갓 각성한 빌런. 당시엔 돌연변이라 부르던 자를 한 명 붙잡았다. 살인 현장, 번화가에서 바로.”

        

        

        그녀는 어느덧 과거의 풍경을 눈 앞에 그리고 있었다.

        80년대. 그녀가 청춘을 한국에 바치던 시절.

        아직 세계가 각성자를 괴물로 보고 있던 때였다.

        

        

        “피해자는 단 한 명. 지금은 뉴스에 대서특필될 사건이지만, 당시에 그 정도는 일상이었어.”

        “갑자기 왜 옛날 얘기.”

        “일단 듣게. 난 바로 그녀를 구속했다. 지금이랑 달리 각성자 전용 구속구 같은 것도 없어서, 몸으로 직접.”

        

        

        설하연의 목소리가 조금 더 느릿해졌다.

        조금이라도 시간을 벌기 위해서도 있고…

        무엇보다, 가볍게 혀에 담을 내용이 아니었으니까.

        

        

        “그렇게 맨몸으로 악을 쓰고 있었는데 말이지? 한 여성이 허겁지겁 달려왔다. 빌런의 어미였어.”

        “잠깐, 지금 그게 무슨 상관.”

        “그러며 나더러 뭐라 한 줄 아나? 아이고, 우리 애한테 왜 그럽니까. 좋은 날이라고 꽃단장한 애를 이리 피투성이로 만드십니까. 얼굴에 흉이라도 져서 시집 못 가면 어떡합니까- 라고.”

        

        

        어느덧 바람 부는 소리만 들리는 도로 위.

        모두가 숨죽여 경청했다.

        그녀의 이야기에는 그만한 무게가 있었다.

        

        

        “난 시체를 가리키며 외쳤지. 저거 안 보이냐, 이 년이 한 짓이다. 이건 더 이상 네가 알던 딸이 아니라고.”

        “그런데, 어미가 어찌 딸을 버릴까. 오히려 날 퍽퍽 때렸어. 우리 애가 그럴 리가 없다. 내 딸 놓아라, 이 괴물아- 하고.”

        “각성자한텐 아무것도 아닌 힘이었지만… 내가 짓누르고 있던 빌런에게는 충분한 틈이었던 모양이더군.”

        “정신을 차리고 보니, 허공에 떠있었네. 빌런이 날 뻥 걷어찬 게야.”

        

        

        여기까지 얘기한 후.

        설하연은 주변을 슥 훑었다.

        아까 전까지 들떠있던 각성자들.

        그녀에겐 한참 핏덩어리로 보이는 자들을.

        

        

        “묻지. 빌런이 어떻게 했을 것 같으냐?”

        

        -웅성웅성.

        

        

        질문에 웅성이는 주변.

        반면, 윈터러는 얼굴을 찌푸렸다.

        빌런이라면 어찌 할지. 그녀는 너무나 잘 알았으니까.

        

        

        “당장 그 입 닥…….”

        “———제 어미에게 달려들어, 목을 물어뜯었어.”

        “……!!!!!”

        

        

        헛숨 들이키는 소리가 일제히 울렸다.

        

        

        “사람 목에서 피가 그리 날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네. 뜨거운 피 분수가 확 뿜어졌어.”

        “그래서, 당장에 때려잡았지. S급이니 뭐니 하던 기준도 없던 옛날이었지만, 갓 각성한 각성자는 나한테 상대가 안 됐으니까.”

        “그리고 물었네. 아니, 날 공격하지 않고 왜 애먼 네 부모를 공격했냐고. 왜 모처럼 날 공중에 띄우고서도, 그 틈을 노리지 않고 엄한 사람을 해쳤냐고.”

        

        

        이사장의 걸음이 그제야 멈췄다.

        윈터러와의 거리. 고작 5미터.

        서로의 눈이 맞았다.

        

        

        “그녀가 뭐라 했을 거라 생각하나. 윈터러.”

        “……쯧. 잡히기 전에 손맛 한 번이라도 더 보려고.”

        “정답. 못 이길 나와 싸우는 것보단, 당장 옆에 있는 걸 죽이는 게 더 합리적이었다더군.”

        

        

        윈터러의 눈은, 언제 평화를 얘기했냐는 듯 사납게 치켜떠져 있었다.

        

        

        “그러니까 그 년들을 내가 제어.”

        “이 정도라면 내가 기억하지도 않았을 거야. 빌런의 존속살해야 그땐 흔했으니.”

        “사람 말을 좀….”

        “한데. 내가 이걸 아직까지 기억하는 이유는.”

        

        

        설하연 역시, 언제 미소 지었냐는 듯 차갑게 윈터러를 내려다봤다.

        

        

        “그 옆에, 과다출혈로 다 죽어가는 어미가. 필사적으로 내게 기어 왔기 때문이다. 목에 구멍이 나 부글부글 끓는 목소리로. 전 괜찮습니다, 우리 민경이 이럴 애 절대 아닙니다. 그러니 나리, 제발 못 본 척 해주세요. 전 괜찮으니- 하고.”

        “………!!!”

        “이 망할 년이….”

        “빌런은 그 옆에서, 본인이 괜찮다니 봐달라며 웃더군.”

        

        

        충격에 입을 틀어막는 각성자들.

        숨길 생각도 없이 적의를 일으키는 윈터러.

        

        설하연이 손을 치켜들었다.

        

        

        “이게 너희들, 빌런이다.”

        “씨발, 야!!!! 다 튀어나와서 이 년 쳐!!”

        

        -콰앙!!

        

        “푸하핫, 드디어!!”

        “재수 없는 년!!! 뒈져!!!”

        “……!! 협회장님!!!!”

        

        

        그와 동시에 사방 팔방에서 뛰어내리는 빌런들.

        그 수는 거진 50을 헤아렸으나…

       ​

       ​

        “세 번째이자, 마지막으로 말하지. 빌런과 협상은 없다.”

        

        

        설하연은 그저, 들어 올린 손가락을 맞대고선.

        

        

        -따악.

       

        “———25분 벌었다. 유진.”

        

        

        손가락 튕기기.

        

        마력이 담긴 소리가 난장판이 된 도로를 꿰뚫음과 동시.

        

        

        “스승님!!”

        

        -투콰아아아아앙!!!!!

        

        “………!!!!!?”

        

        

        굉음과 함께, 보랏빛 궤적이 허공을 가득 메웠다.

        마치 수십 개의 소용돌이가 몰아치듯.

        

        폭풍이 불어닥쳤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김이파리 님 10코인, Jisss 님 10코인 선물 감사합니다!
    감사의 핑거스냅을 미끌미끌

    + 빌런이 어떤 존재인지 확실히 못박는 화였네워
    괜히 꽁이랑 이사장, 유진 셋이 교화 불가능이라 못박는 게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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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n with Hypnotic Powers Doesn’t Hold Back the Second Time Around

The Man with Hypnotic Powers Doesn’t Hold Back the Second Time Around

2회차 최면교배 아저씨가 능력을 안숨김
Score 5.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Since I regressed, I decided not to hide my abilities.

“Hypnosis, huh? That’s amazing! Hypnotize me too!”

“How about me, instead of that sly fox? If you join our clan… you, you can hypnotize me!”

…Maybe I exposed it too mu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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