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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5

       피를 흘리는 사람들과 무너진 도시.

       아이의 특유의 아기자기한 그림체였으나 내용은 정반대였다.

       한여름은 심리학을 배우진 않았지만, 겨울의 그림이 절대로 평범하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어···”

       

       “흠···”

       

       소피아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도 같은 생각을 했는지, 경악스러운 표정으로 그림을 내려다보았다.

       오로지 어린 레비나스만이 상황을 이해 못 하고 그림 그리기에 열중할 뿐이었다.

       

       “이건···”

       

       누가 먼저 입을 열어야 할까.

       어른들끼리 서로의 눈치를 보는 상황에 겨울이 새로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나무 뒤에 숨어있는 입을 꾹 막고 있는 아이가 하나.

       그 근처를 피 흘리는 사람들이 어슬렁거리고 있다.

       한여름은 숨이 턱 막혀왔으나, 아이를 위해 물어보기로 했다.

       

       “···겨울아, 이건 무슨 상황이야?”

       

       “조용히 숨어있는 상황이에요.”

       

       “숨어?”

       

       “네. 들키면 죽거든요.”

       

       피 흘리는 사람에게 들키면 죽는다.

       무언가의 비유법 같은 건가?

       

       고민하던 여름은 겨울이 얼마 전까지만 해도 숲 속 생활을 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숲 깊숙한 곳에서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살아왔지.

       누가 오면 안전한 통속에 숨어 있기도 했고.

       여름은 눈앞의 그림이 당시의 상황이 반영되어 있다는 걸 금세 눈치챌 수 있었다.

       

       “음···”

       

       아이를 병원에 데려가 봐야 하나?

       조금씩 나아지고 있긴 한데.

       한여름이 갈등하는 사이에 소피아가 조심스레 입을 열어왔다.

       

       “다른 사람들도 이 피 흘리는 사람처럼 변해 버렸더냐?”

       

       “다른 사람들이요?”

       

       “그래, 지금 곁에 있는 사람들 말이다.”

       

       소피아의 물음에 겨울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어쩐지 이상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

       겨울은 만약 좀비 아포칼립스 세상이 당도하게 된다면, 이들이 좀비가 되진 않았으면 했다.

       

       “안 변했으면 좋겠어요.”

       

       “그러더냐?”

       

       “네.”

       

       이 세계에서 유일하게 이름을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이 좀비로 변해 버린다니.

       그거 굉장히 슬플 것 같다.

       겨울은 어쩐지 씁쓸해진 기분으로 붉은색 크레파스를 집어 들었다.

       역시 좀비 아포칼립스 세상은 가상으로 즐길 때가 제일 재밌는 법이었다.

       

       “그래, 절대로 안 변하도록 열심히 노력해 보마.”

       

       “네에···”

       

       절대로 안 변한다니.

       이 세계에 좀비 바이러스라도 있는 건가?

       겨울은 고개를 갸웃거리는 순간, 정유나가 큼큼거리며 부엌 쪽으로 향했다.

       

       “아, 맞다. 음료수 있었지.”

       

       한여름이 그런 정유나의 뒤를 따라 부엌으로 움직였다.

       겨울이 들리지 않도록 소리 차단 마법을 사용한 뒤, 둘이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어떤 거 같아?”

       

       “···일단 지켜보는 게 좋겠는데.”

       

       “지켜봐? 괜찮겠어?”

       

       “응. 겨울이가 우리보고 괴물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잖아.”

       

       그런 말을 하긴 했지.

       헌데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

       뭔가 알 것 같긴 했지만 두루뭉술했기에, 정유나의 말만 기다릴 뿐이었다.

       

       “못된 어른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뜻이 아닌가 싶어.”

       

       “음··· 역시 그런가.”

       

       “응. 그래도 상황이 나쁘기만 한 건 아니야. 아직까진 우리를 좋은 사람으로 보고 있다는 거니까.”

       

       “아, 응.”

       

       배신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건가.

       여름은 조금 더 분발해야겠다며 속으로 다짐했다.

       

       “나도 완벽한 건 아니니까, 전문가한테 물어보고 올게.”

       

       “겨울이는 직접 안 데려가도 되겠어?”

       

       “응. 나이에 비해 워낙 똑똑하고 의심이 많은 아이잖아. 억지로 데려가면 반발심만 살걸?”

       

       그렇긴 하겠다.

       자기 발로 직접 간 게 아니라, 남의 손에 이끌려 간 거니까.

       

       “알았어. 부탁 좀 할게.”

       

       “응.”

       

       대화를 마친 둘은 음료를 들고 거실로 돌아왔다.

       그곳에서 최진혁이 완성된 그림을 보며 심사를 내리고 있었다.

       

       “우승자는···”

       

       “우승자는···?!”

       

       레비나스가 두 주먹을 꼭 말아쥔 채 눈을 빛냈다.

       겨울도 은근히 기대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두구두구.

       북을 치는듯한 긴장감 속에서 최진혁이 입을 열었다.

       

       “우승자는 소피아 어르신.”

       

       “엑···”

       

       “······.”

       

       두 아이의 귀가 축 가라앉는다.

       그 모습에 소피아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적어도 우승자는 두 아이 중 하나를 골라야 하는 거 아닌가.

       아이들을 제치고 우승한 소피아도 별로 기분이 좋지는 않았는지, 기운 나간 두 아이의 눈치만 살필 뿐이었다.

       

       “야, 최진혁. 너 이리 와봐.”

       

       “왜, 왜 그러는데···”

       

       “잔말 말고 따라와.”

       

       겨울은 여름의 손에 이끌려 떠나가는 최진혁을 보며 생각했다.

       정말로 공정한 사람인 것 같다고.

       그만큼 소피아의 그림은 크레파스로 그렸다고 믿기 힘들 정도로 굉장했다.

       

       

       **

       

       

       “다음번에는 레비나스가 우승할 거야.”

       

       “응.”

       

       그림 그리기.

       이거 꽤 재미있지 않나?

       나는 한여름이 가져다준 음료수를 마시며 스케치북을 넘겼다.

       

       ‘또 그려봐야지.’

       

       이번엔 좀 더 디테일하게 그려야지.

       그렇게 레비나스와 함께 새로운 그림을 그리고 있는 그때.

       한여름이 어깨가 축 가라앉은 최진혁을 데리고 내 곁으로 다가왔다.

       

       “겨울아, 그림 또 그리고 있어?”

       

       “네. 이게 생각보다 재밌네요.”

       

       “재, 재밌어?”

       

       “네.”

       

       내가 재밌다는 사실이 뭔가 기뻤던 걸까?

       내 옆으로 다가온 한여름이 스케치북을 들여다보았다.

       그리 뛰어난 그림 실력이 아니었음에도, 명화를 보듯 꼼꼼히도 살펴보았다.

       

       “이번엔··· 연못이네?”

       

       “네. 소피아가 밝은 분위기의 그림을 그려보는 건 어떻겠냐고 물어봐서요.”

       

       확실히,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계속 좀비 장르의 그림만 그렸으니까.

       나는 소피아가 생각난 김에, 연못 속에 소피아를 그려 넣기로 했다.

       상어처럼 자유롭게 헤엄을 치고 있는 소피아의 그림이었다.

       

       “겨울이가 그림 재능이 있긴 하네.”

       

       “그, 그래요?”

       

       “응. 그릴 때마다 실시간으로 실력이 늘고 있어. 이거 소피아 어르신 맞지?”

       

       “네, 네에···”

       

       나한테 그림 재능이 있었나.

       부끄러운 마음에 고개를 푹 숙이고 스케치북만 내려다보았다.

       물론 미친 듯이 흔들리는 꼬리는 도무지 숨길 수가 없었다.

       

       꼬리가 얼마나 세게 흔들렸는지, 좌우에 있는 한여름과 레비나스의 몸을 툭툭 칠 정도였다.

       

       “헤헤.”

       

       뒤를 돌아본 한여름이 내 꼬리를 보고는 눈웃음을 지어 보였다.

       민망함에 말없이 그림만 그리고 있으니, 한여름이 내 앞에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겨울아, 아까 겨울이가 찍은 사진 올렸거든? 반응이 굉장히 좋았다?”

       

       “그, 그래요?”

       

       “응. 한 번 볼래?”

       

       “네에···”

       

       한여름이 스마트폰을 두드리더니, SNS어플을 켰다.

       가장 상단에 올라온 사진은 지나가다 심심풀이로 찍었던 나방 애벌레 사진이었다.

       

       “이거 댓글 반응 대박이야. 겨울이가 사진 되게 잘 찍었대.”

       

       “···그 정도인가?”

       

       한여름을 힐끔 올려다본 뒤 댓글을 살폈다.

       뭔가 반응이 있긴 했는데 사진에 대한 칭찬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어쩌면 댓글이 워낙 많아서 인지도 몰랐다.

       

       -그림자에 귀랑 꼬리 비치는 것 좀 봐 ㅋㅋ

       -그냥 흥미 가는거 다 찍었나 본데요? ㅋㅋ

       -와, 진짜 와…

       

       댓글에 ‘ㅋㅋ’가 상상 이상으로 많았다.

       멋쩍은 상황에 괜스레 한여름을 올려다보았다.

       

       “댓글에 키읔이 많네요.”

       

       “응. 웃는 의미야.”

       

       그거야 나도 알지.

       문제는 그들이 내가 찍은 사진을 보며 왜 웃느냐는 거였다.

       

       “사진이 너무 별로라서 비웃는 건가 봐요.”

       

       “아, 아냐! 너무 잘 찍어서 웃는 거야.”

        

       “···잘 찍은 사진을 보고 웃어요?”

       

       “으, 응! 겨울이가 찍은 사진은 어른의 동심을 자극하는 그런 게 있거든! 너무 흐뭇해서 웃음이 나오는 거지!”

       

       흐뭇해서 웃음이 나온 다라.

       곤충을 잡고 놀던 시절이 떠오르기라도 하는 걸까?

       잘은 모르겠으나 한여름이 그렇다면 그런 거였다.

       

       굳이 신경 쓰지 않기로 하며 크레파스를 쥔 순간.

       한여름이 조심스레 내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저기, 겨울아.”

       

       “네?”

       

       “집에서 지내는 건 어떤 거 같아?”

       

       한여름이 힐끔거리며 내 눈치를 살폈다.

       나는 그런 그녀를 올려다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글쎄요? 거기서 거기 같은데요.”

       

       “그, 그래?”

       

       “네. 컨테이너에서 사는 거랑 별 차이는 없어요.”

       

       내 대답이 뭔가 이상했던 걸까?

       한여름이 횡설수설하며 손을 허공에 휘저었다.

       

       “따, 따듯한 물도 나오는데? 이렇게 거실에서 그림도 그릴 수 있는데?”

       

       “네. 따듯한 물 나오는 건 좋은데 사람은 똑같잖아요.”

       

       “사람···?”

       

       한여름이 의아하다는 눈빛으로 나를 내려다보았다.

       그녀의 뻗은 손이 욕실 쪽을 향해 있었다.

       

       “저는 집이 얼마나 좋은진 상관없어요. 누구랑 같이 사는지가 더 중요하죠.”

       

       “아···!”

       

       한여름이 눈을 부릅떴다.

       무언가 충격을 받은듯한 사람의 표정이었다.

       

       “컨테이너 집이 여기보단 안 좋지만, 모두랑 함께 있을 수 있는 건 같으니까요. 그래서 두 집 다 저한텐 거기서 거기예요.”

       

       “그, 그렇지!”

       

       짝!

       손뼉을 친 한여름이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런 그녀의 시선은 내가 아닌, 허공을 향해 있었다.

       마치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돈도 중요하긴 하지만 언제나 사람이 먼저예요.”

       

       차원을 이동하면서 깨달은 게 있었다.

       그토록 소중히 여기던 집과 귀중품은 떠오르지도 않았다는 것을.

       오로지 가족과 친구들을 향한 그리움만 남아 있었다는 것을.

       

       가난한 내가 무료급식소 등에 기부를 하게 된 계기였다.

       

       “···겨울이가 생각이 참 깊구나.”

       

       “그, 그러게요.”

       

       소피아가 따듯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한여름은 얼굴을 붉히며 손가락을 꼼지락거렸고.

       

       나는 그 둘을 멀뚱멀뚱 바라보다가, 크레파스를 집어 들었다.

       이젠 진짜로 그림을 그릴 생각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댓글 추천 또한 정말 감사합니다! 언제나 힘이 돼요!

    물질보단 사람이 더 소중한 겨울이!
    어린아이가 꽤나 어른 스럽네요!

    ───
    딩딩딩님 32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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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Was Kidnapped By The Strongest Guild

I Was Kidnapped By The Strongest Guild

최강 길드에 납치당했다
Score 8.6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When I opened my eyes, I was in a den of mons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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