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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5

       방 안으로 들어온 미아 크로우필드의 얼굴은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아마 방문이 평소와는 다른 방식으로 잠겨있는 것을 보고 안에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짐작했을 테니까.

        

       게다가 그 안에 있는 사람이, 자기가 자기 아버지를 죽였다고 의심하던 사람이라면 더 충격적일 수 밖에 없을 거다.

        

       게다가 그 사람이 자기 침대에 앉아 총을 만지작거리고 있다면.

        

       ……내가 너무 심했나?

        

       순간 그런 생각을 했지만, 금방 지워버렸다. 만약 정말 심했다고 생각하면 시간을 돌려 사건을 다시 조정하면 될 일이니까.

        

       “무슨, 일이시죠?”

        

       미아가 나의 얼굴과 내 손에 있는 권총을 차례대로 바라보면서 물었다.

        

       “이 권총이 어떤 물건인지 아십니까?”

        

       “…….”

        

       미아 크로우필드는 잠깐 고민하는 눈치였다. 사실 모른다고 하고 넘어갈 수도 있을 것이다. 침대 아래에서 발견되긴 했지만 특별한 잠금장치가 있는 곳은 아니었으니까. 나처럼 미리 알고 들어간 사람이 아니라면 절대로 눈치채지 못했을 거고.

        

       그러니, 자기가 아니라 원래부터 그저 거기에 있었고, 자기는 전혀 몰랐다고 해도 말이 안 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문제는 상대가 나라는 것이다.

        

       내가 원래부터 이런 공간이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내 주변 사람들이 나를 만능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 중요했다.

        

       황제나 그 아이들은 내가 거의 예지능력이 있다는 것처럼 행동했고, 지난 수업 시간에 내가 무시무시한 능력을 지녔다는 것도 보였으니까.

        

       그러니, 침대 아래 숨겨둔 물건 정도는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겠지.

        

       그걸 진짜로 찾아서 보여주는 것과는 또 별개의 문제지만.

        

       “실탄이 들어가는 무기는 교내에 가지고 있을 수 없습니다. 모르셨습니까?”

        

       어떻게 숨겨서 들어왔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결국 들켰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

        

       “무슨 이유로 이 총을 들고 왔는지 여쭈어봐도 될는지요.”

        

       나는 침대에 앉은 채 미아 크로우필드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그, 그건…….”

        

       미아 크로우필드는 잠깐 말을 더듬었다. 여전히 얼굴을 새파랗게 물들인 채 덜덜 떠는 모습이 조금 안쓰럽긴 했다.

        

       하긴, 미아 크로우필드 본인에게는 큰 잘못이 없을지 모른다. 잘못한 건 그 아버지일 뿐이니까. 그리고 어쩌면 그 부인도.

        

       정작 본인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고, 그저 부모에게 그렇게 들으며 자랐을 뿐이다.

        

       이 총도, 아직 쓰지는 않았고.

        

       다만 제국법으로 따지자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일단 아카데미 퇴학은 당연하고, 총기를 숨겼던 이유에 따라서는 본인이 사형당해도 이상하지 않으니까.

        

       게다가 정황 증거가 있고, 황제가 마음만 먹는다면 이유 따위는 뒤집어씌울 수도 있다.

        

       크로우필드 백작이 죽었을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위험한 상황이라는 뜻이다. 명분만 충분히 세운다면 크로우필드 가문을 멸족시키는 것도 가능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나는 황녀니까 말이다.

        

       “저, 저를, 죽일 생각이신가요?”

        

       미아 크로우필드는 한참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하다가, 결국 나에게 그렇게 물었다.

        

       “……일단 등 뒤의 문을 닫고 이야기하도록 하죠.”

        

       내가 그렇게 말하고 나서야 미아 크로우필드는 허둥지둥 문을 닫았다.

        

       적막.

        

       문이 닫힌 방 안에는 우리 둘밖에 없었다. 앨리스는 내가 미리 말을 했으니 알고 있지만, 앨리스 외의 다른 사람은 내가 미아 크로우필드와 그런 악연이 있는지 모른다.

        

       “제가 어째서 당신을 죽일 거라고 생각하는지 한번 말씀해보시겠습니까?”

        

       “……저는 크로우필드 가문의 자식이니까요.”

        

       “그렇다면 제가 백작 영애인 당신을 함부로 죽일 수 없다는 사실도 알고 있지 않으십니까?”

        

       “아, 아버지는…….”

        

       미아 크로우필드는 침을 한차례 꿀꺽 삼키고는 말했다.

        

       “아버지는, 죽였으면서…….”

        

       “…….”

        

       나는 미아 크로우필드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저 말은 어떤 근거가 있어서 하는 말일까, 아니면 맹목적인 믿음인 걸까.

        

       지난번에는 내가 먼저 사실을 밝히고 도발하는 것으로 물어봤지만, 상대가 어떻게 그런 상황을 알고 있는 건지 확인해보는 것도 중요했다.

        

       “그렇게 확신하시는 이유를 물어도 되겠습니까?”

        

       나는 그렇게 물었다.

        

       “…….”

        

       나의 질문에 미아 크로우필드는 눈을 질끈 감았다가 다시 뜨면서 말했다.

        

       “……아버지가 죽었던 날, 당신이 황궁에 없었으니까.”

        

       “…….”

        

       나는 잠깐 기다려보았지만, 거기서 말이 더 이어지지는 않았다.

        

       “근거는 그것 하나뿐입니까?”

        

       “당신뿐만이 아니에요. 귀족들이 의문사할 때마다 황제의 아이들이 하나씩 황궁에서 사라졌었으니까.”

        

       “…….”

        

       과연.

        

       애초에 황제는 그 사실을 숨길 생각도 없었을 거다. 아니, 오히려 적극적으로 보여줬겠지. 나의 말을 듣지 않는 귀족은 죄다 정리당한다는 식으로.

        

       그러니 이렇게 확신하고 있을 수 있는 거고.

        

       실제로도 내가 미아 크로우필드의 아버지를 죽인 것은 사실이니까.

        

       “그래서 제게 복수하려는 겁니까? 저를 죽임으로써?”

        

       “…….”

        

       하지만 나의 그 질문에는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내가 두렵기 때문일까? 대답을 잘못하면 이 자리에서 자기를 죽여버릴까 봐? 그래서 복수를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될까 봐?

        

       “……그건…….”

        

       미아 크로우필드는 잠깐 고민하는 듯하다가, 조금 자신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건, 잘 모르겠어요.”

        

       “…….”

        

       이제 와서?

        

       이렇게 총과 마르마로스까지 준비해두고, 정작 나를 죽일지 말지는 고민하고 있었다는 말일까?

        

       나는 잠깐 생각에 잠겼다.

        

       원작에서도 클레어를 죽이려고 하다가, 결국 포기하던 미아였다. 하지만 그렇게 포기하게 된 것은 크로우필드를 배경으로 한 에피소드에서 자기 아버지가 그런 짓을 했었다는 결정적인 증거를 눈앞에 두고 난 뒤였다. 아직 그 스토리가 나오려면 한참 남았고.

        

       애초에 클레어가 처음 등장한 이후로 미아 크로우필드의 그 의심은 한 번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 흔들리지 않던 의심이, 내가 등장함으로써 흔들릴 수 있는 걸까?

        

       엄밀히 따지자면 내가 더 죽이기 쉬운 상대 아닌가? 아니, 그러니까, 방법은 둘째치고 심리적으로.

        

       아무 표정도 없는 살인 기계잖아. 사람을 죽이는 데 일말의 가책도 느끼지 않는, 그런 종류의 인간.

        

       인간적인 모습을 보였던 적이 한 번도 없으니 차라리 죽이기 쉬운 거 아니었어?

        

       “……한가지,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요.”

        

       미아 크로우필드가 말했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그렇게 인간적인 모습을 보였던 것은 어째서죠?”

        

       “……인간적인 모습?”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인간적인 모습이라니?

        

       내가 남들 없는 곳에서 웃기라도 했다는 말인가?

        

       이야기를 이어 나가는 미아 크로우필드는 뭔가 놔버린 듯한 표정이었다. 생각하는 것조차 지친다는 듯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 나가는 미아 크로우필드는, 차라리 이대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는 듯한 모습이었다.

        

       마치, 한꺼번에 너무 많은 일을 겪은 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잠에 빠져들고 싶어 하는 신병 같은 표정.

        

       “……당신을 미행했어요.”

        

       ……응?

        

       “아무도 없는 곳에서 당신이 무슨 행동을 하는지 관찰하려고.”

        

       ……엥?

        

       “그리고…… 아무도 없다고 확신한 뒤의 당신은, 그저 보통 사람들처럼 행동했어요. 코를 훌쩍이고, 하품을 하고. 앉아서 꾸벅꾸벅 졸고.”

        

       “…….”

        

       아니, 지금 저게 무슨 소리야.

        

       내가 언제 그런 적이 있다고…….

        

       …….

        

       ……아.

        

       순간 등에 소름이 쫙 돋았다.

        

       황궁에서야 언제나 나를 노리는 인간이 있다는 사실에 바짝 긴장하고 있었다. 루카스가 나를 베어버리는 거야 시간을 돌리며 피하면 되는 일이었지만, 진짜 문제는 루카스가 ‘나를 베지 않았을’ 때였으니까.

        

       루카스가 튀어나와서 ‘나 여기 있었지롱!’하지 않는 이상 나는 나를 따라오는 루카스가 어디 있는지 알 수가 없다.

        

       그러니, 그냥 평소에도 철저하게 나의 컨셉을 유지하는 것 외에 방법이 없었다는 말이다. 그렇지 않으면 나의 상황을 본 루카스가 황제한테 나의 행동에 대해서 전부 보고해버릴 테니까. 황제 앞에서 껄렁껄렁한 태도를 유지하는 루카스이긴 했지만, 황제를 존경하는 마음 자체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었다.

        

       마지막에 베어버리고 싶어 하는 것도 진심이긴 했지만, 아무튼간에.

        

       하지만 아카데미에 오고 나서는…… 조금 긴장을 풀 수 있었다.

        

       하긴 황궁에서도 내 방에서만큼은 조금 긴장을 풀고 있긴 했지만, 아카데미에서처럼은 아니었다. 여기서 내가 하던 행동을 들킨다고 해도 내 방문을 벌컥 열고 들어오는 앨리스 정도가 전부였으니까. 앨리스는 이미 나의 표정을 읽기 시작했다. 행동을 조금 들킨다고 해서 앨리스가 기절초풍하거나 할 일은 없다.

        

       파르페를 먹을 때처럼 얼굴이 형편없이 무너지지 않도록 유지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하지만…….

        

       긴장을 너무 풀고 있었나?

        

       미아 크로우필드가 나의 뒤를 미행했다고?

        

       “언제부터?”

        

       “대답부터 해주세요.”

        

       미아 크로우필드는 여전히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보면서 말했다.

        

       하지만 그 눈에는 어떤 의지가 깃들어있었다. 나에게서 어떻게든 대답을 듣겠다는 듯.

        

       “당신이 했던 그 행동은, 모두 연기였나요? 저에게 보여주고 저를 혼란에 빠뜨리려는?”

        

       “…….”

        

       “당신이 아버지를 죽였다는 건, 진실인가요? 지금 저의 방에 들어온 것도 저를 입막음하기 위해서인가요? 모르겠어요. 당신이 행동하는 것에 어떤 논리가 있는지, 어떤 일관성이 있는 건지.”

        

       “…….”

        

       음.

        

       미아가 나를 미행했던 건, 아마 최소 일주일 전부터일 거다. 내가 앉아서 꾸벅꾸벅 조는 모습을 볼 수 있었던 때는 그 새벽에 일어나 역마차를 기다리던 때뿐이었으니까.

        

       하품도, 코를 훌쩍이는 것도 그때 다 했을 테고.

        

       하지만 그 이전부터 나를 쫓지 않았다는 근거도 없었다. 시간을 돌려서 그 순간의 내가 그런 짓을 못 하게 만든다면 적어도 그 순간의 이미지 자체는 숨길 수 있겠지만…… 문제는 그 이전으로도, 그 이후로도 내가 한 번도 들키지 않았을 거라는 근거가 없었다.

        

       만약 시간을 돌린다면…… 아예 학기 시작 지점으로 돌리는 것이 안전할 거다.

        

       그리고 그런 결론을 낸 나는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제 2주차 주말이긴 했지만, 그 2주일 동안 있었던 일들이 엄청나게 많았기 때문이다. 나는 시간을 뒤로 돌리는 능력은 있어도 빠르게 돌리는 능력은 없다.

        

       겨우겨우 내가 원하는 결론으로 맞춰놨는데, 이거 하나 때문에 그 모든 일을 처음부터 다시 하라고?

        

       아니, 뭐, 그래.

        

       더 빠르게 처리할 수는 있겠지. 시간이 흐르는 속도는 똑같긴 하겠지만, 되돌리는 횟수는 훨씬 적을 테니까.

        

       문제는, 그렇게 되돌려도 지금까지 만난 모든 인물과의 관계를 지금과 똑같이 유지할 수 있냐는 거다.

        

       다른 사람 기준으로 나는 처음 만나는 사람일지 몰라도, 내 기준으로 그 사람들은 여러 번 본 사이니까.

        

       내가 과연 그 앞에서 처음 만나는 연기를, 그리고 지금까지 구축한 이미지에 대한 연기를 똑같이 다시 해낼 수 있을 만큼 연기력이 좋은 사람일까?

        

       게다가, 나도 그 감정들을 다 잃어버리고 싶지 않았다. 게임 속에서 좋아하던 캐릭터들을 처음으로 만났을 때의 그 감동. 그때의 기억과 경험을 되돌려버리면, 그 감동이 그만큼 퇴색되어버릴 테니까.

        

       아무리 내가 그 게임을 까긴 했어도, 좋아했던 감정도 진심이었다.

        

       지금 내 앞에 있는 미아 크로우필드조차도.

        

       …….

        

       “대답해주세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는 나에게, 미아 크로우필드는 이제 거의 애원하듯 말하고 있었다.

        

       “아무도 말을 걸지 않는 저에게 굳이 말을 걸어서 함께 과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한 이유는 뭔가요? 당신이 제 앞에서 그렇게 아무런 적의도 보이지 않고 있을 수 있었던 이유는…….”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내가 놓치고 있었던 게 계속해서 드러난다.

        

       “…….”

        

       나는 일단 한 손을 들어서 미아의 말을 도중에 잘랐다.

        

       그리고 머릿속을 정리한 뒤, 천천히 입을 열었다.

        

       “……진실에 대해서는 알고 있습니다.”

        

       그래, 차라리 처음부터 돌려서 다시 시작할 바에는. 차라리 일단 상황을 빠져나가고 다시 천천히 방침을 새로 세우는 쪽이 나을 것 같다.

        

       “하지만, 지금 당장 알려줄 수는 없는 것들입니다.”

        

       나는 미아 크로우필드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KYYY 님, 후원 감사합니다!

    언제나 새로운 글을 쓸 때마다 많은 걱정을 합니다. 이번 글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읽어줄지, 과연 좋아해줄지… 사실 제 생활에서 중심이 되는 것은 지금 가지고 있는 직장이고, 글은 부업에 가깝습니다. 연중성녀를 쓰던 시절에는 그냥 취미였고요. 하지만 주기적으로 추가적인 돈이 들어오기 시작하니 수익에 대해서 생각을 하기 싫어도 하게 되더군요. 아무래도 들어오는 돈 덕분에 생활 자체가 훨씬 나아져서 더 신경을 쓰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번 소설을 처음 쓸때도 신경을 많이 썼었는데… 이렇게 많은 분들께서 읽어주시니 마음이 많이 놓입니다. 오히려 제가 지금까지 썼던 소설 중 같은 기간에 가장 조회수가 많이 나오는 소설이 되어버렸네요. 벌써 선작수도 9천이 넘어가고… 이렇게 읽어주시는 분들이 많아졌으니, 저도 그만큼 더 열심히 써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부’업’인 만큼, 끝까지 책임지고 제대로 쓸 수 있는 작가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도 저의 글을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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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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