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55

    점심시간, 엠마는 문득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느리지만 안정적인 음율에 발걸음을 멈췄다.

    현이 활에 마찰하여 울려퍼지는 소리, 이건 볼 것도 없이, 루크의 첼로일 것이다.

    아직 동아리활동은 본격적으로 시작되지 않았고, 음악동아리의 회원은 아직 루크밖에 없으니까.

    ‘아, 루크가 있을 줄 알았으면 좀 더 빨리 이쪽으로 와볼걸 그랬나.’

    오늘은 1~4교시 내도록 음악수업이 있었고, 쉬는시간엔 기타 잡무를 보느라고 동아리실 주변으론 오지도 못했으니까.

    지금도 점심시간이라서 겨우 시간이났을 뿐이다.

    그런데 그렇게 학교에 오기 싫어했던 아이가 악기를 다룰 생각으로 학교에 온걸까?

    역시 음악을 고른것은 정답이었다며 엠마는 살짝 주먹을 쥐었다.

    ‘많이 늘었네, 하룻밤새에.’

    헌데 어제 그렇게 끼기긱거리던 불쾌한소음이, 이제는 부드럽고 서정적인 현의 울림으로 거듭난 상태였다.

    집에서도 가르쳐준대로 열심히 연습한걸까.

    이 정도로 실력이 붙으려면 재능 이외에 노력도 분명히 필요할터다.

    악기를 다룬다는것은 그런거니까. 

    아무리 천재여도 노력이 없으면 제대로 소리를 낼 수도 없다.

    사람의 육체는 절대 한번에 완벽하게 움직일 수 없다.

    그렇다고쳐도, 하루만에 이렇게 발전한것은 확실히 재능이라고 부를 수 있겠지만.

    ‘후후, 배우는 속도에 질투가 생길 정도인걸.’

    어제 첼로를 배우기 시작한 10살치고는 너무나 좋은 음이었다. 

    물론 객관적으로 보면 아직 초보적이기는 하지만……. 실제로 루크는 어제 음악을 시작한 초보잖은가?

    엄격해질 필요는 전혀 없다.

    엠마는 음악동아리실의 문을 열었다.

    “루크, 언제부터 와있었니?”

    엠마가 들어오는것을 본 루크가 손을 멈추자, 듣기좋게 울리던 현의 떨림도 멎는다.

    뚝, 하고 고요해진 방.

    루크는 살짝 고개를 들어 엠마를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아, 엠마로군. 아침일찍부터 연습중이었다네. 어떤가? 제대로 된 소리가 나는가?”

    “아주 훌륭해, 하루만에 이렇게까지 실력이 붙을거라곤 생각도 못했어.”

    “하하, 칭찬에 몸둘바를 모르겠구나.”

    루크는 반나절동안 쉬지않고 연주하느라 맺힌 땀을 손등으로 닦아내며 휴우,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니 얇은 입김이 생겼다가 사라진다.

    루크의 표정은 꽤 만족감에 젖은 표정이었다.

    땀이 날 정도로 열심히 연습을 했다는 만족감일까?

    ……잠깐, 입김?

    엠마는 퍼뜩 드는 불길한 생각이 있었다.

    ‘그러고보니, 부실이 좀 쌀쌀한데…….’

    오늘은 비가와서인지, 기온이 상당히 낮았다.

    요 며칠 따듯한 날씨가 지속되었던 탓일까? 오늘따라 유난히 추운 날씨였던 것이다.

    그러나, 티그아카데미의 실내에는 모든 방에 난방기기가 설치되어있다. 

    그러니, 이렇게 추울리가 없는데.

    엠마는 황급히 난방기기를 조작할 수 있는 패널이 부착된 벽면에 시선을 던졌다.

    ‘역시 꺼져있어.’

    키는법을 몰랐던가, 아니면 중간에 꺼졌는데 연습중이라 눈치채지 못했거나. 

    중요한건, 루크가 이 추운 방에서 몇시간이나 방치된채 땀을 흘리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엠마는 곧장 루크의 이마를 짚었다.

    그녀의 행동에 루크는 살짝 당황했고.

    “가, 갑자기 무슨 일이지?”

    엠마는 손에서 느껴지는 과도한 온기에 화들짝 놀랐다.

    “루크, 이마가 불덩이같아!”

    “아, 그건.”

    아마 단일대상지정 버프마법으로 마개조한 ‘파이어’탓이리라.

    따스한 열기를 몸에 직접 둘렀으니, 당연히 일반적인 체온보다야 높겠지.

    “몸에 마법을 둘렀기 때문이라네.”

    “아, 그런거니? 난또……. 손난로가 있었나보구나.”

    몸에 열을 두르는 마도구, 손난로가 있다면야 이런 체온도 말이 안되는건 아니겠지.

    엠마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잠시후, 루크의 말만 없었다면 계속 안심할 수 있었겠지만…….

    “손난로? 흥미롭군, 그건 어떻게 생긴……. 아.”

    손난로같은건 없었다.

    ——–

    양호실.

    루크는 땀에 젖은 교복을 갈아입혀진 채, 침대에 눕혀져 있다.

    그런 루크의 이마의 온도를 측정한 보건교사는, 온도계를 보며 혀를 내둘렀다.

    “우와, 체온이 높기는 하네.”

    “아니, 그러니까 아프지 않대도…….”

    파이어는 진작에 거두긴 했지만, 잔열이 남아 여전히 높은 체온을 유지하는 중이었다.

    게다가, 실제로 아프지도 않은데 병자취급을 당하는 상황에 부끄러워져서 얼굴도 살짝 붉은 상태였다.

    “이렇게 열이 높은데? 잔말말고 푹 쉬렴, 보호자한테는 따로 연락을 해둘테니까.”

    루크는 깜짝놀라 외쳤다.

    “예르나는 바쁠테니, 괜한 걱정 시키지 말게!”

    사냥주간이라 바쁠것이 분명하고, 실제로 자신은 아픈것도 아니니 쓸데없는 걱정이 될게 분명하다.

    그러니까 연락따위를 해봤자, 좋은일은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예르나가 일에 집중하지 못하게 할 뿐이겠지.

    하지만 보건교사가 보기에, 그런 루크의 반응은 그저 아픈걸 숨기려고 떼를 쓰는 모습으로밖엔 보이지 않았다.

    어째서 그렇게까지 아픈걸 숨기려는걸까?

    “후우……. 알겠어, 얘기하진 않을게. 대신, 푹 쉬어두라고. 더 아프면 꼭 이야기하고.”

    “……그러지.”

    루크는 보건교사가 커튼을 치고 돌아가는것을 보면서 한숨을 푸욱 쉬었다.

    “불편하구나…….”

    루크는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파이를 보며 또 한숨을 쉬었다.

    “왠지 신나보이는구나, 그대는.”

    정말 원치않게 꾀병을 부리게되었다.

    루크는 문득 천장을 보며 생각했다.

    ‘병이라……. 그러고보니 병에 걸려본것도 참 오래 되었군.’

    3서클만 되어도 어지간한 질병에는 면역이 생긴다.

    헌데 루크는 어땠겠는가. 그의 인생에선 병으로 아플일이 거의 없었다.

    독이나 노환이라면 모를까.

    루크는 한숨을 쉬며 눈을 감았다.

    ‘이러고 있으니, 옛날 생각이 나는구먼.’

    아직 어렸을 시절. 그러니까, 7살무렵이었던가.

    심장에 2서클을 무리하게 새기느라 과로한 탓인지, 열병에 걸린적이 있었다.

    꽤 심각한 수준이었던것으로 기억한다. 

    자칫하면 죽을수도 있었던가.

    그때, 그의 곁을 지켜주었던게 케일이었다.

    “하아…….”

    루크의 한숨에는 그리움이 가득 담겨져있었다.

    케일과 루크는 오랜 친우였다.

    아주, 아주 어릴때부터.

    하지만 루크는 귀족, 케일은 평민.

    비록 종자와 주인의 관계였지만, 루크와 케일은 진심으로 서로를 존중하고 또 신뢰했다.

    “그립군. 그대같은 실험체는 흔치 않았지.”

    꽤 튼튼한 녀석이었다.

    그 덕분에 가끔은 녀석을 마법의 실험대상으로 써먹기도 했지만, 그녀석도 자신을 검술의 대련상대로 썼으니 괜찮겠지.

    “하아…….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좋을텐데.”

    루크는 케일이 목숨을 바쳤던 순간을 떠올렸다.

    마왕의 심장에 성창을 박아넣던 남자의 뒷모습을.

    성창의 ‘용사’가 포기한 과업을 대신 짊어진 대역용사.

    ‘영웅’의 위업을.

    “그때, 내가 더 완벽했다면, 그대가 그렇게 죽을 필요는 없었겠지…….”

    참을 수 없는 후회에, 루크는 한탄처럼 그 말을 내뱉고만다.

    3인의 ‘용사’가 마왕을 무찌른다는 신탁……. 

    그러나 레니에를 제외한 두명의 용사는 자신의 의무를 포기했다.

    신의 장난감이 되어 죽고싶지 않다나?

    웃기는 소리지않은가.

    그 용사 자신이 의무를 저버렸다면, 그들에게 남은것은 그저 개죽음에 불과한데.

    ‘후우, 마음같아선 이대로 일어나고싶지만…….’

    그래봤자 도로 눕혀질것이 뻔하니, 차라리 한숨 자고 일어나는게 낫겠지.

    루크는 눈을 감았다.

    ——–

    “야, 루크.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냐?”

    손목의 꼬맨 자국. 단단한 굳은살. 얇고 길게 늘어진 말총머리.

    날카로운 눈매와 단단한 육체, 얼굴을 비롯해 몸 곳곳에 새겨진 흉터.

    아주 익숙한 얼굴이다. 지긋지긋할 정도로.

    “아, 케일. 왜 부르는가.”

    케일은 이거, 오늘따라 이상한 녀석이네,라며 어깨를 으쓱했다.

    “뭐해, 약초 달이다 말고. 그거 그렇게 정신 딴데다 흘리면서 만들어도 돼?”

    역시, 이녀석이 이몸을 걱정할리가 없나, 하고 피식 웃어버린 루크는 능청스럽게 대답했다.

    “미안하군……. 요즘 살짝 피곤해서 말이야.”

    “하여간, 그게 다 운동부족이라고, 이 샌님아.”

    그러자, 곁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레니에가 말했다.

    “후훗, 너무 그렇게 놀리진 마. 이루시님이 우리중에 가장 피로할수밖에 없잖아.”

    “뭐, 그건 그렇지만.”

    “어쩔 수 없잖나. 레니에, 그대는 불사이니 수면조차 필요가 없고……. 케일 그대도 이미 반쯤은 용사니까 피로엔 강하겠지. 하지만 나는 평범한 인간이란 말일세. 그저, 심장에 8서클이 새겨졌을 뿐인.”

    “어이, 그게 평범한거냐?”

    케일의 빈정거림에, 루크는 눈썹하나 움찔거리지 않고 태연하게 받아친다.

    “이중에선 가장 평범하지.”

    “그건 그렇겠지요, 8서클 마법사는 이 세상에 단 한명이 아니니까요.”

    “그야 그렇긴 하지만…….”

    케일은 쩝, 하는 소리를 내며 머리를 긁었다.

    그때, 약초를 달이던 냄비에서 폭, 하고 연기가 솟아오른다. 완성의 신호였다.

    루크는 손짓으로 그 액체를 들어올려 잘 섞었다.

    허공에 떠오른 액체들은 몇번 출렁거리더니, 푸른색에서 점차 녹색으로 물든다.

    그리고 그가 손가락을 딱, 하고 튕기자. 녹색의 액체는 다시 냄비로 들어가 부글부글 끓는 듯 졸여진다. 레니에는 그런 액체 위에 자신의 머리카락을 한가닥 뽑아 담그고, 루크는 케일에게 손짓했다.

    케일이 익숙한듯 컵을 내밀자, 루크는 그 컵 위에 어느새 붉게 변한 액체를 가득 담았다.

    컵에 모든 액체가 담겨지자, 케일은 곧장 그것을 입에 대곤 벌컥, 들이켰다.

    “크으……. 더럽게 쓰구만. 더 맛있게는 안되나?”

    “이게 최선일세, 알잖은가?”

    “조까, 진짜 존나 쓰거든. 네가 먹어보던가.”

    “사양하지, 불필요한 소모는 자제하는게 좋으니.”

    “지랄도.”

    루크는 연금술을 하는데 사용한 물품들을 전부 아공간에 밀어넣고는 흔적을 정리했다.

    그 역시 손짓 한번이었다.

    레니에는 루크가 자리를 정리하는것에 시선을 내려 보고있다가, 슬픔이 담긴 목소리를 중얼거렸다.

    “……언제나 미안해, 케일.”

    “됐어. 그런 이야기 들으려고 시작한 원정 아니니까.”

    “그렇지, 그런것보다, 얼른 자리를 옮기세. 3일 안에 또 휴식할 공간을 찾지 못하면 이 원정은 실패잖나.”

    “네……. 케일, 정말 몸은 괜찮은거지?”

    “나 케일 프롭슨, 몸 빼면 남는거 없다. 당연히 괜찮지.”

    케일은 자신이 앉아있던 직사각형의 목함에서 일어나며 그것을 등에 짊어진다.

    목함에는 당연히, ‘성창’이 담겨져있다.

    마왕을 쓰러트릴 수 있다는, 신이 직접 만들어낸 무기.

    하지만, ‘성창의 용사’외에는 결코 다룰 수 없는 막대한 신성력이 담겨진 무기.

    그것은 분명 성스러워야 할 모습이지만…….

    그 모습은 마치 장의사같았다.

    그가 옮기는 죽음은 자신의 죽음인가, 마왕의 죽음인가.

    그때는 몰랐으나, 그가 옮긴것은 그 둘 전부였다.

    ——–

    보건교사는 뒤척거림이 사라진 침댓가로 다가가 살짝 커튼을 거뒀다.

    상태를 확인해야하니까.

    “…….”

    다행히, 아이는 새근새근 잘 자는 모습이었다.

    꽤 평온한 표정이었는데, 아까까지 중얼거리던 말들이 살짝 걸린다.

    안 들릴거라고 생각했던걸까?

    하지만 보건교사는 귀가 매우 예민한 박쥐수인이 그녀의 어머니였다.

    그 덕분에 청진기 없이 심장소리를 들을 수 있는 좋은 청력을 갖게 되었지만…….

    추가로 이렇게 쓸데없는 소리도 잘 들린다는게 문제다.

    평소엔 귀마개로 그것을 걸러냈지만, 지금은 혹시모를 상황에 대비해 빼둔 상태였고.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는데…….’

    박쥐는 그 둘 전부잖은가? 

    엿듣기엔 최적화라고해도 과언이 아니지 않을까.

    아무튼, 그녀는 다시 커튼을 치면서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루크의 중얼거림을 떠올리면서.

    실험체가 어쩌고 할땐 무슨 얘긴지 싶었는데.

    타인의 죽음이 자신의 탓이라니, 10살짜리 아이의 입에서 나올만한 소리는 아니잖아?

    대수롭지않게 넘어가기엔 너무 심상치않았다.

    ‘……역시 보호자한테 연락하는게 좋겠지.’

    뭐, 아이가 연락하지 말아달라곤 했지만…….

    아이의 말을 듣고 연락 안하는 것보단 당연히 보호자를 부르는게 맞을거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호엥….. 옛날이야기가 조금 새어 나오고 말았습니다…..!

    아, 유전자패턴에 관한것은 현대랑은 그 측정방식이 다르니 이과적으로 접근하진 말아주세요!

    자세한건 스포니까 말 못하지만……

    아무튼 그렇습니다.

    그리고 일상편은 절대 안끝납니다.
    엔딩까지 일상으로 박을거니까요.
    전투? 최종보스? 그게 필요한가? 필요없지않나?

    물론 중간중간 약간의 조미료는 넣을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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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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