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55

       파스텔은 긴 막대를 잡고 솥단지를 휘저었다.

         

       휘적휘적.

         

       보글보글.

         

       마녀가 된 기분.

         

       “깊고 긴 산골짜기 마녀는 무엇을 먹고사나요~.”

         

       나무 막대를 마이크처럼 입에 대고 열창했다.

         

       “토끼님토끼님, 옹달샘을 알고 있나요~! 사슴님사슴님, 과수원을 알고 있나요~!”

         

       빙그르르 돈 다음 나무 막대를 다시 잡았다.

         

       “모두가 있어 굶주리지 않는 삶~!”

         

       행복하답니다.

         

       악마가 다가오더니 소녀의 어깨를 잡았다.

         

       파스텔은 반색했다.

         

       “악마님도 한 곡?”

       『노래 부르지 말고 집중해라. 바닥에 눌어붙지 않게 골고루 저어야 해.』

         

       손가락이 단호하게 솥단지를 가리켰다.

         

       보라색 독극물이 보글보글.

         

       악마가 가르쳐주는 방식대로 각종 독초와 독주머니를 다듬고 가공해서 끓이는 중이었다.

         

       파스텔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처음에야 독극물 제조라고 하니 두근두근 콩닥콩닥 흥미로웠지만 그것도 한두 번일 때였다. 벌써 열 번째 같은 독극물을 만들었다가 실패하길 반복했다.

         

       그냥 만들기만 하면 또 모를까 독초를 다듬고 씨앗을 손수 갈거나 뱀의 독주머니를 잘게 썰고 눌러 즙을 짜내는 등의 재료 준비 작업까지 수작업으로 해야 했다.

         

       으잉.

         

       내가 상상하던 건 이런 반복 노동이 아니야.

         

       퐁당퐁당! 얍얍! 펑펑! 같은 거라고.

         

       나무 막대를 잡고 찐득한 액체를 대강대강 휘저었다.

         

       “어차피 독인데 그냥 적당히 태우면 안 돼요?”

         

       솥단지 젓기만 삼십 분째다.

         

       한번 시도할 때마다!

         

       으아.

         

       양손의 검지를 세웠다.

         

       “일 플러스 일은 이! 안 좋은 거에 안 좋은 거를 섞으면 두 배로 안 좋은 거!”

         

       스페셜 레시피, 탄맛 독극물!

         

       맛없다고 불평하지 말아요~.

         

       어차피 먹으면 죽으니까~.

         

       『당연히 안 된다.』

         

       악마가 손을 잡아 오더니 나무 막대를 다시 쥐게 했다. 강제로 솥단지가 휘저어졌다.

         

       우아악.

         

       『연금술은 요리와 큰 차이가 없다. 씁쓸한 맛을 넣겠다고 수프의 바닥을 태우면 씁쓸한 수프가 완성되는 게 아니라 탄 수프가 될 뿐이야.』

         

       우잉.

         

       “악마님 그거 아세요? 고기는 살짝 타야 맛있대요! 저도 완전 공감! 그러니 독극물도 타야 맛있지 않을까요?! 완전 공감!”

         

       허억.

         

       완벽한 논리.

         

       악마가 못 들은 척했다.

         

       『타지 않게 잘 저어라. 수분기가 최대한 증발될 수 있게 삼십 분만 더 저으면 된다.』

         

       으아아.

         

       삼십 분 뒤 파스텔은 어깨를 늘어트린 채 나무 막대를 멈췄다. 막대로 솥단지의 검보라빛 점성 물질을 쿡쿡 찌르자 찐득찐득한 감촉이 확연히 느껴졌다.

         

       먹으면 죽을 거 같은 상태!

         

       “완성된 거 같아요!”

         

       악마가 솥단지를 들여다봤다.

         

       거무튀튀.

         

       『탔군. 실패다.』

         

       으아.

         

       다시 만들어야 해애!

         

       파스텔은 머리를 부여잡았다.

         

       “우아앙!”

         

       파스텔 살려어!

         

       악마가 지친 얼굴로 천장을 올려봤다.

         

       『벌써 열 번째 실패다. 원인이 뭐라고 생각하지?』

         

       끄응.

         

       심각하게 고민하다가 원인을 찾곤 얼굴이 밝아졌다. 양손을 옆구리에 짚고 당당히 말했다.

         

       “얘네랑 저랑 궁합이 안 좋은가 봐요! 칙칙한 악마님은 모르시겠지만 인기인은 원래 모두와 사이가 좋을 순 없거든요! 얘네와 제가 그렇죠!”

         

       맞아! 이게 정답이야!

         

       악마가 손가락으로 파스텔의 이마를 쿡 눌렀다.

         

       『틀렸다.』

         

       으엑.

         

       『알려주는 대로 안 하니까 계속 실패작을 만드는 거다. 도대체 도중에 노래를 왜 부르는 거지? 덕분에 탓잖나.』

       “악마님은 몰라요! 사람에게 노동요는 중요하다고요!”

       『그럼 춤은 왜 추는 거냐. 그것만 안 췄어도 이렇게까지 타진 않았을 거다.』

       “그건.”

         

       파스텔은 곰곰이 생각했다.

         

       “그냥……?”

         

       악마가 어이없어했다.

         

       윽.

         

       “그치만요! 그치만요!”

         

       파스텔은 양팔을 휘저었다.

         

       “제작 과정이 이렇게 고단하고 지루하고 따분하다는 걸 알게 되니까 몸이 가만히 있질 못하는걸요!”

         

       악마가 더 어이없어했다.

         

       『매우 당당하군.』

         

       악마의 손가락이 파스텔의 이마를 꾹꾹 밀었다.

         

       휘청휘청.

         

       우아앙.

         

       “하지 마세요오!”

       『너야말로 제대로 해라.』

         

       손가락을 피하며 몸을 세웠다.

         

       “그래서 말인데요! 악마님, 연금술은 요리와 다르지 않다고 하셨잖아요? 맞죠? 맞죠?”

       『그게 어쨌다는 거지?』

         

       파스텔은 은근히 미소 지었다. 스리슬쩍 다가가 악마를 손가락으로 콕콕 찔렀다.

         

       “악마님! 악마님! 요리 담당 악마님!”

       『그만 불러라.』

         

       양손을 꼭 잡고 악마를 올려봤다.

         

       “어차피 요리를 해주시는 김에요!”

         

       파스텔의 분홍 눈이 빛났다.

         

       반짝반짝.

         

       “독 제조도 해주세요!”

         

       순진무구한 외침!

         

       고단하고 지루하고 따분해서 직접 하기 싫어진 파스텔은 열심히 아부를 떨었다.

         

       “판타스틱하고 그레이트한 슈퍼 울트라 악마님! 전문 영역엔 전문가의 손길이 필요해요!”

         

       말랑말랑한 손을 보여주듯이 꼼지락댔다.

         

       “이런 손으로 저급한 독을 제조해봤자 실전에선 아쉬움만 커지잖아요! 악마님이 제조한 특제 독이야말로 굶주린 파스텔을 살릴 수 있는 비장의 무기예요!”

         

       한 점의 논리도 틀리지 않는 완벽한 웅변!

         

       여기에여기에!

         

       파스텔은 마석 나이프를 꺼냈다. 입을 가리고 복화술을 하듯이 나이프를 까딱였다.

         

       나이프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제 의견도 같아요오. 저와 함께할 단짝 독극물은 악마님만 만들 수 있어요오.”

         

       허억.

         

       파스텔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방금 들으셨어요?! 나이프 친구가 말했어요! 그것도 악마님이 만들어 주신 독극물이 좋다면서요!”

         

       우와아.

         

       무생물도 입을 열게 하는 의견일치!

         

       악마가 허탈하게 바라봤다.

         

       『어린 크래프트.』

       “네!”

         

       눈을 반짝반짝.

         

       『안 해줄 거다.』

         

       단호한 목소리.

         

       마냥 무른 태도가 가정교육에 매우 안 좋은 영향을 준다는 걸 깨달은 듯한 부모 같은 태도.

         

       헉.

         

       파스텔은 그대로 굳었다.

         

       냉혹하고 차가운 현실이 찾아왔다.

         

       『자기 일은 스스로 해라.』

         

       냉동 꽁꽁 악마가 절대영도급 목소리로 말하곤 실패작 솥단지를 챙겨 씻으러 갔다.

         

       혼자 남게 된 파스텔은 영혼이 빠진 듯한 표정으로 숨넘어가는 소리를 냈다.

         

       자기 일은 스스로 해라.

         

       스스로!

         

       스스로……!

         

       머리를 부여잡았다.

         

       “으아아!”

         

       차가운 현실!

         

       냉혹한 현실!

         

       격렬한 절망감이 아마도 찾아왔다.

         

       “고단하고 지루하고 따분한 작업을 이젠 스스로 해야 한다니! 흐아아! 하기 귀찮아서 일부러 실패작만 만들었을 뿐인데……!”

         

       사보타주 인정해 주세요!

         

       그냥 악마님이 해주세요오!

         

       뒤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뭐라고……?』

         

       엣.

         

       파스텔은 얼어붙은 채 천천히 돌아봤다.

         

       세척용 시약을 두고 갔는지 돌아온 악마가 경악해선 쳐다봤다.

         

       『어린 크래프트?』

         

       우아아앗!

         

       양심 없는 떼쓰기를 하고 들키기 직전……!

         

       진짜 혼날 위기……!

         

       “착한 파스텔, 스스로 해결하겠습니다!”

         

       파스텔은 후다닥 도망쳤다.

         

       악마가 서둘러 쫓아왔다.

         

       『잠깐 멈춰라. 방금 무슨-』

         

       “천재 마녀가 돼서 돌아올게요!”

         

       후다다닥.

         

         

         

       #

         

         

         

       “레너드!”

         

       파스텔은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부하들과 얘기하던 레너드가 떨떠름하게 돌아봤다.

         

       “뭐 하다 이제 온 거냐?”

       “사적인 일!”

       “뻔뻔한 거 봐라. 야, 받아.”

         

       레너드가 상단들의 감사 결과를 건네줬다.

         

       기사단과 병사들이 하늘고래에 침입한 교단을 수색하고 프레지 상단을 탈탈 터는 동안 다른 상단들의 하늘고래 채집은 중지됐다. 중지된 김에 간단한 감사를 시작한 참이었다.

         

       멀쩡했던 프레지 상단이 공중분해 되는 상황에 정말 감사를 하면 상단들 불안이 커질 테니 제대로 된 감사라기보다는 일종의 요식 행위였다.

         

       “깊게 파고들진 않아서 확신은 못 하겠지만 겉으론 교단과 관련된 곳은 없더라. 파보자면 더 파볼 수는 있겠는데.”

         

       파스텔은 보고를 들으며 서류를 훑어봤다. 그러다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괜찮아! 이걸로 감사는 충분해! 기사단 보고를 들어보니 프레지 상단에서도 이사급 일부만 교단과 연관이 있다고 하더라고. 나머지는 그냥 상부 명령을 들은 거고.”

       “뭐냐, 사적인 일이라더니 놀고만 있던 건 아니네?”

         

       복수니 사적인 일은 맞다.

         

       레너드와 친구친구들을 만난 뒤엔 프레지 상단의 주요 간부진이 갇혀 있는 감옥으로 향했다.

         

       『스스로 해결한다더니 여긴 왜 온 거지?』

         

       으앗.

         

       도망치긴 했지만 마검에 봉인된 악마의 상황상 결국 일정 거리 이내에선 같이 다녀야 했다.

         

       우아우아.

         

       부끄러워어!

         

       악마는 한숨만 푹푹 쉴 뿐 별말은 하지 않았지만 파스텔은 격렬한 창피함에 시달렸다.

         

       얼굴을 가리고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아무 말도 하지 말아주세요…….”

       『알겠다.』

         

       으아아.

         

       정말 아무 말도 안 하니까 양심이 괴로워…….

         

       비틀비틀 감옥에 당도하자 병사들의 안내를 받을 수 있었다.

         

       파스텔은 프레지 상단의 조사 서류와 간부진 명단을 받았다. 간부진 한 명 한 명의 죄목과 경력을 살피며 어떤 이름엔 줄을 긋고 어떤 이름엔 동그라미를 치며 명단을 정리했다.

         

       『뭐 하려는 거지?』

       “솎아내서 상단 채로 잡아먹게요.”

         

       프레지 상단은 교단이 약물에 쓸 만큼 고급 재료를 가공하는 기술이 뛰어나다. 재료를 다루는 솜씨만큼의 수준은 아닐지라도 전문적인 연금술 인력도 존재했다.

         

       다르게 얘기하면 독극물 제조가 가능하다.

         

       흥얼흥얼.

         

       악마님이 안 해주면~.

         

       다른 사람이 해주면 되지요~.

         

       간부진들은 크래프트 후작에 대한 살인 청부 혐의로 붙잡혀 와 겸사겸사 다른 경제 범죄까지 까발려지는 상태였다.

         

       상단 인수를 조건부로 선처를 해줄 생각이다. 경제 범죄는 뇌물로 무마가 가능하니까.

         

       파스텔은 뽑은 명단의 간부진을 한 명씩 대면했다.

         

       “살인 청부를 당한 당사자로서 섬뜩한 감각이 아직도 남아 있지만 혹시 무고한 분은 있지 않을까 노심초사했어요.”

         

       조사해 보니 당신은 무고하다. 무고한 당신은 풀어주고 싶다. 다만 이번 경험이 내게 트라우마처럼 남았으니 두려운 프레지 상단의 명판을 바꾸는 일을 도와달라.

         

       겁에 질린 얼굴의 분홍 소녀가 감옥 철창 너머로 조곤조곤 제안하자 넘어오지 않는 자가 없었다.

         

       정말 거짓말에 속아서였는지 겁에 질린 얼굴로 침착하게 협박하는 엇나간 모습이 섬뜩해서였는진 당사자들만 알 것이다.

         

       석방된 간부진들은 프레지 상단을 내부에서부터 인수되기 좋게 분쇄했다.

         

       파스텔은 상단 가치가 곤두박질치자 서류 사인 몇 번으로 저점 매수할 수 있었다.

         

       프레지 상단?

         

       앞으론 크래프트 상단으로 부르도록.

         

       헤헤.

         

       이 과정에 가장 큰 인생의 변화를 겪은 건 싱클레어 상단주일 것이다.

         

       아니, 이젠 상단주가 아닌가.

         

       소녀는 철창 앞에 섰다. 감옥을 어둠이 감쌌다. 은은한 등불만이 소녀의 그림자를 길게 만들었다.

         

       싱클레어가 뭉개진 얼굴로 철창을 붙잡았다.

         

       “저는 무고합니다!”

         

       탁한 목소리가 울렸다.

         

       소녀는 놀라 움찔했다.

         

       후작 각하의 반응을 본 병사가 고함을 치며 감옥 안으로 창대를 휘둘렀다. 싱클레어가 머리에 얻어맞고 피를 흘렸지만 철창에서 떨어지진 않았다.

         

       절박한 눈동자가 쳐다봤다.

         

       “후작 각하! 믿어주십쇼! 전 각하께 어떠한 위해도 끼칠 생각이 없었습니다!”

         

       갈라진 목소리가 찢어지게 울렸다.

         

       소녀는 몸을 떨었다.

         

       “저, 정말요? 싱클레어 씨도 무고한 분인가요?”

         

       싱클레어의 눈동자에 희망이 깃들었다.

         

       “그렇습니다! 무고합니다! 믿어주십쇼!”

         

       다른 간부진들의 석방 소식을 들었는지 자신 또한 그럴 거라 희망을 갖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렇군요…….”

         

       소녀는 머뭇거렸다.

         

       조심스럽게 몸을 숙이더니 주변의 병사들에게 들리지 않을 작은 목소리로 속닥였다.

         

       “알고 있어요.”

         

       차가운 목소리였다.

         

       싱클레어가 굳었다.

         

       “그러니 처형은 미뤄드릴게요. 제 마음이 버틸 수 없을 거 같거든요. 대신 평생 감옥에서 지내세요.”

         

       소녀는 시선을 마주치다가 몸을 일으켰다.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병사들이 뒤따랐다.

         

       공포에 질린 비명이 들려왔다.

         

         

         

         

         

       

       

    다음화 보기


           


No, It’s Mental Immunity

No, It’s Mental Immunity

Status: Ongoing Author:
The guardian demonic sword is troubled and in distress, believing it has been ruined because of me. Does striving for advancement through consuming demonic energy seem too evil...?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