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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5

       * * *

       

       

       일본제국에서 승승장구하고 있던 무타구치 렌야는 남만주철도회사. 일명 만철을 지킬 일본의 남만주군에 배치되었다.

       

       사실상 만철군이라 불리는 이 군대의 지휘관이 된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육군 쪽에서 중국진출을 위해 러시아와 따로 친분을 쌓은 무타구치 렌야를 밀어붙인 거지만.

       

       다만, 문제가 한 가지 있다면.

       

       

       “불령선인들이 문제로군. 으음.”

       

       

       남만주로 도망 온 불령선인들이 남만주의 일본 군에 각종 테러 행위를 가하고 있었다.

       

       대체 그 불령선인. 말 안 들어 처먹는 조선인들은 황국신민으로 사는 것이 뭐가 불만이란 말인가.

       

       아니, 사실 무타구치 렌야는. 조선인이 일본 정부에 불만이 있든 개과천선하여 충실하게 정말 황국신민으로 살든 솔직히 상관없었다.

       

       지금 당장 눈앞에서 천황폐하께 충성을 다짐한 조선인들이 역병에 걸려 죽어도 그것이 붉은 역병만 아니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단지 자신이 있는 이곳에서 조선인들이 이상한 짓만 하지 않았으면 했다.

       

       

       “음, 이 조선인들을 어쩌지.”

       

       

       사실 이 조선인들을 토벌하는 건 상관없지만, 무타구치 렌야는 스스로 일본에서 가장 뛰어난 엘리트 장교이며 군인이고, 사무라이라고 확신했다.

       

       그런 몸이 가끔 철도에 테러나 해대는 불령선인을 토벌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게다가 토벌해도 문제인 것이.

       

       결국 테러를 자행한 조선인을 토벌하는 일이다.

       

       남만주의 치안을 맡은 몸으로서 이 조선인들을 토벌한다는 것은 이미 남만주의 치안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의미하고 내지에도 알려진다는 뜻.

       

       그리하면 엘리트코스에 큰 문제가 생긴다.

       

       안 그래도 내지에서 남만주로 온 조선인들은 내지만큼 벌지도 못 하는 탓에 은근히 불령선인에 동조하는 놈들도 있는데.

       

       그렇게 입이 삐죽 튀어나올 정도로 투덜거리면서 신세 한탄을 할 무렵.

       

       !!

       

       무타구치 렌야의 머리는 빠르게 돌아갔다.

       

       무려 전러시아의 성녀이자, 몽골의 대칸이자, 전러시아의 차리나이자, 동로마의 황제 아나스타샤가 인정한 예정된 일본의 영웅 무타구치 렌야의 머리는 기가 막히게 돌았다.

       

       

       “아시아 기마사단에 조선인들이 좀 있지 않던가?”

       

       

       분명 아시아 기마사단에 조선계들이 상당히 많았던 걸로 안다.

       

       무지렁이들이 만주에서 마적들이랑 쌈박질하니 전투력이 좀 끌어올라 러시아의 아시아 사단에 들어간 모양인데.

       

       차라리 그쪽으로 죄다 넘기는 건 어떨까.

       

       우방국인 러시아의 부족한 극동군을 채워줄 수도 있고. 이쪽은 굳이 내지에 알리지 않고 몰래 불령선인들을 다 보내버릴 수 있는 거다.

       

       완벽하지 않은가?

       

       물론 본국에 알려지면, 그게 무슨 개소리냐며 당장 불령선인들을 다 잡으라며 뺨따귀라도 후려칠 이론이지만, 러시아는 우방국이란 판단 아래에 무타구치 렌야는 그렇게 결정했다.

       

       그래서 무타구치 렌야는 북만주에 주둔한 아시아 기마사단 측에 따로 연락을 넣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전에 봤던 조선인이 나타난 것이 아닌가.

       

       

       “거. 우리 어디서 보지 않았나?”

       

       

       그래. 그 홍 뭐시기인가하는 조선인.

       

       무타구치 렌야는 감히 이 자리에 같은 대국의 장군인 운게른이나 세묘노프가 없다는 사실에 절규했다.

       

       절대로 홍범도에게 들키거나 쫄아서가 아니었다.

       

       무타구치 렌야는 엘리트답게 완벽한 연기로 홍범도를 속이기로 했다.

       

       

       “어허. 그 무슨 소리. 대일본제국의 만철군 소속 대좌 이 무타구치 렌야가 조선인을 알겠나?”

       “아니면 말지. 화내고 있나. 그런데 조선인을 넘기고 싶다니 그 무슨 소리지?”

       

       

       홍범도로서는 나쁠 건 전혀 없기는 했다.

       

       결국 아시아 기마사단에 있는 것 자체가 이곳에서 힘을 길러 군대를 키울 생각이었으니까.

       

       당연히 그 과정에서 조선인들이 넘어오면 다 받는 것이야 좋은 문제인데.

       

       이걸 일본 군이?

       

       이거 혹시 조선인인 척하는 일본 군을 들이미는 거 아닌가?

       

       잠입시켜서 아시아 기마사단 내부에서 러시아를 염탐할 셈이라든가.

       

       

       “말 그대로의 의미지. 남만주 내에서 소요사태를 일으키는 조선인들이 많아서 황국의 우방국인 러시아에 넘기겠다는 소리지.”

       

       

       그러니까 그 말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무리 우방국이라 해도 식민지인을 그대로 넘겨 버린다고?

       

       

       “아니, 아니. 보통 그렇게 넘긴단 말인가?”

       “좀 한 번에 알아먹지. 좋게 좋게 말할 때 알아먹지. 이래서 조선인들은 쯧쯧.”

       

       

       무타구치 렌야는 뜻대로 되지 않아 혀를 찼다.

       

       조선 놈들은 왜 이리 의심이 많은지 모르겠다.

       

       그리고. 그제야 홍범도도 이해가 갔다.

       

       

       ‘그렇군. 이놈 이거. 조선인들이 남만주에서 훼방 놓는 걸. 본국에 들키면 관리를 어떻게 하냐고 한 소리 들으니 이러는 거구만.’

       

       

       한마디로 징계받기 싫어서 이러는 거란 소리.

       

       확실히 지금으로서는 저렇게 알아서 조선인을 보내주면 좋겠지만. 상관인 운게른이 돌아와야 뭐라도 시도해볼 것이 아닌가.

       

       당초 홍범도가 아시아 기마사단에 들어온 것은 물자 부족으로 대일항쟁이 불가능해지니 돈도 벌고 세력도 키워 후일을 도모할 셈으로 들어온 것이지만. 이렇게 일이 잘 풀릴 줄은 몰랐다.

       

       

       ‘잠깐. 이거 잘만 하면.’

       

       

       이 멍청해 보이는 이론으로 무장한 왜놈에게서 뜯어낼 건 뜯어낼 수 있지 않을까?

       

       

       “뭐 좋지. 그런데 한 가지 부탁해도 되나? 그럼 내 입 꾹~ 다물고 남만주에서 소요 사태를 일으키는 조선인들을 데려갈 수 있는데.”

       “음?”

       “실은 아직 러시아 극동군에는 무기가 구형 밖에 없네. 러시아 본국은 지금 유럽 쪽 군대에 집중하느라 우리 쪽은 나중에나 올 거 같은데. 그때까지 중국 마적들과의 싸움에서 피해가 클 거 아닌가.”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홍범도가 보기에 아시아 기마사단은 최강이었다.

       

       수천의 군대가 중국 군벌 장쭤린의 수만 군대를 복날 개 잡듯 두들겨 패고 북만주를 바로 러시아령으로 삼지 않았나.

       

       다만 지금의 아시아 기마사단은 주력이 볼셰비키 잡겠다고 유럽 쪽으로 빠져 있었다.

       

       자연스럽게 유럽출신 기마사단 병력은 그 수가 소수고 주로 무장이 그리 좋지 않은 아시아계만 남아 있다.

       

       그러니 말이 안 되는 건 아니다.

       

       

       “오호라. 황국의 신식 총기를 받고 싶다 그거군. 뭐 좋지. 어차피 자네는 불령선인인지 뭐시기가 아니라 러시아에 들어간 거 같으니. 그 정도야 뭐.”

       

       

       진짜 바보인가.

       

       혹시나 해서 떠봤는데, 이런 식으로 나올 줄이야.

       

       그렇다면 잘되었다.

       

       당장 보급될 극동군의 무기는 적은 마당에 이렇게 일본의 무기를 받아 낸다면야 편하게 무장할 수 있는 거 아닌가.

       

       그렇게 홍범도는 무타구치 렌야로부터 일본산 무기를 굉장히 많이 얻었다.

       

       

       * * *

       

       

       중화민국 호법 정부.

       

       

       중화민국은 소련이 존재하지 않게 되면서 아나스타샤가 던진 스노우볼에 똑같이 휘말리게 되었다.

       

       그래. 돤치루이가 독재하는 북양정부에 대항하는 호법정부는 난감한 상황이 된 것이다.

       

       먼저 실제 역사에서는 소련과 접촉해 중국 국민당을 적극적으로 개조해가면서 소련의 지원을 받아 북벌도 진행하게 되지만, 그런 것이 사라진 이 역사에서는 반대로 세력을 크게 키우기란 어려웠다.

       

       중국 공산당도 창당이 되기는 했지만, 당연히 소련. 코민테른이 존재하지 않는 탓에 공산당의 영향력은 국민당 내에서 가장 미약했다.

       

       물론, 시기가 조금씩 늦추어졌을 뿐.

       

       소련의 지원과 공산당이 약화된 것 외에 실제 역사와 비슷하게 흘러 갔다.

       

       이 무렵에는 쑨원은 민주주의를 내세우며 천중밍 같은 연성자치론을 주장하는 군벌들과 격렬하게 싸웠다.

       

       물론 일본과 러시아가 만주를 점거하고 장쭤린을 쫓아내면서 일단은 단합하는 쪽으로 길을 모았으나, 이때랍시고 북벌과 삼민주의를 내세우는 쑨원은 군벌들에게는 별로 달갑지 않은 존재였다.

       

       쑨원의 세력은 실제 역사보다 훨씬 더 어려운 상황에서 생과 사를 함께 넘나들면서 겨우 군벌들과의 합작을 이루어 낸 국민당과 힘이 미약해 쑨원을 지지하는 공산당 세력, 그리고 그 밑의 오합지졸 군대일 뿐이다.

       

       무엇보다도 실제 역사와 달리 여기서 거론된 북벌의 적은 단순히 북양정부가 아니라 일본과 러시아가 될 수도 있는 일이었으니까.

       

       군벌들은 쑨원의 허무맹랑한 삼민주의에 동참해서 다 내버리기 싫었다.

       

       그러나.

       

       쑨원은 일단 중화민국 호법정부의 총통이었다.

       

       그의 아래에서 중화의 미래는 의논해야만 했다.

       

       

       “일본과 러시아가 서로 만주에 주둔했습니다. 그럼 이제 우리 국민당은 어떻게 하는 게 좋겠습니까?”

       “장쭤린 이 멍청한 작자가 기어이 만주를 내주다니. 진작에 그놈을 잡아야 했는데. 돤치루이 그놈도 일본과 작당했는지, 별 말이 없더군.”

       “일본과 러시아가 동맹인 것은 확실합니까?”

       “동맹은 아니더라도, 만주의 분위기로 보아 적어도 만주 부분에 대해서는 협력하는 것 같습니다.”

       

       

       늘 그렇듯 혼란스러운 회의.

       

       이제는 이것이 일상이었다.

       

       호법정부는 제 길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안 그래도 최근에 왕징웨이를 일본에 보내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며 더 악랄하게 나가면서 일본을 자극했다.

       

       그럼 아군을 한 명이라도 만들어야 하는데.

       

       이때 나선 것이 원 역사보다 험난한 고비를 넘겨 오며 쑨원을 호위한 장제스였다.

       

       

       “제가 러시아합중국으로 가겠습니다.”

       “자네가?”

       “예. 제가 가서 러시아 차리나의 지원을 받아 내겠습니다.”

       

       

       러시아의 지원만 받게 된다면야 북벌을 해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당근을 좀 줘야겠지만, 일본과의 관계가 어긋난 지금은 군사대국인 러시아를 아군으로 둬야만 한다.

       

       비록 일본과 친하다고 하지만 러일전쟁 등으로 러시아에게 일본은 그리 좋은 관계는 아닐 터다.

       

       

       “그렇다고 빼앗긴 만주를 돌려받을 수는 없을 것이네. 더군다나. 성녀라든지. 합중국이라든지 포장은 잘했지만, 결국 러시아의 여제도 제국주의자에 지나지 않네. 우리갸 약한 걸 좋아하면 좋아하지 지원할 인간은 아닐 거야.”

       

       

       쑨원은 불편한 심기를 내비추면서 고개를 저었다.

       

       

       “북만주를 용인해 준다는 조건으로 우리를 지원해 달라고 하면. 적어도 돤치루이가 아닌 저희를 지지하지 않겠습니까.”

       “권토중래라 하나 그런 것 자체가 우리의 대의가 어긋나는 것일세. 그런 타협을 해, 지금의 북양정부를 무너트린다 한들 뭐가 되겠나?”

       

       

       결국 결론은 그 무엇도 인정하지 않는다.

       

       오로지 지금 국민당의 힘으로 북벌을 완료하고 돤치루이를 몰아낸다.

       

       쑨원은 그런 생각이었다,

       

       그야말로 허무맹랑한 몽상가나 다름없는 행위였다.

       

       현실을 조금도 보지 못하고 있으니, 장제스도 답답할 뿐이었다.

       

       그리고 이 수상한 기류를 눈치챈 천중밍은 다른 생각을 품었다.

       

       

       ‘이거 잘하면?’

       

       

       이거 잘하면 북벌을 막을 수 있지 않을까.

       

       아니, 애초에 언제든 같은 뜻을 품은 이들과 함께 쑨원을 쳐낼 수 있지만. 쑨원이 거부한 러시아와의 화친을 이룬다면?

       

       그렇게 러시아의 지원을 받아 낸 다음 연성자치론을 내세우면 어떨까?

       

       돤치루이가 이미 일본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있다고 들었다.

       

       러시아마저 등에 업으면 정말 천중밍이 설 자리는 어디에도 없어지고 만다.

       

       천중밍은 쑨원과의 관계를 틀어 버리기 전에 직접 예카테린부르크로 가기로 했다.

       

       그 전에 이 임시총통 자리에 머무르고 있는 인간을 설득해야겠지.

       

       다른 의미로 설득해야 한다.

       

       

       “총통 각하. 제가 가겠습니다.”

       “자네가? 똑같이 북만주를-”

       

       

       그럴 리가.

       

       장제스와 똑같이 갈 생각은 없다.

       

       

       “그게 아니라 당장에 만주 문제는 꺼내지 않고 지원만 요청하는 겁니다. 러시아의 여제는 독재와 권위로 점철된 볼셰비키를 무너뜨린 영웅. 바로 밑에 중국이 돤치루이의 아래에 신음하는데 돕지 않겠습니까? 무엇보다도 이건 열강으로서 한 풀 꺾인 러시아로서는 다시 중국에 영향력을 끼칠 좋은 기회라 여길지도 모릅니다.”

       

       

       몽상가가 듣기 좋아할 만한 말들.

       

       쑨원도 듣고 보니 일리가 있었다.

       

       만주를 멋대로 점거한 건 절대 인정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인정하지 않는 선에서 러시아로부터 얻어낼 것을 얻어낼 수 있다면?

       

       말장난에 불과하지만 쑨원에게는 굉장히 중요한 문제였다.

       

       중국의 땅을 팔아먹지 않으면서 뜯어낼 방법.

       

       러시아의 군대를 빌어 적을 토벌하지 않고 어디까지나 무기를 지원받아 낼 절호의 방법.

       

       

       “옳거니. 일리가 있군. 직접 가겠다고?”

       “그렇게 해야 저희도 북벌에서 피를 덜 흘릴 것이 아닙니까.”

       “좋아. 믿고 맡기겠네.”

       

       

       비록 연성자치론으로 마찰은 좀 있었지만, 최근에 비위 좀 맞춰줬더니 좋다고 하는 거 봐라.

       

       이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이 쑨원이란 인간은 방심하고 있었다.

       

       잘만 하면 정말 연성자치론을 이루어 낼 수 있다는 상상의 나래를 펼치면서. 천중밍의 러시아행이 결정되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이번 편은 우리의 아나스타샤가 나오지 않았지만, 후일 러시아의 아시아 전략에 있어서 이쪽 시점도 나와야 한다고 판단하여. 이번화는 만철과 중국을 다뤘습니다.

    최근에는 진작 플러스 박을까 고민이 되고 있습니다만. 역시 양쪽에서 성장세가 있다보니. 좀 고민이 많네요.

    선작, 추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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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ast Princess of the Bear Kingdom

I Became the Last Princess of the Bear Kingdom

Status: Ongoing Author:
I became a Russian princess destined to die in a revolu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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