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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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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선미에는 불의의 사고를 대비하여 구명정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열쇠는 1등 항해사 ‘에반’에게 있으며 그를 만나기 위해서는 갑판으로 나가는 동안 초록색 타일만을 밟아야 합니다.

       

        13. 12번 항목은 거짓입니다. 에리즈 호에 초록색 타일은 없으며 ‘붉은색’ 타일을 따라가야지만 에반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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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제대로 가고 있는 거 맞아?”

        “그렇다니까. 다른 관계자에게 들었어.”

       

        두 명의 지원자가 붉은색 타일을 밟으며 복도를 걷고 있었다.

        한 줄로 나란히 선 그들은 구명정의 열쇠를 찾기 위해 이동 중이었다.

       

        “초록색은 에반이 아니라 그가 몰래 배에 실었던 정부(情婦)에게 가는 거야. 일단 마주치면 오감을 마비시키는 비명을 지르니 조심해야 돼.”

        “기껏해야 환영 아냐? 난 미라쥬 학파 놈들도 여럿 쓰러뜨린 적 있는데.”

        “뭘 모르는 군 이건 마탑이 만들어낸 환영이야. 23층의 소유권을 지닌 우리 플루비아는 단순히 관리를 맡고 있을 뿐이지.”

        “그렇구만.”

       

        선두로 가던 남자는 천장에 달린 깜빡이는 조명을 주시하더니, 태연하게 다시 걸었다.

        지켜보고 있던 것을 눈치챘나?

        클로에는 빅터 세르비아의 평가를 상향조정했다.

       

        눈치가 빠른 것은 가산점을 주기에 충분한 요소다.

        마족과의 전투는 단순히 마법의 위계가 높다고 해서 잘 하는 것이 아니니까.

        허나 모든 걸 계획대로 잘 시행했더라도 변수에 대처하지 못하면 떨어질 수도 있는 게 바로 이번 테스트였다.

        플루비아의 마법사들에게도 이변이 나타났다.

       

        “어쨌거나 절대 초록색만은 밟지 않도록 해. 한 번 표적으로 찍히면 위험하니까.”

        “잠깐, 저기 누가 있는데?”

        “다른 경쟁자군. 아무래도 우리처럼 구명정을 얻으려는 것 같은데 그 전에 선수를 치자.”

        “앗, 도망간다!”

       

        얼굴을 마주치자마자 반대편으로 사라져 버리는 남녀.

        뒤따라 가려던 두 사람은 찢어지는 비명소리에 걸음을 멈추었다.

        ‘목매달린 항해사의 정부’로 악명 높은 환영이 출현하는 첫 번째 징조였다.

       

        녀석들이 타일을 잘못 밟았다면 그냥 숨죽이고 정부의 환영이 지나갈 때까지 기다리면 될 테지만 비명은 점점 가까워져만 갔다.

       

        “젠장, 우리 쪽이다!”

        “어째서?”

        “너 뭐 잘못 밟은 거 아니야?”

        “무슨 소리야! 나는 지금도…… 어?”

       

        자신의 눈을 비비던 남자는 이내 깨달았다.

        초록색과 붉은색, 두 가지로 보여야 할 타일의 색이 전혀 구분되지 않고 있음을.

       

       

       

        *

       

        “자, 다음은 어디야?”

        “어디 보자…… 저 모퉁이 돌아서 계단 위쪽이요.”

       

        나는 노트로 다른 마법사들의 위치를 확인해 프리나에게 전달했다.

        단순히 구명정이 있는 배의 후미로 가는 것은 아니고, 먼저 다른 두 사람과 합류할 수 있는 루트였다.

       

        위치노트로 다른 마법사들의 위치를 알려주며 프리나의 장단에 어울렸다.

        마음 같아서는 그녀를 말리고 싶지만 마법제 때도 그렇고, 남의 말에 그리 귀 기울이는 성격이 아니었다.

        별 거 아닌 걸로도 ‘학파 규칙’이니 뭐니 운운하는데 실제로 그런 게 있기나 한지 의문이었다.

        다른 학파에도 문하생이 지켜야 할 규칙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해주학파는 유독 특이한 것들이 많았다.

       

        “손 좀 잠시 놓으면 안될까요. 저 창 던지는 게 불편한데.”

        “아, 안 돼, 둘이서 통로를 걸을 때는 무조건 손을 잡아야 하는 게 학파 규칙이야.” 

        “그럼 루퍼트 님이랑 있을 때도 이러고 다녀야 해요?”

        “그, 글쎄? 너 그리고 달릴 때 보폭 좀 맞춰. 나, 난 체력이 약하단 말야.”

       

        헐렁한 로브를 펄럭이며 땀을 식히자 희끗한 살덩이가 조명에 비친다.

        일단 저기도 낙인은 없군.

        벽에 기댄 채 잠시 숨을 돌리던 그녀는 곧 연결되어 있는 나의 손에 이끌려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나는 창끝에 걸리는 기감을 확인하며 말했다.

       

        “빨리 안 다니면 따라잡혀요.”

        “누구한테?”

       

        그야 마족이지.

        본래 에리즈 호에 돌아다녀야 할 유령이 마족으로 바뀌었기에 규칙 따위 무시하며 이동하는 우리에게도 꽤 많은 숫자가 꼬여 있었다.

        으스스한 곳에서 사람을 놀래키는 유령과 살의를 가지고 접근하는 마족.

        어느 쪽이 더 위험한지는 말할 필요도 없다.

       

        특히 조금 전 마주칠 뻔했던 귀족 영애는 태양의 적 휘하에 있는 흡혈귀 중에서도 극도로 위험한 축에 속하는 부류였다.

        밤의 귀족 ‘노스페라투’. 삼십 년 전 교국의 두 성녀 중 하나를 살해한 게 바로 저놈들일 거다.

        환영인 만큼 본래 전투력을 다 구현하진 못했겠으나 저 정도까지 조사하고 넣었다는 게 대단했다.

       

        나는 힘들어하는 프리나를 슬며시 들어올리며 물었다.

       

        “이동할 때 선배를 안고 가면 안 된다는 규칙은 없죠?”

        “무, 뭐?”

        “편하게 갤러리라도 하고 있어요. 일단 세라와 아르투르쪽으로 합류한 뒤에 다른 녀석들을 사냥하든 말든 할 테니까.”

       

        마녀의 발병을 늦추는 마지막 방법은 당연하게도 저주를 최대한 사용하지 않는 것.

        적당히 즐겼으니 이제 본래 목적대로 테스트 통과에 집중해야 할 때였다.

        나는 프리나를 옆구리에 짐짝처럼 끼운 채 속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꺅, 자, 잠깐! 너 미쳤어!? 이거 놔……!”

       

        자신의 허리를 감싸안은 행동이 갑작스러웠는지 허공에 뜬 다리가 파닥거렸다.

        선배로서의 위엄이 심히 손상될만한 행위이긴 하나 어쩔 수 없었다.

        아랫배를 짓누른 손을 떼어내려는 프리나의 저항을 무시한 채 어두운 복도를 내달렸다.

        중간에 마주치는 망자의 무리를 향해서는 망설임 없이 창을 던졌다.

       

        “읏, 흐으, 흣, 하아…….”

        “괜찮아요 선배?”

        “이거 놔아! 거기, 만지면…… 흐윽!”

        “흔들리는 중에 위치노트 보면 멀미 나니까 그거 집어넣으세요.”

        “그게 아니라, 이, 이 바보가아…….”

       

        손등을 꼬집거나 팔뚝을 긁어대는 귀여운 반항도 시간이 지나자 사라졌다.

        마침내 세라와 아르투르의 객실이 있는 층에 도착할 때쯤, 프리나는 거의 죽은 듯 축 늘어져 있었다.

        조심스레 손에 힘을 풀자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아 몽롱한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콧가를 맴돌던 마녀의 체향은 어느덧 상당히 희석되어 달콤한 땀냄새 정도로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너, 너 방금 그거 뭐야. 설마 나한테 간섭기 썼어?”

        “간섭기요? 아무 짓도 안 했어요.”

        “그럴 리가…… 이, 일단 일으켜세워 봐. 너 때문에 다리에 힘 풀렸잖아.”

        “자요. 손 주세요.”

       

        나는 로브 아래의 골반을 받치며 그녀가 숨을 고르는 것을 기다렸다.

        선배가 넘어졌을 때는 반드시 이런 식으로 딱 붙어서 돕는 것 역시 학파 규칙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좀 특이한 규칙이 아닌가 싶었으나 주위에 진위여부를 물어볼 사람도 없었다.

        한참 뒤 입을 우물거리며 떨어진 프리나는 다시금 기세등등함을 되찾았다.

       

        “다, 다른 애들은 필요 없다고 말했잖아. 테스트는 너랑 나 둘만 통과하면 된다고.”

        “그래도 저 말고 친구는 많으면 좋잖아요.”

        “……너, 너는 내 친구 아니야.”

        “그런 말을 들으니 슬프네요. 어쨌거나 갑시다. 슬슬 다른 마법사들도 활동을 시작한 것 같으니까.”

       

        남은 항해 일수는 <62,536>으로 줄어든 상태였다.

        통행 금지 시간도 끝났으니 세라와 아르투르가 밖으로 나오기 전에 합류해야 했다.

       

        다행히 두 사람이 머무는 방은 바로 근처였다.

        객실 문 앞에서 나는 프리나에게 다시 한 번 신신당부했다.

       

        “다시 만나면 제대로 인사해야 돼요? 초면에 존대니 뭐니 이상한 말은 하지 말고요.”

        “내, 내가 무슨 사회 부적응자인줄 알아? 그, 그땐 당황해서…….”

        “알고 있으니 다행이네요. 그럼 엽니다?”

        “자, 잠깐! 아직 마음의 준비가……!”

       

        설마 둘이 안에서 민망한 짓이라도 하고 있진 않겠지.

        노크 후 문고리를 돌리자 달칵! 소리를 내며 문이 열렸다.

        여느 객실과 다름없는 평범한 내부를 확인한 나는 곧장 두 사람을 찾았다.

       

        그러나 안에서 기다리고 있던 사람은 뜻밖의 인물이었다.

       

        “어서 와. 첫 번째 합격자가 된 걸 축하해.”

       

       

       

        *

       

        “뒤돌아 나가도 소용 없어, 네가 문에 손을 올린 순간부터 기존에 있던 공간과는 분리되었으니까. 차원 유리 과목 수강한 적 없지?”

        “프리나 선배는요?”

        “방 안에 있던 다른 일행과 서로 어색한 자기소개 중이지.”

       

        클로에 스테판 교수.

        백의와 비슷한 새하얀 로브에 안경을 걸친 여인은 앉으라며 테이블 맞은편의 의자를 권했다.

       

        “너를 따로 부른 이유는 두 가지. 하나는 사전 테스트에서 유일하게 나의 마법을 견뎠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가만 두면 배를 부숴버릴 것 같아서야.”

        “그래서 도중에 합격이라고요?”

        “마족 전담기구의 일원으로 쓸만한 지 아닌지는 이걸로 다 확인했거든. 의장의 추천도 있고 하니 굳이 플루비아가 청구할 수리비만 늘릴 이유가 없지.”

       

        배 곳곳을 비추는 수정구를 두드리며 클로에가 말했다.

        과연, 흡혈귀와 마녀, 망자들을 상대하는 모습을 보고 더 이상 시험이 무의미함을 깨달았나 보다.

        허나 내 목적은 프리나가 입단 테스트에 통과하도록 돕는 것이지 혼자 합격하는 것이 아니었다.

       

        “별로 기뻐하는 기색이 아니네? 내 수업을 들었으면 알겠지만 나는 평가가 매우 까다로운 사람이야.”

        “사실 아직 입단을 고민 중이어서요. 이런 특혜까지 받을 자격이 있을 지 스스로에게 의문이 많습니다.”

       

        나는 극채색에 큰 도움이 될 수 없을 것이다.

        나와 동료들의 전문분야는 어디까지나 용 사냥이었기에 다른 마족들을 상대하기에는 비효율적인 점이 많다.

        어디까지나 프리나가 친구를 만들고 마녀의 병세를 치료하는 것을 지켜볼 생각이었는데…….

        클로에 교수는 미적지근한 반응에도 개의치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해. 마법사인 이상 마족 퇴치같은 이상보단 실리를 원하는 이들이 많은 게 사실이니까. 나를 포함해서 말이야.”

        “다른 보수를 원한단 뜻은 아니었습니다.”

        “딱히 준다고도 하지 않았어. 내가 할 수 있는 건 어디까지나 공적인 제안이야. 쭉 보니까 위치노트에서 눈을 떼지 못하던데 이런 건 어때?”

       

        그녀가 내민 것은 한 권의 노트.

        겉으로 보기에는 일반적인 위치노트와 전혀 다를 바 없었지만 역시 신호가 잡히지 않았다.

       

        “앞으로 극채색의 단원들에게 보급 예정인 마도구야. 기존의 노트와 모든 게 똑같지만 한 가지 다른 점이 있어.”

        “그게 뭡니까?”

       

        혹시 연구부에서 갤러리를 삭제하는데 성공한 건가?

        허나 클로에에게 듣게 된 노트의 기능은 내 예상과는 전혀 달랐다.

       

        “바로 위치노트 사용자의 좌표를 임의의 값으로 변경하는 거지. 추적으로부터 자유롭고 갤러리에서 정지당해도 바로 새 아이디를 만들어 활동할 수 있어.”

        “…….”

        “내가 독자적으로 만들어낸 성과라고. 이것만 있으면 정보부보다 뛰어난 조직력과 정보력을 갖출 수 있을 게 분명해.”

        “…….”

        “너나 일행이나 갤러리 활동을 꽤 즐기는 것 같던데 원한다면 작은 일탈 정도는 허가해줄 수…… 왜 그래?”

       

        VPN이라고?

        이건 존재해서는 안 될 물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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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Master of the Magic Tower in Another World

I Became the Master of the Magic Tower in Another World

이세계 마탑의 갤주가 되었다
Score 3.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10 years since transfer to another world

What I do inside the Ivory Tower of Truth isn’t much different from what I did on Ear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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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you missed today’s attendance for the ‘Principles and Understanding of Dimensional Glass’ course, you’ll get a penalty] If you want to kill the professor who suddenly changed the classroom with a phase transition 2 minutes before the start of class, go ahead. Haha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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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t why does everyone think I’m the Tower Ma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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