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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5

        

       의식을 시작하겠다 선언한 진성은 텐트 안에 얼기설기 나무를 쌓아 만든 제단에 올라갔다.

         

       콰드득.

         

       진성이 올라가자 그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나무가 파열음을 내며 부서졌고, 대충 쌓아 올린 나무토막들은 와르르 무너져내리며 바닥에 흩어졌다. 하지만 진성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곳에 단상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 자리에 우뚝 서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용병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곤 축문이라도 읽는 것처럼 품속에서 대충 무두질된 가죽을 꺼내 읽기 시작하였는데, 이상한 것은 무두질에는 핏방울만이 어지러이 널려있었을 뿐 글자는 눈 씻고 보아도 찾아볼 수 없었다는 것이다. 대신에 코를 찌를듯한 노린내와 피의 향기만이 날 뿐이었다.

         

       “고하노니, 숲의 왕. 나무의 가지 사이에 흐르는 바람의 주인이요, 흔들리는 잎새의 모든 정당한 소유권을 가진 자. 위대한 대지 속에서 기거하시는 고대의 지주이며 마땅히 땅 위에 있는 모든 것을 손아귀에 넣고 계신 분의 이름으로 의식을 시작하니 참으로 거룩하고 뜻이 깊은바 마땅히 칭송의 말을 외치라.”

         

       진성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용병들은 사전에 들었던 대로 바닥에 부복하며 소리쳤다.

         

       “숲의 왕! 산의 주인! 그 권세는 영원할 것입니다!”

       “숲의 왕! 산의 주인! 그 권세는 영원할 것입니다!”

       “숲의 왕! 산의 주인! 그 권세는 영원할 것입니다!”

         

       진성은 그들의 외침이 그치자 다시 입을 열었다.

         

       “사악한 자. 잿빛의 땅에서 건너온 모래의 냄새가 나는 괴물. 피를 빨아먹는 괴물보다도 더 끔찍하고 사람 사이에 몸을 숨겨 그 이득을 취하는 것보다도 더 악독한 괴물이 있었느니. 그 사악함에 이르기를 속삭이는 자, 잘못된 길로 이끄는 자, 꿀에 절여 죽이는 자, 부풀려진 오만의 괴물. 위스퍼링이라 하였느니.”

         

       진성은 그렇게 말하다가 왼손을 들어 올렸다.

         

       “보라! 손톱으로 사람을 미치게 하는 괴물의 공포를! 마땅히 고통으로, 핏자국으로 그 괴물을 기억하고 또 경계해야 하느니라!”

         

       뿌드득!

         

       그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왼손 약지의 손톱을 뽑아 자신이 밟고 있는 제단을 향해 떨어뜨렸다. 진성의 손에서는 손톱이 뽑히면서 나온 피가 바닥에 뚝뚝 떨어지고 있었으나, 그는 그것이 아무렇지도 않은 듯 용병들을 쳐다보았다.

         

       용병들은 진성이 보인 행동에 압박감이라도 느낀 것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스스로 손톱을 뽑아서 하는 의식을 눈앞에서 목도하고 그 구성원이 되어있다는 사실 때문인지 아까보다도 더 큰 소리로 외쳤다.

         

       “숲의 왕! 산의 주인! 가련한 권속을 구원해주소서!”

       “숲의 왕! 산의 주인! 가련한 권속을 구원해주소서!”

       “숲의 왕! 산의 주인! 가련한 권속을 구원해주소서!”

         

       진성은 그들의 외침 속에서 계속해서 의식을 진행했다.

       이어지는 의식은 마치 이야기꾼이 옛날이야기를 하듯, 숲의 현자가 어린아이들을 모아놓고 전설을 말해주듯 그렇게 이어졌다.

         

       “숲의 왕! 위대한 존재! 마땅히 땅 위에 나는 모든 것을 손아귀에 쥐고 태양 빛에 자라나는 모든 것을 재산으로 가진 이의 땅 위에 우리는 살고 있었느니라.”

       “숲의 왕! 산의 주인!”

       “숲의 왕의 은혜란 깊고 넓어 떠돌던 이들이 굶주리지 않게 해주었고, 제 몸뚱어리조차 가리지 못하는 이들에게 잎새와 줄기를 내려주어 그 몸을 가릴 수 있게 해주었나니. 그 은혜로움은 짐승을 인간으로 만든 것과 같으니 어찌 감복하고 경외하지 않을 수 있으랴!”

       “그 은혜로움은 넓은 하늘과 같아 그 끝을 알아볼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질투한 존재가 있었으니, 저 멀리 이교도의 땅에서 온 괴물이 바로 그것이라! 사악한 마법을 사용하고 모습을 바꾸며, 끝없이 인간을 괴롭히는 괴물! 불에 타면 손톱을 던져 사람을 미치게 하고, 칼로 두 번 가르면 되살아나는 그 사악한 존재의 자손이 당도하였다!”

       “위대한 존재여! 우리를 구원해주소서!”

         

       뿌드득!

         

       진성은 다시 한번 손톱을 뽑았다.

       이번에는 소지였다.

         

       “위스퍼링! 괴물의 사생아이며 저주를 받아 태어난 섭리를 벗어난 악물(惡物)아! 귀에 파고들어 달콤한 말을 속삭이고 사람을 잘못된 길로 인도하는 괴물아! 이 괴물의 꾀에 속아 수많은 이가 겪지 않아도 될 파멸을 겪었고, 뇌가 파먹히는 최후를 맞이하였다! 하여 숲의 현자가 숲의 왕께 간절히 청하기를, 찾아내기 힘든 사악한 괴물이 있으니 부디 이 미천한 권속들에게 평화를 내려달라 하였느니!”

       “숲의 왕! 자비의 용!”

       “숲의 왕께서 이르기를, 너 인간아. 나의 권속아! 여기 풀과 나무를 주노니 여기에 마땅히 행해야 할 예절과 함께 태워 연기를 만들어라. 그리하면 연기가 괴물을 내쫓고 죽여 너희에게 평온을 가져오리라.”

         

       진성은 그 말과 함께 제단에서 내려왔다.

         

       뿌드득.

         

       그가 내려오는 과정에서 다시 한번 제단이 휘청이며 나무토막이 와르르 쏟아졌지만, 그는 신경 쓰지 않고 내려와 제단 옆에 놓여있던 풀을 간신히 형체만 유지하고 있는 제단의 위에 얹었다.

         

       그가 올린 풀은 허브라고 불리는 것들이었다.

         

       “하여 현자는 마땅히 행해야 할 예와 함께 받은 풀을 태우니, 불꽃이 붙었음에도 번지지 아니하고 오직 자욱한 연기를 뿜어내었다. 그 향은 감미로워 사람에게는 그 어떠한 해도 끼치지 아니하였지만, 오직 귀 안에 숨어있는 괴물에게는 독이 되었도다! 오오! 숲의 왕이여, 위대한 용이여. 마땅히 경배를 받으소서!”

       “경배를 받으소서!”

       “내려주신 과실로 술을 마셔 기쁨을 바치고, 내려주신 곡물로 빵을 만들어 살을 찌워 의무를 행할 것인즉, 위대한 용이여! 뿌리부터 꼭대기의 마지막 남은 과실까지 그 모든 것의 마땅한 주인이신 분이여! 우리를 가호하소서!”

         

       진성은 마지막 말과 함께 불붙인 성냥을 제단 위에 던졌다.

         

       화르륵!

         

       제단은 말린 나무토막과 방금 막 딴 허브밖에 없었지만 마치 기름이라도 먹인 것처럼 순식간에 불이 붙어 활활 타올랐으며, 진성이 제단 위에 떨어뜨렸던 손톱은 제가 살아있기라도 한 것처럼 스스로 움직이며 불이 붙지 않은 곳으로 움직이며 골고루 불을 붙였다.

       그렇게 제단은 순식간에 불길에 휩싸였다. 하지만 불길에 휩싸이기도 잠시, 마치 스스로 사그라들기라도 하는 듯 불꽃은 순식간에 사라졌으며, 대신에 숯 더미처럼 변해버린 허브와 장작에서는 연막탄이라도 피운 것처럼 엄청난 양의 연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와우!”

         

       용병 중 한 명이 깜짝 놀라며 저도 모르게 허리춤에 매단 방독면에 손을 가져갈 정도로 자욱한 연기였다. 하지만 연기가 그렇게 자욱한데도 그 누구도 호흡에 곤란을 느끼지 않았고, 오히려 향긋한 허브 냄새가 폐부를 훑고 지나가며 청량감마저 들게 했다.

         

       연기는 텐트를 가득 메우고 모든 사람을 훑더니, 이윽고 텐트에 난 틈을 통해 바깥으로 날아가 사방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마치 연기가 여러 갈래의 뱀이 되어 사방으로 흩어지는 모습과 같았다.

         

       “되었다. 오늘 밤 그 누구도 이 신사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 없으리라.”

         

         

         

        * * *

         

         

         

       옛날 유럽에서는 위스퍼링이라는 괴물이 있었다고 한다.

       중동 지역에서 나타났던 구울(Ghoul) 이라는 초월종에서 비롯된 이 괴물은 사람 크기와 비슷한 다른 구울과는 다르게 눈에도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몸이 작았다고 하며, 요정처럼 날개가 달려서 하늘을 날아다닐 줄 알았다고 한다.

       위스퍼링은 사악한 이유로 유럽으로 이동해왔고, 그곳에서 사람들에게 끔찍한 짓을 자행했다고 한다.

       이 괴물은 갓 죽은 사람의 따끈따끈한 뇌를 진미로 여겨 수많은 사람을 해쳤다고 하는데, 이 먹이를 구하는 방법이 참으로 간악하였다.

       위스퍼링은 자신의 작은 몸을 이용해 먹이로 삼을 사람의 몸으로 기어들어 갔다고 한다. 그리고 귓구멍을 제 몸으로 틀어막고는 끊임없이 숙주에게 듣기 좋은 말을 속삭였다고 하는데, 그 속삭임을 들은 사람은 아무리 어두침침한 사람이어도 밝은 성격으로 변하고 다시 활발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좋은 말만 들으며 살아가는 사람이 제대로 된 삶을 살아갈 수 있을 리가 없었고, 결국에는 하나같이 비참한 죽음을 맞이했다고 한다. 그렇게 숙주가 죽으면 귓속에 자리 잡고 있던 위스퍼링은 그대로 안쪽까지 기어가 숙주의 뇌를 파먹고 다른 숙주를 찾아 떠나간다고 한다.

         

       유럽에서는 당연하게도 이 끔찍한 괴물의 존재에 몸서리쳤으며, 숲의 왕이라고 불렸던 초월종에게 지혜를 구해 무사히 퇴치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후 구전을 통해 ‘좋은 말’만 듣는 것이 사람의 인생에 있어서 얼마나 끔찍한 일이 되는지에 대한 좋은 본보기가 되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위스퍼링 이야기가 아이들이 잠들기 전에 읽어주는 동화 같은 하잘것없는 존재가 되었을 무렵. 한 주술사가 이 이야기를 토대로 주술 의식을 만들어내었다.

       하지만 이 주술 의식은 널리 알려지지 못했다. 그 주술사는 그 의식을 만들어 낸 이후 그대로 목숨을 잃어버렸고, 전해진 것은 축제의 형태로 변질되어버린 것이다. 게다가 그나마 축제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던 것도 극단적인 미신 타파 운동인 마녀사냥의 불길 속에서 다시 한번 파괴됨에 따라 축제에서는 의식의 원형조차 찾을 수 없게 되어버렸다.

         

       그 때문에 오직 동굴에 새긴 기록만이 남아 시간과 함께 그렇게 묻혀버렸다.

         

       그리고 먼 미래.

       세계 3차 대전이 터지고, 유럽 전역이 전화로 신음하고, 수많은 폭격 때문에 가려져 있던 동굴이 모습을 드러낼 정도로 먼 미래가 되어서야 이 주술은 발견되었다.

         

       그리고 지금, 시간을 초월해서 진성의 손에 의해 재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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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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