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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5

       

       

       

       

       ‘으음, 맛있어.’

       

       실비아는 자신이 좋아하는 사과 맛 젤리를 먹으며 레온과 아르를 바라보았다. 

       

       레온은 시큼한 레몬 맛 젤리를 먹었는지 ‘난 친구 같은 거 없어’라고 말할 것만 같은 표정을 잠깐 지었고, 아르는 달콤한 포도 맛 젤리를 먹고 뀨우 소리를 냈다. 

       

       레온도, 아르도 자신이 가위바위보로 직접 딴 젤리를 한곳에 보물처럼 소중히 모아 두고 있었다. 

       

       물론, 실비아 자신도 그건 마찬가지였다. 

       

       실비아는 자신이 딴 젤리 중 하나를 집어 만지작거렸다.

       

       ‘이렇게 즐겁게 뭔갈 하면서 정신 없이 웃어 본 게 얼마 만인지.’

       

       가위바위보. 

       부족 내에서 아주 어렸을 때 몇 번 해 본 이후로는 가위바위보라는 단어를 들을 일조차 거의 없었다. 

       

       ‘일곱 살 이후로는 거의 수련에만 매진했으니까.’

       

       검술에 천부적인 재능을 보였던 실비아는 어렸을 때부터 또래 아이들과 노는 대신 검을 연마하는 데에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재능 덕에 연습하면 연습하는 대로 실력이 느니 성장하는 재미가 있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힘든 검술 훈련이 안 힘들어지는 건 아니었다. 

       

       ‘게다가 마법에 대한 재능을 발견한 이후로는 무속성 마법까지 병행해 익히느라 죽을 맛이었지.’

       

       아무리 생각해도 검술과 함께 속성 마법까지 파고드는 건 물리적으로 불가능했기에, 검술과 함께 쓸 때 시너지가 나는 무속성 마법 위주로만 연습했던 게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할 정도였다.

       

       -우리 라크 룬 부족은 드래곤의 조력자로서 항상 높은 긍지를 가져야 한다.

       -그중에서도 우리 직계는 대대로 은룡의 조력자로 활약해 왔지. 카르사유 님이 알을 숨기고 소멸하셨을 때까지만 해도 말이다.

       -이제 곧 때가 될 것이야. 실비아, 카르사유 님의 알을 찾아야 해. 어렵다는 걸 안다. 하지만 너밖에 할 수 없는 일이야.

       -그때까지 너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실력을 키워야 해.

       -반드시.

       

       가끔은 검술이고 마법이고 내팽개치고 또래 아이들과 함께 놀고 싶었지만, 그럴 때마다 직계 가족들의 기대가 실비아의 어깨를 짓눌렀다. 

       

       그들을 원망하는 건 아니었다. 

       

       자신에게 검을 가르쳐 준 아버지가 아니었다면, 마법을 가르쳐 준 할아버지가 아니었다면 실비아는 이토록 유례없이 빠르게 성장하지 못했을 테니까. 

       

       그들도 말로만 실비아에게 강해져야 한다고 말한 게 아니라, 실비아가 강해져서 부족의 책임을 걸머질 수 있도록 진심으로 도와 주었으니까. 

       

       ‘근데 아무리 그래도 진짜 아무런 단서도 없이 대륙을 떠돌면서 지금까지 온전히 남아 있을지 알 수도 없는 알을 찾으라고 하는 건 지금 생각해도 좀 너무하긴 했어.’

       

       여튼, 그런 이유로 실비아는 여지껏 누군가와 제대로 놀아 본 적이 거의 없었다. 

       

       대륙을 떠돌며 반쯤 알 찾는 걸 포기하고 빈둥거리던 때도 있었지만, 도저히 마음이 편하지 않아 쉬는 게 쉬는 것 같지도 않았다. 

       

       그런데 레온과 아르를 만나고, 고작 며칠 동안 모든 게 달라졌다. 

       

       지쳤던 마음은 아르의 미소를 보면 녹아 내렸고, 레온도 지내면 지낼수록 괜찮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라도 ‘자격을 가진 자’의 심성이 나빠 이상한 마음을 먹을까 봐 걱정도 했었는데 말이지.’

       

       세상에는 더없이 좋은 운명과 재능을 타고났는데도 그걸 안 좋은 방향으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아주 많다는 걸, 실비아는 대륙을 떠돌아 다니면서 아주 절절히 깨닫고 있었다. 

       

       만약 레온이 자신이 ‘자격을 가진 자’라는 걸 이용해 아르를 깨우고, 아르를 이용해 나쁜 짓을 하고 다니며 자신의 사리사욕만을 위해 사는 그런 사람이었다면….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이지.’

       

       이미 아르가 레온과 사역마 계약을 한 이상, 실비아는 레온이 설사 천하의 때려죽일 놈이라고 하더라도 함부로 그를 죽일 수 없었다.

       

       영혼 계약을 한 상대를 죽일 경우 유일한 은룡의 후손마저 목숨이 위태로워질 테니까. 

       

       그러니 레온이 평범하게 좋은 사람이라는 건 실비아 입장에서 정말 다행인 일이었다. 

       

       ‘아르도 그간 사랑 많이 받고 밝게 잘 자라고 있는 것 같으니.’

       

       이렇게 레온, 아르와 함께 별것 아닌 가위바위보를 하고 조그만 젤리를 따 내며, 아르가 하나 빼기에서 실수로 둘 다 주먹을 낸 걸 보고 배꼽이 빠지게 웃는 모든 시간들이 실비아에게는 더없이 소중하고 행복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노는 동안 지금까지 했던 모든 고생들이, 그간 쌓였던 절망이, 정신적인 압박과 피로가 사르르 녹아 내리는 것 같았다. 

       

       ‘찾은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 건가?’

       

       실비아는 미소를 머금은 채, 어느새 꾸벅꾸벅 졸고 있는 레온과 아르를 바라보았다. 

       

       “뀨우….”

       

       의자에 앉아 있는 아르는 엉덩이를 조금씩 들썩들썩 움직여 레온 쪽에 붙어 앉은 뒤, 살며시 몸을 기울여 레온의 허벅지에 기댔다. 

       

       기분 좋은 듯 쿠션을 톡톡 두드리는 통통한 꼬리.

       그리고 허공을 움켜쥐는 조그만 손.

       살짝 벌어졌다가 침이 나오려고 할 때 스읍, 하고 닫히는 앙증맞은 입.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는데, 레온이 졸다가 살짝 깼는지 실비아를 바라보며 머쓱한 얼굴로 고개를 흔들었다. 

       

       “졸리면 자도 돼요. 전 아직 하나도 안 졸려서.”

       “…그럼 조금만 잘게요. 혹시 무슨 일 있으면 바로 깨워 주세요.”

       “그럴게요.”

       

       레온은 자신에게 기댄 아르에게 손을 뻗어 엉덩이를 톡톡 두드려 주고는, 그대로 아르에게 손을 얹은 채 잠들었다. 

       

       그 뒤로 레온과 아르, 그리고 실비아는 마차 안에서 서로 시간을 두고 번갈아서 조금씩 눈을 붙였고.

       

       “이쯤에서 오늘은 텐트 치고 자야겠네요.”

       “쀼우.”

       

       해가 지자, 마차를 멈춘 그들은 텐트를 치고 잘 준비를 했다. 

       

       “파이어.”

       

       화륵!

       

       주변에서 모아 온 땔감으로 모닥불을 피우고, 마이어 씨가 가져온 숙성시킨 돼지고기를 꼬챙이에 꽂아 불에 노릇노릇 구워서 저녁으로 먹었다. 

       

       “아르야, 뜨거우니 천천히 먹어.”

       “쀼!”

       

       꼬챙이에 꽂은 돼지고기를 받아 든 아르는 휘유, 휘유 소리를 내며 바람을 불어 고기를 식히고는 야무지게 뜯어 먹었다. 

       

       “쀼우!”

       “허허, 후추와 간장을 이용해 며칠 간 재워 놓은 고기라 아마 생으로 구워서 소금 뿌려 먹는 것보다는 훨씬 맛있을 겁니다. 아르가 맘에 들어 하니 다행이군요.”

       “와, 진짜 맛있어요!”

       

       아르는 고기가 정말 마음에 든 듯, 다 먹고 나서도 짧은 혀로 빈 꼬챙이를 핥았다. 

       

       “아이구, 잘 먹네. 허허. 아르야, 한 꼬챙이 더 구워 줄까?”

       “쀼우웃!”

       

       그렇게 아르는 배가 뽈록 튀어나올 때까지 고기를 먹었고, 스스로 무게를 이기지 못했는지 뒤로 벌러덩 누웠다. 

       

       “쀼룩.”

       

       레온은 작게 트림을 하는 아르를 들어 품에 안고 등을 두드려 주었다. 

       

       “뀨우.”

       “아르, 졸려? 들어가서 잘까?”

       “뀨….”

       “레온 씨는 먼저 들어가서 아르 재우세요. 저는 정리하고 들어갈게요.”

       “그럼 너무 죄송한데….”

       “괜찮아요. 정리라고 해 봐야 할 것도 별로 없는데요.”

       “…고마워요, 실비아 씨.”

       

       레온은 실비아에게 꾸벅 목례를 하고, 식곤증이 몰려 오는지 눈을 끔벅이는 아르를 데리고 먼저 텐트로 들어갔다.

       

       마이어 씨와 간단히 뒷정리를 한 실비아는, 모닥불을 끄고 레온네 텐트와 조금 떨어진 작은 간이 텐트에 들어가 잘 준비를 했다.

       

       ‘아르랑 레온 씨는 벌써 잠들었나 보네.’

       

       실컷 먹어 뚠뚠해진 배를 내놓고 자는 아르의 모습을 보고 싶었지만, 레온이 실비아와 같은 텐트를 쓸 순 없다고 못을 박았기에 어쩔 수 없이 떨어져 있어 볼 수 없는 게 조금 아쉬울 따름이었다.

       

       ‘귀여운 숨소리라도 들을까.’

       

       실비아는 청각을 조금 확장한 채, 레온의 텐트 쪽에 귀를 기울였다. 

       

       “으응. 깼어, 아르야?”

       “뀨우.”

       

       숨소리만 들으려던 거였는데, 마침 아르가 잠깐 깬 듯 레온의 작은 말소리가 들렸다.

       

       “불편한 침낭은 오늘까지니까 조금만 참으렴. 내일 중으로 아마 캐머해릴에 도착할 거야. 그러면 여관의 푹신한 침대에서 잘 수 있어.”

       

       그리고, 놀랍게도 다음 순간.

       

       “우응, 푹씬한 침대! 조아…!”

       

       작게 속삭이는 아르의 목소리에 실비아는 입을 떡 벌렸다. 

       

       ‘아니, 이건…. 설마 음성화…?’

       

       유난히 말을 잘 알아듣는다고는 생각했지만, 이렇게 인간의 언어까지 벌써 구사할 수 있을 줄이야. 

       

       ‘…천잰가?’

       

       역시 카르사유 님의 유일한 후손이라고 할 만한 천재성이었다. 

       

        ‘플레임 스피어를 쓸 때부터 범상치 않은 재능이란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실비아는 침을 꿀꺽 삼켰다.

       

       “이럴 줄 알았으면 더 푹신한 침낭을 따로 구해 올 걸 그랬네.”

       

       조금 후회하는 듯한 레온의 목소리.

       

       “으으응, 아냐. 갠차나! 아르는 이러케 레온이 가까이서 꼭 안아 주기만 하면 잠 잘 잘 수 이써!”

       “아르야….”

       

       그리고 아르의 해맑은 목소리와 함께, 이번엔 감격에 젖은 레온의 목소리가 들렸다. 

       

       ‘하아아…. 너무 귀엽다.’

       

       혼자 간이 텐트에서 심장 쪽을 움켜쥔 채, 실비아는 홀로 올라가는 입꼬리를 내리지 못했다.

       

       잠시 후, 레온과 아르는 다시 잠이 들었는지 규칙적인 숨소리를 냈다. 

       

       주변의 공기가 차분하게 가라앉자, 실비아는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내일 중으로 캐머해릴에 도착한다라….’

       

       캐머해릴에 도착하면 레온과 실비아가 함께 맡고 있던 호위 임무는 끝이 난다. 

       

       즉, 실비아가 레온, 아르에게 붙어 있을 수 있는 명분이 소멸된다는 뜻이다. 

       

       ‘이번엔 어떻게 얘기를 해야 잘 얘기했다고 소문이 나려나.’

       

       또 우연인 척 합류하는 건 무리일 테니, 다른 명분이 필요하긴 한 상황.

       

       사실대로 엘프가 어쩌고, 부족의 전통이 저쩌고, 천 년 전 최후의 은룡이 요러쿵 설명해 봐야…. 그걸 그대로 믿고 ‘아, 그런 일이 있었군요! 앞으로도 저희를 잘 지켜주세요!’ 라고 할 리가 없을 테고.

       

       ‘애초에 인간 입장에서 엘프는 그다지 환영 받는 존재가 아니니까.’

       

       괜히 실비아가 지금껏 대륙을 떠돌며 아티팩트를 이용해 외형을 바꾸고 이름도 몇 번이나 바꾼 게 아니었다.

       

       지금처럼 실비아가 원래 외모와 거의 다르지 않게 귀만 인간형으로 바꾸고 이름까지 본명으로 활동하고 있는 건, 아르를 찾는 걸 거의 자포자기한 ‘될 대로 돼라’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으음…. 오늘 밤 내지는 내일 도착하기 전까지 뭔가 그럴듯한 걸 하나 생각해 내긴 해야 하는데….’

       

       잠시 머리를 굴리던 실비아는, 좋은 생각이 쉽사리 떠오르지 않자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검을 챙겼다.

       

       ‘뭐, 일단 지금은 더 이상 아르가 깨지 않도록.’ 

       

       블링크.

       

       ‘이쪽으로 접근할 가능성이 있는 마물부터 정리해 놓고 생각해 볼까.’

       

       실비아의 신형이 순식간에 자취를 감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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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Picked Up a Hatchl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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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츨링을 주웠다
Status: Ongoing Author:
But this guy is just too c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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