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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50

    그렇게 루크와 시에나가 간단히 장을 보고 돌아가는 길.

    루크는 장바구니를 한쪽 팔에 걸친 채, 시에나에게 오늘 쇼핑을 하며 말해주었던 좋은 식재료를 구분하는 방법을 되새겨주고 있었다.

    “…그러니까, 식재료를 고를 땐 오늘 내가 일러준 대로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감자와 같이 보관에 따라 독성을 띄게되는 식물을 구매할 때는 더욱 유념하는 것이 좋아. 중요한 것이니 잊어버리지 말게나. 알겠는가?”

    “아……. 응, 그래. 고마워.”

    사실 표현하기를 ‘간단히’라고 하기는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루크의 관점이었을 뿐, 시에나의 입장에서는 진이 다 빠질 정도로 꼼꼼히 쇼핑을 한 것이었다.

    그 와중에 쇼핑하는 내내 끊이질 않던 잔소리는 쇼핑이 끝나고 나서도 끝날 기미가 보이질 않아 진절머리가 날 지경이다.

    마치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이 맘에 들지 않는다는 듯이 훈계를 늘어놓는 루크의 모습과, 자신에게는 그 잔소리를 제지할 당위성이나 입장이 되지 않는다는 것에서 시에나는 마치 자신의 어머니가 떠오르는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잘못한 건 평소 일을 제외하면 대충 살았던 자신이었다.

    무언가 탓을 하려면 자신의 부족한 생활력을 탓해야겠지.

    실제로 자신에게 좋은 식재료를 골라내는 안목이나 물건의 알맞은 가격대를 파악하는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은 사실이었다.

    루크의 조언들이 자신의 그런 결점을 보완하는 데에 도움이 되는 것도 사실이고.

    그렇기에 결국 시에나는 그저 루크의 잔소리를 깊게 새겨들으며 영혼없이 대답하는 방법밖에 없는 것이다.

    예르나는 대체 애를 어떻게 키웠길래 애가 이렇게 된걸까?

    그렇게 시에나가 루크의 잔소리를 적당히 반쯤 흘려듣고 있던 무렵.

    “어머나, 루크 아니니?”

    근처 옷가게의 주인으로 보이는 중년의 여성이 루크를 불러세웠다.

    “아아, 마담. 오랜만이군.”

    루크가 아는 사람인지, 그녀는 곧장 루크에게로 다가와 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정말 오랜만이다, 얘. 옆에분은 아는 언니니?”

    “그런 셈일세. 소개하지, 이름은 시에나 포르핀드. 어머니의 친구고, 직업은 경찰이라네.”

    “아, 안녕하세요. 시에나경관입니다.”

    “어쩜, 경찰이라 그런지 훤칠하네. 그러고보니 몇번 본 거 같기도 하고. 루크하고 아는 사이인줄은 몰랐어. 나는 그냥 테리 마담이라고 부르면 돼.”

    “아하하……, 네.”

    시에나는 마치 어머니가 친구에게 자식을 소개하는 것 같은 루크의 미묘한 분위기에 휩쓸려 어떨결에 인사를 하게 되었다.

    실제로 옷가게 주인과 자신의 나이대는 그렇게 차이나지 않겠지만 말이다.

    그 괴리감에 시에나가 어색해하는 사이, 자신을 테리 마담이라고 소개한 그녀는 다시 루크에게 이야기를 이어가기 시작했다.

    “아 참, 오늘 네가 좋아할만한 옷이 많이 들어왔어. 흰색 블라우스라던가, 검은 스커트 같은 거. 바쁘지 않으면 좀 보고 가렴! 겨울 옷도 들어온 게 많아!”

    아니나 다를까, 그녀가 루크에게 아는 척을 해온 것은 역시나 호객을 위해서였다.

    그것은 정말로 흔하고 평범한 호객멘트였지만, 무시하기엔 루크의 궁금증이 살짝 동했다.

    블라우스와 스커트라, 안그래도 최근 입을 옷이 많이 줄어든 바람에 여벌이 좀 필요하기는 했는데…….

    하지만 베리튼으로 가기 전에 짐을 늘릴 수도 없는 노릇이라서, 루크는 하는 수 없이 새 옷의 유혹과 그녀의 제안을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미안하네, 마담. 내 지금은 옷을 살 형편이 아니라. 나중에 방문하도록 하지.”

    “그래, 그래. 나중에 생각나면 와서 봐! 이왕이면, 그쪽 언니도 같이 오시고. 루크의 지인이니까, 싸게 해줄게.”

    “하하, 네…. 고맙습니다.”

    시에나는 그렇게 대화를 무마하기 위한 어정쩡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 걸음을 재촉해나갔다.

    그렇게 몇분을 걸어가던 무렵, 시에나가 문득 입을 열었다.

    “이제보니 루크는 발이 꽤 넓구나.”

    “음?”

    시에나는, 고작 1년만에 이 도시에 깊은 관계를 맺은 루크가 새삼 놀랍게 느껴졌다.

    벌써 이 도시에 이렇게나 깊숙히 섞여들다니.

    루크를 보자마자 오랜만이라며 안부를 묻는 가게 주인들, 길을 다니다가도 아는체를 해오는 행인…….

    그것은 그녀에게 ‘어라? 우리 동네 사람들이 원래 다들 이렇게 떠들썩하고 친절했나?’ 하는 생각마저 들게 할 정도로 신기한 광경이었다.

    그에 루크는 잠시 생각해보더니, 별로 대수롭지 않다는듯 입을 열었다.

    “뭐, 그렇지. 이 도시에 온지 1년은 다 되었으니까.”

    “그러니까말이야. 고작 1년밖에 안되었는데.”

    1년. 

    학대당하던 실험체가 구출되어 평범한 가정에 속하게 되기엔 충분한 시간일지 몰라도, 사회와 완전히 격리되어있던 인간이 한 거대한 공동체와 이렇게까지 깊이 녹아들고 적응하기엔 터무니없이 짧다.

    그럼에도 루크는 고작 1년만에 이렇게나 많은 이들에게 기억되고 있고, 모두에게 관심을 받고 있다는 것이 굉장히 신기한 일이다.

    하긴, 루크의 외모는 다른 사람의 머릿속에 잘 남긴 한다.

    분위기도 특이하고, 오드아이라는 특징도 흔한 건 아니고.

    또 무엇보다 예쁘니까.

    하지만, 이 정도로 모두에게 관심을 받는다는 건, 단순히 예쁘고 친화력이 좋기를 타고났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아마 타고난 장점 외에도, 본인 스스로가 모두에게 친절히 대하고 활발하게 교류하기 때문에 이런 관심을 받을 수도 있는 거겠지.

    시에나는 문득 벌써 이토록 사회에 자연스레 녹아든 루크가 굉장히 대단해 보였다.

    “……너도 꽤나 노력했겠구나.”

    난데없는 시에나의 칭찬에 루크는 그저 고개를 갸웃거렸을 뿐이었지만.

    그나저나, 1년이라.

    잠시 하늘을 바라보던 루크는, 어제 짓눈깨비가 흩날리던 풍경을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그러고보니, 내가 예르나를 만난 것이 딱 작년 이맘때인가.”

    확실히, 돌이켜보면 1년 사이에 꽤 많은 일들이 있기는 했다.

    웬 수상한 마차에서 눈을 떠서, 무턱대고 마나 발전소에 찾아가서 민폐를 끼치고, 아카데미에 입학하고, 정령어 연습을 한답시고 무작정 연주를 시작해서 거리공연으로 후원금을 받아보기도 하고, pc방에서 게임으로 아이들의 관심을 끌어보기도 하고, 해변가에서 놀다가 물에 빠져 죽을 뻔 하기도 했다.

    그 외에도 한 불법 시설을 부수고, 사람들을 되살리고, 자신의 탄생과 숨겨진 음모를 깨닫고, 용을 사냥하고, 레니에가 희생하기도 했다.

    이 모든 일이 겨우 1년만에 발생한 일이라니…….

    이제와 생각해보면, 너무나 많은 일들이 있었구나 싶다.

    정말, 너무나 많은 일들이.

    그 때였다.

    -멈칫.

    시에나가 돌연 걸음을 늦추며 루크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루크, 잠깐 골목으로 좀 걷자.”

    “응?”

    그에 루크는 의아한 듯한 표정을 지었지만, 일단 그녀가 시키는 대로 인기척이 드문 골목으로 향했다.

    잠시 골목을 걷다가 빠져나온 루크와 시에나.

    시에나는 골목에서 나와 멈춰선 채 뒤를 돌아보고 있었다.

    “응? 시에나, 갑자기 왜 그러지? 무슨 일이었어?”

    시에나는 곧장 목소리를 낮추고 루크에게 물었다.

    “루크, 혹시 평소에 누군가 따라온다는 느낌 받은 적 없어? 아니면 누가 쫓아온다거나.”

    그건 과연 스토커였던걸까, 아니면 단순히 방향이 같았던 걸까.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 골목을 걸어보았지만, 자신들을 따라오는 듯 했던 인기척은 이미 시에나가 골목에 들어서자마자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다.

    시에나의 질문을 들은 루크는 갑자기 그런 것을 묻는 것이 이상하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글쎄? 특별히 그런 느낌을 받지는 못했다만…….”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이 도시는 평일 낮에도 꽤 많은 유동인구를 자랑할 만큼 규모가 큰 도시다.

    따라서 우연히 가는 길이 겹친다거나, 가끔 자신의 외모에 이끌려 시선을 보내오는 사람들이 없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어딜 가나, 시선은 늘 존재한다.

    느끼기에 따라선 그것이 따라오는 것 같기도 하고, 쫓기는 것 같기도 하겠지.

    하지만 시골에서 갓 상경한 아이도 아니고, 그런 것에 익숙해질 시기는 진작 지났다.

    게다가 5000년 전에도 시선을 받는 일 정도야 흔한 일이었고.

    또, 사실 루크가 누군가의 미행을 눈치채지 못할 만큼 둔감한 것도 아니었다.

    자신을 향한 악의가 있다거나, 도를 지나칠 정도로 자신을 집요하게 쫓아온다던가 하는 거라면 루크도 당연히 알아차린다.

    하지만 방금 전에는 그런 느낌이 전혀 아니었을 뿐더러, 그 시선엔 자신을 향한 악의도 전혀 없었다.

    게다가, 이젠 그 인기척이 남아있지도 않고.

    “시에나, 혹시 지금도 그 인기척이 느껴지나?”

    “아니, 그건 아닌데…….”

    “그럼 되었지않나. 여긴 인구 밀도가 굉장히 크니까, 아마도 착각한 거겠지.”

    “그런가…….”

    하지만 뭔가 긴가민가한 듯 미묘한 표정의 시에나.

    그녀는 인기척이 느껴졌던 방향을 몇번 더 확인하고는, 영 내키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건 정말 착각이었던걸까?

    루크는 그런 그녀를 향해 툭 던지듯 제안했다.

    “맘이 놓이지 않으면, 지금 역추적해볼텐가?”

    루크의 제안에 시에나는 잠시 고민하더니, 피식 웃어버리고는 말했다.

    “됐어, 일단 밥부터 좀 먹자. 배가 고프니 의욕도 죽어버리네.”

    “음, 잘 생각했네.”

    무슨 일이든, 일단 배가 든든해야 의욕이 생기는 법.

    루크는 어서 돌아가 시에나가 배를 채울 음식을 준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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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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