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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50

        

         

       하지만 지금은 그저 전율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눈앞에 위협이 나타났다는 것.

       그리고 그 위협이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 중요했다.

         

       피해 가고 싶었던 리스크.

       주술사라는 존재가 지금, 눈앞에 있다.

         

       ‘어떻게 하지?’

         

       남자는 미친 듯이 머리를 굴렸다.

       아마 컴퓨터였다면 과부하가 되어서 꺼져버리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머리를 팽팽 돌렸다.

       하지만 옛적부터 머리를 써오는 것에 취미가 없는 인생을 살아왔는데, 지금이라고 기적적으로 천재 같은 해결책이 나올 리는 만무하였으니.

         

       남자는 막막함에 이를 뿌득 갈았다.

         

       그런데 그때.

         

       [ 치직-치직—서포트—하겠다. ]

         

       무전기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그를 돕겠다는 소리.

       그와 이번 작전에 참여하고 있는 마법사의 목소리였다.

         

       ‘서포트.’

         

       그 목소리를 들은 남자는 정신을 차렸다.

         

       ‘그래. 저 너드 녀석의 말이라면 믿을만하지.’

         

       평소 그는 저 마법사를 무시해왔었다.

       딱 봐도 운동과는 담을 쌓는 삶을 살아온 것 같은 몸뚱이에, 미식축구 대신에 야구나 좋아하는 너드같은 취향, 거기에 스포츠를 제대로 즐기는 것도 아니고 세이버메트릭스나 통계니, 뭐니 하는 것에만 매달리는 괴상망측한 모습까지.

       하나같이 그에게 거부감이 들게 만드는 것들로 가득했다.

         

       하지만 그도 하나 인정하는 것이 있다면, 저 마법사가 머리가 좋다는 것이다.

       저 마법사는 그가 살면서 보아온 사람 중 손에 꼽을 정도로 머리가 좋았다.

       실제로 대학도 그 유명한 MIT를 나왔고, 박사 학위까지 존재한다고 했다. 기업에서 비싼 돈 받으면서 일하거나 교수가 되어서 학생들 가르쳐야 할 인간이 아닌가 싶어질 정도였다. 적어도 그의 생각으론 말이다.

         

       그런 인간이니만큼, 지금 이 상황에서 탈출구를 만들어줄 수 있을 것이다.

       뭐…. 솔직히 현장직이 아니니 완전히 믿음을 갖는 것은 무리겠지만.

       그래도 아까 저 주술사의 정체와 이름을 알고 바로 말해준 것으로 본다면, 아무런 대책도 떠올리지 못하는 그보다는 훨씬 낫겠지.

         

       남자는 그런 판단 아래 무전기의 지시를 따르기로 마음먹었다.

         

       “무엇이 존재를 연속하게 만드는가? 과거와 현재가 다름은 무엇이 증명하는가? 거대한 해변이 있다고 한들 그것이 옛적과 같은 것이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쌓인 모래 알갱이 하나하나가 세월이 지나면서 바뀌고, 휩쓸리고, 쌓인다. 그렇게 해변을 이루는 모래들이 옛적 어느 한 지점과 비교하였을 때 닮은 것이 단 하나도 없다면, 그 모양과 위치마저 다르다면 그것은 옛적에 존재하였던 해변과 같은 존재라 할 수 있는가? 그것은 연속된 존재인가? 연속된 존재라면 어찌 연속된 것이며, 연속되지 아니하였다면 어찌하여 연속되지 아니한 것인가?”

         

       남자가 그렇게 생각을 하는 사이.

       주술사는 점점 그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머리를 어지럽게 만드는 이상한 말을 쉼 없이 던져대면서 말이다.

         

       무슨 어디서 배우 수업이라도 받기라도 한 것인지.

       저 빌어먹을 궤변 같은 말은 귀에 너무나도 콕콕 틀어박혔다.

       듣고 싶지 않다고 해도 머릿속에 강하게 각인이 될 정도로 말이다.

         

       “무엇이 존재를 존재로서 기능을 하게 하는가? 세상에 나를 고정하는 닻은 무엇인가? 나를 연속되게 해주는 요소란 무엇인가? 계속해서 변화하는 것을 관통하는 무언가가 있다면 그것은 과연 무엇이며, 그것을 인지할 수 있는가? 답하여보라. 쉼 없이 바뀌어버리는 배의 정체성을 완성해주는 것은 무엇이며, 쉼 없이 사람이 옛날부터 이어져 온 존재라는 것을 어찌 증명할 수 있는가?”

         

       저 빌어먹을 물음은, 듣는 것만으로 정신을 아득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

       고향에서 고리타분하게 생긴 중국인이 떠드는 개소리도 저 정도로 장황하진 않았던 것 같은데….

         

       [ 치직—탱고 골퍼. 저 말을 의식하지 마라. 그리고 저 말에 절대로 대답해서는 안 된다. 저것도 주술의 일부. 대답하면 홀린다. ]

         

       ‘Fuck! 저것도 개수작이었군!’

         

       남자는 무전기에서 들린 말에 이를 빠득 갈았다.

         

       수작.

       수작질이 너무나 많다.

         

       저 빌어먹을 주술사 놈은 등장한 이후부터 지금까지, 그를 홀리려고만 들었다.

       무슨 사람의 탈을 쓴 악령도 아니고.

       뭐 이리 사람을 홀리려 든단 말인가.

         

       게다가 그 홀리는 것 하나하나가 독하기 짝이 없다.

         

       ‘주술사란 족속들은 정말, 엿 같군.’

         

       어떻게 주술사라는 족속들은 한결같이 사람을 현혹하려 드는 것인지.

       Fuck.

         

       [ 일단 눈을 감아라. 사람을 세뇌하거나 정신을 조작하는 것은 시각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지금 이 층은 저 주술사가 깔아놓은 함정들로 가득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반짝이는 불빛을 계속 보고 있으면 홀릴 거다. ]

         

       ‘어쩐지. 이딴 수작질을 부려놨으니 내가 그렇게 쉽게 홀렸지.’

         

       남자는 무전기에서 들리는 마법사의 목소리를 듣고는 바로 눈을 질끈 감았다.

       물론 눈을 질끈 감는다고 빛이 완전히 가려지는 것은 아니었다.

       눈꺼풀 바깥에서 번쩍이는 불빛들이 눈꺼풀을 뚫으려다가 튕겨 나가며 그 편린을 남기며 그의 눈을 어지럽혔다.

       하지만 아까보다는 확실히 나았다.

       확실히 말이다.

         

       그는 볼 수 없는 눈 대신에 귀에 신경을 집중했고, 저 빌어먹을 주술사의 목소리보다는 무전기에 집중하기 위해 신경을 그쪽으로 쏟았다.

         

       [ 내가 말하는 곳으로 움직여라. 밖으로 빠져나올 수 있도록 서포트하겠다. ]

         

       무전기는 말했다.

       내가 너의 눈이자 길잡이가 되어주겠다고.

         

       [ 치직- 현재 통신장비의 상태가 좋지 않아서 세세한 서포트는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벽에 몸이 부딪치는 것을 기준으로 설명하겠다. 몸을 이용해서 핀볼을 한다고 생각하라. 탱고 골퍼, 네 몸이 당구공이 되었다고 생각해도 좋다. ]

         

       무전기에서는 말했다.

       네 위치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몇 걸음을 걸었을 때 도착하는지에 관해서 설명하기가 힘드니…. 벽에 몸을 밀착하는 것을 기준으로 삼아서 길 안내를 하겠다. 하지만 상황이 심각하니까, 벽에 손을 짚고 간다거나 벽에 밀착해서 가는 것 대신에 벽에 몸을 부딪치고 튕겨가며 빠르게 밖으로 빠져나올 수 있도록 돕겠다고 말이다.

         

       나쁘지 않은 이야기였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빠르게 돌진해서 벽에 몸을 받는 것만으로 타격이 있겠지만…. 그는 아니었다.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탈골되거나 부러지거나 타박상을 입겠지만, 그가 누구인가.

       몸 곳곳에 기계를 이식한 상태이며, 일반적인 족속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단련을 한 사람이 아니던가.

       그깟 벽에 부딪히는 것 정도로는 티도 나지 않는다.

         

       물론 아예 타격을 받지 않기는 힘들 것이다.

       일반적인 벽이라면 문제는 없겠지만…. 루카스라는 놈이 바닥에 해놓은 꼬라지를 보면 벽에도 철근과 합금이 가득할 것이 뻔하지 않은가.

       그의 몸에 있는 기계를 아득히 뛰어넘는 강도의 합금이 있다면 타격을 입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래도 지금보단 낫겠지.’

         

       그래도 홀려서 타죽는 것보다는 나았다.

       타박상? 골절? 기계가 박살 나거나 고장 나는 것?

       그 정도는 감수할 수 있다.

         

       저 미친 광신도 놈들처럼 얌전히 불 속에서 타죽고 싶진 않았다.

       그건 개죽음이었으니까.

         

       [ 탱고 골퍼. 아까 침대를 본 적이 있는가? ]

         

       “…그래. 침대 프레임이 있었다.”

         

       [ 좋다. 그 침대 프레임이 있던 곳으로 돌진하라. ]

         

       “오케이.”

         

       남자는 무전기의 지시가 들려오자 눈을 질끈 감고 몸에 힘을 불어넣었다.

       그리고 열기 속에서 서서히 달아오르는 것 같은 기계를 작동시킨 뒤, 뛰었다.

         

       후웅-!

         

       그러자 그의 몸이 바람을 가르며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치 미식축구 선수가 돌진하는 것처럼 말이다.

         

       마치 자동차라도 되는 것처럼 가속한 남자는 그대로 뛰어갔고, 거치적거리는 무언가가 발에 치였다가 터엉-하는 소리와 함께 바닥에 구르는 것을 들었다. 그리고 곧-

         

       쿠웅-!

         

       둔중한 소리와 함께, 그의 몸이 벽에 닿았다.

         

       남자의 예상대로 벽은 뚫리지 않았다.

       자동차가 들이박은 것과 같은 충격을 주었을 것이 분명함에도, 벽은 멀쩡했다.

       아니, 어깨에서 전해지는 느낌으로는 아마 깨지거나 금이 가기는 했을 것이다.

       하지만 벽 안에 있는 철근이나 철판 같은 것을 뚫지는 못한 것이겠지.

         

       [ 부딪쳤나? 그러면 거기서 바로 왼쪽으로 돌진하라. ]

         

       “오케이.”

         

       다음 지시가 들려왔다.

         

       남자는 짧게 답하고는 다시 돌진했다.

         

       왼쪽.

       그가 멈춘 위치에서 바로 왼쪽으로.

         

       쿠웅-!

         

       다시 한번 둔중한 소리가 울려 퍼진다.

       어깨에 무언가가 닿았다는 느낌이 들고, 몸에 약간의 충격이 전달된다.

       아까보다도 더 강렬하고 깊은 느낌이었다.

       아마 이 벽은 좀 더 단단한 금속을 사용한 모양인 것 같았다.

         

       [ 왼쪽으로 돌진하라. ]

         

       후-웅!

         

       지시가 들린다.

         

       [ 오른쪽으로 돌진하라. ]

         

       지시가 들릴 때마다, 남자는 움직였다.

         

       바람을 가르면서.

       있는 힘껏.

       기계를 작동시켜서, 가속도를 붙이고.

         

       [ 오른쪽으로. ]

         

       나아가고, 또 나아간다.

         

       [ 왼쪽으로. ]

         

       [ 오른쪽으로. ]

         

       그렇게 뛰고, 또 뛰고.

         

       마침내.

         

       [ 탱고 골퍼. 골인이다. 탈출에 성공했다. ]

         

       골인.

       목적지에 다다랐다.

         

       탈출.

       그래, 탈출에 성공했다.

       계속해서 자신을 홀리려 드는 빌어먹을 주술사의 손아귀에서 탈출한 것이다!

         

       하, 악어의 아가리에 머리통을 직접 들이미는 듯한 이 긴장감이라니.

         

       참 엿 같을 정도로 끔찍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래도…잘 도망쳤다.

         

       주술사라는 존재가 아무리 기괴한 짓을 많이 한다고는 하지만, 그래봤자 주술사.

       무인의 신체 능력의 코빼기도 따라올 수 없고, 몸에 기계를 이식한데다가 운동까지 열심히 한 그를 따라올 수는 없었다는 이야기였겠지.

       뭐, 당연한 이야기다.

       주술사라는 족속들은 평범한 사람들보다 체력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지 않은가.

         

       그런 걸 생각한다면….

       후.

         

       [ 축하한다. ]

         

       하하.

       뭐, 좋은 일이군.

         

       나쁘지 않아.

       돌아가면 맥주나 마셔야겠어.

       저 빌어먹을 너드와 함께 말이야.

         

       미식축구 대신에, 같이 베이스볼을 봐볼까.

       한 번쯤은 나쁘지 않겠지….

         

         

        * * *

         

         

         

       불바다 속.

       양복을 입은 존재는 말했다.

         

       “이제 답하지 못하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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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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