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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51

   “무능한 찐따인 마법사님께서는 그런 일 하나 해결하지 못하고 제게 도움을 청하러 오신 건가요? 혼자 해결해볼 생각은 안 해 보셨나요? 뇌의 흔적도 안 남은 퇴물 중의 퇴물이라 새로운 발상을 하실 수가 없나요?”

   

   요정의 숲 내부를 살피는 게 불가능하단 에르기누스의 이야기에 내가 미간을 찌푸리자 에르기누스는 할 말이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미안하군. 그렇지만 나도 이번 일은 예상 외였다. 설마 여왕이 반쯤 잠에서 깬 상태일 줄이야.”

   

   바로 어제 요정의 숲에 다녀왔던 에르기누스는 결계 내부의 상황을 점검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그 안에 도사린 기운이 에르기누스의 시선을 가로 막은 것이다.

   

   조금도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당황한 에르기누스는 자신을 방해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내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그 끝에 한 가지 대답에 도달했다.

   

   요정여왕이 꿈과 현실의 사이에서 자신들을 배제하고 있을 것이란 결론에 말이다.

   

   “그녀가 아직까지 완벽하게 잠에서 깨어난 것 일리는 없다. 그랬다면 결계가 이미 무너져 내렸을 테니.”

   “그럼 뭔데요. 동정찐따마법사님.”

   “그녀는 꿈과 현실의 경계에서 헤매고 있다. 그 와중에 무의식적으로 숲을 지키고자 하는 것이야.”

   근거가 무엇이냐고 묻자 에르기누스는 예전을 떠올리는 것처럼 감상어린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그대는 요정의 숲이 결계에 갇히고 한참이 지난 뒤에 태어난 이이니 숲에 대해 잘 모르겠군. 요정에 대한 전승을 말이야.”

   <아아. 그건가.>

   ‘…저기 할아버지. 자기들끼리 알아듣는 이야기하지 말고 자세히 설명해 주시겠어요?’

   <별 대단한 것은 아니다. 그저 어떤 존재가 요정을 만날 수 있는 가에 대한 이야기지.>

   

   신화의 시대에 요정이란 존재는 자연 속에 당연하다는 듯 자리 잡고 있는 이들이었다.

   

   장난을 치길 좋아하고, 은근히 경계심이 짙고, 동물과 꽃 속에서 노닐며 자신의 아름다움을 뽐내는 요정들을 만나고자 하는 인간들은 차고 넘쳤지.

   

   허나 요정들은 쉬이 인간과의 만남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들은 오롯이 자신들이 만나고자 하는 이들에게만 접근을 허락했으며 그렇지 않은 자에겐 날개 끝조차 보여주질 않은 것이다.

   

   그렇다 하여 요정을 물리적으로 위협하자니 그들이 지닌 힘이 상당했던 데다가 당시 인간들의 곁에 머물던 신격들이 요정을 좋게 보고 있었던지라 감히 건드리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헌데 인간이란 족속들이 쉬이 포기하는 작자가 아니잖으냐. 어떻게든 요정을 보고자 했던 이들은 요정을 만났던 이들에 대한 것을 정리해 조건을 찾아내려 들었지.>

   

   게임으로 따지자면 여러 사람들이 머리를 끌어 모아 입장자격을 찾아낸 셈인가.

   

   <선한 마음을 품을 것. 특출난 무언가가 있는 자일 것. 죄가 없을 것. 짐승들의 사랑을 받을 것. 이외에도 조건이라 여겨진 것은 수도 없이 많았다.>

   

   훗날 요정여왕 본인에게 물은 바에 따르면 이는 어디까지나 요정들의 취향에 대한 문제였던 모양이다.

   

   그러니까 결국 요정을 만나기 위한 방법이라는 건 요정들에게 잘 보이기 위한 방법이란 거네?

   

   자기 취향에 안 맞으면 으. 극혐. 하면서 얼굴도 안 비춘다는 거잖아.

   

   …이거 너무 속세에 물든 거 아냐? 내 환상 돌려내!

   

   내가 아는 요정은 좀 더 순수하고 귀여운 애들이라고!

   

   조건을 하나하나 따져가며 상대를 재는 게 어떻게 요정이 될 수 있어!

   

   이건 차라리 얼빠여우 쪽에 더 가까운 쓰레기들이잖아!

   

   <아마 그 조건들이 지금 요정의 숲에도 적용되는 모양이군.>

   ‘어. 할아버지. 지금 말대로면 에르기누스님이 요정여왕한테 차였단 소리 아닌가요?’

   <…그건 너무 갔고 취향이 아니다 정도의 선이겠지.>

   ‘그게 그거잖아요!’

   

   수백년에 걸친 순애보가 ‘죄송합니다. 저 당신 같은 사람은 생리적으로 무리라서.’ 라는 대답 앞에 격추 당하다니!

   

   현실은 이토록 잔혹한 건가!?

   

   아니. 그것보다도 에르기누스의 정신이 어떻게 멀쩡할 수 있는 거야?

   

   수백 년 간 품어 온 사랑이 처참하게 짓밟혔다는 걸 어떻게 이리 태연하게 말할 수 있는 거냐고!

   

   대마법사의 정신력은 인간을 초월한 건가!? 그런 것치고는 이 동정해골이 보여준 허접모쏠 같은 모습이 한 둘이 아니었는데?!

   

   “이쯤 되었으면 베네딕이 설명을 해주었겠지. 내 추측도 그 녀석의 추측과 동일하다.”

   

   현실을 부정한 것도 아냐!? 차였단 걸 평온하게 받아들였단 말야?!

   

   에르기누스의 초인적인 멘탈에 경외심마저 느끼고 있는 동안에도 에르기누스는 느긋이 설명을 이어나갔다.

   

   “지금의 나는 에르기누스지만 에르기누스가 아니다. 옛 대마법사가 만들어 둔 가짜지. 그리고 요정은 거짓을 품은 자를 허하지 않는다.”

   <과연. 자기가 차인 게 아니라고 자위하고 있는 건가.>

   “푸핳! 큽. 크흡!”

   “…왜 그러지?”

   

   쿡하고 파고 든 할아버지의 말에 웃음이 터져 나왔지만 난 차마 에르기누스에게 사실을 설명할 자신이 없었다.

   

   이 남자의 순정을 부수는 것에 죄책감이 들기도 하고, 뭣보다 차였단 사실에 절망해버리면 이번 계획이 중점이 날아가는 셈이잖아.

   

   내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웃음만 흘리자 고갤 갸웃하던 에르기누스가 어깰 으쓱이곤 말을 이었다.

   

   “어쨌건 이 사실을 확인한 나는 여왕의 개입을 없앨 방법을 찾아 헤맸다. 결계를 만든 장본인이 나이니 내가 여태 쌓은 지식이면 충분히 해소할 수 있으리라 여겼으니까.”

   

   허나 에르기누스는 실패했다. 그가 수백년 동안 지하에서 이번 일을 준비했던 것처럼 결계 안에 머물던 요정여왕도 긴 세월에 걸쳐 그 안에 있던 기운을 자신의 것으로 만든 것이다.

   

   “대체 왜 의식이 반쯤 부상한 것인지는 모르겠다만.”

   “찐따마법사님의 박살난 사회성마냥 결계도 허접해서 그런 거 아닌가요?”

   “마법에 잘못된 부분은 없어. 이는 이전에도 시험을. 아니지. 이제와 설명해봐야 의미는 없겠군. 그보다는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책이다. 날 대신할 인간이 필요해.”

   

   이 해골 뭔 소리 하는 거야? 여태까지도 역사적인 천재소리를 듣는 마법사를 대체할 인력이 있을 리가 없잖아. 정신이 나가기라도.

   

   아. 나갔구나.

   

   실연의 충격이 없는 척 해도 사실은 있었던 거야.

   

   “무슨 미친소리냐고 생각하겠지만 아예 터무니없는 이야기는 아니다. 앞서 말했듯 요정여왕은 완전히 꿈에서 깨어난 게 아니니까.”

   

   요정여왕의 의식은 어느 정도 현실에 부상했지만 그렇다 하여 그녀가 완전히 잠에서 깬 것은 아니다.

   

   그녀는 여전히 꿈의 정경을 바라보고 있는 채다. 말하자면 일종의 몽유병에 가까운 상태인 셈.

   

   “여왕이 요정의 규율에 따라 사람을 가른다면 이 규율에 알맞은 사람은 환대할 것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여러 자잘한 장난을 견뎌야 하겠지만.”

   

   여러 자잘한 장난이란 부분이 마음에 걸렸지만 그에 대해 묻기 전에 에르기누스가 먼저 목소리를 냈다.

   

   “그래서 그대를 찾아온 것이다. 이 규율에 맞는 이를 찾아다오. 그대와 그대의 부하라면 능히 조건에 맞는 사람을 찾아낼 수 있겠지.”

   

   뭐어. 조건만 명확하다면 찾아내는 건 그리 어렵지 않겠지. 카리아의 정보망이 있으니까.

   

   문제는 그 사람이 믿을 만한 존재인 가에 대한 건데.

   

   “조건은 이렇다. 우선은 외견. 요정은 순수한만큼 솔직하다. 눈에 보이는 것을 가장 중시하지.”

   

   일단 예뻐야하고.

   

   “또한 선해야 한다. 요정은 한 인간이 평생토록 쌓아 온 업을 어느 정도 느낄 수 있으니.”

   

   선해야하고.

   

   “어느 정도의 강함도 필요하다. 요정들은 자신의 장난을 받아줄 수 있는 사람을 바라거든.”

   

   강해야 하는데다가.

   

   “순수와 순결을 동시에 지니고 있어야 하며.”

   

   처녀거나 동정이여야하고.

   

   “마법의 지식도 필수적이다. 그렇지 않으면 요정의 환영을 받는다 해도 내 대체가 될 수 없어.”

   

   마법도 잘 다뤄야 하고.

   

   음? 잠시만? 이 조건들을 하나하나 따지고 보면 한 사람을 가리키고 있는데?

   

   순진하고 순수하고 얼빵한.

   

   *

   

   “제가 에르기누스님의 역할을 맡아야하는 건가요?”

   “그래. 하겠다면 이전에 이어 내 모든 걸 전수해주지. 하겠나?”

   “전 대 파트란 가문의 영애입니다. 이 정도 일에 중압감을 느낄 것 같습니까?”

   

   조이는 어깨를 피며 당당히 이야기를 했지만 가슴팍을 짙은 그녀의 손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마법으로 감출 수 없을 만큼 긴장한 거구나.

   

   “무서우면 안 해도 되는데. 얼빵아?”

   

   못 하겠다면 억지로 할 필요 없단 이야기였지만 조이는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며 미간을 찌푸렸다.

   

   

   “루시. 제가 방금 한 말 못 들으셨나요? 전 이런 일에 도망치지 않습니다. 당신의 친구니까요.”

   

   흐응. 뭐 이렇게까지 굳은 결심을 했다면 말릴 이유는 없지.

   

   평소 얼빵한 짓을 반복하는 것과는 별개로 이번 일에 조이가 적격인 건 사실이니까.

   

   “뭐 하고 싶으면 맘대로 해. 얼빵이가 또 무슨 바보짓을 할지 기대되는 걸?”

   “그거 참 안타깝네요. 이번 일엔 아무런 문제도 생기지 않을 테니까요.”

   “와아. 정말 자신 넘치는 대답이네. 손발을 부들부들 떨면서 하지만 않았어도 참 멋있었을텐데. 푸흡. 아쉽다.”

   “…빠. 빨리 할 일 하러 가세요! 전 에르기누스님께 배움을 구해야 하니까!”

   

   순식간에 양 볼이 벌개진 조이를 비웃으며 자리를 떴더니 뒤 편에서 비명에 가까운 소리가 들려왔다.

   

   역시 조이야. 언제나 반응이 좋아서 놀리는 게 재밌다니까.

   

   뭐. 이거랑은 별개로 조이를 옆에서 호위할 사람도 생각해봐야겠네.

   

   조이가 요정들의 마음에 들어도 그 주변이 마음에 안 들면 싫어할 가능성이 있으니까.

   

   이 일에 참여한 강자들이 잔뜩이니까 그 중에서 적당히 골라잡으면 되겠지.

   

   라고 느슨하게 생각했던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요정의 규율이라는 게 생각보다 까다롭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규율 각각의 조건을 달성한 자를 찾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요정이 바라는 수준이 드높을 지라도 이 쪽은 수많은 인재들이 모인 집단이다. 어떻게 찾으려면 찾을 수 있다.

   

   문제는 이 모든 규율이 함께 성립되어야 한다는 것.

   

   “고용주님.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이 모든 걸 달성한 사람이 순결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해?”

   

   …

   

   아니.

   

   씹.

   

   말이 안 되잖아!

   

   어디 사는 동정에 찐따인데다 현실감각 없는 마법사가 아니고서야 개쩌는 스펙에 개쩌는 외모를 지녔는데 연애 한 번 제대로 못 해 봤을 리가 있냐!

   

   그것도 열댓살에 결혼하는 경우조차 흔한 중세 판타지 세상에서!

   

   그런 환상종이 어디 있겠냐고오오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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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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