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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51

    “루크야, 너 나랑 같이 살지 않을래? 아니, 그냥 나랑 살자.”

    그것이 맛의 황홀경에서 겨우 벗어나 정신을 차린 시에나의 첫 대사였다.

    ‘이 맛이 정말 식물만으로 요리한 음식이 맞다고?’

    그런 의문까지 들 정도였다.

    음식이란게 원래 이렇게 맛있는 거라면, 대체 지금껏 자신이 먹어온 요리는 대체 뭐지?

    음식물 쓰레기?

    그렇게 생각하며 정신없이 음식을 먹어치우고 나니, 어느새 빈 그릇만이 눈앞에 늘어져있을 정도다.

    이런 걸 맛보고 나서 다시 그 시고 달고 짜기만 한 배달음식으로 돌아가라고?

    알지 못했다면 몰라도, 지금 그 말은 정말 끔찍한 소리다.

    하지만 루크는 지금 대체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 냉정할 뿐이었다.

    “그럴 순 없네. 난 이미 예르나의 가족이 아닌가.”

    그러나 루크의 말마따나 루크는 이미 예르나의 딸이었기에, 시에나는 체념한 듯 중얼거렸다.

    “아아, 아쉽네. 이렇게 잘 자랄 줄 알았다면 예르나가 데려간다고 하기 전에 내가 먼저 입양하는 거였는데.”

    처음 루크를 발견했을 당시엔 루크가 이렇게 요리도 잘하고 머리도 좋고 사교성도 좋을 거라곤 생각도 못했었는데.

    예르나는 대체 어쩌다 이런 애를 얻게 된 걸까.

    참으로 부럽기 그지없다.

    “저기, 난 애완동물이 아니네만.”

    루크는 음식을 먹고 나서 넋이 나간 것처럼 구는 시에나가 걱정되어 요리에 자신이 예상치 못한 화학작용으로 향정신성 작용기전을 일으키는 변질이 발생했는지 면밀히 확인해봤지만, 딱히 그런 건 없고 그냥 맛있는 요리였을 뿐이다.

    대신 오늘따라 더 맛있게 요리된 느낌이라고 할까, 오가닉 프레이 샐러드 특유의 씁쓸한 뒷맛을 지우기 위해  평소에 생각하던대로 살짝 데쳐서 양념과 함께 버무린 것이 꽤 유효했던 것 같다.

    그 밖의 평범한 나물요리들도 좋은 재료를 잘 골라서 곧바로 요리한 덕분인지 상당히 좋았고.

    좋은 재료로 좋은 요리를 했으니 당연히 맛은 있을 터이나 그게 저 정도로 호들갑을 떨 정도인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도 그녀가 평소에 먹던 음식이 별로였으니 이 요리를 먹고 더욱 큰 낙차를 느낀 건 아닐까, 그렇게 예상할 뿐.

    ‘내가 처음으로 현대의 소스를 버무린 꼬치를 먹고 눈물을 흘렸던 것처럼 말이지…….’

    루크는 다 먹은 식기들을 정리하며 시에나에게 물었다.

    “그래서, 어떻게 할텐가?”

    루크의 중요한 부분이 생략된 질문에 시에나가 되물었다.

    “응? 뭘? 어떻게 하냐니?”

    그러자 루크는 그야 당연한 것이 아니냐며 다시 한번 물었다.

    “아까 말했던 그 ‘스토커’ 말일세. 다시 나가서 찾아볼 생각인가?”

    “아, 그거 말이지.”

    식사 후 나른하게 퍼져있던 시에나는 문득 떠오른 듯 소파에 기대어있던 머리를 일으켰지만, 이내 고개를 저으며 다시 소파에 기댔다.

    “됐어, 어차피 이미 집에 들어왔는 걸. 오늘 굳이 또 나가서 다시 찾아볼 필요는 없겠지. 스토커가 거기 또 있을 거라는 보장도 없고.”

    배가 부르니 모든게 다 만족스럽다.

    스토커도 분명 착각.

    아무 일도 아니겠지.

    그런 시에나의 태평한 모습을 바라보던 루크는 턱을 쓸어내리며 중얼거렸다.

    “음, 그런가.”

    뭐랄까, 시에나에게서 조금 글러먹은 어른같은 느낌이 나는 것 같다.

    뭐……. 그녀가 그렇게 생각해서 그렇게 한다면야 상관 없긴 하지만.

    그렇게 오랜만에 느껴보는 포만감을 만끽하며 널부러져있던 시에나가 문득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아, 맞다. 루크. 식사도 했겠다, 너한테 물어보고 싶은 게 있었는데. 괜찮을까?”

    물어보고 싶은 거라?

    ‘역시 그건가.’

    루크는 그녀가 자신과 말하고 싶은 주제가 며칠 전의 테러사태와 관련되어있을 것임을 확신하며 대답했다.

    “그런가? 마친 잘 되었군. 나도 물어보고 싶은 게 있으니까. 이 그릇들만 치우고 바로 가지.”

    “좋아.”

    루크는 이미 설거지가 필요 없을 정도로 깨끗한 그릇을 싱크대에 잘 넣어두고는, 시에나가 자리한 테이블의 맞은편으로 가서 앉았다.

    시에나는 루크가 자리를 잡는 모습을 확인하자 곧바로 용건을 꺼내려 했다.

    “내가 물어보고 싶은 건 있지-”

    -삑삑삑삑–!!

    시에나의 휴대폰에서 요란스러운 알람이 울리기 전까지는.

    “맙소사, 설마 그게 벨소리인가?”

    루크는 반사적으로 귀를 막고 원망의 목소릴 높일 수밖에 없었다.

    미학이라곤 전혀 없는, 그저 알림의 역할만을 수행하기 위한 끔찍한 소음에 대해서.

    시에나는 얼굴을 찌푸린 채 귀를 붙잡고 있는 루크를 향해 정말 미안하다는 듯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아, 정말 미안. 갑자기 서에서 전화가 왔네.”

    “서에서?”

    시에나의 사과에 루크는 하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어른에게 직장에서의 전화라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니까.

    그렇게 간단히 루크에게 양해를 구한 시에나는 잠시 통화를 시작했다.

    “응, 그래. 정말? 좋아, 알겠어. 바로 갈게.”

    -툭.

    통화를 마친 시에나는 뭔가 미안할 일이 생긴 사람처럼 루크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에 루크가 무슨 일이냐며 묻자, 시에나가 대답했다.

    “서에서 동료가 날 부르는 것 같네. 이번 사건하고 복직에 관련해서 전할 말이 있다는 것 같아서. 지금 바로 나가봐야 할 것 같은데, 어쩌지?”

    “그런가? 뭐, 그런 거라면 어쩔 수 없지. 잘 얘기 나누고 오게. 대화는 그 다음에 하지.”

    “그래, 조금만 기다리고 있어.”

    상황을 간단히 전해들은 루크는 시에나가 자신에게 부담갖지 않도록 말해주며 손을 흔들어주었다.

    그러자 시에나는 곧바로 아침에 나갈 때 입었던 트레이닝 복을 그대로 다시 주워입으며 문 앞을 나섰다.

    그러다 문득, 무언가 떠올랐다는 듯이 루크를 바라보며 외쳤다.

    “아, 그리고 절대 안방에는 들어가지 마! 알겠지?”

    “안방을? 어째서?”

    “왜냐면 거긴 경찰의 기밀자료가 있으니까! 아무튼 들어가지 마, 알겠지?”

    갑작스런 시에나의 당부에 루크가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리자, 시에나는 변명거리를 찾다가 대충 대답했다.

    실제론 기밀자료보다는 처참하게 어질러진 꼴을 들키기 싫다는 이유가 더 크긴 하지만.

    그에 루크는 걱정 말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네, 내 되도록이면 그리 하도록 하지.”

    루크의 대답에 시에나는 마음이 급해 잘 들어가지 않는 신발을 고쳐신던 중 더욱 목소릴 높였다.

    “아니, ‘되도록’이 아니라, ‘절대’야! 절대 안돼! 알겠어?”

    그러자 루크는 조금 당황한 듯 대답했다.

    “……알겠네. 그대가 그렇게 말한다면야, 내 그리 하도록 하지.”

    또다시 시에나의 날카로움에 베인 듯 하다.

    ‘되도록’이라는 말의 헛점을 바로 파악해낼 줄이야….

    역시 감은 참 무서운 여자다.

    어쨌든 시에나는 루크의 대답에 만족한 듯 말했다.

    “좋아! 그동안 진짜 얌전히 있어야 한다. 알겠지? 금방 돌아올테니까!”

    그렇게 그녀는 루크의 배웅을 받으며 현관을 나섰다.

    아직 루크의 눈에 이채가 서린 것은 눈치채지 못한 채.

    —–

    시에나가 집을 비운 직후.

    루크는 가방에 담아 가져온 먼지투성이 인형과 반짇고리를 꺼내둔 채 한참을 조물거리더니, 마침내 완성된 인형을 자랑스레 들어올리고는 마력을 주입하며 말했다.

    “자, 이제 일어나거라. 리브.”

    그러자 루크의 손에 들려있던 그 꼬질꼬질한 인형이 서서히 고개를 들었다.

    루크는 그 인형에게 웃음지으며 테이블 위에 내려놓고는 물었다.

    “몸은 어때, 좀 괜찮은가?”

    “…….”

    루크의 질문에 리브는 테이블 위에서 천천히 자신의 몸을 돌아보더니, 이내 사과하듯 루크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아마도, 또 다시 패배한 기억이 떠오른 것이겠지.

    하지만 지금은 그런 리브를 위로하고 다독일 시간이 없었다.

    시에나는 금방 돌아올 것이고, 그렇게 되면 기회는 물건너가는 거니까.

    “리브. 지금은 사과할 때가 아니다. 잘 듣거라.”

    “…….”

    재기동 직후지만 곧바로 주어지는 임무에 리브는 바로 한쪽 무릎을 꿇어앉으며 루크의 명령을 기다렸다.

    명령이라면 슬퍼할 틈도 없는 것, 그것이 리빙아머의 미덕이니까.

    루크는 그 모습에 만족한다는 듯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저 안방에는 기밀자료가 있다. 하지만, 절대 문을 열면 안되고, 자료도 가져오면 안돼.”

    “……?”

    “하지만, 이제 막 재작동을 시작한 리빙아머는 명령을 잘못 해석하고 오작동을 할 수도 있는 거겠지? 그건 정말 어쩔 수 없는 일일거야. 안 그런가?”

    리브는 잠시 루크가 무슨 말을 하는 지 이해하지 못한 듯 했지만, 루크가 안방을 향해 몇번 곁눈질을 하는 것과, 눈을 감고 무언가를 기다리는 듯한 모습을 보고는 마침내 모든 의미를 깨달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휘릭!

    그렇게 리브는 곧바로 루크가 말한 안방의 문을 열고, 엉망진창인 방 안에서 자료처럼 보이는 것들을 잔뜩 집어서 루크의 앞에 가져다 놓았다.

    -툭.

    자신의 앞에 서류들이 놓이는 소리를 들은 루크는 그제서야 눈을 뜨며 되도않는 연기톤으로 중얼거렸다.

    “오, 이런. 이게 다 무슨 일이지? 갑자기 웬 문서가.”

    모든 일련의 과정은 루크가 보지 못했으므로, 이것이 시에나가 보지 말라고 했던 안방에서 가져온 기밀자료인지, 아니면 그냥 여기저기 널려있는 서류인지 전혀 알지 못한다.

    만족스러운 결과에 루크는 곧바로 서류를 집어들고는 리브를 쓰다듬었다.

    “후후후, 정말이지…, 하는 수 없구나. 이번엔 내 친히 너의 오작동을 용서해주도록 하마.”

    “…….”

    그런 루크의 잔꾀를 본 케이트는 질렸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주인, 아무리 그래도 너무 막무가내가 아닌가…….

    “내가 뭘 어쨌다고? 난 리빙아머 오작동의 피해자인데.”

    -…….

    그렇게 둘러댄 루크는 서류의 페이지를 넘기기 시작했다.

    -스륵.

    ‘별나무 아이 실종사건, 오거리 유괴사건, 갈고리 연쇄살인사건 등……

    별의 별 흥미로운 사건이 적힌 문서가 많았지만, 루크가 가장 찾고싶었던 것은 바로 이것이었다.

    ‘타워 테러리스트 사건파일’

    “역시.”

    무조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자신이 정직당한 이유인데, 이 사건을 그냥 넘겼을 리 없으니까.

    ‘케이트에게 이미 대략적인 정보는 전부 듣긴 했지만, 경찰들이 조사한 결과도 확인해두고 싶단 말이지.’

    케이트를 통해 들을 수 있는 건 어디까지나 장면에서 얻어낼 수 있는 단편적인 정보들 뿐.

    인과를 알고 사건의 전말을 알아낼 수 있는 방법은 역시 충분한 조사를 통해 쓰여진 경찰들의 사건파일이었다.

    ‘아직 경찰 데이터베이스에 입력되기도 전의 따끈따끈한 정보로군. 수기로 쓰여진 지 얼마 안 됐어.’

    데이터베이스를 해킹해도 알 수 없었던 자료가 전부 한 눈에 들어오도록 잘 취합된 문서로 손에 들어왔다.

    루크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서류를 넘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탄식하고 말았다.

    “케이트.”

    -불렀나?

    “저택에 올 때, 인지방해 마법은 어떻게 했었나?”

    -이미 꽤 많이 망가져있었지. 아마…. 한계 였을거라고 생각한다.

    “…….”

    루크는 잠시 얼굴을 짚었다.

    설마, 다들 케이트를 보고 그렇게 오해를 했을 줄이야.

    물론 그녀의 외모를 보면 그런 오해를 하는 것도 이해는 간다.

    그녀는 자신을 베이스로 만들어낸 새로운 육체에다, 부족한 부분에 부품을 채워넣어 만들어낸 생체인형이었으니까.

    거기다 남아있던 머리카락이나 피부 등의 현장증거가 유전적 유사성을 뒷받침했기 때문인지, 경찰에선 ‘케이트’는 이미 자신의 숨겨진 친모로 잠정 결론이 나버린 모양이다.

    어쩐지, 다른 가족들이 갑자기 가족이 어쩌고, 중요한건 지금이 어쩌고 하더니… 설마 이것 때문이었던건가?

    “오기 전에 고쳤어야지…. 나의 신분과 테러리스트의 신분이 연결되면 안된다고, 내가 누누히 말했잖느냐….”

    -그러고 싶었지만, 그러기 전에 이미 우연히 시루드를 만나고 말았다. 그 뒤엔, 급해서 그럴 시간이 없었다. 그리고….

    “그리고?”

    -‘엄마’라는 오해를 정정하지 않은 건 레니에였다. 그래서 나는 막을 수가 없었지.

    그래.

    또 레니에인가.

    “하…….”

    예전에 ‘누가 엄마인가?’라는 주제로 가볍게 말다툼을 한 적이 있었는데, 설마 이건 그 복수인걸까?

    결국 루크는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한숨을 푹 쉬고 말았다.

    그래, 마음대로 생각하라고 하자.

    어차피 다들 죽었다고 생각하는 거라면, 자신이 나중에 딱히 신경쓸 것도 없을 테고.

    루크는 레니에를 대신해 아린세이아를 운용하는 케이트에게 명령했다.

    “차라리 잘 됐다고 치자. 일단, 해킹상태를 유지해서 당분간 이 자료가 데이터에 등록되는 걸 막게. 우리가 읽을 수 있다면, 루체스트에서 읽을 수도 있는 거니까. 최소 일주일 정도는 막아두게.”

    -알겠네, 주인.

    그렇게 케이트가 작업을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다시 케이트로부터 통신이 들어왔다.

    -주인, 시에나가 나갈 때 전화를 걸어온 것이 확실히 경찰서라고 했었나?

    케이트의 난데없는 질문에 루크는 의아한 듯 되물었다.

    “음, 그랬다만. 문제 있나?”

    루크가 묻자, 케이트는 여전히 잘 모르겠다는 듯 대답했다.

    -하지만 경찰서의 통화기록엔, 그녀에게 전화한 기록이 없는데.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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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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