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551

        

         

       진성은 가만히 불기둥을 바라보았다.

       1층에서부터 시작해 이 층까지 피어오른 불기둥.

       불기둥의 끝은 천장에 닿아 있었고, 물이 거꾸로 쏟아지는 것처럼 불은 천장을 통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넘실거리는 물결이 땅을 집어삼키며 물길을 만들고 연못을 만들 듯 불길은 천장을 머금으며 불의 웅덩이를 만들어내었고, 벽면을 타고 흐르며 불기둥을 만들어내었다.

       지금 이곳은 불의 바다요, 불의 뱃속이다.

         

       그리고 그 시작점.

       기둥에, 장작이 타오른다.

       장작이 계속해서 들어가고, 타오르며 불이 몸집을 불릴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것도 남이 넣어주는 것도 아니고 자진해서 들어가 불을 높이니.

       아, 어찌 갸륵해 하지 않을 수 있으랴?

         

       참으로 갸륵하고도 감탄스럽다.

         

       그리고 지금 또 다른 장작이 들어갔다.

       물론 이 장작은 앞서 들어간 것들과는 조금 다르기는 하지만….

       불기둥에 스스로 제 몸을 던진 것임은 분명하니.

         

       이 역시 좋은 일일 것이로다.

         

       다만 대답은 듣지 못하였으나.

         

       뭐, 상관없는 일이겠지.

         

       잿더미가 되어버린 배가 그 가치를 잃어버렸듯.

       아무것도 남기지 아니하고 증발한 이에게 무슨 가치가 있겠는가.

         

         

         

         

        * * *

         

         

         

       [ 치지직- 치지지직- 치지지지지지직—- ]

         

       타닥.

       타다닥.

         

       루카스는 보았다.

       귀를 찢어버릴 듯 가득한 소음 속에서, 눈을 멀게 할 것 같은 뜨거운 열기와 빛 속에서도.

       그는 똑똑히 보았다.

         

       [ 치지지지직- 치지지지지직- ]

         

       그를 습격했던 또 다른 존재.

       SF 영화에서나 등장할법한 킬러 로봇 같았던 존재가, 죽었다.

         

       그는 노이즈가 가득한 무전기를 전화기처럼 귀 근처에다가 꽂았고, 1분만 들어도 정신이 나가버릴 것 같은 시끄러운 노이즈 소리와 찢어질 듯한 고주파 음을 무슨 명령이라도 되는 것처럼 듣고 움직였다.

         

       그는 눈을 감았다.

       누가 봐도 눈을 떼서는 안 될 것 같은 외형을 가진 사람을 코앞에 두고서, 눈을 감았다.

       그리곤 화를 주체하지 못하는 멧돼지처럼 벽에 돌진하고, 방향을 틀고, 돌진하고….

         

       그것을 반복하고 또 반복하다가.

       …불기둥으로 뛰어들었다.

         

       하.

       그 광경이란 정말 황당하면서도 끔찍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다.

       앞서 광신도들이 불에 몸을 던졌을 때보다도 더더욱.

         

       앞서 광신도들은 금방 타올라 버렸다.

       저 불기둥의 온도가 몇 도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의 몸을 집어삼키고 그들을 잿더미로 만들어버렸다.

       아니, 잿더미가 되기는 했는지도 의문이다.

       증발하는 것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으니까.

         

       그런데 남자는 달랐다.

       몸 안에 있는 기계 때문일까?

       남자는 마치 영화 속에서 로봇이 용광로에 떨어져서 녹는 것처럼, 천천히 타올랐다.

       가장 먼저 사람을 이루던 부분인 가죽과 근육이 순식간에 타올랐고, 금속으로 이루어진 기계 부분이 녹아내렸다. 그 광경은 순식간에 사라진 광신도들과는 다르게- 루카스의 눈으로도 충분히 볼 수 있는 것이었다.

         

       그 광경은 현실감을 없애버리는 듯하였지만, 코에 느껴지는 달콤한 냄새와 살이 타는 냄새가 다시 그를 현실로 끌고 왔다.

         

       그 기분은 참 더러운 것이었다.

         

       악몽이 갑자기 현실이 되는 기분이었다고 할까.

         

       게다가 더 끔찍한 것은, 남자가 불에 타오를 때 지었던 그 표정이다.

         

       안도감.

         

       그 남자의 얼굴에는, 안도감이 피어올랐다.

       마치 위험한 곳에서 빠져나온 것처럼.

       온갖 고초를 겪다가 보금자리로 돌아온 것처럼.

       비바람을 맞다가 마침내 구름이 걷히고 해가 떴을 때 미소를 짓는 것처럼.

         

       그 남자는, 분명히 웃고 있었다.

         

       그 웃음은 무언가를 놓은 것도 아니고, 죽음을 담담하게 맞이하는 것도 아니었다.

       미래를 꿈꾸는 자만이 지을 수 있는 표정.

       일상에서의 즐거움을 아는 자만이 지을 수 있는 표정.

       살아가는데 조미료가 될 수 있는 취미 생활을 하려는 이들이 짓는 그 표정.

         

       그 표정이었다….

         

       불기둥에 휩싸이면서 그런 표정을 짓다니.

       산채로 불에 타들어 가면서 그런 표정을 짓다니.

       고통에 울부짖기는커녕, 그딴 표정이라니.

         

       꿈에서라도 잊을 수 없는 그 광경은, 정말…. 형용하기가 힘든 것이었다.

         

       그리고 이는 루카스만이 가지고 있는 감상이 아니었다.

         

       “…젠장.”

         

       불에 몸을 던지지 않은 또 다른 사람.

       무인이 있었다.

         

       무인은 불기둥을 보면서 소름이 끼친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눈동자를 굴려서, 고개를 슬쩍슬쩍 굴려서 루카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정정한다.

         

       노려보고 있었다.

       명백한 증오를 담아서.

       끔찍한 살의를 품은 채, 금방이라도 목덜미를 물어뜯을 것 같은 눈으로 말이다.

         

       하지만 남자는 루카스에게 달려들지 못했다.

       달려들 수 있는 몸 상태가 아니었으니까.

         

       그는 불기둥에 홀리지 않았고, 불에 몸을 던지지 않았다.

       하지만 참으로 애석한 일이다.

       그는 불에 관심이 없었지만, 불은 그에게 큰 관심이 있었다.

         

       사방에 퍼져나간 불은 남자를 덮쳤고, 그에게 끔찍한 화상을 남겼다.

       대체 무슨 성질을 품고 있는 건지, 몇 도나 되는 건지 모르는 불꽃은 남자를 순식간에 무력화시켰다.

         

       손과 장갑을 엉겨 붙게 했고, 손가락이 펴질 수 없도록 녹인 뒤 접착했다.

       근육 곳곳이 타들어 가거나 녹아내렸고, 그 결과 그는 다리를 제대로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게다가 그가 가지고 온 무기들 역시 불에 휩싸여서 녹아내리거나 다른 물건과 한데 뭉쳐서 쓰레기가 되었고, 도저히 무기로 쓸 수 없게 되어버렸다.

         

       무인은 그렇게 무력화되었다.

       너무나 허무하게도 말이다.

         

       그가 복수의 칼날을 갈아온 시간은 아무런 가치가 없었다고 말하는 것처럼.

       그의 인생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었다고 소리치기라도 하는 것처럼….

         

       하지만.

         

       “용케도 홀리지 아니하였다. 육신의 경지는 높지 아니하나 정신은 그를 한참 뛰어넘었으니, 육신이 정신을 따라갈 수 있었다면 능히 경지를 이루었을 인재로구나.”

         

       그의 가치를 이해한다는 듯 다가오는 이가 있었다.

       그는 무인의 삶이 가치가 있었다고 말하고 있었고, 그의 정신력에 찬사를 보내고 있었다.

       무인을 존중하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고, 그의 얼굴에서는 비아냥이나 조롱 따위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뛰어난 정신력을 가진 이에게 보내는 찬사.

         

       오직 그것만이 있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무인을 존중하는 저 존재는….

         

       “주술사….”

         

       무인을 지금 이 꼴로 만든 장본인이며, 그의 정당한 행사를 막은 방해꾼이다.

         

       자세한 것은-잘은 모른다.

       앞서 불기둥에 몸을 던진 놈들이라면 알지 모르겠지만, 무인은 저 주술사에 대해서 자세하게는 알지 못했다.

       그냥 루카스가 주술사를 고용했다는 것만을 알고 있었으니까.

         

       “루카스를, 지키려고 왔나…?”

         

       어처구니가 없다.

       주술사라는 존재가 기기묘묘한 기술을 부린다는 이야기를 들어왔었기에 혹시 모를 변수를 피하려고 그가 사라질 때까지 기다렸다. 노숙자로 분장한 채 건물을 끊임없이 관찰했고, 그가 사라졌다는 것을 깨닫자마자 뛰어왔다.

       그런데 이 꼴이다.

         

       이건, 함정에 뛰어든 쥐 같지 않은가.

       너무나 어이가 없고…. 하.

         

       허무하다.

         

       너무나, 허무했다.

         

       ‘루카스를 노리는 놈들을 한 번에 솎으려고 이딴 함정을 파다니. 루카스의 꾀인가? 아니면 저 주술사의 꾀인가? 하, 젠장.’

         

       무인은 주술사를 바라보았다.

       앳되어 보이는 얼굴이 눈앞에 있었다.

       루카스가 아니었다면, 그가 자신의 인생을 이렇게 망가뜨리지 않았다면 저런 손자를 보지 않았을까?

       저 정도 외모라면 주니어 하이(Junior High)에 다니는 학생 느낌이니까 분명히 그랬을 것이다.

         

       ‘그래. 복수하지 못하는 건 아쉽지만, 빌어먹을. 이렇게까지 완벽하게 당했다면 어쩔 수 없지.’

         

       무인은 눈을 감았다.

         

       손을 어떻게든 움직일 수 있었다면, 다리를 움직일 수 있었다면.

       하다못해 꽉 막혀있던 경지가 갑자기 기적처럼 확 뚫려서 루카스를 썰어버릴 수라도 있었다면.

       그랬다면 발버둥이라도 쳤을 테지만….

         

       그의 몸은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이딴 몸으로 뭘 할 수 있겠는가?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

       패배를 얌전히 받아들이는 것뿐이다.

         

       ‘빌어먹을, 무인의 자세니, 뭐니 하는 걸 들을 때마다 그렇게 진저리를 쳤는데. 딱 내가 그렇게 죽는군.’

         

       그는 눈을 감은 채 진성의 손길을 기다렸다.

       불꽃이 그의 몸을 태우기를.

       그가 알 수 없는 주술을 부려서 자신의 목숨을 거두기를 말이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진성은 그의 목숨을 거두지 않았다.

         

       대신에, 손가락을 움직여 그의 눈꺼풀을 들어 올려 자신을 바라보게 한 뒤,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물었다.

         

       “소원이 있구나.”

         

       그 미소는 마치 사악한 존재의 그것을 보는 것 같아서.

         

       “무엇을 원하여 이곳에 방문했는고?”

         

       램프를 문질렀을 때 나오는 사악한 진(جن)을 보는 것만 같아서.

         

       그래서 무인은 주술사의 질문에 답을 할 수밖에 없었다.

         

       “…루카스에 대한 복수다.”

         

       그리고 그 소원을 들은 이는 웃었다.

       그 정도는 어렵지 않다는 듯 말이다.

         

       그리곤 몸을 일으켜 루카스를 향하여 걷기 시작하였는데.

       아, 그 모습에 무인은 그의 뒷모습을 절로 쫓을 수밖에 없었다.

         

       눈동자를 움직여서, 고개를 틀어서.

       엄습하는 고통과 굳어버린 관절에서 느껴지는 파열음을 견디면서.

       그는 루카스에 다가간 진성을 주시하였다….

         

       

         

       

       

    다음화 보기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