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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52

        

       진성은 루카스에게 다가갔다.

       소리 없이.

         

       본래 구두가 바닥에 닿으면 응당 소리를 내어야 하건만.

       그의 발은 땅에 닿기 무섭게 모래알처럼 부서졌고, 벌레로 부서졌다가 다시 합쳐지며 구두의 형상을 만들어내었다. 그리고 그렇게 부서지는 소리와 합쳐지는 소리는 참으로 고요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으니, 루카스는 오직 화염이 타오르고 불기둥이 솟구쳐 오르며 내는 맹렬한 소리만을 들을 수 있었다.

         

       그렇게 발이 없는 귀신처럼 루카스의 앞에 도달한 진성은 그와 눈을 마주 보았다.

         

       “….”

         

       루카스는 진성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 눈에는 형언할 수 없는 것을 보았을 때 느끼는 공포심, 이해할 수 없는 것을 보았을 때 느끼는 미지의 감정, 거기에 괴한에게서 자신의 목숨을 구할 수 있었음을 깨닫고서야 차오르기 시작한 안도의 감정, 그리고 자신을 구해준 진성에 대한 고마운 감정, 그리고 자신의 앞에 도달한 이 기괴한 주술사가 무엇을 할지 모른다는 경계심까지.

         

       수많은 감정이 그의 얼굴에 소용돌이쳤다.

         

       “루카스 메타트로니우스 골드스미스(Lucas Metathronius Goldsmith).”

         

       진성의 입에서 나온 것은 루카스의 풀네임이었다.

       그는 가면이라도 쓰고 있는 것처럼 미소를 짓고 있는 얼굴로, 루카스의 이름을 입에 담았다.

         

       “그거 아는가? 사람은 자신의 것이면서도 남이 더더욱 많이 사용하는 것이 있다네. 혹시 그 답을 아는가?”

         

       그리고 뒤이어 나온 것은 뜬금없는 질문이었다.

       옛날 이집트에 있었다는 스핑크스나 낼법한 퀴즈 말이다.

         

       “이름. 이름은 자신의 것임에도 스스로 사용하는 것보다 남이 더더욱 많이 사용하곤 한다네. 참으로 특이한 일이지 않은가?”

         

       루카스가 갑작스러운 질문에 대답하지 못하고 있자 진성은 루카스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바로 답을 말했다. 그리곤 방긋 웃으며 몸을 낮추기 시작했다.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루카스와 시야를 맞추기 위해서.

         

       “그렇기에 옛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했다네. 이름이란 것은 힘이 있다고, 말이네.”

         

       그렇게 진성의 몸이 낮아진다.

       다만 그것은 다리를 굽히는 것도 아니고 허리를 숙이는 것도 아니라.

       그의 발 부분이 흩어져 내리며 사라지며 절로 몸이 낮아지는 것이었다.

         

       “영웅의 탄생에 대해 아는가? 왕의 탄생에 대해 아는가? 영웅은 많은 이들의 입에서 오르내리며 그 위업을 인정받으며 추앙받으며 탄생하는 것이고, 왕은 많은 이들에게 추대받으며 올라가기에 탄생하는 것이지. 말하자면, 그래. 남의 입에 많이, 긍정적으로 담기면서 되는 것이라고 보아도 되는 것이야….”

         

       다리가 점차 흩어진다.

       양복바지처럼 보였던 것들은 새까만 벌레로 변해서 바닥을 물들였고, 구두처럼 보였던 것들은 여섯 개의 다리를 움직이며 제자리를 찾아갔다. 마치 소금기둥이 물에 닿자마자 녹아내리는 것처럼, 그렇게 진성의 다리가 점점 녹아내렸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이름 역시 힘이 있다고 보았네. 다른 사람의 입에 오르고, 다른 사람에게 사용되고…. 그렇게 특별한 힘을 지니고 있다고 본 것이야. 동양과 서양을 막론하고, 이러한 주술적 사고관은 어느 문명에나 존재해왔다네.”

         

       그렇게 다리가 완벽히 분해되고 나서야 진성은 루카스와 편히 눈을 마주 볼 수 있었다.

         

       다만, 그 기괴함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라.

       그렇기에 루카스는 진성과 같은 미소를 지을 수가 없었다….

         

       “어떤 지역에서는 좋은 이름을 내리면 사악한 존재들이 시기한다고 생각하며 천한 이름을 붙여주었지. 어떤 곳에서는 이름을 함부로 알리면 저주를 받을 수도 있다고 여겨서 칭호와 같은 것으로 활동하고, 진정한 이름은 오직 자신만이 지니고 다니기도 했지. 어떤 지역에서는 신의 가호를 얻기 위하여 그들과 관련이 있는 이름을 붙이기도 하였고, 어떤 지역에서는 감히 신의 노여움을 사지 않기 위하여 신의 위엄을 침범할 것을 금기처럼 여기었지….”

         

       하지만 진성은 루카스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든 간에, 계속해서 웃고 있었다.

         

       “하지만 하나 확실한 것이 있다면 이름은 그냥 지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 그 어떤 이름이라고 할지라도 나름의 뜻이 있고, 상징이 있고, 의미가 있고, 힘이 있다는 사실이네. 그런 의미에서 자네의 이름은 꽤 인상이 깊은 것이지.”

         

       웃는다.

       웃음을 짓는다.

       작게 열린 입은 호선을 그리고, 입에서 나온 말은 온화하기 짝이 없다.

       그러면서도 그 틈새에서는 벌레들이 기어 나왔고, 다리가 분해되며 갈 곳을 잃어버린 벌레들이 그의 몸을 타고 다닌다. 그렇게 타고 다니던 벌레들은 그의 입 안으로 들어가기도 하고, 텅 비어버린 그의 머릿속을 채워가기도 한다.

       그 모습은 정말로 기괴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다.

         

       아, 송장에 벌레들이 들락날락하는 모습이 딱 저러하지 않을까.

       생리적으로 혐오감마저 드는 모습이다.

         

       “루카스. 깨달은 자, 광명을 가져오는 자, 빛, 조명…. 좋은 뜻을 가진 이름이지.”

         

       루카스는 차마 그 모습을 보기가 힘들어 눈을 감고 싶었다.

       하지만 눈을 감을 수가 없다.

       어째서인가?

       어째서 눈을 감을 수가 없는가?

         

       “메타트로니우스. 인간과 하나님을 연결해주는 자. 옥좌에 모시고 있는 자이자 계약과 약속의 주관자. 불기둥으로 길을 인도하였고, 위대한 존재의 힘과 위엄을 뜻하는 존재이자 찬란한 불꽃. 이 역시 참으로 좋은 이름이지. 루카스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뜻이 아닐 수가 없다네.”

         

       눈꺼풀이 닫히지를 않는다.

         

       “골드스미스. 이 역시 나쁘지 아니하지. 금이란 찬란히 빛나고 영원히 반짝이는 것이니. 이 역시 밝고 빛나는 것을 뜻하는 것이 어찌 좋은 뜻이 아니랴? 또한 그 뒤에 대장장이라는 뜻이 붙었으니, 금을 조형하는 이라는 뜻이 되니 이 역시 참으로 좋은 것이라. 모든 것이 밝게 빛나는 것을 뜻하는 것이니, 참으로 밝고도 밝은 이름이로다. 좋은 이름이로고, 참으로 좋은 이름이로고.”

         

       눈꺼풀이.

       눈이….

         

       루카스는 사람이라기보다는 사람을 닮은 기괴한 무언가로 보이는 진성의 모습에 질겁하며 발버둥을 쳤다. 하지만 눈은 닫히지 않았고, 몸은 움직이지 않았고, 호흡마저 가빠지는 것을 느꼈다.

         

       호흡이.

       호흡이 가빠진다.

         

       과호흡인가?

       신경증 때문에 일어나는 과호흡인가?

         

       일찍이 이러한 일들을 몇 번 겪었기에 과호흡의 느낌은 제대로 알고 있다.

       알고는 있는데.

       숨이 막히고, 손끝이 저려오는데.

         

       이게 과호흡이, 과호흡이 맞나?

         

       “하지만 자네는 알아야 할 것이네. 찬란하게 빛나는 것은 사람을 현혹하고, 좋지 않은 것들을 끌어들인다는 사실을 말이네. 한밤중에 밝게 켜진 가로등에 벌레가 잔뜩 꼬이는 것처럼, 모닥불에 벌레들이 날아와 제 몸을 던지듯이, 찬란한 금의 빛에 현혹되어 수많은 이들이 욕망을 이기지 못하고 손을 뻗듯이. 사람의 눈을 현혹하고 유혹하는 것은 그만한 위험이 존재하는 것이네.”

         

       진성의 손이 뻗어졌다.

       새하얗고 가느다란 손가락.

       험한 일이라곤 해보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손가락이다.

       그런데, 그 손가락이…손가락이 변한다.

         

       천천히 움직이는 그 손은 루카스에게 다가갈수록 변해간다.

       마치 꽃봉오리처럼, 마침내 만개하기 시작하는 꽃봉오리처럼 끝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그렇게 벌어진 손끝이 갈래갈래 갈라지고, 그렇게 만들어진 틈에서 날카로운 바늘과 같은 것이 튀어나온다.

       그리고 그 바늘의 끝에서 투명한 액체가 흘러나오고 방울진다.

         

       저 액체가 무엇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저렇게 튀어나온 것이 이로워 보이지는 않아서.

       이 분위기와 맞물려 너무나도 불길하게 느껴지는 것이라서.

       루카스는 눈을 부릅뜨고 반항하려 애를 썼다.

         

       하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도리어 조금 전까지 손끝만 저렸던 것이 몸 전체가 저려오기 시작하였고, 호흡이 점점 가빠지고 있었다.

         

       “물론 자네의 이름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니야. 찬란한 빛은 위험을 불러오기도 하지만 다른 사람의 선망을 사기에도 충분한 것이니 말이네. 그렇기에 자네는 부를 쌓을 수 있었고, 질투와 선망 속에서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이 아니겠는가? 게다가 그 빛이 어찌나 찬란한지 나와도 연이 맺어지고 이 자리에 있게 하였으니, 아. 이름이란 이토록이나 특별하고 또 특별한 것이로다….”

         

       갈라진 진성의 손가락이 꿈틀거린다.

       몇 갈래로 찢어져 가느다랗게 변해버린 손끝은 제각기 살아있는 것처럼 꿈틀거렸고, 촉수가 되어 길게 늘어졌다. 그리곤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루카스의 입가로 향하여 그의 입을 벌렸고, 마치 개구기라도 되는 것처럼 그의 입을 확장했다.

       그리고 그렇게 벌어진 입 안으로 바늘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바늘이, 잇몸으로 향한다….

         

       “다만, 그래. 과할 정도의 빛은 득은커녕 오히려 해가 되는 것이라, 이것이 바로 과유불급이 아니겠는가. 머리 위에 떠 있는 태양이 사시사철 밝게 빛을 발하면 그 어떤 작물이 제대로 자라날 수 있으랴? 그 어떤 동물이 대를 이어가며 그 명맥을 이어갈 수 있을까? 바다가 끓어오르고 땅이 녹아내릴 것이 분명하지 않겠는가. 그러하니 낮과 밤이 존재하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더도 덜도 없는 신묘한 자연의 이치이니라.”

         

       바늘은 소리 없이 루카스의 어금니 쪽 잇몸에 파고들었다. 그리고 잇몸 깊숙한 곳까지 움직인 뒤, 투명한 액체를 그 안에 흘려 넣었다.

         

       “그런 의미에서, 자네는 좀 쉬어야 할 것 같으이.”

         

       루카스는 떨리는 눈으로 진성을 바라보았다.

       대체 나에게 왜 이런 일을 하는 것이냐고.

         

       그리고 그 무언의 질문에 대한 대답은.

         

       “잘 자게.”

         

       없었다.

         

         

         

        * * *

         

         

         

       풀썩.

       루카스는 너무나 쉽게 무너졌다.

         

       그것을 지켜보던 무인은 루카스가 어떻게 되었는지 대략 짐작하곤 기분 좋은 듯 비틀린 미소를 지었다.

       그리곤 자신에게 다가오는 진성을 보며 물었다.

         

       “…대충 알겠다. 목격자를, 없애는 것. 맞지?”

         

       진성은 무인의 물음에 방긋 웃었다.

         

       그 웃음은 소리가 없음에도 그 의도가 너무나도 잘 전해지는 것이라서.

         

       그렇기에 무인은 눈을 감았다.

         

       푸욱.

         

       그렇게 감긴 눈은 다시는 뜨이지 않았다.

       잇몸에 바늘이 꽂힐 때도.

       감히 이길 수 없는 졸음이 그를 덮칠 때도.

       마침내 세상이 검게 변할 때까지도.

         

       영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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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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