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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53

    마침내 도착한 세레나의 집.

    사시사철 온화한 기후로 유명한 베리튼의 날씨는 한겨울인 에이레스와는 달리 상당히 포근했다.

    덕분에 아이들은 한결 가벼워진 옷차림으로 신나게 뛰어놀며 땀을 흘렸고, 무성한 풀을 헤집고 다니며 잔뜩 몸을 더럽혔다.

    예르나는 그런 아이들을 씻기느라 조금 애를 먹었지만, 그녀의 어머니인 세레나는 그런 예르나를 도와 능숙한 솜씨를 보여주며 예르나를 감탄케 했다.

    평온한 오후, 따스한 햇빛과 함께 가족과 있으니 마치 휴양지에 온 것처럼 마음이 놓인다.

    식사를 마치고 식기를 정리할 무렵, 세레나가 다이튼에게 다가와 미안한 기색을 보였다.

    “밥상에 풀밖에 없어서 미안하네. 인간은 그 몸을 유지하려면 단백질도 꽤나 필요할텐데.”

    “아니에요, 전 괜찮습니다.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장모님.”

    “어머, 장모님이라니. 후훗, 듣기 좋네.”

    다들 고기를 그렇게나 잘 먹을 줄 몰랐다며 재료를 많이 준비하지 못한 세레나가 사과하자, 다이튼은 별 신경쓰지 않는다며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예르나와 결혼한 뒤로는 식단에서 단백질을 점차 줄여가는 추세였기 때문에, 그렇게 큰 문제는 아니었다.

    그러자 세레나는 재미있다는 듯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다들 그렇게 먹성이 좋을 거라곤 생각도 못했어. 딸도 그렇게 고기를 먹을 줄은 몰랐고.”

    아무래도 인간과 엘프의 혼혈을 임신했기 때문일까, 예르나는 평생 입에도 댄 적 없던 고기를 몇점이나 먹었다.

    뱃속의 아기가 먹고싶다고 하는 모양인데, 인간 아이를 임신하면 평생 식물만 섭취하는 엘프라도 식성이 변한다는 것이 참 생명의 신비가 아닐 수 없다.

    다만 아무리 식성이 변했다고해도 위장의 상태가 변한 것은 아니라 육류를 분해하는 능력은 여전히 부족했기 때문에, 예르나는 엘프전용 소화제를 먹고 조금 쉬는 중이었다.

    다이튼은 그녀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살짝 곁눈질해 보았다.

    그녀는 창 밖으로 해가 지기 시작한 노란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시선이 어딘가 공허하게 느껴졌다.

    꽤나 신경쓰이는 느낌에 다이튼이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자, 세레나가 그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나머지는 내가 치울테니, 딸애에게 가보렴.”

    “아, 네. 장모님.”

    다이튼은 세레나의 배려에 고개를 숙여 고마움을 표출한 뒤, 조용히 예르나를 향해 다가갔다.

    -스윽….

    “지금 무슨 생각 해?”

    곁으로 다가온 다이튼의 물음에, 예르나는 여전히 노을의 빛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대답했다.

    “요즘 그런 생각이 든단 말이지, 자꾸만 루크가 우리하고 멀어지는 것 같다는 생각.”

    최근, 루크가 어쩐지 자신들과 거리를 두는 것 같다고 느꼈다.

    실제로 최근 바빠져서 루크와 함께 무언가를 하는 시간이 줄어들기도 했고, 루크도 그 사실을 알고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그러는 것이라는 건 알지만….

    그래도 어딘가 전과는 다른 느낌이 예르나의 마음 한켠에 자리잡고 있었다.

    아니, 루크는 어쩌면 달라지기는 꽤 오래전에 이미 달라졌을지도.

    옛날의 루크는 그저 가족과 함께 소중한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느낌이었다면, 최근의 루크는 마치 가족을 위해 무언가를 해내야한다는 강박에 빠져있는 것 같았으니까.

    “우리가 루크에게 너무 부담을 주는걸까? 아니면, 내가 루크에게 부족해서 그러는걸까.”

    “예르나….”

    예르나는 시에나의 집으로 짐을 갖고 떠나던 루크의 모습을 떠올리며 한숨을 쉬었다.

    “그냥, 루크도 여기 함께 왔으면 참 좋았을 텐데.”

    예르나가 아쉽다는 듯 중얼거렸다.

    지금도 분명 행복하고 좋지만, 루크가 없으니 어딘가 부족한 느낌이 든다.

    루크를 본 것은 고작 1년인데, 루크는 벌써 예르나의 마음 깊은 곳에 들어와있었다.

    아마도 이게, ‘엄마’라는 거겠지.

    다이튼은 동의한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그러게, 또 어디서 무슨 사고라도 치고 다니는 거 아닌가 몰라.”

    다이튼은 그동안 루크가 혼자 있다가 벌어진 터무니없는 사건들을 떠올리며 진저리를 쳤다.

    어째 자신들이 자리를 비우기만 하면 기가 막히게 사건에 휘말리는 것이, 사건이 루크를 찾아온다기보다는 거의 스스로 사건을 찾아서 들어가는 수준이었으니까.

    뭐, 루크도 좋아서 그러는 건 아니겠다만….

    “그래도 이번엔 괜찮을거야. 게다가, 며칠만 있으면 올 텐데 뭘.”

    “음…, 역시 그렇겠지?”

    이번엔 시에나도 있고, 역시 별 일은 없을 거야.

    그 무렵, 루크는 시에나를 찾아서 골목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시에나는 루크가 타고 온 자전거의 짐 싣는 용도의 뒷자리에 앉아 한숨을 쉬었다.

    “하아, 어떻게 왔는진 모르겠지만, 정말 고마워. 하마터면 큰일 날 뻔 했어.”

    “큰일은 무슨, 내가 갔을 땐 이미 거의 다 처리했던데.”

    루크는 시에나를 찾아낸 당시의 장면을 떠올리며 말했다.

    누가 예르나의 친구 아니랄까봐, 그녀는 이미 혼자서 꽤 많은 인원을 쓰러트린 상태였다.

    지팡이는 커녕 제대로 된 호신용 무기도 가지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 그정도였으니, 아마 자신의 도움이 없었더라도 도주 자체는 가능했을 것이다.

    그리고 루크는 질문을 이어나갔다.

    “그런데, 정말 그들이 모두 경찰이라고?”

    “그래, 맞아.”

    시에나는 이를 갈며 대답했다.

    자신을 습격한 그 괴한무리, 전부 경찰이었으니까.

    자신의 부하인 램튼외에도 다들 한두번 공조한 적이 있는 익숙한 얼굴의 사람들이라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루크에게도 상당한 걸림돌이었다.

    그냥 뒷골목 시정잡배들이면 몰라도, ‘경찰’을 불구로 만들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아무리 부패했다해도 결국 공권력은 공권력, 자칫 대응을 잘못하면 큰 문제로 번지게 될 소지가 있었다.

    루크는 곧바로 질문을 이어나갔다.

    “허면, 대체 경찰들이 왜 그대를?”

    “그건 나도 모르지.”

    그 이유는 시에나도 알 수 없어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설마 현장직 경찰이 사건 하나 해결 못했다고 숙청이라도 하려고 하는 건 아닐테고.

    뭔가 뒤가 구린 구석이 있다는 얘긴데….

    그렇다면 흑막은 역시 ‘루체스트’인가?

    그런데, 대체 왜 이런 식으로?

    “윽!”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던 시에나는 돌연 복부를 움켜쥐며 신음을 흘렸다.

    아무래도 칼을 피한다고 피했는데 미처 대처하지 못하고 찔렸던 모양이다.

    “…….”

    복부에 가져다 댄 손바닥을 슬쩍 내려보니, 찔린 부위와 손바닥이 피로 흥건하다.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루크가 시에나를 향해 물었다.

    “시에나? 왜 그러지? 혹시 다쳤나? 피 냄새가 나는 것 같은데?”

    “아니, 별거 아냐. 조금 긁혔나 봐. 집에서 반창고 좀 붙이면 낫겠지.”

    “그래?”

    시에나는 루크가 당황하지 않게 적당히 허풍을 쳤다.

    아무래도 당황해서 페달을 밟는 발이 꼬이기라도 하면 큰일이니까.

    시에나는 자신을 뒤에 태우고도 꽤나 안정적이고 빠른 속도를 내는 루크에게 감탄하며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자전거 꽤 잘 타는데? 자전거 타는 법은 또 언제 배운거야?”

    “타기는 바로 어제 타기 시작했지.”

    “…뭐? ” 

    자전거를 어제 배운 사람 치곤 자세도 안정적이고 숨도 차는 것 같지 않은데?

    혹시 이건 루크식 농담인걸까?

    어쩌면 루크도 꽤나 허풍이 심한 성격일지도 모른다.

    시에나가 그렇게 당황하고 있는 사이, 루크도 나름대로 머릿속으로 상황을 분석하고 있었다.

    ‘그래, 대충 알 것 같군.’

    그녀가 경찰의 타겟이 된 이유, 아마도 ‘루체스트’가 손을 쓴 것은 확실하다.

    오는 길에 경찰청 데이터베이스를 조금 더 살펴봤는데, 그녀의 자료 열람기록에서 ‘루체스트’라는 키워드를 다수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자신이 확인할 수 있었다는 건, 상대도 확인할 수 있었다는 소리다.

    결국 루체스트도 그것을 알았고, 이미 타워에서의 정황도 있던 그들은 경찰의 손을 빌려 시에나를 처리하려고 했다.

    여기까지는 그래, 자연스럽다.

    다만 루크가 한가지 의문스러운 점은, 왜 굳이 시에나를 밖으로 불러내서 동료들의 손으로 처리하려고 했느냐는 것이다.

    어차피 시에나를 ‘처리’하려고 했던 거라면, 어렵게 밖으로 불러낼 필요도 없이 집으로 찾아와서 해결하는 것이 더 쉽고 간편하지 않나?

    반항이 예상된다면 독극물이나 수면제를 이용해서 처리하면 되고.

    함께 생활하는 가족이 없는 시에나는 윗분들이 마음먹기에 따라 얼마든지 불운한 사고를 조작할 수 있다.

    게다가 그녀는 경찰 내부의 인물이니, 말을 맞추는 것도 어렵지 않을 것이다.

    어떻게봐도 그녀를 이렇게 ‘유인’할 필요는 없어보인다.

    하지만 그들이 마침 시에나에게 ‘손님’이 있다는 걸 알아버리고 말았다면 이야기는 또 다르다.

    몇시간 전, 그들은 시에나를 처리하러 나왔다가 그녀가 우연히 ‘손님’과 함께 있는 장면을 보았다.

    그들은 어느정도 미행을 통해 그 손님이 그녀의 집까지 함께 들어가는 것을 확인했고, 결국 계획을 바꾸기로 했다.

    경찰 외부인인 손님이 있는 한 그녀를 집 안에서 은밀히 처리하는 것은 어려우니까.

    그렇다고 손님까지 함께 처리하자니, 손님의 정체에 따라 이후 사건이 탄로날 때의 리스크가 너무 커지지.

    그래서 이런 식으로밖에 일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시에나의 손님을 건들지 않으면서 시에나를 제거하려면, 당연히 그녀를 집 밖으로 유인해야지.

    ‘그렇다면, 그들은 ‘루크 이루시’가 시에나와 함께 있다는 건 아직 모른다는 이야기겠군. 이건 그나마 다행인가.’

    루크는 일단 그렇게 추측했다.

    만약 그 손님이 자신이라는 걸 알았다면 아마도 루체스트는 이런 부패경찰 몇명이 아니라, 특별인원인 ‘세이어’가 직접 움직였을 테니까.

    그 때, 시에나는 갑자기 핑 도는 시야에 눈을 끔뻑거리며 루크에게 말했다.

    “루크, 자전거가 좀 흔들리는 것 같은데, 괜찮아?”

    역시나 지친걸까?

    중심없이 흔들리는 주변 풍경에 이제 슬슬 어지러울 지경이다.

    그러나 루크는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응? 전혀 흔들리지 않고 있다만. 왜 그러지?”

    “안 흔들린다고? 이게?”

    시에나는 루크의 대답에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이내 깨달았다.

    흔들리고 있는 건, 루크가 아니라 나였구나.

    “아.”

    ‘피를 너무 많이 흘렸나….’

    이런, 집까지는 버틸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털썩.

    “시에나? 시에나! 이봐! 맙소사, 이건 그냥 긁힌 상처가 아니잖아!”

    결국 자전거에서 떨어진 시에나는, 멀어지는 의식 너머로 루크가 부르는 소리를 뒤로하고 눈을 감았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가오충 시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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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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