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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53

        

         

         

       그렇게 빌딩에는 그 누구도 깨어있지 않게 되었다.

         

       이곳엔.

       깨어있는 사람이 없다.

         

       보라.

       의연하게 자신의 최후를 맞이한 저 무인을.

       치사량을 훌쩍 넘은 테트로도톡신(Tetrodotoxin)을 섭취하고 죽어버린 저 남자를.

       비록 독으로 죽었으되 죽는 모습은 의연하였고, 몸이 굳고 호흡이 힘겨워지는 고통에도 의지로써 표정을 굳세게 유지하였으니.

         

       저만한 무인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

       비록 가진 무력은 높지는 않으나 정신력은 높았으니.

       아, 저 무인은 존중받을 만한 사람이었다.

         

       “페후(Fehu).”

         

       진성은 숨이 끊어진 무인에게 다가갔다.

       그리곤 손가락 끝에 벌레의 체액을 뿜어내어 적신 뒤 바닥에 널려있는 재를 슬쩍 훑었다.

       그러자 새까만 잿더미가 손가락에 달라붙었는데, 그는 그것을 물감 삼아 쓰러진 무인의 시체에 그림을 그렸다.

         

       막대기 하나.

       위로 향하는 빗금 둘을 나란히.

         

       룬 문자 중 페후(Fehu)를 뜻하는 상징이었다.

         

       여러 가지 의미가 있고, 여러 가지 활용법이 있는 문자.

         

       진성이 그에게 문자를 새긴 이유는 간단했다.

         

       화르륵.

         

       문자가 완성되자 문자는 빨갛게 달아올랐다.

       마치 주변에 신나게 타오르는 불꽃의 빛을 그대로 흡수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빨갛게 변해버린 문자는 마치 낙인처럼 피부에 흡수되었고, 이윽고 그것을 중심으로 불을 뿜어내었다.

         

       뿜어지는 불꽃은 마치 기름을 먹인 천을 태우는 것처럼 그의 온몸으로 번져나갔고, 번제에 바쳐진 제물이 태워지는 것처럼 순식간에 그의 몸을 휘감고 삼키며 그의 몸을 불살랐다. 그 기세가 어찌나 강렬한지, 신이 직접 힘을 써서 그를 거두어가는 것이 아닐까 의심이 들게 만드는 모습이었다.

         

       페후(Fehu)가 뜻하는 원소가 불이며, 품은 의미 중에는 소와 재산을 뜻한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무인의 몸을 재도 남기지 않고 태울 기세로 피어오른 불꽃은, 참으로 의미심장한 것이리라.

         

       그렇게 무인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잿더미도 남기지 못하고.

       그렇게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하지만 그 사실에 슬픔을 느낄 필요는 없었다.

         

       지금 진성이 행해준 것은 자그마한 장례이며 존중이라.

       정신력이 강했던 무인을 향한 자그마한 호의였으니 말이다.

         

       저 무인은 진성의 호의를 받기에 충분했다.

       물론 큰 호의를 받을만한 것은 아니었기에 고작 이 정도이기는 하였지만 말이다.

         

       그렇게 호의는 끝이 났다.

         

       그리고 이제 남은 것은 그의 호의를 받지 못할 이들.

       그에게 사용될 이들이다.

         

       진성은 다시 루카스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루카스는 쓰러져 있었다.

       미량의 테트로도톡신의 영향으로 인하여 몸이 마비되었고, 그 뒤에 주입한 합성 독으로 인해 정신을 잃은 상태였다.

       물론 그 양은 매우 적어서 목숨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긴 하였지만….

         

       글쎄.

       살아남은 것이 과연 좋은 일일까?

         

       진성은 허공에 손을 뻗었다.

       마치 본체로 행하는 것처럼, 물건을 저 멀리에서 끌어오기라도 할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은 벌레로 이루어진 몸.

       굳이 그 방법을 쓸 이유가 없다.

         

       지금 그의 몸은 형상만 그러할 뿐이지, 어느 형태로도 변할 수 있지 않던가.

       진성이 손을 뻗자 그대로 분해되었다.

       마치 허공에 녹아들기라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물감이 허공을 캔버스 삼아 녹아드는 것처럼 그의 팔이 주위 풍경에 동화되었고, 저 먼 곳에 집게의 형태로 변해버린 신체 일부가 건축 자재로 보이는 것을 뜯어왔다. 그리고 그것을 시작으로 끈처럼 길고 가늘게 변해버린 손가락이 무언가를 집어 왔고, 아예 벌레의 입처럼 변해버린 것이 날개를 퍼덕이며 무언가를 가져온다.

         

       그렇게 물건이 차곡차곡 진성의 앞에 쌓였다.

         

       진성은 물건이 어느 정도 쌓이자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불 속으로 자기 팔을 훅 집어넣었다.

         

       그리곤 자기 팔에 불이 붙을 때까지, 충분히 익을 때까지 기다렸다.

       마치 고기를 굽기라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그의 의도대로 그의 팔에 불이 붙었다.

       층을 휘감은 불꽃은 진성이라고 해도 피해 가지 아니하였다.

       특히 그가 원하고 있었기에, 더더욱.

         

       그렇게 불은 그의 팔을 연료로 삼아 타오르기 시작했고, 고소한 듯하면서도 불쾌한 냄새가 층 전체에 퍼졌다.

         

       진성은 타오르는 자기 팔을 천천히 위로 들었다.

       그리곤 불꽃을 털어내기라도 하려는 듯 세차게 아래로 후려쳤다.

         

       화아악-!

         

       그러자 타오르고 있던 그의 팔의 피부 부분이 벗겨지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마치 기다란 장갑이라도 끼고 있었다는 것처럼.

       혹은, 팔에 기름이라도 한 겹 두르고 있었다는 것처럼 말이다.

         

       그 모습은 마치 묘기를 부리는 사람들을 보는 듯했지만….

       안타깝게도 이것에는 묘기 따위는 없었다.

       속임수 역시 마찬가지였고.

         

       진성의 한쪽 팔이 벗겨졌다.

       그의 팔에 씌워져 있던 피부 부분이 사라졌고, 대신에 피부 안쪽에 자리를 잡고 있던 근육 비슷한 무언가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피부 아래에 있어야 할 그 근육은 검은색이었고, 갈색이었고, 초록색이었고, 파란색이었고, 하얀색이었다.

         

       분홍색이어야 할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그의 피부 아래에는 근육의 형태를 흉내 내고는 있지만 그 색은 명백히 다른.

       수많은 색색의 부품들을 조립해서 만든 듯한 무언가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것은 이질적이면서도 역겨운 것이라.

       만약 이곳에 깨어있는 사람이 있었다면 토악질을 하였을 수도 있겠다.

         

       화르륵.

         

       그 끔찍한 것을 덮어주고 있던 껍데기는 앞에 차곡차곡 쌓였던 것들의 위에서 타올랐다.

       그리곤 불꽃 속에서 이제 자신의 정체를 유지할 이유가 없다는 듯 부서지고, 분열되면서 자기 모습을 하나둘 드러내었다.

       쪼그라들면서 새까맣게 변하는 그것은 영락없는 불에 던져진 벌레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벌레를 양분 삼아 타오른 불꽃은 그 아래에 깔린 훌륭한 장작들에도 옮겨붙었다.

         

       화르륵.

         

       검은 연기가 피어오른다.

       새까만, 너무나도 새까만 연기가.

         

       척 보기에도 유독 물질이 가득 들어있는 듯 보이는 연기였다.

         

       진성은 그것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물건을 차곡차곡 쌓았던 벌레들을 다시 제자리로 돌려보냈다.

       사사삭 하는 소리와 함께 팔이 다시 조립되었고, 그렇게 조립된 팔은 바닥에 쓰러져 있는 루카스의 머리채를 잡았다.

         

       그리곤….

         

       “커흑!”

         

       검은 연기 안으로 그대로 집어넣었다.

         

       마치 산 채로 훈제라도 하려는 듯이 말이다.

         

       당연히 루카스는 코를 찌르는 연기에 고통스러워했다.

       정신을 잃었음에도, 본능적으로 기침을 마구마구 해댔다.

       그리곤 몸까지 비틀려고 노력했다.

       어서 저 연기에서 멀어져야 한다는 듯이 말이다.

         

       하지만 어찌하겠는가.

       독 때문에 몸은 마비되었고, 설령 마비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진성의 손에 그의 머리채는 단단히 붙잡혀 있는 상태다.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저 유독 물질이 가득 함유된 연기를 한껏 들이마시는 것 말고는 말이다.

         

       진성은 그렇게 한참 루카스가 연기를 들이마시게 하였다.

       그리곤 유독 물질 때문인지, 그가 미리 주입한 물질 때문인지- 루카스의 얼굴색이 서서히 변해갈 무렵, 그를 연기의 고통에서 해방해주었다.

         

       해방.

       그렇다, 해방이다.

         

       푸욱.

         

       루카스의 몸에 다시 한번 바늘이 꽂혔다.

       이번에 주입되는 것은 색이 존재하는 액체.

       다만 그 색은 불길한 검은색을 품고 있는 것이었으니.

         

       저 연기가 가지고 있는 물질 중 하나, 혹은 그 이상을 품고 있는 것이겠지.

         

       그렇게 루카스는 다시 한번 몸에 독이 주입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주입된 독은 그를 영원히 잠들게 해주겠지.

       영원한, 잠에.

         

       “끌끌. 좋은 꿈 꾸시게. 계속 이어질 것이니, 자알 즐기면 될 것이야….”

         

       털썩.

         

       진성은 쓰러진 루카스에게 잠시 시선을 두었다가 떼었다.

       그리곤 지금까지 활활 타오르는 불기둥을 바라보았다.

         

       불기둥.

       사람을 집어삼키며 커진 불기둥.

       로아 모방체 하나를 제물로 바쳐서 소환한 저 거대한 불꽃.

       저 불꽃은…참으로 많은 쓸모를 가지고 있는 것이었다.

         

       “불은 아래에서 위로 피어오르고, 그 찬란한 빛은 밤을 환하게 밝히는 것이라. 그 환하고 따스함이 바로 권능이자 권위니, 이것이 바로 신의 힘이 아니고 무엇이랴? 그러하다면 신의 힘이 충만하고 또 충만한 이곳은 천국이니. 아, 높은 곳에 있고 신의 힘이 충만하니 참으로 낙원이 분명하다.”

         

       진성은 주언을 읊으며 불기둥을 쓰다듬었다.

         

       그래, 쓰다듬었다.

       마치 양털을 쓰다듬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아래는 무엇이랴? 선택받은 이가 도달하여 신의 품에 안기는 것이 위라면 아래는 무엇일 것이냐? 타오르는 장작과 타버린 잿더미가 가득하고, 지저분하게 널브러진 그곳은 과연 무엇이랴? 장작이 있으니 그것은 현세임이 분명할 것이며, 그 장작이 묘지를 이루고 있는 것이니 그 장소는 틀림없이 묘지이자 죽음의 장소가 틀림이 없으리.”

         

       그 쓰다듬은 마치 기르는 동물을 쓰다듬는 주인의 그것과 닮아 있었으며, 과하게 타오르는 분노를 가라앉히기 위한 부드러운 손길처럼 보였다.

         

       맨몸으로 불기둥을 쓰다듬는 것 치고는 참으로 어울리지 않는 표현이겠지만….

       진성의 표정이자, 진성의 손이 닿을 때마다 부드럽게 쓸리는 불꽃이나, 그의 손짓이 이어질수록 점차 줄어드는 불기둥의 기세를 본다면…. 정말로 불기둥이 누군가에게 길러지는 가축이라도 되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불기둥은 점차 세가 약해졌다.

       나선으로 돌아가는 것을 멈추고, 굵디굵었던 몸체는 점차 가느다랗게 변하였고, 종국에는 하늘하늘 흩어져버리는 불똥처럼 제 흔적만을 남긴 채 그렇게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그것을 시작으로 벽면을 타고 흐르던 불꽃도 사라졌다.

       마치 물줄기가 끊기자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물웅덩이처럼 말이다.

         

       진성은 그렇게 사라져가는 불꽃 중 몇 개를 바라보았다.

       그리곤 자기 손을 그물처럼 바꿔 낚아챈 뒤, 그것에 사악한 문양을 그린 뒤 1층까지 뚫린 구멍 아래로 토옥 던졌다.

         

       그리곤 이제는 제 일이 끝이 났다는 듯 웃음을 짓더니.

         

       그대로 사라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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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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