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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54

   요정의 숲에서 시작된 오염은 길고 긴 시간에 걸쳐 대지에 스며들었다.

   

   에르기누스가 직접 만들어낸 결계라 한들 대지 아주 깊숙한 곳까지 파고든 오염마저 막아낼 수는 없었으니.

   

   주변의 숲이 악신의 기운에 침범당해 스러지고.

   

   그 곳에 자리하던 짐승들이 마물이 되고.

   

   이곳저곳에서 던전이 생겨나 폭주 직전에 공략되거나 폭주하길 반복하고.

   

   점차 넓어지는 영역 속에서 안 쪽은 마경이 되어가는 곳.

   

   그 곳이 이 대지다.

   

   게임 속에서는 이 영지를 지키는 영주에게 의뢰를 받아 안 쪽을 돌아다닐 수 있었지.

   

   난이도 있는 던전 여럿이 밀집되어 있어서 단시간에 노가다를 하기 좋았어.

   

   나중에는 더 효율적인 장소가 있다는 게 밝혀져서 버려졌지만. 그도 그럴 게 여기 좀 귀찮거든.

   

   시간이 지날 때마다 악신의 기운에 대한 오염도가 차올라서 성직자를 파티에 넣는 게 반 필수가 되어버리는 데다 그게 아니더라도 어둠의 악신이 남긴 기운이 만들어내는 현상들이 소모를 강요하게 만들어서 효율과는 거리가 멀지.

   

   그렇다고 여기에서만 나오는 뭔가가 있는 것도 아니고 말야. 거기에 더해 직접 이 장소에 발을 들여보니 알겠어.

   

   여기는 오래 있을 곳이 아냐.

   

   아직 중심에 들어가지 못했는데도 이미 악신의 기운이 짙어.

   

   이런 곳에 장시간 머물렀다가는 정신적인 문제가 생겨날 걸.

   

   요정의 숲 바로 옆에 있는 영주가 왜 골머리를 앓았는지 알 것 같네.

   

   이번 일에 적극적으로 협력한 이유도. 그도 그럴 게 이런 폭탄 같은 장소가 바로 옆에 있으면 언제 터질지 몰라서 피가 마를 테니까.

   

   “옛 동화에 나오는 마녀의 숲 같군.”

   

   말라비틀어진 나뭇잎을 밟으며 나아가던 아서가 입을 열자 뒤 편에 자리하던 조이가 고갤 끄덕였다.

   

   “조금 있으면 나무들이 말을 하고 까마귀가 울고 어디서 으스스한 웃음소리가 들려올 것 같아요.”

   “그럼 우린 마녀의 스프 속에 들어가게 되는 건가?”

   “…마녀가 얼마나 강해야 그런 게 가능하죠?”

   

   아서는 대답하기 전에 우리들의 면면을 한 번 살피고는 고갤 갸웃하다가 나를 바라보면서 이야기를 했다.

   

   “베네딕 경 정도의 강함이라면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그런 강자가 적으로 나오는 건 사양하고 싶은데요.”

   “재밌을 것 같지 않아?”

   “켄트 영애. 재미를 느끼기 전에 저희 목이 날아갈 거랍니다.”

   “그으런가?”

   

   앞서 말했던 것처럼 이 숲은 도저히 웃으며 나아갈 수 있는 장소가 아니지만 우리 일행은 여유로웠다.

   

   단적으로 말해서 우리 주변의 악신의 기운이 스며들 틈이 없었던 것이다.

   

   전열에는 주신의 사도인 내가 신성을 흩뿌리고 있는데다 뒤편에서는 페이비가 여유롭게 웃으며 어둠을 걷어내고 있으니.

   

   대다수의 사람이 느껴야 할 역겨움은 이 곳에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얼빵아. 이거.”

   “준비하고 있었답니다.”

   “그러면 말 꺼내기 전에 해. 왜 날 자꾸 귀찮게 하는 거람? 그렇게 내 목소리가 듣고 싶어? 녹음해갈래?”

   “그래도 괞… 크흠. 사양하겠습니다.”

   

   거기에 더해 에르기누스에게서 어둠의 악신이 만들어내는 현상에 대응하는 방법을 배운 조이가 악신의 기운이 만들어지는 현상마저도 지워버리고 있으니 나아감에 있어 문제가 생길 일은 없는 것이다.

   

   물론 그래도 문제는 남아있다. 악신의 기운으로 가득 찬 이 곳은 마물이 가득한 장소니까.

   

   우리 다섯 만으로 이 곳에 들어온다는 것은 반드시 마물과의 연전을 각오해야만 하는 일이다.

   

   그렇지만.

   

   <이상하군. 마물들이 이 쪽으로 다가올 생각을 하지 않아.>

   

   오늘은 달랐다. 분명 이 숲에 도사리고 있을 마물들이 우리 쪽에는 결코 다가오질 않는 것이다.

   

   게임 속에서 수도 없이 이 숲에 들려 보았던 나이지만 이런 경우는 존재하지 않았다.

   

   ‘저랑 페이비가 지닌 신성 때문일까요?’

   <그럴 리가. 저 마물 놈들은 본질적으로 악신의 수하다. 신성이 있다면 목표물로 삼지 그를 보고서 도망치진 않아.>

   ‘그러면.’

   “요정여왕의 이식이 예상했던 것보다 더 높이 부상해 있단 거겠지.”

   

   내 어깻죽지에 자리 잡고 있던 얼빠여우는 길게 하품을 하고는 툭 하고 바닥에 뛰어 내렸다.

   

   “실제로 요정을 본 일은 없다만. 요정은 따지자면 현상에 가까운 존재였다고 들었다. 숲의 의지에 따라 태어난 것이 우리라면 그들은 숲 자체였던 거다.”

   “그게 지금 이거랑 무슨 상관인데. 얼빠여우.”

   “숲의 일부로 자연을 노니는 존재들의 중심이 되는 자라면 당연히 숲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지 않겠느냐?”

   

   …어. 그 소리는.

   

   <루시. 마물이 이 쪽으로 오고 있다.>

   ‘느껴져요. 방금 전까지만 해도 바깥을 돌던 녀석들이 왜.’

   “아무래도 나는 불청객인 모양이군. 이럴 것 같아서 여태 기척을 숨기고 있었다만 방해만 될 것 같으니 이만 가마.”

   

   그리 이야기를 하면서 척박한 대지에 발을 딘 얼빠여우는 툭툭 가벼운 발걸음으로 숲 바깥쪽으로 향했다.

   

   “나중에 요정여왕을 만나면 부디 그녀에 대해 이야기를 해다오. 미인이라면 꼭 보고 싶거든.”

   

   얼빠여우가 떠나가기 무섭게 그녀를 따라서 마물이 움직이는 게 느껴진다. 저 녀석이 말한 것처럼 이 숲에서 얼빠여우는 불청객인 것이다.

   

   그러니까. 요정의 환대는 우리가 여왕의 영역에 발을 디딘 순간부터 시작되고 있었던 셈이다.

   

   다른 친구들도 얼빠여우가 고개를 내밈에 따라 일어난 현상을 눈치챈 듯 그녀가 떠나간 자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리나님이 하신 말씀이 옳다면 에르기누스님이 추측하신 것보다 여왕님의 힘이 강하단 이야기입니다만.”

   

   에르기누스는 결계 내부에만 여왕의 권능이 닿고 있으리라 추측했지만 지금 일어난 현상은 그의 추측을 완벽히 부정하고 있다. 여왕의 힘은 결계 바깥에도 충분히 닿고 있었다.

   

   <…그 녀석이 이런 부분에서 착각을 할 리가 없는데?>

   ‘긴 시간 지하에 처박혀 있었으니까 감각이 둔해진 건 아니고요?’

   <차라리 그런 것이면 다행이겠지만.>

   ‘무슨 소리에요?’

   <일단 결계 인근에 가보자꾸나. 그 곳에 도착한다면 제대로 알 수 있겠지.>

   

   확실하지 않은 걸 미리 말해두고 싶지 않으신 건가. 맨날 싫다 그래도 계속 이런 어투를 사용하시니 원.

   

   뭐. 됐어. 어제 지도를 통해서 길은 확인해뒀어. 내가 알던 것과 지금의 숲은 크게 다르지 않아.

   

   거기에 더해 마물이 오지 않는단 것까지 확인을 했으니 최단거리를 주파해도 상관없겠지.

   

   “허접들. 따라와.”

   

   꽤 페이스를 올렸음에도 불구하고 친구들은 당연하다는 듯 내 뒤에 따라 붙었다.

   

   빌빌대게 만들기 위해 속도를 좀 더 올릴까하는 장난스러움이 생겨날 정도로 태연하게.

   

   매일 같이 해 온 수련들이 빛을 발하고 있는 걸까.

   

   아직 여유가 있는 듯 하니 속도를 좀 더 높이자. 오늘 내로 일을 끝내려면.

   

   위기감지가 경종을 울렸다. 철벽이 목소리를 높인다.

   

   <공격은 필요 없다. 막기만 해라.>

   

   할아버지가 태연한 소리를 지껄인다.

   

   공격할 필요가 없다가 아니잖아요. 공격할 틈이 있어야 하든가 말든 가하지!

   

   어두운 숲의 안 쪽에서 바위가 날아든다.

   

   단순한 공격이지만 그 안에 담긴 위력은 다르다.

   

   포탄처럼 날아드는 바위는 그 자체로 사람을 분쇄할 힘을 지니고 있다.

   

   전신으로 받아내도 되지만 그래서야 틈이 생겨.

   

   힘의 중심을 아래 쪽으로 잡아서 위로 튕겨내듯이!

   

   콰앙!

   

   바위가 위로 튕겨나가는 게 보이지만 쉴 틈은 없다.

   

   아직 이 곳에 도사리는 것들이 잔뜩이니까.

   

   말라비틀어진 채 축 늘어졌던 나무의 뿌리가 흙 밑에서 뻗어 나와 우리의 발목을 붙잡으려든다.

   

   난 그것을.

   

   “느리네.”

   

   찍어누르려 하기 전에 프레이가 뽑아든 검이 뿌리를 모두 날려버렸다. 바람의 마법보다도 더욱 더 바람 같아 보이는 검은 뿌리가 무언갈 할 틈을 주지 않았다.

   

   저 쪽에 프레이가 대처해줬다면 다음이야. 사방에서 날아드는 수상한 가루들을.

   

   “허하지 않는다.”

   

   무기를 휘두를 때 생겨나는 풍압으로 대처하는 것보다 먼저 아서가 자신의 마법으로 가루를 날려버렸다.

   

   마법을 쓰는 게 예전보다 더 빨라졌네. 무슨 수를 쓴 건진 모르겠지만 이 정도면 조이보다 빠를지도 모르겠는 걸.

   

   좋아. 이러면 자잘한 건 저 두 사람에게 맡기고 난 이 일을 벌인 녀석들을.

   

   “간파하라.”

   

   조이의 마법진에 마력이 담기면서 주변의 어둠이 걷힌다. 말라비틀어진 나무들의 위에 자리한 것은 내가 간슈의 시련에서 본 것처럼 기괴한 생김새를 한 녀석들이었다.

   

   꽃과 함께 노니는 것이 너무도 잘 어울리는 요정들이 아니라 마녀가 등장하는 괴담 속에서 마녀의 명을 따라 사람을 납치해올 것 같은 나방들.

   

   다른 점이라고 한다면 이 녀석들의 크기가 내가 보았던 것보다 훨씬 작다는 점일까.

   

   – 히히히.

   – 사람이다. 사람.

   – 착하고 예쁜 사람들이 잔뜩.

   – 놀자.

   – 같이 놀자.

   

   “여기 진짜 마녀가 있는 곳이었나요?”

   “징그러워.”

   “이봐. 루시 알른. 뭔가 알고 있나.”

   “무능 왕자님. 머리를 자꾸 장식으로 쓰려고 하니까 언제까지고 무능한 거에요. 여기가 어딘지 생각을 좀 해보시죠.”

   “…요정이라고? 저것들이?”

   

   쉬이 믿을 수 없는 것도 이해한다. 저건 요정보다는 지옥에서 올라온 마귀처럼 생겼으니까.

   

   그렇지만 사실이다. 저들은 본래 이 숲에 머물던 요정이다. 다른 무엇도 아닌 내 눈으로 직접 마주했기에 확언할 수 있다.

   

   요정의 숲에서 잠들어 있어야 할 이 녀석들이 도대체 왜 결계 바깥에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들이 눈앞에 나타난 이상 현실을 부정할 순 없다.

   

   – 눈치 챘어.

   – 역시 좋은 사람들.

   – 놀자. 놀자.

   – 다음에는 무슨 장난을 칠까?

   – 바람을 화악?

   – 아냐. 그것보단 휘익휘익!

   – 휘익휘익은 너무 많이 했어!

   

   우와아. 쟤네들 우리를 완전 장난감 취급하고 있네. 진짜 마음에 안 든다. 내 친구들을 장난감 취급하면서 가지고 놀 수 있는 건 나 뿐이라고!

   

   하. 알겠어. 그렇게 놀고 싶다니 놀아줘야지. 물론 장난을 치는 건 나고 장난감이 되는 건 저 나방들이겠지만.

   

   목소리에 신성을 담은 채 저들에게 말을 걸기 위해 앞으로 나서려던 그 때 나보다 먼저 페이비가 앞으로 나섰다.

   

   “안녕하십니까. 요정분들. 꽃의 향기와 잘 어울리는 분들과 뵙게 되어 정말 기쁩니다.”

   

   – 꽃?

   – 우리가?

   – 여기에 꽃 없어!

   – 예전엔 그랬지만.

   – 너 바보?

   

   “후후.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허나 여러분. 바보를 놀리는 건 재밌는 일이지 않나요?”

   

   – 그치?

   – 그렇지?

   – 너 잘 아네!

   – 바보지만 바보 아냐!

   – 뭐하고 놀래?

   – 뭐하고 놀까?

   

   악신의 기운에 잠식된 요정들이 내는 목소리는 도저히 웃으며 들어줄 수 있는 것이 아니었지만 페이비의 표정에는 시종 부드러운 미소가 깃들어 있었다.

   

   호의로 가득한 따스한 미소가. 그를 알아차린 것일까. 요정들은 페이비의 주변에 모여 열심히 재잘재잘 거렸다.

   

   대화가 통할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네. 말을 거는 체 할 뿐 들을 생각은 조금도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내가 봤던 그 타락한 요정과는 무언가 다른 건가?

   

   기분 나쁜 목소리로 아이처럼 해맑게 웃는 걸 보니 기분이 미묘하네.

   

   으으음. 뭔가 아무것도 안 했는데 일이 다 해결되어버렸다.

   

   잘 됐다면 잘 된 일이지만 뭔가. 뭔가아아아.

   

   <인품에서 졌구나.>

   ‘제가 언제 페이비를 인품에서 이긴 적이 있기나 해요?’

   <그것도 그런가. 처음 만났을 적이라면 모를까 지금 저 아이는 성인이라 불러 마땅한 모습을 하고 있으니.>

   

   뭐 아무래도 좋나. 언제까지고 내가 모든 걸 할 필요는 없으니까 말야.

   

   – 엄청 예뻐!

   – 꽃 같아!

   – 주변에서 춤추고 싶어!

   

   “아닙니다. 여러분. 저 따위 영애님에 비하면 길가의 들풀보다 못한 존재입니다. 보십시오. 가만 서서 웃고 계신 것 뿐인데 태양이 내려온 것 같지 않습니까?”

   

   – 태양?

   – 난 싫어.

   – 얄미운 웃음 짜증나.

   – 별로야.

   – 꼬맹이잖아.

   

   “…다른 건 몰라도 그 말만큼은.”

   “성녀님. 그럴 때가 아니잖습니까.”

   “그. 그렇죠.”

   

   가볍게 헛기침을 한 페이비는 한 번 목을 가다듬고는 요정들을 둘러봤다.

   

   “놀이를 하기 전에 몇 가지 여쭤봐도 괜찮을까요?”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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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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