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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54

    <554 – 종족신의 성소(2)>

     

    삐진 즈앙 달래기는 무척 어려웠다.

     

    “11강 톱날단검 가질래?”

    “맹독절골단검 있어.”

    “누르면 마비구체가 발사되는 마법봉은?”

    “누르면 산성구체가 발사되는 장갑 있어.”

    “때리면 기분이 좋아지는 샌드백인형은?”

    “티토소가가 있으니까 필요 없어.”

     

    내가 주는 건 뭐든 절대로 받지 않겠다는 기세로 단단히 토라진 즈앙!

     

    “힝. 진짜 미안해. 한 번만 봐줘잉.”

    “정말로 미안하다면 여기 나오자마자 스승님 만나러 가.”

    “륭 어르신?”

    “응.”

    “알았어!”

     

    즈앙은 한 번 봐준다는 얼굴로 새침하게 고개를 돌리면서 슬그머니 손을 잡았다.

    꼬리가 달려있으면 지금쯤 앞뒤로 열심히 흔들리고 있을 것 같다.

    크읏, 주요인물 수인 DLC를 깔지 않았던 건 커다란 실수였어!

     

    “친구끼리 삐진 건 스승의 문안인사를 하면서 푸는구나. 참으로 기특한 우정이다만 한 스승 앞에서 다른 스승을 보러 가겠다는 선언은 조금 괘씸하구나.”

    “브론즈 교수님이 어째서 여기에?!”

    “흐음. 이거 정말 곤란하구나. 2학년 상급반 진급에 필요할 수강생기록부에 갑자기 기재해야 할 사항이 생긴 것 같아졌으니.”

     

    수강생이 삐지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후폭풍을 지닌 브론즈 교수님의 삐짐!

    즈앙은 결국 내년에도 브론즈 교수님의 강의를 수강하고 특훈도 꼬박꼬박 받겠다고 약속하고 나서야 간신히 용서받을 수 있었다.

     

    “그래서 나가는 길 말이다만, 꼭 황제와 같이 떠날 필요가 있느냐?”

    “넹?”

    “아까도 말했다시피 본관은 디스트로이어 교수와의 거래에 따라 그의 정을 도둑질하기 위해 오크노디 1년생을 아카데미까지 안전히 돌려보내야만 한다.”

    “황제파파는 적이 아니에요!”

    “그가 해온 일이 선하다고 생각하느냐?”

    “착한 사람은 아니지만 나쁜 파파는 아니에요!”

    “…이사장에 비하면 세상 그 어떤 남자도 나은 사람이 될 수 있기는 하겠구나.”

     

    뭣보다 오는 길을 같이 왔는데 황제파파만 두고 가버리면 미안하잖아!

     

    “교수님도 이참에 새로운 파파랑 인사하실래요?”

    “황제가 오래도록 감추어둔 비밀스러운 지하세계에서 지상의 아무도 모르는 와중에 황제와 대면… 목숨이 몇 개라도 부족하겠구나.”

    “그치만 교수님은 의적이잖아요!”

    “그렇다만?”

    “황제파파의 사악한 마음을 훔친다면 그건 세상에서 가장 의로운 도적질이 아닐까요?”

     

    고인물은 다른 고인물을 자극하는 키워드를 안다.

     

    너 이거 하고 싶잖아.

    예로부터 이거만큼 확실한 방법이 없다.

     

    눈앞에 산이 있으면 올라야 성미가 풀리는 등산가처럼 도적도 눈앞에 탐스러운 보물을 보여주면 훔치고 싶어 손이 근질거린다.

    과연, 브론즈 교수도 갑자기 구미가 당기기 시작했는지 어린이사이즈에서 손이 열심히 꼼지락거리고 볼따구가 막 씰룩거렸다.

     

    “머 싫으면 안 하셔도 돼요! 황제파파는 절 좋아하니까 언젠가 제 손에 도둑질당할지도 모르죠. 청출어람이라고 제자는 원래 스승을 뛰어넘기 마련이잖아요? 헤헿.”

     

    거기에 쐐기를 박는다.

     

    너 이제 퇴물이잖아.

     

    이 소리를 듣고 가만있을 스승이 있을까?

    절대로 없지.

    브론즈 교수님의 두 눈에 위험한 빛이 번들거렸다.

     

    “호오. 못 본 사이에 많이 컸군, 오크노디 1년생. 감히 본관의 앞에서 그런 괘씸한 말을 할 줄도 알고.”

    “딱히 틀린 말도 아닌걸요?”

    “잠시 퀴즈를 하나 내마. 예로부터 황제가 속한 히우그마그 가문은 대대로 제국을 경영해왔다. 그러나 선황만큼은 유독 오랜 기간 황제의 자리를 유지했지. 그 비결을 아는가?”

     

    아카데미 밖에 있느라 가끔 까먹을 때도 있지만 이 게임세계는 기본적으로 <운빨로 아카데미에서 졸업하기>이다.

    당연히 아카데미 외부스토리는 아카데미 졸업파트에서 맞이하는 도전요소.

    졸업과제와 연관된 퀘스트가 아니면 중요하지 않다.

    황제가 수백 년간 제국을 통치한 이유?

    강자들은 기본적으로 수명이 길다.

    어차피 그런 이유겠지.

    그래서 진지하게 고민해본 적도 없다.

    마나란 생명력의 또 다른 형태.

    황제처럼 초월적인 마나를 지닌 존재는 수백 년을 살아도 당연한 현상이니까.

     

    “강하면 원래 오래 살아요!”

    “오크노디 1년생은 황제가 그 강함을 정녕 노력만으로 단련해서 쌓았겠다고 여기나?”

    “…다른 이유가 있어요?”

    “실은 이런 소문이 있다. 제국의 황제는 예로부터 오직 단 한 명뿐이었다고.”

    “에엥?”

     

    제국령 982년.

    사람 나이가 982살?

    300살이랑 982살은 느낌이 좀 다른데.

    황제는 인간이잖아.

    인간 종족의 수명한계는 아무리 강자여도 500년을 넘기기 힘들지 않나?

     

    “그게 어떻게 가능해요?”

    “제국의 예로부터 건강개선에는 태반이 특효라는 속설이 있다.”

    “태반? 그거 먹는 거예요?”

    “오크노디 1년생, 기분 나쁜 부분에서 황제를 닮지 마라. 태반은 임신한 모체가 아이에게 영양을 공급하는 기관이다.”

    “맛있어요?”

    “그리도 사악한 뱀피 취급을 받고 싶으냐?”

    “수집효과가 궁금해서 그런 건데요…”

     

    어린이브론즈가 되어서 의복이 치렁치렁 늘어진 교수님이 한 손으로 자꾸만 흘러내리려 드는 옷을 접어가며 말했다.

     

    “제국의 금기에는 호문쿨루스 배양시설이 있다. 오크노디 1년생과 같은 호기심을 지닌 사람이 수많은 태반을 오래도록 섭취할 수 있을 시설이지.”

    “우왕.”

    “하지만 호문쿨루스의 수명은 길지 않다. 순수한 마나를 지니고 태어나되, 이에 저항할 수 있는 저항력을 갖추기란 쉽지 않으니. 대부분은 1년을 넘기지 못하고 죽지. 그래서 호문쿨루스는 1년 내로 제물로 쓰임새를 다해야 효율이 좋고, 제국이 금기로 정한 것이다.”

    “그렇구나! 지식이 늘었다!”

    “그런데 간혹 1년을 넘긴 존재가 있지. 선천적으로든 후천적으로든 호문쿨루스로 거듭난 존재가 저항력을 가지게 되는 사례가. 오크노디 1년생, 자네의 동기 중에도 그런 사례가 있다.”

    “누군데요?”

    “C그룹의 융합생명체 카시아.”

     

    와! 소국 트로이의 왕자 헥토르랑 대착점에 있는 플레이어블 캐릭터 아시는구나!

    학기 초에 안면을 트고 나중에 이벤트 뜨면 퀘스트 밀려고 오고 가며 인사 정도는 하고 지낸 친구다.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는가?”

    “무슨 생각이요?”

    “실패작인 단명종 호문쿨루스조차 태반공급, 제물공급, 인체실험 등에 사용되거늘 단명할 운명을 극복한 장수종 호문쿨루스는 얼마나 많은 쓰임이 있을까.”

    “…!”

    “제국과 선황에게는 네가 모를 어둠과 광기가 있다. 그의 사악한 마음이란 그 편린 중 하나를 들춰본 것만으로도 상상을 초월하는 사악함이 존재하지. 위험함으로는 누구에게도 견줄 수 없을 재단의 이사장조차도 황제보다 뒤늦게 나타난 이임을 잊지 마라.”

     

    으으음.

    나 솔직히 방금 쫄렸어.

     

    “이런 사정을 숙지한 뒤에 다시금 묻지. 그런 황제의 사악한 마음을 훔친다. 아직도 그것을 본관에게 권하고 싶은가?”

     

    눈을 세 번 깜빡일 시간 동안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그냥 도망갈까요?”

     

    브론즈 교수님이 피식 웃으며 앞장섰다.

     

    “예로부터 종족의 성소란 제를 지내는 민간인의 영역과 제를 주관하는 사제들의 영역이 다른 법이다. 고서박물관의 내부에는 다른 출구가 있을 거다.”

     

    이런 대화의 흐름에서 황제파파한테 갈 수는 없지.

    즈앙도 얌전히 손을 잡고 따라왔다.

     

    “오크노디. 확정강화권이라는 보물 말고 다른 건 하나도 안 챙겨가?”

    “챙긴 것도 내려놔야 해!”

    “왜?”

    “황제님은 뱀파이어들도 뱀파이어라고 착각할 정도로 대단히 강하지?”

    “그렇지.”

    “뱀파이어의 기운을 다룰 수 있는 사람이 뱀파이어가 만든 물건의 기운을 못 읽어낼까?”

     

    즈앙이 잠시 고민하더니 옷 안에서 몰래 주웠던 책들을 꺼냈다.

    근데 천족잼민이 일기는 왜 가져온 걸까?

    시선을 받은 즈앙이 잼민이 일기의 표면을 손으로 훑으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반성과 일생, 굶주린 미물… 이 고서는 분명 뱀파이어들이 지하세계에 갇힌 이유가 수록된 역사서임이 틀림없어. 부업 삼아 챙기기 좋은 보물이겠지.”

    “…”

     

    저게 천족잼민이 일기라는 사실은 무덤까지 비밀로 가져가야겠다!

     

    [죄악의 갈림길]

    [순혈의 증명대]

    [처녀만 지나갈 수 있는 문]

     

    악업수치가 낮아야 하는 길.

    피에 실린 마나총량이 높아야 하는 방.

    남녀의 정을 나눈 자는 지나갈 수 없는 문.

    종족의 성소이자 사제들이 드나드는 뒷길답게 개방된 고서박물관과 달리, 쉽게 드나들 수 없는 조건이 생각보다 많았다.

    DLC컨텐츠와 빈집털기를 즐겼던 나도 뒷문으로 드나들 이유가 없어서 미처 몰랐던 공간이 제법 됐다.

     

    “의외네. 난 여기 못 지나갈 줄 알았는데.”

    “그러게!”

    “오크노디 네가 지나간 것도 의외거든?”

     

    죄악의 갈림길.

    악업수치가 높으면 지나갈 수 없는 길을 통과한 걸 두고 즈앙이 지적했다.

    사실 맞는 말이긴 하다.

    나쁜아이부터 무서운아이까지 워낙 화려한 과거들이 많았지.

    후… 즈앙은 이런 거 하지 마라.

     

    “뱀파이어는 예로부터 혈족이 귀한 종족이었다. 일족의 모든 제약은 아이들에게는 예외가 되지.”

    “그래서요?”

    “아마도 뱀파이어족 기준으로 어린이에 해당하는 개체는 모든 시설을 프리패스로 드나들 수 있다. 본 교관이 이 모습을 유지하는 이유이기도 하지.”

     

    나도 모르게 방금 지나갔던 처녀만 지나갈 수 있는 문을 돌아보았다.

    그럼 교수님이 처녀라서 지나간 게 아니라 어린이 모습이어서…?

     

    “교수님. 저 오크노디, 진지하게 요청하고 싶은 사항이 하나 있어요!”

    “말해보거라.”

    “어른의 모습이 되어서도 저길 지나갈 수 있나요!”

    “있다.”

    “휴. 믿고 있었어요, 교수님!”

    “뱀파이어족 기준으로 어린이는 만 100세 이하를 의미하니까.”

    “…”

    “키가 2m를 넘지 않고서야 뱀파이어 눈에 인간들은 일생을 살아도 평생 어른이 될 수 없는 어린이종족처럼 보이겠지.”

     

    그럴 수가…

    교수님의 순결은 미지의 영역인 모양이다.

    낙심하며 출구를 나오자 시종장 어르신이 부채질을 해주었다.

     

    “먼 길 오느라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황녀전하. 잠시 바람 좀 쐬시겠습니까?”

    “고마워요, 시종장님!”

     

    잠시 나왔던 출구를 돌아보았다.

    분명 들어온 입구랑은 다른 출입문이었다.

    근데 왜 시종장이 여기 있을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일기장 득템하고 좋아하는 즈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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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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