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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54

    한창 자신의 자리를 정리하고 있던 시에나의 손길이 문득, ‘서장 시에나 포르핀드’라고 쓰여진 명패에서 멈췄다.

    직위해제가 예정되어있으니 더이상 이런 명패에 연연해선 안되겠지만, 그래도 마음이라는 것이 참 쉽지 않다.

    시에나는 창 밖의 풍경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누군가 사태에 책임은 져야한다지만, 이 자리까지 오기 위해 노력했던 지난날이 부정당하는 기분이 든달까.

    하지만 이미 윗선에서 전부 이야기가 끝난 상태니, 상소한다해도 받아들여지지는 않을 것이다.

    다행히 자신은 ‘언론적인 비판’이외에는 딱히 경질사유는 없어서 능력과 실적으로 복직이 가능할 것 같기는 하다만, 그게 언제가 될 지는 모를 일이다.

    복귀한다해도 다시 서장으로 복귀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

    그래, 이젠 미련을 털어내야지.

    마침 바람이 창 밖의 나무에 걸려있던 마지막 나뭇잎도 떼어갔으니.

    그 때였다.

    -똑, 똑.

    “시에나 서장님, 저 톰 형사입니다.”

    “응, 들어와.”

    시에나는 서장실에 들어온 톰이 해오는 경례를 가볍게 받아주었다.

    공식적으로는 이제 서장이 아니지만, 아직 그렇게 대우해주는 부하에게 현실을 읊조릴만큼 냉철한 엘프는 아니었기에.

    그렇게 경례를 마친 톰은 곧장 서류를 그녀 앞에 늘어놓았다.

    “여기, 말씀하신 것들입니다.”

    “그래, 이게 그 사건 자료들인가?”

    시에나는 며칠 전, ‘테러’ 사건이 끝나자마자 ‘루체스트’와 조금이라도 관련된 사건이라면 모두 정리해 가져올 것을 부탁했었다.

    몇주 전에 있었던 전시장의 테러도, 며칠 전에 발생한 도심테러도, 모두 최대 피해자가 루체스트라는 공통점이 있었으니까.

    그래서 대체 그들이 누구에게 무슨 원한을 샀고, 어떤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지 궁금해졌달까.

    경찰이 아니게 된 뒤에도 개인적으로 조사해볼만한 가치가 있을 것 같았다.

    물론, 관계자도 아닌 인물이 서 내부의 자료를 몰래 반출하는 것이니 기밀유출인 셈이지만, 적어도 여기엔 이제와서 그걸 거론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시에나가 자신이 준비한 자료를 받아드는 것을 확인한 톰이 말을 이었다.

    “그리고 저번에 말씀하신 ‘아이기스 코퍼레이션’의 로빈슨에 대한 정보 말인데요.”

    아이기스 코퍼레이션.

    루체스트 타워의 테러당시 현장진입을 허가받았던 민간 경호기업이자, 경관살해를 시도했던 정황이 있는 미심쩍은 단체.

    그리고 그 때의 책임자였던 로빈슨은, 이후 조사결과 ‘존재하지 않는 자’였음이 밝혀졌다.

    엄밀히 말하면, ‘로빈슨’이라는 자가 데이터베이스에 등록은 되어있었지만, 현장에서 만난 로빈슨과는 생김새부터 전혀 다른 인물이었던 것이다.

    이는 사실 그와 함께 현장에 진입했던 대원들도 마찬가지.

    그곳에 있던 모두가 그저 ‘아이기스’의 이름을 빌렸을 뿐, 실제로는 그 어떤 지위도 신분도 없는 유령들이나 다름없는 자들이었다.

    사건의 정황이 너무나도 수상했던 그녀는 이후 그 ‘로빈슨’이라는 자가 어떻게든 이 사태에 연관이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에 시에나는 개인적으로 조사를 시작했지만, 정작 그 로빈슨 본인이 테러에서 사망해버려 심문이나 추궁도 불가능하고, 아이기스 또한 영장없는 수사에 협조적인 상황이 아니라 단서가 끊겨버리고 말았다.

    거기다 설상가상으로 직위해제까지 당해버렸으니, 이제는 정말 할 수 있는 게 없었는데….

    마침 톰이 무언가를 알아냈다는 것 같았다.

    시에나는 약간의 기대감을 품으며 톰에게 물었다.

    “역시 자네의 조사능력은 뛰어나군. 뭐라도 알아낸 게 있나보지?”

    하지만 톰은 대답을 꺼리는 모양새였다.

    “글쎄요. 이걸 과연 제가 알아냈다고 해야할지…….”

    “응? 그게 무슨 소리지?”

    아리송한 톰의 말에 시에나가 묻자, 톰은 우물쭈물거리며 오늘자 신문을 꺼냈다.

    그리고 시에나는 그가 건넨 신문의 기사제목을 보고는 얼어버리고 말았다.

    -아이기스 코퍼레이션, 직원 전원 사망.

    “느낌이 좋지 않습니다. 서장님도 이 건에는 그냥 손을 떼는 편이…….”

    —-

    시에나는 벅찬 숨을 몰아쉬며 눈을 떴다.

    “헉-!”

    뭐지, 꿈이었나.

    꿈이라는 걸 깨달은 시에나는 자는 사이 흘린 식은땀을 닦아내고 몸을 일으키려다, 복부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신음을 흘리고 말았다.

    “아야야….”

    고통의 출처를 향해 시선을 내려보니, 그곳엔 깨끗한 붕대가 꼼꼼하게 둘러져있었다.

    자세히보니 단순히 붕대만 감싼 게 아니고 소독이나 봉합등, 꽤나 수준높은 응급처치를 한 것 같다.

    ‘그러고보니 나, 칼에 찔렸었지.’

    이제 다 기억이 났다.

    자신은 루크와 함께 장을 보고 식사를 한 다음, 갑작스런 서의 연락에 잠시 나왔다가 이런 봉변을 겪었지.

    루크 덕분에 거기서 도망칠 수는 있었지만, 결국 칼에 찔렸던 곳이 문제가 되어서 정신을 잃었고.

    “…….”

    톰의 말대로 언젠가 이렇게 될 거란 걸 알고는 있었다만, 설마 경찰들이 자신을 죽이려 할 줄이야…….

    그들이 언제부터 루체스트의 인간들이었지?

    자신은 대체 무슨 사건에 휘말린거고?

    시에나는 잠시 붕대로 감싸진 부분을 건드려보고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둡고, 칙칙하고, 알 수 없는 잡동사니로 가득한 방.

    자신은 그 방의 구석진 어딘가에 놓여진 싸구려 간이침대에서, 반쯤 가려진 커튼 너머로 주변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떻게 봐도 병원의 응급실은 아니었다.

    게다가 어디에서도 루크의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다.

    “대체 어떻게 된 거지?”

    설마, 납치라도 당한건가?

    시에나가 아직 어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상황을 정리하는 사이, 커튼을 걷어내며 낯선 이의 모습이 등장했다.

    “으음, 벌써 일어났나보군. 정신을 차리기엔 꽤 걸릴 줄 알았는데.”

    낡은 코트, 단추를 채우다 만 셔츠, 정리되지 않은 수염과 막무가내로 기른 머리카락, 그리고 어두컴컴한 선글라스와 회색 페도라.

    만약 누군가에게 수상한 사람을 표현해보라고 한다면 열번중에 7번은 그려낼 수 있을 정도로 수상한 사람의 스테레오타입이다.

    시에나가 경계하며 물었다.

    “……당신은?”

    “고든 알렉산더. 간단히 해결사 고든이라고 부르면 되네. 시에나 포르핀드 경관.”

    그렇게 자신을 고든이라 소개한 남성은 머리에 쓴 페도라를 가볍게 누르며 인사를 건넸다.

    그러나 전혀 정돈되지 않은 그의 모습때문에, 그 몸짓은 신사적이라기보다는 묘하게 수상쩍은 느낌만이 들었다.

    아니, 단순한 느낌만은 아니다.

    “해결사…?”

    그가 자신을 ‘해결사’라고 소개했기 때문이다.

    보통 해결사라고 하면, 떳떳하지 못한 일을 돈 받고 대신 해주는 직업이니까.

    예를 들자면 감시나 미행, 신상털이, 폭행과 같은…….

    그러나 고든은 그런 시에나의 수상쩍은 시선은 별로 신경쓰지 않았다.

    어차피 남들에게 그런 눈초리를 받는 건 익숙했던데다가, 그 시선을 보내는 상대가 경찰이라면 그에겐 더더욱 당연한 일이었으니까.

    그나저나, 칼에 그렇게 깊이 찔려놓고도 벌써 저렇게 움직일 수 있다니.

    시에나라는 다크엘프의 맷집이 특별한 걸까, 아니면 응급처치를 한 그녀의 솜씨가 좋았던 걸까?

    어느 쪽이든, 고든은 그녀가 꽤 빨리 회복하고 기운을 차렸다고 생각했다.

    “뭐, 일단 상태는 좀 괜찮은 것 같군. 얌전히 기다리고 있어. 사람을 불러오지.”

    “…….”

    그렇게 몸을 돌리는 그의 모습에 시에나는 곧바로 생각했다.

    어떻게 보아도 수상한 모습의 중년의 남성.

    절대 허가받은 의료시설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퀘퀘하고 어두운 수상한 장소.

    그리고, 그가 불러온다는 ‘사람’…….

    아마도 그는 자신을 감시하는 역일것이다.

    이곳은 자신의 감금실이고.

    그렇다면 그가 불러온다는 ‘사람’은 고문이나 심문의 전문가일게 뻔하지.

    자신을 이렇게 치료해준 것도, 고문으로 정보를 토해내게 할 셈이기 때문인가?

    응급처치솜씨를 보면 꽤나 실력있는 고문 기술자일 것이다.

    고문은 사람을 죽이지 않고 살려두는 것도 꽤 중요한 기술이니까.

    그렇게 상황을 파악한 시에나는 즉시 몸을 박차고 일어났다.

    뭐라도 시도하려면, 그가 방심하고 있는 지금이 최적의 타이밍이다.

    “흡-!”

    -우당탕!

    너무 갑작스런 움직임에 상처가 살짝 벌어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지금은 상황에서 벗어나는 게 먼저라는 생각에 시에나는 곧바로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퍽-!

    시에나의 기습에 당한 고든은 팔이 꺾인 채 벽으로 강하게 밀쳐져 구속되었다.

    “말해! 여긴 어디야? 루크는 어떻게 했지? 동료는 몇명이나 되고?”

    “무슨-?!”

    그는 설마 칼에 찔린 시에나가 그 정도로 민첩하게 움직일 수 있을 거란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는지, 놀란 표정을 지으며 당황해했다.

    “이봐, 일단 진정해! 아무것도 안하니까! 우린 같은 편이야!”

    “웃기지 마! 누가 그 말을 믿을 줄 알고? 내가 묻는 말에나 대답해!”

    “젠장, 이거 말이 안 통하는군!”

    하지만 그렇다고 얌전히 그녀에게 당해줄 수도 없는 노릇인지라, 그는 힘으로 그녀의 팔을 떨쳐내고 그녀를 붙잡아 다시 침대로 몰아세웠다.

    “윽-!”

    그렇게 시에나는 그의 무게와 힘에 눌려 다시 침대에 누워버리고 말았다.

    상당한 완력과 기술이었다.

    부상만 아니었더라도 이런 녀석쯤은 이미 바닥이랑 입술 맞대고있게 만들 수 있었는데.

    그러나 시에나는 포기하지 않고 마구 발버둥치며 외쳤다.

    “이거, 놔–!”

    “이봐, 진정하라니까! 지금 그렇게 무리하게 움직였다간 상처가-!”

    “하, 상처? 이딴 건 아무렇지도 않아!”

    그 때였다.

    -촤악–!

    발버둥치는 소리를 들었던 걸까?

    커튼을 젖히고 또 다른 인물이 등장했다.

    그리고, 그의 모습은 시에나에게는 익숙한 이였다.

    “시에나! 진정해라! 그는 우리 편이야!”

    “루크? 네가 왜……?”

    시에나는 그제서야 몸부림을 멈추고 멍한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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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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