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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55

       

       

       서늘해진 객잔 분위기 속.

       

       몇 초가량 침묵이 흘렀다.

       

       뒤편에 서 있던 무당파의 도인들은 눈을 키우고 있었고.

       구령화가 진땀을 흘리며 입을 가리고 있던 때.

       

       드르륵-!

       

       앞에 있던 지철이 의자를 밀치며 몸을 일으킨다.

       

       “지금 무어라 했는가.”

       

       잔뜩 일그러진 지철의 표정에서, 그가 상당히 화가 나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덜덜덜덜-!

       

       탁상 위에 놓인 잔이 바들바들 떨린다.

       지철 내뿜는 기운으로 인한 진동이었다.

       

       진동을 느끼며 지철을 쳐다봤다.

       

       ‘경지는 영풍이랑 비슷한 거 같고.’

       

       나이는 대충 이립에서 불혹 사이. 이를 따지자면 상당히 뛰어난 무인이었다.

       영풍이 상당히 특이한 경우라 그렇지.

       

       저 나이대에 저 정도 경지라면 어마어마한 천재였으니 말이다.

       

       ‘그래서 그런가.’

       

       눈동자에 오만함과 자존심이 가득하다.

       명문가, 그것도 거기서 천재라 불리며 자라온 이들 특유의 기색이 저랬다.

       

       ‘눈깔을 뽑아버리고 싶게 만들지.’

       

       충동은 참아 낸다.

       지금은 그럴 상황까진 아니었으니까.

       

       “방금 무어라 했지?”

       

       당장이라도 허리춤에 검을 뽑을 것 같은 표정이다.

       그걸 보며 나는 웃음을 잃지 않고 말을 내뱉었다.

       

       “아이고, 화나셨네.”

       

       까드득.

       

       말을 들은 지철이 이를 깨물며 내게 말한다.

       

       “감히, 무당의 제자에게 사파라 칭한 것인가?”

       “아니면 아닌 거지 왜 화나셨을까.”

       

       쾅-! 지철이 탁상을 강하게 내리친다.

       

       “이놈이…. 감히…!”

       

       스으으-!

       

       지철이 점차 목소리를 높이는 가운데. 나는 은근한 기운을 틀어 옆으로 흘려보냈다.

       

       “…!”

       

       그러자 영풍이 나를 보며 당황한 기색을 내비친다.

       내가 녀석의 기운을 붙잡은 탓이었다.

       

       ‘가만히 있어.’

       

       지철이 투기를 내비치던 순간, 영풍의 기운에 날이 서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저대로 뒀다간 그대로 들이받을 것 같기에 우선 막아냈다.

       

       ‘힘으로 붙잡는 건 뒤끝이 구려.’

       

       하물며 주변에 눈이 많다.

       

       바란다면, 눈을 모두 지워버릴 수 있으나.

       나름의 아량을 베풀어야 했다.

       

       북해에서 뒹굴고 있을 몇 없는 친우를 위함이다.

       

       “이곳이 누구의 땅인 줄 알고 이리 무례하게 구는 것이냐!”

       “그건 모르겠는데. 일단 도장의 땅은 아니잖습니까.”

       “뭐라?”

       

       무당이 관리하는 현이고 그들의 보호 아래 놓인 만큼.

       이 땅의 관리자가 무당파인 건 알고 있는 얘기지만.

       

       “혹, 도장이 무당 그 자체십니까?”

       “…!”

       “문파를 사랑하는 마음은 이해하겠으나. 간신히 딸린 어린 나뭇잎이 고목 그 자체인 건 아니지요.”

       

       주제를 모르고 말을 함부로 하지 말라.

       그런 뜻이 가득 담겨 있는 말이다.

       

       그 말이 문제였을까.

       지철이 움직인다.

       

       손을 뻗으려는 행색. 

       손목의 움직임을 보니 검을 붙잡으려는 건가.

       

       철걱.

       

       지철이 움직임에 따라 내 옆과 뒤에서도 움직임이 느껴졌다.

       

       영풍이 도기를 끌어올리고.

       성율이 검을 붙잡는다.

       

       어버버 거리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 놈들인데, 예상외의 반응들이었다.

       

       하지만.

       

       ‘가만히 좀 있어라 제발.’

       

       여기서 쌈박질을 해선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

       

       하여.

       

       나는 일이 터지기 전에, 품에 있던 서찰을 꺼내 탁상 위로 올려놓았다.

       

       멈칫.

       

       갑작스러운 행동에 지철이 움직임을 멈춘다. 

       탁상 위에 있는 서찰이 무엇인지 알아차렸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이 오만하고 모자란 걸 떠나. 다행히 눈알은 제대로 달린 것 같으니.

       

       “어…?”

       

       그걸 본 영풍 또한 의아한 소리를 낸다.

       그렇겠지. 이건 원래 영풍이 가지고 있던 서찰이니까.

       

       “어, 언제…?”

       

       영풍이 제 품을 더듬으며 말하지만, 나는 이를 무시한 채 지철에게 말했다.

       

       “이게 뭔지 압니까?”

       “…”

       “아는 눈치니 따로 길게 설명은 안 하겠습니다.”

       

       서찰은 대충 화산에서 귀물을 반환받기 위해 간다. 

       그런 말이 적힌 물건이었지만.

       

       거기에 박힌 문장이 문제였다.

       

       서찰 아래쪽에 있는 고운 색을 띠고 있는 매화문양의 문장.

       

       저것이 뜻하는 건 오직 하나뿐이다.

       

       ‘장문인의 직속 인장.’

       

       화산파 장문인이 직접 보낸 서찰이란 뜻이다.

       

       이 말이 무슨 뜻이 내포되어 있는지 아는가?

       

       “이쪽은 장문인의 대리 자격으로 왔다는 말입니다. 지철 도장.”

       

       장문인이 직접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기에.

       이 서찰의 문장과 함께 대리인을 보낸다.

       

       가주나 장문인의 직속 인장이란 그런 뜻을 내포하고 있었다.

       

       예전, 내가 화산에 갔을 무렵. 

       장문인과의 독대에서 매화선이 잠시라도 내게 예를 갖췄던 이유가 그것이다.

       

       한데.

       

       “무당에서 그런 이에게 대하는 태도란 게 이런 것입니까?”

       

       화산의 매화선조차 예를 차렸거늘.

       

       기껏 해봐야 이대제자격인 새끼가 이렇게 나오니, 내가 어이가 있겠어, 없겠어.

       

       인장을 보여주며 말을 뱉자, 지철의 미간이 찌푸려진다.

       

       저건 분노의 표현과는 다르다. 당혹감이 어렴풋이 서려 있었다.

       

       “묻겠습니다. 지철 도장. 당신이 무당의 대리인입니까?”

       “…그건.”

       “개인적으로는 아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당신이 무당의 대리인 자격으로 왔다고 하면. 이 꼴이 나선 안 되니까요.”

       “…”

       

       정론을 박았다.

       

       우린 화산파 장문인의 대리인 자격으로 무당에 온 것이다.

       너는 우리를 이렇게 대할 주제인가.

       

       이 말인즉슨.

       

       ‘너 뭐 돼?’

       

       대충 그런 의미가 가득했다.

       

       여기서 지철은 무슨 말을 뱉을 수 있을까.

       나는 흥미로운 눈을 속으로 비추며 그를 쳐다봤다.

       

       눈알이 유달리 흔들리고 있다.

       

       지금은 말을 고르고 골라야 할 때라는 걸 알아차린 것이다.

       

       ‘오만이 머리통을 잡아먹으면 사람이 저리 되지.’

       

       저 나이에 저 경지에 오른 것이라면, 상당히 뛰어난 인재가 맞으나.

       

       그 과정에 있어 오만과 자만에 몸뚱이가 집어 삼켜지면 저런 놈이 되기 마련이었다.

       

       물론, 내 입장에선 오히려 다행이다.

       

       저런 등신 같은 놈 상대하는 건 자신 있는 편이거든.

       

       “아까는 입이 바쁘신 것 같으셨는데, 예상보다 입술이 무거운 분이셨네?”

       

       직전에 주절거렸듯 다시 뱉어보란 말에 지철이 입술을 깨문다.

       

       하나, 침묵이 길어선 안 될 것이다.

       이미 흐름은 내가 가져왔다. 여기서 지철이 할 수 있는 건.

       

       ‘내가 만든 절벽으로 뛰어드는 것과.’

       

       저 버러지 같은 자존심을 버리고 뒤로 물러나는 것.

       

       서 있는 자리에 날카로운 가시를 세워놨으니.

       지철은 멈춰 있을 수도 없을 것이다.

       

       ‘가시’ 란 시선이다.

       

       사방의 도인들이 지철을 보고 있었다.

       

       여기서 그가 택할 수 있는 건 뭘까. 

       내가 보기엔 그다지 괜찮은 선택지가 있어 보이진 않았다.

       

       그렇게 잠시 눈알을 굴리던 지철이 말한다.

       

       “…손님분들을 무시하려고 한 의도는 없었소.”

       

       살짝 물러나려는 기색이다. 겨우 정신을 차린 것 같기는 한데.

       인제 와선 내가 놔줄 생각이 없었다.

       

       “그저 아까도 말씀드렸듯. 본문에 일이 생겨….”

       “그럼, 씨발.”

       

       튀어나온 욕설에 지철이 흠칫한다.

       

       놈의 말을 막아내곤 내가 즉시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아, 죄송. 저도 모르게 그만.”

       

       별로 미안하지 않지만, 사과 한마디를 내뱉고선.

       

       “그럼, 사정에 대해 먼저 말을 하고 이야기를 끌어가는 게 먼저 아니었겠습니까. 무당의 지철 도장.”

       “…”

       

       상대의 위치가 현재 무당을 대표하는 것 같은 기색을 말로 심어준다.

       

       “무당의 일이 있다. 그러니 우리에게 확인해볼 일이 있다.”

       끼익.

       

       상체를 앞으로 숙여 지철에게 조금 다가갔다.

       

       “그런 사정을 좋게좋게 포장해서 얘기를 해주는 걸, 우리는 보통 사회생활이라고 해요. 이 머저리 같은 새끼야.”

       “…!”

       “이쪽이 을의 위치여도 개빡치는데. 문제가 뭔 줄 알아요?”

       

       들고 있던 서찰을 팔랑거리며 지철에게 보여주었다.

       

       “명목은 반환인데. 보니까 거래더라고?”

       

       흠칫.

       

       인기척은 영풍에게서 느껴졌다.

       그걸 우선 무시했다.

       

       매화선의 문장이 박힌 서찰에는 차분한 글귀로 몇 자가 적혀 있었는데.

       

       영풍은 내게 화산의 귀물을 ‘반환’ 받고자 간다고 하였으나.

       글귀에 적힌 말에는.

       

       ‘무당의 귀물을 돌려주는 것도 있었다.’

       

       화산이 보유하고 있던 무당파의 귀물을 반환한다.

       하여 반대로 무당이 보유하고 있던 화산파의 귀물을 돌려받고 싶다.

       

       그런 얘기였다.

       

       “달라고 온 거였으면, 좀 숙이고 가도 됐을 텐데. 서로 교환하자고 온 거면 얘기가 좀 다르잖아요?”

       

       그것도 동등한 위치에 있는 문파끼리라면 더욱이 말이다.

       

       ‘저놈이 무당이 위라고 생각하는 거야, 뭐 그럴 수 있는데.’

       

       무림맹의 맹주가 장문인이고.

       현이 이토록 발달했으니, 조용조용하게 살고 있는 화산파보다 본인들이 위다?

       인간이라면 그렇게 생각은 할 수 있다. 원래 인간이란 그런 놈들이 태반이니까.

       

       근데.

       

       ‘그걸 티 내는 게 문제지.’

       

       생각만 했어야지, 왜 입 밖으로 가져와 이 사단을 만드는가.

       나로선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입으로 뱉은 말을 힘으로 책임질 수 없다면. 

       그보다 병신같은 일이 없거늘, 이놈은 아무래도 제 주제를 한껏 모르는 모양이었다.

       

       지철의 표정을 보며 내가 말했다.

       

       “다시 한번 물어볼게요.”

       

       말하며 시선을 탁상으로 보냈다. 

       미칠 듯이 흔들리던 찻잔은 더는 흔들리지 않고 있었다.

       

       이를 확인하며 눈을 돌리고 몸을 일으켰다.

       

       천천히 걸음을 옮겨 이후 지철의 앞에 섰다.

       

       “지철 도장께서 취한 태도가, 무당을 대표하는 입장이 맞으며.”

       

       눈을 보며 말한다.

       

       “무당에 공식적으로 찾아온 화산파의 이들에게 결례를 범하고 있음을 알고 계십니까?”

       “나는 그런 게 아닌…!”

       

       반문 하려던 지철의 눈이 커진다.

       

       말은 그리 묻고 있으나.

       나는 눈으로 지철에게 다른 걸 묻고 있었다.

       

       -어떻게 할 거냐.

       

       웃었다.

       

       잡고 있던 분위기를 살짝 풀어주기 위해.

       

       -이대로 사과하고 간단하게 물러갈 거냐?

       그리고 입술만을 살짝 움직여 놈에게 중얼거렸다.

       

       -이 쪼다 새끼야.

       “…이 새끼가…!”

       

       철컥.

       

       놈이 이를 듣곤 허리춤에 있는 검을 부여잡지만.

       이를 뽑을 수는 없었다.

       

       “잘 생각해요. 이게 마지막 기회예요.”

       “…!!”

       

       꾸욱-!

       

       내가 손으로 놈이 검을 뽑지 못하게 막고 있기 때문이다.

       

       지철이 당황하며 힘을 주려 하지만.

       아무리 용을 써도 검을 뽑아내는 일은 없었다.

       

       한 손으로는 녀석의 어깨를 붙잡고는.

       

       “이거 뽑으면.”

       

       나는 버둥거리는 놈의 귓가에 다가가 말을 속삭였다.

       

       “너 여기서 죽어.”

       

       화아아악-!

       

       “끅…!!”

       

       말을 들은 지철이 다급히 뒤로 몸을 빼어냈다.

       

       녀석의 이마엔 식은땀이 가득하다.

       말 속에 살기를 너무 짙게 넣은 걸까.

       

       아니, 그것만은 아닐 것이다.

       

       ‘조절이 쉽지 않아.’

       

       나는 손으로 목을 살짝 쓸어내며 아쉬움을 없애야 했다.

       

       저번에 성율 놈에게도 썼던 거지만, 이렇게 사용하려니 다소 복잡했다.

       

       이걸 뭐라고 하더라.

       

       ‘용언(龍言)이라고 했던가.’

       

       용언(龍言).

       

       말에 기운을 담아 상대에게 표출하는 힘.

       

       조금 더 멀리, 그리고 은밀하게 말을 전하기 위한 전음과.

       

       내기를 불어넣어 상대의 움직임을 잠시라도 봉하는 사자후와는 다르다.

       

       목소리로서 상대를 압도하는 힘이라 했던가.

       암왕은 그리 표현하기는 했지만.

       

       나는 아직도 잘 모를 일이었다.

       

       고개를 살짝 까딱이곤 지철을 쳐다봤다.

       

       내가 조절을 잘 못하는 것과 별개로, 지철에겐 상당히 잘 통한 모양이다.

       

       식은땀이 줄줄 흐르는 얼굴에.

       지금 상황을 믿지 못하겠다는 눈빛.

       

       “감히…. 고작 해봐야 후기지수 따위가…!”

       “그쪽은 늙어서 좋으시겠네. 나도 어려서 좋긴 해요.”

       “사람들이 대단하다 칭송해주니, 기고만장해진 모양이구나!”

       

       하하.

       

       그 말을 듣고 웃음을 흘렸다.

       

       “웃어?”

       “난 참 이런 게 재밌더라고요.”

       

       어찌 재미없을 수 있을까.

       

       “보통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정작 본인이 그러고 있다는 걸 잘 모르는 모양이니까. 보는 맛이 있어요.”

       

       무당이라는 이름으로 칭송해주니, 기고만장해진 건 누구인가.

       

       일단 나는 아니다.

       

       이를 들은 지철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다행히 창피한 건 아는 모양이다.

       

       “…이놈…용서 못 한다.”

       

       스릉-!

       지철이 화를 못 이기고 검을 뽑아 든다.

       

       “네놈을 여기서 혼을 내야겠.”

       “뽑았네?”

       

       지철은 뱉고자 한 말을 모두 뱉지 못했다.

       이미 말을 뱉고 있을 때쯤엔, 내 손이 지철의 목에 닿아 있었다.

       

       “방금 내가 뭐라 그랬지?”

       

       검을 뽑으면 죽는다.

       분명 그리 말했었지.

       

       지철은 이를 떠올렸는지 다급히 검을 휘두르려 하지만.

       그걸로는 내 움직임을 막을 수 없었다.

       

       그대로 잡아서 꺾어버리려고 하는데.

       

       “거기까지만 해주시게.”

       

       들려온 목소리에 손을 멈춰야 했다.

       시선을 돌렸다.

       

       어느 순간 나타난 노인이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노인을 본 무당의 인물들이 모두 놀란 표정을 짓는다.

       

       특히 지철의 표정이 압권이었다.

       

       “자, 장로님…!”

       

       차분한 걸음으로 다가온 노인은, 지철에게 시선을 주지 않고 내게 말을 걸어온다.

       

       “본인은 무당의 유백이라 하오.” 

       

       노인의 소개에 내가 지철의 목에서 손을 거두었다.

       

       그리고 가볍게 예를 취하며 말했다.

       

       “비성검(泌星劍) 선배님을 뵙습니다.”

       “허허….”

       

       노인의 정체는, 중원 백대고수이자 무당을 대표하는 고수 중 한 명.

       

       비성검 유백.

       

       나도 아는 유명한 고수였다.

       

       “…알아봐 주니 고맙구려.”

       “몰라뵐 수가 없는 분이시지 않습니까.”

       

       혀에 기름칠을 좀 해서 말하니, 유백의 눈꼬리가 살짝 내려간다.

       

       “우리 아이들이 손님들께 큰 결례를 범한 것 같소.”

       

       유백은 상황을 잠시 살피고는 나와 일행을 보며 말했다.

       

       “죄송하오.”

       

       그리고는 사과를 내뱉더라.

       

       “내 이리 사과드릴 터이니, 부디 화를 풀어주실 수 있으시겠소?”

       “자, 장로님. 어찌 장로님께서 이놈에게 사과를…!”

       

       지철이 중간에 눈치 없게 끼어든 순간.

       

       짜아악-!

       

       유백이 손을 날려 지철의 뺨을 후려쳤다.

       그것도 약하게 친 게 아닌지 뺨을 맞은 지철이 허공을 날 지경이었다.

       

       쿠당탕-! 탁상을 쓰러트리며 지철이 쓰러진다.

       

       “끄으윽…”

       

       입가에 피를 흘리며 지철이 몸을 떨자, 그걸 본 유백이 말했다.

       

       “못난 놈.”

       “자, 장로님….”

       “입 다물고 있거라. 네놈의 처우는 본문에 가서 마저 정할 것이다.”

       

       으르렁거리며 내뱉는 음색은 무척이나 날카로웠다.

       언뜻 보기에 화가 잔뜩 난 것 같이 말이다.

       

       다만.

       

       ‘쯧.’

       

       내 입장에선 쓸데없는 짓임을 알고 있었다..

       

       유백은 일그러져있던 시선을 금세 풀더니, 다시금 이쪽을 보며 말을 이어간다.

       

       “아이의 잘못에 대해선, 크게 혼을 낼 터이니. 부디 이 노인을 봐서라도 용서해주시길 청하오.”

       

       그리 말하며 유백이 한 번 더 고개를 숙인다.

       

       무당의 큰 어른이 이리 잘못을 구하자 뒤편에 있던 무당의 도인들이 몸을 떨어야 했다.

       그걸 보고 잠깐 생각을 굴렸다.

       

       더 할까?

       

       더 하려면 더 할 수 있다. 

       잘 엮으면 그것도 가능할 것 같지만.

       

       “예. 알겠습니다. 사과를 받겠습니다.”

       

       구태여 그러지 않기로 했다.

       

       유백의 사과가 마음에 들어서가 아니다. 

       여기서 섣불리 발을 걸었다간 명분이 저쪽으로 움직일 게 보여서였다.

       

       내가 사과를 받아들자, 유백이 미소를 띠며 말한다.

       

       “받아주어 고맙소. 또한, 손님들께서 괜찮으시다면, 밖에 사람을 준비해놨으니. 본문으로 가지 않으시겠소? 이번엔 이런 실수 없이 ‘정중히’ 모실 터이니….”

       “뭐, 확인해볼 게 있다고 하던데. 그건 괜찮은 겁니까?”

       “그러한 과정이 본디 필요하나, 어찌 귀한 분들께 그러겠소. 본문으로 가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니. 부디 아량을 베풀어주시게나.”

       

       노인이 혀가 가늘고 길다.

       

       저 말에는, 원래 해야 하는 일이 맞으나, 우리를 위해 안 하겠다는 뜻과.

       본문으로 가서 확인해 볼 절차는 있다는 의미를 잘도 담아냈다.

       

       “알겠습니다.”

       

       말을 듣고선, 여기서 더는 꼬아낼 수 없었기에, 나는 우선 고개를 끄덕여야 했다.

       

       탁상 위에 서찰을 집어 들고 영풍에게 건네주었다.

       영풍은 이를 받아들면서도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더라.

       

       그걸 보며 내가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마음에 안 들면 더 할까요?”

       “아, 아닙니다…! 살짝 당황스러워서….”

       이런 상황을 처음 겪어보는 건지, 영풍이 혼란스러워하는 표정은 나름 재밌었다.

       

       ‘쯧쯧, 저래서야 이 험한 세상 어떻게 견디려고.’

       

       강호 초출이 대부분 그렇겠지만.

       저런 답답한 모습을 보니 어지간히 신경 쓰이기는 했다.

       

       모르면 당하는 세상이다.

       

       뒤늦게 알고 뒤집어엎을 힘이 없다면, 철저하게 해야 했다.

       

       나는 쓰러진 지철과 이쪽을 바라보는 유백을 힐끔 보고는 일행을 이끌고 객잔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지철을 좀 더 패지 못한 게 아쉽지만.

       

       이 정도면 충분했다.

       

       딱 이 정도면 말이다.

       

       

       

       

       

       ******************

       

       

       

       

       

       구양천이 객잔을 떠난 직후.

       

       유백은 고요한 눈으로 그들이 나간 입구를 쳐다보고 있었다.

       

       직전의 웃고 있던 얼굴은 어디 가고, 차갑고 서늘한 표정으로 말이다.

       

       그런 유백을 향해, 쓰러져있던 지철이 몸을 일으킨다.

       

       “…장로님….”

       

       지철의 목소리가 들리자, 유백이 그를 쳐다봤다.

       차갑게 내리꽂히는 시선.

       

       지철은 이를 느끼며 몸을 떨었다.

       

       “…죄송합니다.”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뱉지만, 그걸로 유백의 표정이 돌아오는 일은 없었다.

       

       “쓸모없는 놈.”

       “…”

       “이깟 일 하나 처리하지 못해, 내가 나서게끔 하는구나.”

       

       유백의 말에 지철이 몰래 주먹을 말아쥐었다.

       

       “장로님…. 하지만, 놈들이 예상보다….”

       “지금 내게 변명하는 게냐?”

       “아, 아닙니다. 제가 어찌…!”

       “기껏해야 후기지수들이니 충분히 할 수 있다고 말했던 건 네놈이었다. 잊었느냐?”

       

       지철은 말을 돌리며 다급히 유백에게 말했다.

       

       “제가 너무 방심했습니다.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신다면. 이번에야말로 확실하게…!”

       “필요 없다.”

       “…!”

       

       유백의 단호한 말에 지철의 표정에 그늘이 어린다. 

       기회를 박탈당했다는 생각 탓이었다.

       

       하지만, 유백은 그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지철에게 필요없다고 한 것은, 기회를 빼앗았다기보단.

       

       ‘수준이 맞지 않는군.’

       

       지철이 끼어들 만한 일이 아니라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다.

       

       ‘방금, 그 아이.’

       

       유백의 머릿속에 한 얼굴이 떠오른다.

       방금까지 지철을 몰아붙이던 청년의 얼굴이었다.

       

       마지막엔 지철의 목을 잡으려 하던 그 청년 말이다.

       

       ‘소염라라고 하던가.’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중원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청년이다.

       

       최연소 화경이라 하던가? 

       유백은 그 소문을 믿은 적이 없었지만.

       

       지금만큼은 달랐다.

       

       꾸욱.

       

       유백이 제 손을 살폈다. 

       손바닥은 은근히 땀에 젖어 있었다.

       

       “…”

       

       긴장했단 말인가.

       

       이 비성검 유백이?

       

       ‘허허.’

       

       살벌한 감정을 느끼며 유백이 머리를 차갑게 가라앉힌다.

       

       ‘정말 죽이려 했었지.’

       

       유백이 나서지 않았다면, 구양천은 정말 지철을 죽였을 것이다.

       손짓과 눈빛이 분명 그러했다.

       

       하나, 우스운 건.

       

       ‘내가 있다는 걸 알면서도 말이야.’

       

       구양천은 그리 행동하면서도.

       유백이 주변에서 지켜보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다 알고 있었다.’

       

       구양천은 이 거리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유백이 주변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리 행동했다는 뜻이다.

       

       마치, 유백에게 보여주기라도 하려는 듯이 말이다.

       

       ‘무섭구나.’

       

       안 그래도 무당에 일이 생긴 시점이건만.

       유백으로선 귀찮은 일이 들어온 것 같았다.

       

       그때.

       

       “끄아아아악!”

       

       갑자기 쓰러져 있던 지철이 비명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이상한 상황에 유백이 살짝 놀란 듯 지철을 쳐다본다.

       

       “갑자기 왜 이러는…?”

       

       그리고 곧바로 알 수 있었다.

       

       지철은 한쪽 어깨를 움켜잡고 있었다.

       

       ‘저 팔은.’

       

       분명, 구양천이 지철과 대처하던 순간 잡고 있던 어깨였다.

       

       그걸 떠올린 유백이 지철의 어깨를 살폈다.

       

       “허.”

       

       그리곤 허털하게 숨을 뱉어냈다.

       

       지철의 어깨는 부서져 있었다.

       그것도 뼈가 잘게 부서진 상태로 말이다.

       

       그 짧은 사이에 어깨를 이렇게 만들어놨단 말인가?

       

       ‘한데, 왜 이제 와서 이 아이가 이러는 게지?’

       

       방금까지 가만히 있던 지철이, 이제와 갑자기 고통을 느끼는 것.

       유백은 이를 이해할 수 없었다.

       

       다만, 확실한 건.

       

       “…좋지 않구나.”

       

       저들의 방문이 무당에게 좋은 방향으로 흘러갈 것 같지 않다는 점이었다.

       

       특히나 지금 같은 상황이라면 더욱이.

       

       스륵.

       

       유백은 비명을 지르는 지철을 두고 몸을 일으키곤.

       옆에 있던 무당의 도인에게 말했다.

       

       “장문인께 당장 전서를 보내거라.”

       

       도인은 유백의 시선을 마주하자 몸을 크게 떨었다.

       너무나 차가운 눈빛이다.

       

       “아무래도 본문에 일이 생긴 것 같다고 말이야.”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_ 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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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ldhood Friend of the Zenith

Childhood Friend of the Zenith

CFZ, Childhood Friend of the Zenith Under the Heavens, The Zenith's Childhood Friend, 천하제일인의 소꿉친구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 Artist: Released: 2021 Native Language: Korean
Instead of struggling meaninglessly, he acknowledged his pl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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