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555

    <555 – 좋은 말씀 전하로 왔어요(1)>

     

    선풍도골仙風道骨.

    신선의 풍채와 도사의 골격이라는 말이 있다.

    시종장에게는 반만 어울리는 말이다.

    사람이 비범해 보이는 구석은 있는데 그 비범함이 선함이 아니라 악함에 치우쳐져 보인다.

    속성게이지가 어느 쪽에 치우쳐졌나 뜯어보면 악함의 저 끝, 게이지 천장을 뚫고 하늘 높이 승천하여 신선이라 오해받았구나 싶을 정도로.

    신선보다는 마선이 더 어울릴, 그런데 선협물의 인간을 경지상승용 단약으로 만들어 잡아먹는 원시태초괴물신선이라면 썩 어울릴법한 시종장이 말했다.

     

    “황제폐하께서 혹여나 나오는 길을 잘못 찾거든 황녀전하를 모시라 하셨습니다. 낯선 곳에서 길을 잃는 일은 흔히 있는 일이지요.”

     

    런 치려다가 걸린 건 불문으로 부칠 테니 좋은 말로 할 때 따라와라.

    대충 이런 뜻이다.

    나는 교수님과 시종장을 번갈아보았다.

    교수님이 알빠야?를 시전하며 암기를 날리면 한 수 거들어줄 생각이었는데 어째 반응이 시원찮았다.

    인상을 와락 찌푸리며 교수님이 말했다.

     

    “이해가 안 되는군.”

    “허허. 무엇이 그리도 난처하십니까?”

    “본관의 눈이 잘못되지 않았다면 당신은 황제를 따라다닐 이유가 없을 강자인데. 어찌하여 제국의 옥좌에서 내려온 선황에게 충성을 바치고 있지?”

    “드래곤 슬레이어. 용 참살자. 예로부터 전설처럼 전해지는 위업의 한 조각이나, 최강이자 최후의 악룡 오모시로이 이후로는 오직 한 사람만이 진지하게 그 꿈을 노리고 있지요. 소신은 꿈을 꾸는 소년소녀가 좋을 뿐.”

    “세상에서 가장 나이 많은 인간조차도 귀하의 눈에는 소년으로 보인다는 말인가?”

    “허허허. 별의 수명에 비하면 필멸의 굴레를 벗지 않은 이들의 수명이란 티끌일 따름입니다.”

     

    교수님이 뒷걸음질을 쳤다.

    그 브론즈 디 아스트라다 교수님이.

     

    “세상에서 가장 운 좋은 도둑이 있다면 목숨도둑 륭 노사가 틀림없겠어. 자신보다 더한 괴물들은 그 이름을 탐내지 않기에 살아있으니.”

    “세상에 운 좋은 자가 어찌 하나뿐이겠습니까. 용의 가르침을 받는 인간들이란 모두 천운을 누리며 살아가는 존재이지요.”

     

    뒷짐을 진 시종장이 한가로이 내딛는 한 걸음을 브론즈 교수님은 철저하게 한 걸음씩 뒤로 물러서며 간격을 유지했다.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어서 나는 아무도 모르게 은근슬쩍 안법3단계 <스파이아이Spy Eye>, 염탐안廉探眼을 가동하였다.

    뭔지 모를 안개처럼 농밀한 마나가 시종장에게서 아른아른 새어 나오는데, 그 기운이 펼쳐진 범위의 정확히 테두리 너머에 브론즈 교수님이 있었다.

     

    ‘조금만 더 들여다볼까?’

     

    안법, 안술.

    안목의 확장기능은 각 학년에 대응된다.

    1학년의 서치아이Search Eye, 견문안見聞眼.

    2학년의 피어스아이Pierce Eye, 관조안觀照眼.

    3학년의 스파이아이Spy Eye, 염탐안廉探眼.

     

    물론 고인물인 나는 4학년의 기술도 안다.

    프로그노시스 아이Prognosis Eye, 예지안銳智眼.

     

    근육의 움직임을 관찰하여 상대의 다음 수를 예측하는 수를 넘어서, 마나의 흐름을 읽고 어떤 마법과 어떤 행동보조가 일어날지를 예지한다.

    뇌의 사고속도보다 빠른 마나에 의한 초가속은 같은 마나로만 꿰뚫어볼 수 있다.

    그래서 예지안은 ‘눈’으로 보는 것과 ‘머리’로 인식하는 속도 차이를 마나로 극복해야만 그 실용성이 성립할 수 있다.

     

    [살殺]

    [흉凶]

    [괴怪]

    [난難]

     

    잘못 접하면 죽거나, 위험하거나, 이해할 수 없거나, 까다롭거나.

    본능 차원에서 위험성을 판별한다.

    시종장의 주변에 널린 기운은 하나같이 위험했다.

    브론즈 교수님의 주변에 펼쳐진 기운보다 더 심할 정도로.

    하지만 시종장은 딱히 공격에 나서지 않았다.

     

    “어떡하시겠습니까, 황녀전하? 소신은 아카데미의 교수가 두려워 홀로 돌아갈 수도 있고, 거짓된 인연이나마 소중히 여기는 황녀전하와 함께 돌아갈 수도 있습니다.”

     

    마치 선택은 내 몫이라는 것처럼 잠자코 기다린다.

    그것이 내 눈에는 꼭 선택지처럼 보였다.

     

    1. 황제와 시종장을 두고 달아난다.

    2. 황제와 시종장에게 돌아간다.

     

    신규루트에는 언제나 함정이 있다.

    밀수에 너무 심취했다가 범죄가 발각되어서 손목이 뎅강 잘리는 밀수업자처럼 황녀놀이도 너무 심취했다가 단두대에 목이 잘리는 루트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황제나 시종장이 나를 단두대에 매다는 그림은 도통 떠오르질 않았다.

     

    “여기서 조금만 기다리세요. 안부인사만 전하고 돌아올게요!”

    “오크노디 1년생. 지금 제정신인가? 황제가 문안인사를 하면 오냐, 잘 다녀오거라 하고 순순히 보내줄 작자로 보이는가? 이런 수상한 곳까지 자네를 데려오지 않았는가.”

     

    교수님의 걱정은 타당했다.

    한 가지 오해가 있긴 했지만.

     

    ‘황제파파가 날 데려온 게 아니라 내가 황제파파를 여기로 데려온 거잖아?’

     

    순서가 반대로다.

    그러니 황제님이 나한테 나쁜 마음을 품었을 리가 없다.

    아무리 수상하고 강력한 존재라고 해도.

    적어도 지금 이 시점.

    지금의 내게 한해서는.

    이 사람들은 악의를 품고 있지 않다.

     

    “그래, 노리던 물건은 찾았느냐.”

    “덕분에요!”

     

    확정강화권을 보여주자 황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황제님의 뒤에 도열한 뱀파이어들도 한마디씩 툭툭 던졌다.

     

    “폐하의 따님께서는 무척 소탈하시군요.”

    “일족의 성소에는 온갖 귀한 서적과 보물이 잠들어있거늘, 종이티켓 한 장만 가져오다니.”

    “소신이 아끼는 백 년 묵은 외눈 거인의 심혈을 황녀전하에게 바쳐도 되겠습니까?”

    “그리하거라.”

    “와! 공짜도감!”

     

    거인의 피에는 꿀이라도 탔는지 백 년이 지나도 상하거나 못 먹을 것처럼 괴로운 맛은 나지 않았다.

     

    “근데 왜 티켓에서 아무 기운을 못 느껴요? 이거 엄청나게 대마력이 소용돌이 칠 텐데!”

    “짐이 마력반응을 봉인했기 때문이니라. 귀한 것을 헛되이 탐하는 소인들이 나온다면 일을 그르치지 않겠느냐. 물론 지금의 대화도 뱀파이어들의 눈과 귀에는 닿지 않노라.”

    “황제님은 오모시로이 교장님을 죽이고 싶어서 저한테 이렇게 잘해주시는 거죠? 그게 아니면 빚을 갚았는데도 계속 잘해줄 이유가 없잖아요.”

     

    황제는 솔직하게 긍정했다.

     

    “그렇다. 짐의 오랜 과업은 악룡 오모시로이의 토벌. 이 하등한 뱀파이어들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위에 선 종족을 지하세계의 망자로 끌어내려야만 비로소 만족하고 안식을 맞이할 수 있지.”

    “브론즈 교수님에게도 알려주면 사이좋게 지낼 수 있지 않을까요?”

    “답을 들려주기에 앞서 보아라. 여기 눈뜬장님과 같은 뱀파이어들을.”

     

    고서박물관에 들어가기 전까지만 해도 두 명뿐이었던 뱀파이어는 어느새 수십 명으로 늘어났다.

     

    “고성에 잠든 뱀파이어들이 모두 깨어나 달려와 짐에게 충성을 맹세하였다. 오래되고 강한 존재란 이토록 타인의 위에 군림하기 쉽지. 제국이라는 거대한 기틀을 잃더라도 그 힘을 제 것으로 만든다면 옥좌는 필요치 아니하다.”

    “그렇군요!”

    “악룡 오모시로이는 힘으로 꺾어서는 안 된다. 모든 속성, 모든 차원의 힘을 전부 구사하여 백 겹의 차원장벽을 벗길 수 없다면 그저 크기만 한 힘은 닿지 않을 것이며, 그 많은 힘을 홀로 모두 습득하기란 지난한 일이다.”

     

    문득 그리운 기분이 들었다.

    황제토벌이 이 게임의 최종컨텐츠인줄 알았던 시절.

    나름 고수가 되었다고 자부하던 내게 소멸 직전의 황제가 말했지.

    지금 하는 말들을.

    자신을 해치운 나라면 믿을 수 있다면서.

     

    -압도적인 힘이란 백관의 경계조차 모두 무너뜨릴 수 있는가. 그대의 경천동지할 힘을 믿고 염치불구하고 부탁하겠네. 악룡 오모시로이를 토벌해주게.

    -물론 퀘스트에는 보상이 따라야 하지. 짐의 보상은 인류의 운명이 누군가의 변덕에 의해 단절되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 즉, 인류의 미래다.

     

    다른 상황, 다른 장소.

    그러나 같은 뜻을 담아 황제가 말했다.

     

    “재단의 아이여. 모든 장수종은 인류의 적이다. 오래된 것들은 고지식하고 완고해지며, 굽힘을 모르고 굳어가게 된다.”

    “뱀피를 어여삐 여기는 뱀파이어들도 힘없는 인간은 먹이로 취급하지.”

    “인류의 수호자를 자처한 주류 24신격들은 교리를 향한 절대적인 추종을 바라며 가혹한 규칙을 따르지 못한 자에게 벌을 내리기를 서슴지 않는다.”

     

    아인종도 신도 그럴진대 용이라고 예외일 리가 없다.

     

    “인류는 오직 인류에 의해서만 지배되어야 한다. 짐은 인류의 해방을 위해서라면 역사에 길이 남을 잔혹한 폭군이 되더라도 개의치 않는다.”

    “근데 왜 매스각키한테 황위를 물려줬어요?”

    “그대가 짐의 숙원을 도울 수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인류에게 미래가 있다면, 그 미래는 폭군이 아닌 선한 황제와 함께 이어가야겠지.”

     

    예나 지금이나 듣기에는 참 달콤하다.

    신규컨텐츠라는 떡밥에 홀라당 넘어가 황제도 실은 착한 녀석이었다며 동정한 적도 있었지.

    머, 아님 어때?

    적어도 아직은 갈라설 때가 아니다.

     

    “대마력반응을 차원 너머로 감출 수 있다면, 이런 건 어때요?”

     

    뱀파이어를 이용해서 또 무언가 흑막스러운 계획을 꾸미려던 황제에게 나는 훨씬 더 구미가 당기는 제안을 건넸다.

     

    “황제님의 능력으로 본인의 대마력반응을 감춘 채로 제 아이템에 깃들어 숨어계시는 거예요. 그리고 꼭 필요한 순간에 두둥등장을 하는 거죠!”

    “…진심이냐. 진심으로 지금 짐에게 에고웨폰이 되라고 제안하는 것이더냐?”

    “넹!”

    “짐의 백 개의 차원문에 대한 지식을 악룡 오모시로이가 하나라도 지니지 않았다면 그 작전도 통했을지도 모르지. 허나 인지를 왜곡하는 차원마법의 비술은 해당 차원계에 대한 지식이 없는 자에게만 통하기 마련이다.”

     

    모든 차원계에 대한 정보를 지닌 악룡 오모시로이에게 차원마법의 왜곡과 인지부조화는 먹히지 않는다.

    황제에게는 그렇겠지.

    근데 나 오크노디.

    지구인 출신의 플레이어.

    나한테는 오모시로이가 모를 차원이 하나 있다.

     

    “혹시 지구라고 참 살기 좋은 차원계가 있는데 그거 알아요?”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권동욱_158 님의 오크노디 팬아트가 새로운 표지로 등록되었습니다.
    앨리스선배와 배낭배낭2호를 장착한 풀템노디입니다.
    다음화 보기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