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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55

    어느 거리의 한 맨션.

    그곳에선 무슨 사건이라도 벌어졌는지, 폴리스라인과 경찰이 건물을 온통 에워싸고 있었다.

    그에 주민들은 하나같이 걱정스런 반응이었다.

    “무슨 일이 있는 거야? 웬 경찰들이 이렇게 많이 왔대?”

    “몰라요. 뭔 사건이라던데? 경찰이 이렇게 많이 온 걸 보면 심각한 거 아니겠어요?”

    “세상 참 흉흉해서 원….”

    웅성거리는 주민들의 목소리를 뒤로하고, 폴리스라인이 쳐진 문 안쪽에서는 이미 현장감식반의 조사가 한창이었다.

    그리고 그 현장 속, 그들을 감독하는 것으로 보이는 자가 그들의 움직임을 둘러보고 있었다.

    그는 나름 정돈되어있는 거실이나 다른 방과는 달리, 마구잡이로 어질러진 안방을 바라보며 웃었다.

    그것은 증거인멸을 시도한 흔적으로 판단하기에 충분한 현장이다.

    “경관 폭행, 도주, 심지어 기밀문서 유출건에 증거 인멸시도까지…….”

    시에나 포르핀드.

    정직 전에는 서장으로 꽤나 높은 직급의 경찰이었으나, 타워에서 테러리스트를 제압하지 못하고 오히려 자극해 경호업체의 팀장급 인원을 사망에 이르게 한 실책으로 구설수에 올라, 정직당한 여성.

    그동안 겉으로는 꽤나 청렴한 척 자리를 지켜온 모양이다만……

    사람은 결국 궁지에 몰리면 본모습이 나오게 된다지.

    “하나같이 전직 경찰이 했다곤 믿기지 않을 정도로로군. 자신을 내쫓은 조직에 대한 복수심을 이런 식으로 표출하다니…. 정말 윤리의식이 바닥이야.”

    그렇게 고개를 저으며 한탄하던 그는, 곁에서 현장의 바닥에 시선을 고정해둔채로 경직된 경찰관을 향해 물었다.

    “안그런가? 톰 울펜스 경사?”

    “…….”

    “흐음, 역시 대답하지 않겠단 건가.”

    톰 울펜스라 불린 남성은 그에게 동의하지 않았다.

    시에나가 그런 짓을 할 엘프가 아니라는 건 누구보다 자신이 잘 아니까.

    애초에, 그녀는 자신이 언젠가 복직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언론때문에 어쩔 수 없이 행하는 일시적인 조치라고, 서장으로 복직되진 못하더라도 분명 다시 경찰복을 입게 되리라고.

    그런 그녀가 대체 어째서 경찰에 복수심을 품겠는가?

    게다가 그들이 말하는 경찰 단체 폭행건도 매우 이상하다.

    대체 왜 그 다양한 소속의 경찰들은 하필 담당구역도 아닌 그곳에 모여있었으며, 시에나 한명에게 제압당했을까?

    그것도 근무일도 아닌 날에, 사복을 입은 채로?

    그들의 주장으론 개인적인 친분으로 친목을 도모하기 위해 모여있었다곤 하지만, 당시 그들이 모인 곳은 딱히 거주지가 다른 사내여럿이 목적을 갖고 찾아오기 애매할 정도로 놀 거리가 없는 곳이었다.

    오히려 수상한 쪽은 그쪽인데…….

    그 때였다.

    “그래도 맞장구라도 치는 게 좋을 텐데? 우리의 적이 되고 싶은 게 아니라면 말이야.”

    “예?”

    영문모를 소리에 톰이 의아해 머리 위의 귀를 쫑긋거리자, 그는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녀에게 기밀자료를 넘긴 게 너란 사실은 알고 있네.”

    “……!”

    톰은 놀란 표정으로 그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확실한 증거가 있어서 말하는 걸까?

    분명 기록은 남기지 않았던 것 같은데…….

    톰은 그가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건지 전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그가 말을 이었다.

    “그래, 넌 평소에도 그녀와 꽤 친분이 깊은 사이였다지 아마?”

    “하지만, 그건 이 사건과 전혀 관련이-”

    “그러니까, 네가 증인으로 몇마디만 하면 보고서도 깔끔하게 떨어질거야. 그러면 문서작업이 참 편해지겠지?”

    톰이 무어라 반박하는 말을 끝맺기도 전, 그를 무시한 채 제 할 말을 이어나간 남성은 여전히도 웃는 표정으로 계속 입을 열었다.

    “톰, 상관을 팔아먹는 짓이라고 생각하진 말아주게. 어차피 그녀는 더이상 네 상관도 아니고, 경찰도 아닐 뿐더러, 더러운 범죄자일 뿐이니까. 그냥 잠깐 몇마디만 하면 돼.”

    평소의 친분있는 사람의 증언은, 보고서에서 정말 많은 것을 생략할 수 있게 하니까.

    그것도 평소 제 수족처럼 다루던 경사의 증언이라면…….

    그가 말을 이었다.

    “생각해보게. 그렇게되면 사건을 공표할 시간도 빨라질거고, 그녀를 더 빨리 찾을 수 있을 거야. 그러면 그녀가 여기서 또 다른 누명을 쓰기 전에 체포할 수 있을 거고, 그녀는 지금보다 더 많은 형량을 받지 않게 되지 않겠나?”

    “…….”

    그 순간, 현장을 감식하던 인원중 하나가 큰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청장님, 새로운 증거품이 나온 것 같습니다.”

    “아, 그런가? 바로 가지.”

    “…….”

    -툭툭.

    그는 가기 전, 톰의 어깨를 두드려주며 입을 열었다.

    “잘 생각해보게. 톰 울펜스.”

    그리고 그는 톰의 새하얗게 질린 표정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늦든 빠르든, 기차는 결국 종착역에 도착하게 되어있는 법이니까.”

    “…….”

    그리고 톰은 석상처럼 가만히 서서 그와의 대화를 반복해서 떠올릴 뿐이었다.

    한바탕 소란이 진정되고 난 후.

    “그러니까, 여긴 인형점이라고요? 제 응급처치를 해준 건 당신이고요?”

    “그래, 메를린이라고 부르게.”

    노파는 인자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시에나가 과도한 출혈로 인해 발생한 빈혈로 쓰러졌을 때, 루크는 곧바로 메를린의 인형점을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시가르마타의 영향으로인해 속성이 뒤바뀐 지금의 신성으론 누군가를 치유할 수 없었고, 자신의 육체를 흐르는 마나 자체의 성질도 덩달아 변화했기에 일반적인 치유마법도 올바른 효과가 나올 것이라 장담할 수 없었으니까.

    그렇다고 시에나가 경찰에게 쫓기는 지금 신변이 그대로 노출되는 평범한 병원에 데려갈 수도 없고, 다시 그녀의 집으로 돌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기에 메를린 인형점은 결국 현재 루크가 생각할 수 있는 최적의 은신처였다.

    자신의 신체 일부를 인형으로 바꿀 정도의 지식과 솜씨가 있는 그녀라면 당연히 인간의 응급처치쯤은 손쉽게 할 수 있을 테니까.

    실제로, 그녀는 꽤 능숙하게 그녀의 상처를 꼬매주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게 자신이 이곳에 있는 모든 이유와 사정을 들었더라도 시에나는 여전히 얼떨떨한 표정이었다.

    ‘루크는 대체 이런 사람들을 어떻게 알고 있었던 거람?’

    루크가 발이 꽤 넓다는 건 이미 오늘 아침에 봐서 알긴 했지만, 설마 이 정도로 넓을 거라곤 상상도 못했다.

    뭔가 뒷사정이 엄청나게 많을 것 같은 이 인형점이야 뭐, 백번 양보해서 최소한 ‘인형’을 팔긴 하니까 소녀인 루크가 관심을 갖고 인간관계를 갖게 되었다면 그렇다 친다지만, 설마 저런 사람하고까지?

    시에나가 지금도 팔목이 저린다는 듯 손목을 돌리고 있는 고든을 향해 곁눈질로 미심쩍은 시선을 보내자, 그는 보란 듯이 투덜대기 시작했다.

    “나참, 피를 그렇게 흘리고 이제 막 기운을 차린 사람 치곤 너무 팔팔하더군. 선량한 사람의 말도 제대로 듣지 않고 말이야….”

    상황만 두고 보면 정말 어이가 없는 노릇이다.

    환자라고 기껏 돌봐줬더니, 일어나자마자 냅다 팔부터 꺾어버리는 엘프라니.

    하지만 그렇다고 시에나도 할 말이 없는 건 아니었다.

    시에나는 순간 그를 향해 몸을 돌리려다 시큰하게 욱신거리는 복부를 누르며 대꾸했다.

    “당신이 제대로 설명만 했으면 이럴 일도 없었겠죠.”

    자신은 해결사다, 사람을 불러오겠다, 상처가 벌어지니 가만히 있어라….

    그가 막 정신을 차린 자신에게 한 말은 딱히 명확하지 않았고, 의심을 해소하기는 커녕 더욱 증폭시킬 뿐이었다.

    게다가 그는 척 봐도 수상하면 수상했지, 같은 편으로 보이는 인물도 아니었다.

    심지어 해결사라는 직업도 딱히 ‘선량한’사람이 갖는 직업도 아니고 말이다.

    시에나는 그가 쓴 선글라스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런데 그 선글라스는 대체 왜 안에서까지 쓰고 있는 건가요? 뭐가 보이긴 해요? 아니면, 시력이 나빠서?”

    아까부터 계속 지적하고 싶었던 건데, 대체 그는 왜 선글라스를 벗지 않고 있는 걸까?

    썬팅도 꽤나 짙은걸 보니, 저걸 쓰면 어두운 곳에선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게 분명하다.

    어두운 방 안에서조차 짙은 선글라스를 벗지 않는 인간이 정상적인 사람일리 없지 않은가?

    만일 그런 사람이 있다면 아마도 그는 정신이상자, 아니면 장님일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저 어깨를 잠깐 으쓱이며 짧게 대답할 뿐이었다.

    “그냥, 안 쓰자니 눈이 부셔서 말이지.”

    “눈이 부시다고요……?”

    이 어두컴컴한 방에서 대체 뭐에 눈이 부시다는 걸까?

    눈이 부시다는 걸 보면 일단 장님은 아닌 것 같으니, 정신이상이 분명하겠다.

    그 때였다.

    “나 참, 그 사이에 또 싸우는건가.”

    그런 그들의 모습에 루크는 한숨을 쉬며 이마를 짚었다.

    오해가 풀리고 상황이 정리된 다음에도 둘 사이의 대립이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경찰서의 청렴한 서장이었던 시에나와, 일선에서 은퇴한 뒤에도 현장의 감각을 잊지 못하고 지저분한 뒷세계의 해결사로 업종을 변경한 고든은 아무래도 상극인 모양이다.

    “아, 루크…….”

    시에나는 순간 자신이 아이 앞에서 부끄러운 모습을 보였단 생각에 고개를 숙이며 입을 다물었다.

    “뭐, 나도 고든이 별로 맘에 안드는 건 이해한다만.”

    첫인상부터 담배냄새에 절여져있던 그의 후줄근한 모습을 떠올리던 루크는 시에나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할 것도 아니긴 했다.

    어차피 고든은 그녀가 신경쓸 정도로 중요한 인물은 아니니까 뭐.

    그렇게 생각한 루크는 가져온 쇼핑백 하나를 들어 건네며 말했다.

    “자, 아무튼 정신이 들었으면 이 옷으로 갈아입게. 그러고 있기엔 춥기도 하고, 그대의 피가 묻은 의상을 도로 입고 싶진 않을테니. 리브, 부축해주게.”

    -…….

    루크가 그렇게 말하자, 장식인 줄 알았던 침대 곁의 작고 낡아보이는 곰인형이 스스로 움직이며 그녀를 부축했다.

    얼떨결에 몸을 일으킨 시에나는 그 작은 곰인형에게 감사를 표했다.

    “어……, 고마워.”

    아무튼 그렇게 몸을 일으킨 시에나는 루크가 건넨 쇼핑백을 받아 내용물을 확인하고는 의문이 들었다.

    “이건……? 어디서 났어?”

    그녀로선 처음보는 의상의 출처를 루크에게 묻자, 루크는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나가서 새로 사왔네. 바로 돌아가봤지만, 그대의 가택엔 이미 경찰들이 폴리스라인을 세워뒀더군.” 

    “……음, 그렇겠구나.”

    루크의 대답에 시에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계획적으로 자신을 밖으로 불러내서 살해하려고 했던 이들이 집에 아무런 짓을 하지 않았을 리 없다.

    크게 한숨을 내쉰 시에나는 문득 떠오른 생각에 루크에게 물었다.

    “잠깐, 그럼 내 집에 있던 네 짐은 어떻게 됐어? 못찾은거야?”

    그러자 루크는 고개를 저으며 안심하란 듯이 대답했다.

    “벽을 타고 베란다를 통해 들어가서 내 가방은 어떻게 챙겨왔으니 걱정 말게.”

    “아, 그래? 그건 다행이네.”

    루크가 자신의 짐이라도 챙겨서 나온 게 다행인 일이다.

    운 좋게 증거품으로 압수되지는 않았던거려나.

    그나저나, 베란다라니.

    집이 층수가 꽤 되는데, 재주도 좋지.

    역시 고양이라서 그런건가?

    “그렇게 들어간 김에 그대의 방에서도 뭘 챙겨올까 싶었다만, 방은 이미 도무지 뭘 챙겨오기 어려울 정도로 난장판이더군.”

    “아, 그거 말이지…….”

    이어진 루크의 대답에 시에나는 자신이 급히 청소하느라 안방에 모든 잡동사니들을 처박아뒀던 것을 떠올렸다.

    분명 아수라장이었지.

    시에나가 뭐라고 변명하기도 전에, 루크는 통탄스럽다는 듯 말을 이었다.

    “정말 몹쓸 녀석들이지. 아무리 증거품을 찾기 위해서라지만, 숙녀의 방을 그렇게나 철저히 뒤집어댔을 줄이야……!”

    “엥?”

    루크는 이어서 열변을 토하듯 말했다.

    “뭐, 담요나 옷같은 것들이야 그렇다 치지만, 여성의 속옷까지 마구 널브러트리다니…, 기본적인 매너조차 모르는 파렴치한 것들!”

    “……어.”

    시에나는 입을 다물었다.

    그렇구나.

    안방이 난장판이 된 거, 루크는 그걸 경찰들이 했다고 생각하는구나.

    사실 경찰들은 현장을 최대한 보존하는 게 매뉴얼이라서 그들이 마구 어질러놨다는 건 오해긴 하지만, 그걸 굳이 나서서 정정할 필요는 없겠지.

    “그러네, 참 나쁜 녀석들이네.”

    그렇게 대충 대답한 시에나는 다시 루크가 건네준 쇼핑백으로 시선을 내렸다.

    그러자 루크가 물었다.

    “그래서, 사온 옷은 좀 맘에 드나?”

    “음…, 그게 말이지…….”

    섣불리 대답하기에 시에나는 조금 난처했다.

    왜냐면 루크가 사왔다는 옷이 그, 조금, 미묘했으니까.

    “나름 방호력도있고 활동성이 좋은 옷들로 잘 골라봤네. 게다가, 하나같이 인챈트성능도 훌륭하지.”

    하지만 루크는 꽤나 자신있다는 듯 권했다.

    그에 시에나는 다시 쇼핑백을 펼쳐 안쪽의 옷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으음…. 확실히, 그런 느낌이긴 한데……”

    루크가 자신을 생각해서 사준 옷이라 웬만하면 싫은 소리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래도 이건 좀 그렇다.

    곰곰히 고민하던 시에나는 결국, 염치를 불구하고 다시 루크에게 쇼핑백을 돌려주며 말했다.

    “진짜 미안한데, 이거 말고 다른 건 없을까?”

    “어?”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늦어서 죄송합니다.

    금방 낫겠지 했던 몸살감기가 생각보다 오래가네요…….
    여러분은 부디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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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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