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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56

    그렇게 루크가 새로 사온 옷으로 갈아입은 시에나는 옷을 돌아보며 중얼거렸다.

    “음, 옷은 잘 맞네.”

    검은 라이더재킷, 청바지, 후드를 조합해 어느정도 현대적이면서도 활동적이다.

    뭐, 이 정도면 그렇게 눈에 띄지도 않는다.

    시에나는 루크가 가져왔던 옷들을 떠올렸다.

    ‘하하, 아무리 그래도 그건 진짜 아니었어….’

    그건 뭔가, 옛날 모험가들이 돌아다니던 시절에 입고 다녔을 법한 느낌이랄까.

    그래도 가끔은 요즘 스타일에 옛날 요소 한두개를 섞어 입는 건 복고풍이라고해서 패션으로 치는 모양이지만, 그건 좀 너무 옛스럽게 일관적이었다.

    허리에 칼 한자루 차고 다니면 딱 옛날 시골 용병이나 모험가처럼 되었겠지.

    심지어 초록색이고.

    아마 그런 걸 입고 거리를 돌아다니면 시선이 안좋은 의미로 집중될 것이다.

    마담이라는 사람은 대체 뭐 그런 옷을 파는 건지…….

    게다가 추레한 외형과는 달리 방한이니, 방호니, 간단한 케이프에 기능이 무슨 5등급 강화 슈트 급으로 과장되어있는 걸 들어보면 더욱 믿음이 가지 않았다.

    속여도 적당히 속여야 속아주지.

    보나마나 마담이 세상물정에 어두운 루크를 입발린 말로 속여서 재고처리를 한 것이 분명했다.

    “…….”

    그나저나, 리브라고 했던가?

    시에나는 잠깐이지만 그 조그만 몸으로 자신의 수발을 들어주던 작은 곰인형의 모습을 떠올렸다.

    응급처치가 좋았던 탓인지 옷을 갈아입는 것 정도는 별다른 도움 없이도 혼자 해낼 수 있을 것 같아서 도움을 거절하긴 했다만, 루크는 필요하다면 그 작은 곰인형이 옷을 갈아입는 것도 도와줄 수 있을 거라고 했었다.

    요즘 마법기술은 정말 놀라운 것 같다. 

    보고있자면 세상에서 나만 뒤처진 사람 같달까.

    그 조그만 곰인형이 그런 것도 가능하다는 사실에 처음봤을 땐 말도 못할 정도로 굉장히 신기했지만, 인형점이니까 이런 인형 하나쯤 있을 법 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중에 한번 알아보고 하나 사볼까?

    보다보니 귀엽기도 하고, 지금처럼 무슨 일이 생겼을 때 도움이 될 테니 말이다.

    뭐, 이젠 가정용 골렘을 써먹을 곳이 없어지긴 했지만서도.

    -끼익-.

    시에나가 방의 문을 열고 나오니, 다들 테이블에 앉아 무언가를 들고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보였다.

    “…..만일 그렇다면, ….할 수….”

    “…..중요한 건 아직…, 믿을 수 있는….”

    아무래도 뭔가 진지한 이야기가 오가는 모양이다.

    무슨 얘기들을 저렇게 진지하게 나누나 궁금해하며 대화의 흐름에 방해되지 않게 조용히 합류하려던 순간, 문득 명확하게 들려오는 대화소리에 시에나는 몸을 멈췄다.

    “…하지만 그녀의 습격이 아주 나쁜 신호이기만 한 것은 아닐세. 그들이 아직도 ‘뒷처리’를 하고 있다는 것은 긍정적으로 보면 곧, 그들의 계획이 아직은 변수에 의해 틀어질 수 있는 상태라는 이야기일 터이니.”

    -멈칫.

    ‘…습격? 지금 내 얘기 하는건가? ‘

    아마 그럴 것이다.

    이중에 습격을 받은 사람은 자신뿐이었으니까.

    그런데 뒷처리? 계획? 변수? 그건 또 무슨 말이지?

    그들은 뭔가 아는 게 있는건가?

    시에나는 그런 루크의 모습이 문득 낯설어보였다.

    오늘 아침만해도 루크는 그저 가정적인 성격의 잔소리 많은 아이같은 존재였는데, 이 모습은 마법사 그 자체가 아닌가.

    시에나가 애써 대화의 내용을 이해하려는 사이, 고든과 메를린의 말이 이어졌다.

    “그건 그렇군…. 그런 시선으로 보면, 확실히 그렇게도 볼 수 있겠어. 어차피 이제 뭘 해도 방해가 되지 않는다면, 그들이라고 굳이 이런 번거로운 짓을 할 필요가 없을 테니까.”

    “하지만 그들도 이토록 허술하고 급박하게 처리하려고 한 걸 보면,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결코 길다곤 할 수 없겠지. 계획을 조금 더 서두를 필요가 있을지도.”

    분명 뭔가 다들 깊은 이야기를 나누는 건 확실해 보이는데, 전혀 이해가 안된다.

    대화를 계속 엿들어봐도 이해가 되기는 커녕 의문부호만이 더욱 쌓일 뿐이었다.

    그 때, 시에나가 엿듣고 있다는 걸 눈치 챈 루크가 문득 말을 끊으며 아는 체를 해왔다.

    “아, 시에나. 왔으면 거기 서있지 말고 일단 자리에 앉게.”


    “아, 응.”

    루크의 말에 시선이 집중되자, 시에나는 결국 본의아닌 엿듣기를 멈추고 자리에 다가가 앉을 수밖에 없었다.

    근데 뭔가 화가 난 것 같기도 한건 기분탓이겠지?

    시에나가 자리에 앉자, 메를린은 곧바로 갓 따른 차 한잔을 그녀의 앞으로 놓아주었다.

    시에나는 차를 받아들고 묻는다.

    “그래서, 아까 계획이니 시간이니 하는 얘긴 다 뭐야? 무슨 계획? 다들 무슨 소릴 하고 있는 지 모르겠는데요. 일단 나도 좀 이해할 수 있게 상황을 자세히 좀 설명해줄래요?”

    시에나가 묻자, 고든과 루크는 서로 시선을 교환하더니 되물었다.

    “그 전에, 일단 한가지 확실하게 해두지.”

    “확실하게 해두다니, 뭘요?”

    루크가 고든의 말에 덧붙였다.

    “그들에게 저항할것인지, 아니면 도망칠 것인지를 정하라는 말일세.”

    그렇게 선택지가 주어졌으나, 시에나에겐 이미 정해진 것과 다름이 없었다.

    모든 전말을 듣고난 뒤, 어느덧 시간이 지나 다들 수마에 빠질 시간.

    인기척이 사라진 인형점에서 시에나는 소파에 홀로 남아 계속해서 자료를 확인하며 이야기를 곱씹고 있었다.

    그가 밝히길, 고든은 이미 꽤나 전부터 ‘루체스트’에 대해 의문점을 느끼고 홀로 조사를 진행해오던 자였다.

    처음엔 몇몇 수상쩍은 실종사건이나 살인사건을 등을 추적하던 걸로 시작했었다. 

    하지만 해결사라는 직업이 으레 그렇듯, 여러 사건을 마주하다보면 개인적인 호기심이 들기도 하는 법이니까.

    그렇게 석연찮은 부분의 근원을 찾아 올라가다보니 어느덧 루체스트라는 이름까지 닿았다.

    그러다 루체스트가 벌인 끔찍한 일들과, 루체스트를 파고든 이들은 전부 죽거나 미쳐버렸다는 걸 어렵잖게 알아낼 수 있었다.

    단순한 호기심은 그렇게 목적을 갖게 된다.

    그리고 그는 이어서, 경찰같은 공개적인 신분을 유지한 채로 루체스트를 조사한 시에나의 부주의함을 탓했다.

    루크는 그녀는 청렴한 경찰관이었으니, 루체스트에 대한 정보가 없었던 것도 무리는 아니라 다독여주었지만, 그래도 바보같은 짓을 한 건 변하지 않았다.

    시에나도 그쪽을 조사해봤다면 그 사실을 몰랐을 리 없다.

    단순한 소문으로 치부하고 무시했을 뿐.

    그렇다.

    시에나는 그들의 실종과 루체스트가 연관이 있다는 걸 확신할 수 없었고, 설마 경찰인 자신에게도 그런 일이 생길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데 설마 경찰 내부가 이미 그 루체스트의 손아귀에 놀아나고 있었을 줄이야…….

    생각해보면 의심스럽기는 했다.

    전시장 테러때도 경찰들은 현장을 보고 제대로 분석한게 아니라 보이는 정보만 갖고 얼렁뚱땅 급하게 결론내린 느낌이 강했고, 타워 테러때도 지원이랍시고 ‘아이기스’라는 수상한 단체가 오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입장권한을 줘버렸으니까.

    ‘타워에서 그녀가 사람을 너무 믿지 말라고 했던 건 어쩌면, 그런 의미였던 걸지도…….’

    그렇게 시에나는 따로 앉아 그들의 이야기들을 곱씹으면서, 고든이 손수 조사했다는 루체스트의 자료들을 넘기기 시작했다.

    정리된 문서라기보다는 그저 무분별한 증거들의 나열에 가까운 서류뭉치였지만, 대략적인 진상을 파악하는 데는 충분했다.

    ‘모든 일의 배후엔 역시 루체스트가 있었어….’

    대외적으로, 루체스트는 알 사람은 이미 다 알 정도로 꽤나 유명한 다국적 기업이었다.

    다양한 백신, 의약품, 심지어는 의료기구까지, 의료와 관련된 분야라면 거의 닥치는대로 모든 곳에 손길을 뻗치는 엄청나게 넓은 발을 자랑하는 의료기업.

    그들의 성과는 가히 놀라운 수준이며, 의학계의 발전은 거의 그들의 발전에 의해 좌우된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막대한 영향력을 지닌 기업이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독점이나 담합따위엔 관심 없다는 듯 제작한 의약품이나 제품에 대해 언제나 합리적인 가격을 유지했으며, 천문학적이라 할 만한 수준의 기부로 많은 국가에서 청렴기업이라는 인정까지 받았을 정도로 대외적 이미지가 훌륭한 기업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들의 민낯은 달랐다.

    일단 그들의 행적을 나열해보자면, 그야말로 경악할만한 범죄 정황이 수두룩했던 것이다.

    횡령, 배임, 청탁은 기본.

    납치, 인신매매, 인체실험, 테러, 내전 조장등…….

    물론 그들이 ‘루체스트’라는 이름을 달고 행한 범죄는 단 하나도 없었지만, ‘하청’이라는 명목으로 수없이 연관되어 있었던 것은 차마 부정할 수 없었다.

    그들이 벌인 범죄행각을 하나하나 읽어나가던 시에나는 자신도 모르게 손아귀에 힘이 실리는 것을 느꼈다.

    그중엔 심지어, 루크의 몸에 했던 실험기록으로 보이는 자료들도 남아있었으니까.

    그래.

    이 정도로 뒤가 구리다면, 그 가면 너머를 보려고 한 자를 전부 죽여버리려고 하는 게 이상한 것도 아니겠지.

    게다가 최근에는 무엇때문인지 그 ‘뒤처리’가 더욱 빠르고 과격하게 진행되는 중이었다.

    충분히 조용히 처리할 수도 있었던 자신을 그리도 성급하게 노린 걸 보면 말이다.

    루크가 말한대로, 확실히 급하긴 급한 모양인데……

    그 때, 문득 루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에나. 이제 생각은 좀 정리 된 모양이군.”

    “아, 루크구나. 안보이길래 자고 있는 줄 알았는데.”

    -스윽.

    루크가 곁으로 다가와 앉으며 물었다.

    “다들 자러 갔는데, 그대는 딱히 피곤하지는 않은가?”

    “어 뭐, 그렇게 피곤하진 않네. 반나절을 기절해있었으니까.”

    “하하, 그건 또 그렇겠군. 그럼 이야기나 좀 하지.”

    곁에 다가온 루크는 어느덧 평소와 같은 느낌으로 돌아와 있었다.

    아마 그만큼 루체스트에 분노하고 있다는 것이겠지.

    그래서 지금의 모습을 보니 내심 안심이 된다.

    비록 그것이 그저 꾸며낸 모습에 불과할지라도 말이다.

    그말은 적어도 아직 감정을 조절할 수는 있다는 거니까.

    시에나는 보던 자료를 옆으로 내려놓으며 루크와 눈을 마주쳤다.

    루크는 가만히 입을 열었다.

    “실은, 처음에 난 그대를 회유할 생각이었네. 믿을만한 능력있는 경찰 하나쯤 아군으로 만들어 두면 좋을 것 같아서. 헌데 유감스럽게도, 지금은 경찰이 아니게 되었군.”

    “아하하, 그랬어? ”

    작게 웃음을 터트린 시에나는 말을 이었다.

    “사실은 나도 그래. 루크 네가 어떻게든 이쪽과 연관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거든. 그래서 예르나한테서 널 맡아두기로 했던거야. 뭔가 숨기는 게 있는 것 같았으니까, 조금 친해진 다음에 은근히 물어볼 생각이었지. 그런데 설마, 그 모든 걸 이런 식으로 다 알게 될 줄은 몰랐어.”

    그에 루크는 살짝 놀란 표정을 짓더니, 이내 재미있다는 듯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하하, 참. 이렇게보니 둘이 아주 똑같은 생각을 해냈군 그래.”

    “후후, 그러게. 신기하네.”

    그렇게 루크와 시에나는 숨기고 있던 속내를 털어놓고는 허탈하게, 그리고 약간은 시원하게 웃었다.

    그리고 잠시 후, 루크가 물었다.

    “그래, 지금 몸은 좀 괜찮나? 어디 불편한 데는 없고?”

    “아, 으응. 일단은 뭐. 아직 조금 불편하긴 한데, 괜찮아.”

    루크의 말에 시에나는 잠깐 허리를 돌려보았다.

    약간의 불편감이 느껴지긴 하나, 확실히 전보다 낫다.

    “그래? 포션이 잘 듣나보군. 다행이야. 그정도 회복속도라면 아마 내일쯤이면 조금 격하게 움직여도 괜찮을걸세.”

    “…그래?”

    몇시간 전에 비하면 확연히 나을 정도로 포션이 잘 듣는건 다행인 일이다.

    물론, 루크가 뒤에 붙인 ‘격하게 움직여도 될 거’라는 말은 역시 곧이곧대로 믿긴 어려웠지만.

    응급키트용 포션이 무슨 엘릭서도 아니고, 성능이 그 정도는 아닐테니까.

    그래도 확실히 내일쯤이면 많이 나아질 것 같기는 하다.

    그나저나, 갑자기 칼침이라니.

    현역때도 맞아본 적 없는 칼침을 정직당하고 나서 동료들의 손에 당하게 될 줄이야.

    운명 한번 참으로 기구하다.

    그래도 다행인건, 그래도 루크가 있을 때 이런 일이 벌어진 덕분에 목숨은 건질 수 있었다는 점이다.

    만약 그들이 조금만 더 신중했던가, 루크가 없이 혼자 있을 때 이런 일을 당했다면….

    휴, 결과는 생각하기도 싫다.

    이렇게 보니 새삼 운이 좋았던 것 같달까….

    상황이 조금만 달랐어도 결과는 끔찍했으리라.

    그렇게 생각하던 중, 시에나는 문득 한 생각이 떠오르고 말았다.

    ‘잠깐, 그들이 나처럼 진실을 알려고 했던 모든 사람들을 제거한다면….’

    당연히 자신의 명령으로 자료를 조사했던 그 아이도 위험한거 아닌가?

    시에나는 눈이 번쩍 뜨였다.

    ‘톰, 톰이 위험해!’

    맙소사, 대체 왜 이제야 떠올렸을까?

    생각해보면 당연하다.

    자신이 단순히 조사를 하려고 했다는 것 만으로 목숨이 위협받을 정도라면 자신을 위해 직접 자료를 조사하고 정리까지 해준 톰은 매우 위험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게 너무나 당연하지 않은가?

    엄청 뻔한건데, 자신의 상황이 너무 깜깜해서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그렇게 시에나가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자, 루크가 물었다.

    “어딜 가려는 겐가? 이 늦은 시간에.”

    시간은 새벽 2시.

    산책을 하기엔 꽤나 늦었다.

    딱히 안전한 상황도 아니고.

    “아, 잠시 연락할 곳이 생각나서. 금방 갔다올게.”

    “연락할 곳?”

    
루크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시에나가 대답했다.

    “응, 경찰 동료인데, 아마 지금쯤 나 때문에 위험한 상황이지 않을까 걱정이 되거든. 안부라도 확인하고 싶어서.”

    “음, 그런가.”

    시에나의 설명에 루크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덩달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면 머리도 식힐 겸, 같이 가지. 그리고 이번엔 또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모르니.”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분명 늦어도 크리스마스엔 완성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지금보니 크리스마스가 끝나있네요…….
    어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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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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