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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57

   아서는 조이의 옆에서 그녀가 펼치는 마법을 유심히 살폈다.

   

   며칠 새 또 다시 실력이 올랐군. 마법의 구성이 정교해졌어.

   

   혹여나 실수를 할까 싶어 바라보고 있었다마는 괜한 걱정이었던 모양이야.

   

   안도의 한숨을 내쉰 아서는 어깨에서 힘을 빼다가 풀썩하는 소리에 다급히 고개를 돌렸다. 루시 알른이 바닥에 나자빠져 있었다.

   

   한시도 놓을 생각을 않던 메이스가 바닥을 구르고 그녀를 누구보다 든든해 보이게 만들었던 방패는 달그락거리는 소리조차 내지 못했으며 실이 끊어진 인형마냥 제멋대로인 자세는 죽음을 알리는 것처럼 불길했다.

   

   주변의 소음을 무시한 채 멀뚱히 루시를 바라보던 아서는 헛웃음을 흘렸다. 또 다시 우리를 놀리려 하는 것인가.

   

   하하. 필시 그렇겠지. 지금 저 녀석이 쓰러질 이유가 어디에 있단 말이더냐.

   

   연기를 하려면 그럴 듯하게 해야지.

   

   방금 전까지 자신이 주신의 사랑을 받고 있었단 걸 훤히 드러내던 녀석이 갑작스레 쓰러지면 누가 그를 믿을까.

   

   “몸에 이상은 없어요. 모두 다 멀쩡해요. 근데 어째서? 왜? 왜 깨어나시질 않는 거지?”

   

   애써 현실을 부정하던 아서는 얼굴이 창백히 질린 페이비를 보고서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회복 마법은 의미 없어. 저주도 존재하지 않아. 그럼.”

   “페이비. 좀 진정해요. 무작정 그런다고.”

   “영애님이 쓰러졌는데 어떻게 진정을 해요!”

   

   다른 이들의 앞에서는 결코 보이지 않던 초조함. 공황에 빠져 이성을 붙잡아야한다는 생각조차 잃어버린 그녀의 모습에 되래 냉정해진 아서는 심호흡을 하고는 페이비의 앞에 섰다.

   

   “성녀님.”

   “이것도 아냐. 이것도 의미 없어. 그럼. 그럼.”

   “성녀님!”

   

   마력을 담아 페이비의 뇌리에 직접 목소리를 꽂고 나서야 그녀가 고갤 들어 아서와 눈을 마주쳤다.

   

   “당신이 생각하는 루시 알른은 이리도 허무하게 스러질 사람입니까? 성녀님께선 그런 약자의 뒤를 따르겠노라 결심하셨습니까?”

   “…아뇨.”

   “그럼 좀 진정하십시오. 이런 식으로 힘을 소모해봐야 상황을 악화시킬 뿐입니다.”

   

   눈동자를 떨던 페이비가 자신의 두 손을 가슴켠에 포개며 뒤로 물러서자 아서가 한숨과 함께 옆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의 옆에 자리하고 있던 솔라딘의 조각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오른 쪽으로 눈짓을 건넸다.

   

   그를 따라 시선을 돌리자 이미 검을 뽑아든 프레이와 칼이 나무뿌리가 뭉쳐 만들어진 여성과 대치하는 게 보였다.

   

   창끝처럼 날카로운 눈빛을 한 칼은 감정을 지우고서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물었다.

   

   “당신이 한 짓입니까.”

   “예. 제가 그 분을 초대했습니다.”

   “어째서?”

   “주신의 기운을 지닌 분께 도움을 청하기 위해.”

   

   여성이 싱긋 웃음을 지은 순간 프레이가 검을 휘둘러 그녀의 목을 날려버렸지만 여성의 얼굴은 또 다시 자라난 나무뿌리로 대체 될 뿐이었다.

   

   그걸 본 프레이는 재차 검을 휘두르려 했지만 칼이 한 쪽 팔을 내밀어 그녀를 가로 막았다.

   

   “여러분들을 공격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걸 어떻게 믿죠?”

   “제가 어찌 저 분이 지닌 강대한 정신방벽을 돌파했다 생각하십니까? 여왕의 일부에 불과한 전 결코 저 분의 정신을 파고들만큼 강하지 않습니다. 그런 제가 저 분과 아늑한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된 것은 저 분의 보호자께서 저를 허락해주셨기 때문이랍니다.”

   “알아들을 수 있게 이야기해주면 좋겠다만.”

   “아. 저 분이 지닌 것에 대해 완벽히 알진 못하시나요? 곤란하게 됐네요.”

   “아뇨. 이해했습니다. 루엘님께서 허락해주셨단 이야기를 하시려는 거겠죠.”

   

   손으로 턱을 괸 채 고민하는 여성에게 답을 한 건 페이비였다.

   

   “정확합니다. 주신의 빛을 품은 분.”

   “당신이 무엇이기에 루엘님께서 영애님께 접근하는 걸 허락하셨는지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평소와 달리 차갑기만한 페이비의 어투에 애써 입꼬리를 끌어올린 여성은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인사가 늦었습니다. 저는 요정들의 여왕. 깊은 잠에 빠져 꿈과 현실을 헤매는 그 분의 조각이랍니다.”

   

   요정여왕. 그들이 생각했던 최악의 적. 언제나 전투에 돌입할 준비를 하고 있던 일행은 자연스레 서로가 있어야 할 곳에 섰다.

   

   수십수백수천번을 연습했던 진형이다. 여기에 어긋남은 존재치 않는다.

   

   “저 적대할 생각은 없다 말씀을 드렸는데요. 모르시나요? 저 같은 정신체는 거짓말을 하는 게 어렵답니다. 진짜에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고갤 갸웃거리는 여왕을 본 조이는 에르기누스가 해줬던 말을 떠올렸다.

   

   요정은 순수하다. 너무도 순수하기에 타인 또한 순수할 것이라 믿는다. 이는 요정여왕이라 해도 다르지 않다. 쉽게 말해 머리가 꽃밭이란 이야기다.

   

   “남의 친구를 아무런 말없이 건드리고 적의가 없다하셔도 설득력이 없는데요.”

   

   이 자리에 선 모두의 심정을 대변해 조이가 설명을 하자 요정여왕이 팔짱을 꼈다.

   

   미간으로 보이는 곳에 주름이 진 것을 보면 어찌 설득해야하나 고민을 하는 듯 하다.

   

   “그냥 베면 안 돼? 벨 수 있을 것 같은데.”

   “켄트 영애. 저도 그리 생각합니다만 좀 기다려주십시오. 아가씨께서 쓰러진 원인이 이 자라면 무작정 죽여도 의미가 없습니다.”

   “칼의 말이 옳다. 프레이 켄트. 부디 짐승에서 인간으로 진화해주길 바란다.”

   “음. 으으음.”

   

   프레이가 자신의 충동을 견디느라 입을 우물거리던 도중 오만상을 찌푸리던 요정여왕이 갑작스레 고갤 치들었다.

   

   “어라?”

   

   당혹이 잔뜩 서린 목소리를 내뱉은 그녀는 다급히 일행의 뒤 편, 그러니까 루시 알른이 쓰러져 있던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하아암.”

   

   어느새 잠에서 깨어난 루시 알른이 기지개를 키며 하품을 내쉬고 있었다.

   

   그녀를 걱정하던 일행은 긴장감이라고는 하나도 없어 보이는 그녀의 행동에 어이없어했지만.

   

   “진짜 재미없는 꿈이었어.”

   

   루시의 장난스러운 웃음을 보고는 무어라 할 마음을 잃어버렸다.

   

   악신의 기운으로 물들어버린 척박한 대지 위에서도 밝게 빛나는 그녀의 웃음은 사람의 마음을 녹게 하는 힘이 있었다.

   

   *

   

   <이야기는 잘 하고 왔느냐?>

   ‘…할아버지가 들여보내 준 거였어요? 어쩐지 걱정했던 것보다 훨씬 허접하더라.’

   

   내 정신방벽을 뚫었다는 건 거의 악신급에 달했다는 의미인데 그런 것치고 요정여왕이 준비한 숲은 너무도 허술했다.

   

   차라리 간슈가 준비해 놓은 시련 쪽이 훨씬 더 위협적이었어.

   

   게임 속에 없던 컨텐츠라서 잠시나마 흥분했던 내 마음을 돌려내!

   

   설마 이걸로 끝나진 않겠지. 이 뒤에 뭔가가 더 있겠지. 그렇지 않고서야 저토록 자신만만하게 소리쳤을 리가 없으니까.

   

   이외에도 무수한 불안을 애써 무시한 끝에 2페이즈가 찾아오길 기다렸더니 어머나 씨발 꿈에서 깨어나 버렸네?

   

   <글쎄다. 저 분의 준비가 부족했다는 것보단 네 능력이 상식 바깥이었노라 하는 게 옳을 듯 하다만.>

   ‘다 보고 계셨네요?’

   <…이런.>

   ‘후후. 할아버지. 저희가 요즘 사이가 너무 좋았죠? 오랜만에 예전처럼 갈등을 빚어볼까요?’

   <아니. 그. 과거의 연이라는 게 있지 않으냐. 저 분께 받은 은혜가 있기도 하고 저 분의 뜻이 그리 악하지도 않은 듯 하여…>

   

   할아버지가 필사적으로 변명의 말을 내뱉는 것을 무시한 채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멍하니 날 바라보는 친구들을 지나쳐 썩은 나무뿌리를 통해 형체를 갖춘 요정여왕에게로 다가갔다.

   

   “패배선언할 준비 됐어. 닭장 아줌마?”

   

   내 순정을 배신한 대가는 비싸. 저 따위 던전을 가지고서 감히 나한테 도전을 하다니.

   

   마음 같아서는 목줄을 매달고 숲을 돌아다니면서 전 천 년 가까이 살고도 여자애한테 처발린 허접 아줌마입니다라고 외치고 다니게 하고 싶을 지경이야.

   

   그런 짓을 했다간 저어기 바깥에 있는 어느 동정남이 난리를 칠테니 그러진 않겠지만.

   

   “…예. 제가 패배했군요.”

   “이상하네. 왜 이렇게 고개가 뻣뻣해. 꼴에 여왕이란 직함을 달고 있으면서 예절이란 걸 몰라?”

   “네?”

   “머리 박아. 주제파악도 못하는 빡대가리 아줌마. 구해주겠다는데도 굳~이 지랄을 하는 멍청이한텐 제대로 사과를 받아야겠어.”

   

   물론 눈에 띄는 짓을 안하겠단 거지. 사과는 제대로 받아야겠어. 감히 날 기대시키고 바로 실망…

   

   크흠. 아니.

   

   에르기누스의 노력을 배신한 죄! 결코 작지 않을 지어니! 예를 안다면 사죄해라! 요정여왕!

   

   “그. 그으. 죄. 죄송합니다…”

   

   자기가 뭐라도 된 줄 알고 나대던 요정여왕이 고개 숙이는 걸 보고서 만족한 나는 현 상황을 친구들에게 설명해주기 위해 고갤 돌렸다.

   

   그리고 아연해 하고 있는 친구들의 모습에 눈을 끔뻑였다.

   

   음. 으음. 아무것도 모르는 입장에서는 좀 쓰레기 같았나?

   

   *

   

   다행스럽게도 오해를 푸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패배를 인정한 요정여왕이 직접 사정을 설명한 것이다.

   

   누구 하나 구하겠다고 나라의 전력을 끌어모아놨는데 그 당사자가 자길 죽여달란 소리를 했단 걸 이해한 친구들은 내가 분노할 만 했단 걸 인정했다.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루시 알른 네가 아무 생각 없어 보여도 세심하단 건 익히 아는 사실 아닌가.”

   “맞아. 겉보기완 달리 루시 착해.”

   “당연한 걸 왜 언급하시나요? 영애님이 화를 내신다면 이유가 있을 게 뻔하잖아요?”

   “…당연하다기엔 이유 없이 괴롭힘 당한 경우가 꽤 많았던 것 같은데요.”

   “뭐라고. 얼빵아?”

   “아뇨! 잠시 헛소리를 했답니다! 루시!”

   

   이유는 모르겠지만 뒤 편에서 흐뭇한 미소와 함께 고갤 주억거리는 칼을 노려봐 준 나는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눈치를 보는 요정여왕에게 말을 걸었다.

   

   “뇌가 썩어문드러져서 되래 청순해진 닭장 아줌마. 당연히 알 거라고 생각하지만 우리가 물어볼 게 좀 많거든?”

   “예. 예에. 뭐든 물어봐주세요.”

   

   정신 속에서 만났을 때와는 달리 협조적으로 바뀐 요정여왕의 모습이 이상하단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안 된다고 징징거리는 것보단 이 편이 나으니까.

   

   “저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지껄여봐.”

   

   내 물음을 들은 요정여왕은 잠시 생각을 하다가 이내 한탄 섞인 목소리를 냈다.

   

   “여왕의 꿈이 끝나려 하고 있습니다. 꿈의 인물이 현실에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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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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