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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57

    <557 – 같은 시각(1)>

     

    길을 거슬러 올라가는 길에도 몬스터들과 마주칠 일은 좀처럼 없었다.

     

    “왜들 저렇게 시끄럽게 싸우는 거야?”

    “학살업적이 탐이 났나 봐!”

    “세상 참 말세야. 암살자도 아닌 것들이 피에 미쳐서 살육이나 벌이고 다니고.”

    “그러게! 전쟁세대가 당겨지려는 걸까?”

    “전쟁세대?”

    “…아무것도 아니야!”

     

    제국 측 고수들로 추정되는 이들이 지하세계에 잠든 보물을 탐내며 달려드는 몬스터를 학살하고 네임드를 토벌하는 소리가 멀리서도 들렸다.

    덕분에 이번에야말로 손맛을 보겠다며 벼르던 즈앙은 이번에도 1킬도 못 하고 허전하게 지상으로 거슬러 올라오게 되었다.

    몬스터들도 자기네 집 앞마당에서 대살육을 벌이고 있는 인간괴물들이 있는데 쫄래쫄래 뒷마당을 돌아다니는 응애트리오에게 시선을 줄 이유가 없었다.

     

    “용케도 그 황제를 마주하고도 순순히 지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군. 오크노디 1년생, 솔직히 말해라. 황제에게 무슨 사악한 술수를 걸었지? 최면인가, 아니면 세뇌인가?”

    “그런 거 아니에요. 황제파파가 얼마나 착한데요? 전 세계 시민한테는 경제대란과 식량난을 일으킨 폭군일지 몰라도 양녀에게는 따스한 황제님이라구요.”

    “질문이 거꾸로 되었군. 본관이 보기에는 오크노디 1년생이 황제에게 세뇌나 최면을 당해서 제정신이 아닌 것이 틀림없다.”

     

    브론즈 교수님의 의심의 눈초리에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힘겹게 변명하기를 한 시간쯤 지났을까.

    공간이동 마법진이 깔린 전송소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만인의 관심사가 언더월드로 쏠려서 그런지 도시에 잠입하는 일은 조명대를 들고 반짝반짝 빛나는 티토소가라도 수월할 정도로 허술했다.

     

    “아참. 티토소가는 어딨어?”

    “…아.”

     

    즈앙이 뒤늦게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얼굴로 가면을 붙잡고 안절부절못했다.

     

    “제도에 두고 왔어.”

    “뭐어? 그럼 어떡해!”

    “…의도한 건 아니야. 그땐 나도 황제한테 납치당해서 어쩔 수 없었다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도 못 찾고 무료배급소에서 힝잉잉 울고 있으면 어떡해?”

    “티토가 아무리 바보에 푼수에 잡몹에 허접에 한방거리긴 해도 그렇게 멸시하면 안 돼. 우리 친구잖아. 오크노디, 넌 친구를 아끼는 법을 배워야 해.”

    “방금 즈앙이 훨씬 더 심한 소리를 했는데?!”

    “제도에는 혁명군이 있으니 분명 괜찮을 거야. 지젤이라면 그 이색적인 조명대에 대한 정보를 흘려듣지 않고 진즉에 챙겼겠지.”

    “그럴까?”

    “오크노디 너야말로 몬스터군단은 어쩌고 그냥 왔어? 그 엄청나게 많은 몬스터는 어쩔 거야.”

    “앗, 내 제물… 히잉. 너무 아깝네.”

    “제물용이었어?!”

    “아깝긴 해도 어쩔 수 없지. 매스각키도 암흑마나가 있으니까 분명 나 대신 잘 써줄 거야!”

     

    브론즈 교수가 고개를 저었다.

     

    “제군들에게는 기술을 가르치는 것보다 인성교육을 먼저 해야 할 필요성이 느껴지는군. 아카데미에 돌아가면 티토소가를 등에 업고 한 대도 맞지 않도록 보호하면서 살인장애물을 통과하는 장애물훈련장을 만들어야겠어.”

     

    교수님이 제일 나빠.

    나와 즈앙은 눈을 마주치자마자 이심전심으로 같은 생각을 떠올리며 공감의 눈빛을 보냈다.

    티토소가.

    지젤이랑 같이 먼저 아카데미에 돌아갔으면 남은 방학이라도 행복하게 보내렴…

    내년은 지옥이야!

     

     

    * * *

     

     

    같은 시각.

    제국십구강과 제국정예군단이 모든 어그로를 끌고 언더월드의 미확인개체들과 전쟁을 벌이는 사이, 한 무리의 사람들이 지하를 질주했다.

     

    “이쪽이야. 작은 동물들만 사용하는 길이 있어. 식용풀이 갉아 먹힌 흔적을 보니 분명해.”

    “여기부턴 경계를 높여. 손이 닿는 높이에 열매가 뜯긴 걸 보니 인간종 몬스터들의 순찰 구역이야.”

    “이 강은 식수로 사용되지 않는데 사람이 드나든 흔적이 있어. 동물들의 털이 흩날린 흔적이 없으니 확실해. 마법적인 통로일 가능성이 높으니 탐지해봐.”

     

    이사벨이 고르는 족족 맞는 길에 접어들고 심지어 샘물 너머 마법통로까지 찾아내는 재주를 보이자 티토소가의 눈에 경악이 어렸다.

     

    “굉장해요! 이 정도면 숲 원툴 도로시보다 길잡기 능력이 더 좋을지도 몰라요!”

    “훗. 이 정도야 기본이지. 암흑요리사를 목표로 한다면 누구나 할 수 있어.”

    “무슨 요리사가 식재료 채집과 사냥, 길잡이 노릇까지 능합니까? 요리사가 굉장한 직업이라고 착각하면 곤란합니다, 티토소가.”

    “에엣. 요리사가 굉장한 게 아니었어요?”

    “이사벨 양은 고고학자 멀티클래스를 지녀서 평범한 암흑요리사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그렇구나…”

     

    이사벨이 길찾기에 뜻밖의 재능을 보였다면 간간히 마주치는 몬스터들을 상대로 재능을 선보인 사람은 손오천이었다.

     

    <원숭이분신술>

    <일제돌격>

    <십칠포위진>

     

    “지원요청은 어림도 없지.”

    “정정당당하게 승부다.”

    “17 대 1로 한판 뜨자!”

     

    분신 하나당 몽둥이 하나씩만 들고 달려들어도 네다섯 마리는 뒤에서 응원을 하고 때리는 시늉만 하거나 농땡이를 쳐도 될 정도로 일방적인 집단폭행이 가능한 비겁한 분신술!

     

    “으하핫! 제국에 오기 전까지는 작은 충격에도 펑 터지는 분신술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효과가 강해졌단 말이지. 이게 바로 혁명군 대장군의 분신술이다!”

    “아니 씹, 이런 개새, 정정당당의 의미가 뭔지는, 아니 쫌 말 좀!”

     

    소수의 인원으로 손오천과 마주친 몬스터들은 억울함에 홧병이 날 것처럼 노기를 드러냈다.

    개중에는 손오천의 분신술로 늘어난 분신들을 단숨에 때려눕히고 수적 우위를 무의미하게 만들 강자들도 있었기에 어중칠검 히스클리프가 대검을 쥐었다.

     

    “?”

     

    그런데 히스클리프가 가세하기도 전에 손오천이 상대하던 네임드 몬스터가 흠칫 놀랐다.

     

    <따라하기 : 종합발동>

     

    <싱의 살기>

    <대공자의 독기>

    <암흑상인의 여유>

     

    <종합기능 – 패기 발동>

     

    패도를 노리는 일세의 영웅처럼 강력한 기세를 발산하는 분신에게 깜짝 놀란 네임드몬스터.

    그가 기운을 드러낸 분신이 본신이었구나! 하고 크게 놀라 검을 휘두르자 다른 방향의 분신이 패기를 실어 기습을 가했다.

     

    “진짜는 나다!”

    “아니, 진짜는 나다!”

    “나야말로 진짜다!”

     

    모든 분신이 패기를 발동하니 어느 하나도 무시할 수가 없었던 네임드몬스터는 결국 모든 방위에서 마구 쏟아지는 일격을 전부 실초로 여기며 무리하게 대응해야 했고, 그렇게 만들어진 틈에 진짜 손오천의 일격이 꽂혔다.

    세상에 이보다 비겁할 수가 없을 전투법이었지만 티토소가는 눈을 반짝였다.

     

    “우와! 방금 그거 오크노디를 닮았어요!”

    “오우. 정말이냐?”

    “오크노디가 가끔 보여주는 가속잔상검도 어느 게 진짜인지 알아보기 힘들거든요! 막 슈슈슉 샤샤샥 하고 몸이 여러 개로 늘어나면서 지나가는데 갑자기 지나갔던 몸 하나가 불쑥 튀어나오기도 하고…”

    “그거 좋네. 나도 써봐야겠다.”

    “전투복기도 좋지만 지금은 때가 좋지 않군요. 나중에 해주시겠습니까?”

    “이런. 미안하다. 길을 서둘러야지. 어이, 반짝이. 쥐방울의 기술은 나중에 꼭 알려주는 거다. 알았냐?”

    “나중에 제 훈련도 도와주시면요!”

    “흐흐, 조명대 가지고 할 훈련이 뭔진 몰라도 그것도 기대되는군. 얼마든지 도와주지.”

     

    제국정예기사단에 찍혀서 진즉에 뿔뿔이 흩어진 선배들과 달리, 지젤파티는 조금 뒤처지기는 했어도 착실하게 추적을 이어 나갔다.

    히스클리프는 혁명군 수뇌부로 손꼽히는 이 파티가 고작 아카데미 1학년이라는 사실이 믿기질 않았다.

     

    ‘기프트 아카데미에서 모으는 학생들은 세계제일의 자질을 지닌 학생. 혹은 세계제일에 도전할 최소한의 여건을 갖춘 학생이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지만…’

     

    이건 좀 달랐다.

    미래에 그럴 가능성이 있다, 라는 것과 당장 그럴 가능성을 개화했다는 표현 사이에는 수십 년의 세월이라는 차이가 존재한다.

    간혹 괴물 같은 학생들은 졸업 전에 이미 한 분야의 최강자 수준의 실력과 지식을 쌓지만 보통은 졸업만 해도 대견한 수준이었다.

     

    기프트 아카데미는 중퇴자들조차도 범상치 않았다.

    한 지역을 거머쥔 조직의 수장 노릇은 가뿐히 할 수 있고, 거대조직의 간부 자리도 심심찮게 받아 간다.

     

    졸업생들은 거대조직의 수장도 노리고, 일국의 중진으로 거듭나기도 한다.

    그런데 이 학생들은 한술 더 떠서 벌써 혁명군의 수뇌부 자리를 꿰어찼다.

    보통 학생들이 졸업 후에 이룰만한 성취를 고작 1학년 상태에서 이루었으며, 그 결실을 바탕으로 더욱 강한 힘을 얻었다.

     

    ‘지젤파티. 이들이 아카데미를 졸업할 즈음이면 대체 얼마나 더 강해질지 예상조차 가질 않는군.’

     

    평범한 졸업생을 넘어선 상급반졸업생.

    혹은 교수급 강자들이 될지도 모른다.

    다른 이들은 몰라도 적어도 제2의 혁명가 지젤만큼은 그럴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매스각키 황녀전하, 아니 황제폐하의 말씀이 옳았다.

    저들은 인류의 미래다.

    반드시 지켜야만 한다.

    매스각키 황제폐하가 이끌 새로운 제국의 정치적 동반자라면 더욱.

     

    “잠시만… 잠시만 전진을 멈추죠.”

     

    샘물을 내려와 그늘이 드리운 숲에 도달한 지젤파티.

    파티를 이끌던 이사벨을 막고 지젤이 심각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혁명군의 재산을 이용해서 황궁에서 달아난 강화술사의 협력을 받아 강화한 <측정기>가 있습니다. 이 측정기에 심상치 않은 반응이 잡히는군요.”

    “얼마나 심한 반응인데?”

    “히스클리프만큼 강력한 존재가 둘이나 이곳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피하면 되잖아.”

    “숲을 일직선으로 가로지르며 접근하고 있습니다. 이미 이쪽을 눈치 챈 기색인데 도저히 피할 수 있는 속도가 아닙니다.”

     

    지금까지보다 훨씬 힘겨운 싸움이 될지도 모른다.

    하필이면 속도도 너무 빨랐다.

    제국군에게 어그로가 끌렸어야 할 강자들과 이번에는 자신들이 먼저 싸우게 될지도 모른다.

    온갖 불길한 상상이 지젤파티와 히스클리프의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강자의 기척은 마침내 지척까지 도래했다.

     

    “어? 인간이다.”

    “농장 주민이 아닌데?”

     

    하늘을 빼곡히 메울 정도로 수많은 박쥐가 뭉치더니 고귀하고 아름다운 검은 망토를 두른 잿빛 피부의 인간 형상을 이루었다.

     

    “뱀파이어…!”

    “우릴 알고 있으면 더 잘됐네. 너희, 오크노디의 마나잔향이 희미하게 나던데 그 아이를 알고 있지?”

     

    긴장한 낯으로 신중히 고개를 끄덕이는 지젤.

    그에게 뱀파이어가 손에 든 물건을 내밀었다.

     

    “지상으로 올라가서 오크노디를 찾으면 이걸 꼭 건네줘.”

    “두 분은 오크노디를 어떻게 알고 있습니까? 아니… 그 질문은 없던 걸로 하죠. 저희가 전해야 할 물건은 무엇입니까?”

     

    뱀파이어가 심드렁한 얼굴로 대답했다.

     

    “도시락.”

    “예?”

    “뱀피가 지상에 놀러 갔는데 빈손으로 가면 그렇잖아. 뭐라도 들려주고 가야지. 피크닉 가서 혼자만 도시락 없으면 얼마나 서러운지 알아?”

    “…예??”

     

    도시락을 바라보는 지젤의 눈이 혼란에 빠졌다.

    우리 꼬마숙녀는 지하에서 대체 뭘 한 걸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뱀피를 잘 챙겨주는 뱀파이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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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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