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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57

    아직 경찰에 남아있을 동료가 걱정되어 연락을 취하기 위해 먼저 밖으로 나온 시에나는 이후 루크가 걸치고 나온 외투를 보고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루크야, 너……”

    “응? 왜 그러지?”

    루크가 입은 옷은 아침에 입었던 코트가 아니라, 시에나가 한번 거절했던 그 옛스런 케이프였기 때문이다.

    환불받았던 게 아니었나?

    “원래 입던 코트는 어쩌고 그런 걸…?”

    당황한 시에나가 묻자, 루크는 케이프를 슬쩍 돌아보며 대답했다.

    “아, 이거? 코트는 그대의 피로 엉망이 되어서 말이지. 그리고 알다시피, 피는 마법으로 잘 지워지지 않잖은가.”

    “그건 그렇지만……, 결국 환불은 안 받아준 거야?”

    환불받지 않았냐 묻는 시에나의 말에, 루크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대답했다.

    “환불이라니? 이 좋은 걸 내가 왜?”

    루크는 당연히 환불받지 않았다.

    이 케이프에는 이미 은신, 방호, 보온은 물론, 위급시 신체강화에 초보적인 인공지능까지 들어가서 착용자가 의식을 잃어도 어느정도 기능할 수 있도록 하는 기능까지 꼼꼼히 우겨넣었다.

    그런데 이걸 다시 옷가게에 가져가 돈으로 바꾼다니.

    그래봤자 사용된 마법실과 각종 인챈트재료, 그리고 시간은 되돌려주지 않는다.

    그러면 기껏 노력해서 남 좋은 일 시켜주는 꼴밖에 더 된단 말인가?

    루크는 그렇게 생각하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대체 뭐가 별로란 건지, 내 눈엔 괜찮기만 한데.’

    기껏 그녀의 안전을 생각해서 나름대로 기능과 성능에 충실한 의상들을 골라 손수 수선에 인챈트까지 걸었건만…….

    루크는 어째서 이 옷이 거부당했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이 케이프도 나름 그녀가 엘프라는 걸 감안해 짙은 초록색으로 골라왔는데 말이다.

    솔직히 말하면 너무 부담스러워서 못 받겠다고할까봐 시에나에겐 몇몇 기능을 축소해서 설명하긴 했다만, 그게 주된 원인은 아닐 것이다.

    그녀에게 밝힌 정도만 되더라도 꽤나 훌륭한 수준의 인챈트니까.

    일단 시에나가 지금 옷이 좋다니까 그러려니 하겠다만, 사실 루크로서는 그녀가 자신의 옷을 거절한 것에 실망감을 금할 길이 없었다.

    시에나는 별로 외형을 신경쓰지 않는 여자라고 생각했건만, 뭔가 배신당한 느낌이 들었다.

    연미복도 아닌 옷인데, 실용적이면 그만 된 거 아닌가?

    디자인도 이 정도면 그렇게까지 거슬릴 정도가 아니라고 보는데 말이다.

    이후 다른 옷을 구매하러 다시 옷가게에 찾아온 자신을 향해 ‘거 봐, 역시 그건 별로였지?’라며 비웃던(?) 마담의 표정이 어찌나 부끄러웠던지.

    아무튼 시에나의 몸에 맞춰서 구매하는 바람에 가슴둘레나 허리둘레 등이 맞지 않는 다른 옷은 몰라도, 케이프는 앞으로도 계속 입을 생각이었다.

    “이 좋은 걸 그대가 안 입는다니, 내가 입어야지 뭐.”

    루크는 그렇게 말하며 케이프의 단추를 여몄다.

    그런 루크의 대답에 시에나는 멋쩍게 웃으며 다시금 사과했다.

    역시 그냥 입어줄걸 그랬나.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좀 너무했단 말이지.

    그래도 뭐, 루크가 입으니까 저 옛스런 케이프도 나름 실용적인 매력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역시 본판이 되면 뭘 입든 상관 없는 거려나?

    자신같은 수수한 사람이 저렇게 입으면 그냥 촌동네 부랑자처럼 보일게 뻔한데.

    ——

    “뭐, 일단은……. 근처에 공중전화부스가 있는지 찾아보자. 루크는 혹시 길 알아?”

    “알다마다. 이쪽으로 가면 있을걸세.”

    “응, 그렇구나.”

    그렇게 루크와 시에나가 함께 톰에게 연락하기 위해 공중전화를 찾아 새벽 거리를 걷는 한편, 시에나는 문득 자신이 연락해야 할 사람이 ‘톰’뿐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아, 맞다. 예르나!’

    예르나가 떠오른 순간, 시에나는 문득 자리에 멈춰서고 말았다.

    왜냐하면 이후 이어진 사고를 통해 지금 루크가 자신과 함께 있는 이유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예르나가 자신에게 맡긴 역할은 다름아닌 ‘루크의 베이비시팅’.

    즉, 루크가 탈 비행기가 준비되기 전까지 아이를 돌보는 거였다.

    그런데 오늘 일을 다시 돌이켜보면, 자신은 루크에게 아이 돌보미는 커녕 최악의 어른으로서의 모습밖에 보이지 못했을 뿐더러, 오히려 루크를 위험에 빠트린 원인이었다.

    물론 이렇게 된 데에는 이런저런 피치못할 사정이 있긴 해도, 결국 결과는 바뀌지 않는다.

    아침에 식사준비에 요리까지 해준거? 루크였다.

    경찰에게 쫓겨서 칼에 찔린 자신을 구해준거? 루크였다.

    이후 은신처를 찾아주고, 상황을 해결할 방법을 생각해준거? 루크였다.

    결과적으로 루크에게 돌봐진 건 자기 자신이었다.

    그리고 그건 전부 자신의 탓이다.

    예르나가 오늘 루크에게 일어난 일을 안다면…….

    아, 생각하기도 싫다.

    게다가 예르나는 친구를 믿고서 일부러 루크를 기다렸다 다 같이 맞춰서 가려던 출국일정을 며칠 앞당겼던 거라서 더더욱 마음이 무겁다.

    잠시 후, 시에나는 조금 긴장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고보니, 예르나는 오늘 일 알아? 연락은 했어?”

    시에나의 떨리는 목소리에 루크는 시에나를 곁눈질로 슬쩍 보더니, 그녀가 왜 그런지 대충 짐작이 간다는 듯 대답했다.

    “사실, 그대가 기절해 있던 사이 예르나에게 연락이 왔었네.”

    “정말?!”

    시에나는 경악하며 외쳤다.

    아니, 그야 그렇겠지.

    부모로서 홀로 남겨진 아이를 걱정하는 건 당연할 테니까.

    예르나의 성격상, 연락이 안오면 그게 이상한 거겠지.

    시에나는 마른 침을 삼키며 물었다.

    “그, 그럼……. 예르나가 뭐라고 했는데…?”

    시에나는 이어질 예르나의 대답이 염려되어 마음을 단단히 조였다.

    이후 그녀의 입에서 어떤 충격적인 폭언이 쏟아지더라도 견딜 수 있도록.

    눈도 질끈 감았다.

    막상 전해들으려니 루크의 얼굴을 차마 눈 뜨고 마주하기가 부끄러워서.

    그러나 루크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나름 다른 의미로 충격적이었다.

    “몸조리 잘 하라더군.”

    상당히 맥빠지면서도 이해할 수 없는 대답에 시에나는 눈을 크게 떴다.

    내가 제대로 들은 게 맞나?

    “응? 뭐라고? 잘 못 들은 것 같은데, 한번만 더 말해줄래?”

    “몸조리 잘 하라고 전해달라고 했다.”

    시에나는 순간 멍한 느낌이 들었다.

    “…어째서?”

    그 예르나가, 이번 일에 대해서 진짜 아무 말도 안 하고 넘어갔다고?

    설마 그녀는 이런 일에도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무신경한 엘프였나?

    아니, 그럴리가!

    이건 무신경을 넘어선 무언가잖아!

    그녀가 그 정도로 제 주변에 신경을 쓰지 않는 성격이었다면, 애초에 옛날에 있었던 일로 트라우마를 겪지도 않았겠지!

    시에나가 그렇게 따지려고들자, 루크가 한발 앞서서 말을 이었다.

    “내가 그녀에게 말해준 건 그대와 아침에 있었던 일과, 나와 함께 어울려주다 그대가 피로에 지쳐 침대에 쓰러져 잠들어있다는 점 뿐이었으니까.”

    “뭐? 그럼 오늘 일을 숨겼단 소리야?”

    “그게 진실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거짓도 아니지.”

    “그래도, 그걸 숨기는 건…….”

    “그러면, 내가 그녀에게 자초지종을 전부 설명했으면 어땠을 것 같은가? 다음에 이어질 그녀의 대답, 그게 두려운거지?”

    루크는 그렇게 말하며 살짝 웃어보였다.

    “…….”

    시에나는 입을 다물었다.

    확실히, 그게 두렵다는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결국 마주하지 않으면 그건 그냥 회피일 뿐.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그리고 예르나는 누구보다도 진실을 알 자격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루크의 보호자이고, 어머니이며, 자신의 친구이니까.

    그렇게 따지려는 찰나, 루크는 한발 앞서서 대답했다.

    “만약 그랬다 하더라도 아마 똑같은 대답이었을 거다.”

    “……뭐?”

    “오늘 일은 그저 타이밍이 나빴을 뿐, 누구의 탓이라고 하기 힘들다는 건 그대도 알텐데.”

    그대는 자신이 맡았던 사건에 의문점이 생겨 개인적으로 조사를 하다가 범죄조직의 눈에 띄어 습격받았지. 이는 직업상 불가피한 상황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대는 예르나의 친구, 당연히 걱정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모든 진실을 말한다한들, 그녀의 성격상 아마도 똑같은 대답이 돌아왔겠지.

    그런 루크의 말에 시에나는 오히려 더욱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이 물었다.

    “그럼 대체 왜 제대로 말하지 않은 거야?”

    루크의 말대로라면, 이 일을 알게된 예르나는 분명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녀의 도움은 적어도 괜히 경찰들에게 잘못보여서 쫓기는 신세가 되어버린 자신보다는 분명 훨씬 큰 도움이 될 것이란 사실은 뻔하다.

    그녀가 어디 평범한 가정집의 주부도 아니고, 실력도 있고 계급도 높은 숲지기니까.

    하지만 루크는 곧장 답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숨기는 거다, 시에나.”

    그녀의 말대로, 예르나는 분명 도와주려고 할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밝힐 수가 없는 것이다.

    실제로도 과거 이 몸의 과거에 대한 실마리를 찾기 위해서 홀로 위험한 시설에 침입해 자료를 빼오기도 했고.

    하지만, 그게 문제다.

    “그녀가 더이상 내게 휘말리는 걸 바라지 않아.”

    루크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녀의 일상은 이미 자신때문에 많은 희생을 치렀다.

    그녀가 다이튼의 청혼을 받아들일 당시, 과연 자신의 존재가 그녀의 선택에 영향을 주지 않았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시대적인 상식이 없는 자신이 다양한 실수를 할 때마다 직접 달려와 책임지고 사과하던 건?

    그리고 자신의 특별한 신체적인 문제로인해 걱정하고 슬퍼하고 우려해주던 것들은?

    이제와 생각해보면, 그 모든 것들은 자신이 없었다면 겪을 필요 없는 것들이었다.

    헌데 또 다시 손을 내밀기엔, 이미 그녀에게 염치없이 너무 많은 신세를 졌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루크는 뒷짐을 지고 새벽 거리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어찌되었든, 이제 그녀는 행복하잖나. 그러니 그것을 구태여 망가트릴 필요는 없겠지. 그리고 이건 그녀의 도움 없이도 해결 할 수 있는 일이니까.”

    그 말에 시에나는 잠시 루크의 모습을 바라보다, 피식 웃으며 문득 말을 이었다.

    “…그 말은 나는 얼마든지 불행해져도 되고, 휘말려도 된단 소리니?”

    아. 그게 그렇게 되나?

    “아니, 그건-!”

    절대로 그런 의미가 아니었지만, 지레 짐작하여 서운한 티를 내는 시에나의 표정을 본 루크는 황급히 말을 수습하기 위해 애를 쓰기 시작했다.

    “의도를 곡해해서 듣지 말게! 그대는 상황이 좀 다르잖은가…! 예르나는 아직 루체스트의 관심을 끌지도 않은 상태고–”

    루크가 횡설수설하며 당황해하자, 시에나는 장난스레 루크의 어깨를 가볍게 툭 치면서 말을 이었다.

    “농담이야.”

    “뭣.”

    자신이 놀림당했다는 걸 뒤늦게 깨달은 루크는 멍해지고 말았다.

    시에나는 이어 중얼거렸다.

    “그래도 걱정한것처럼 별 거 아닌 이유는 아니었네. 어느정도 납득했어.”

    루크도 여러가지로 배려한 선택이었구나.

    하지만…….

    역시 그 예르나가 그런 배려를 달가워 할 것 같진 않다는 생각이 든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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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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