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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59

       *** ***

         

       모용연화가 옆에 붙은 효과는 확실했다.

         

       사방팔방에서 몰려드는 모용세가의 사람들은 나와 모용연화가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을 보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돌아갔으니까.

         

       “칫…다음에 오겠다!”

         

       비무앵무새 모용강마저 제발로 물러났으니 말 다했지.

         

       그 덕분이라고 해야 할까.

         

       모용연화와 나 사이에는 절로 오붓한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명분. 마음. 분위기 모두가 한 박자를 이루었다고 해야겠지.

         

       집에 서린 모용연화의 추억을 듣기도 하고, 아이들과 놀아주다 지쳐 돌아온 서공을 쓰다듬어주기도 하고, 그런 서공을 쫓아온 애들과 놀아주기도 하면서 밀도 있는 시간을 보냈다.

         

       다만 모용연화와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내 마음속에 있는 미안함도 커졌다.

         

       오래간만에 돌아온 본가다. 당연히 모용연화도 세가의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고 싶을 터인데 내가 붙잡고 있는 꼴 아니겠는가.

         

       “미안하오. 가문의 인원들과 시간을 보내고 싶을 터인데…”

         

       “후후, 괜찮습니다. 둘만의 시간도 전 좋은걸요.”

         

       모용연화는 다 이해해주는 모양이었지만 도리어 모용연화가 관대하게 나왔기에 나는 결심을 굳혔다.

         

       모용세가 사람들과 정면으로 부딪혀보기로.

         

       언제까지 피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고 모용연화와 함께 있으며 의지력도 회복했다. 또한 든든한 모용연화도 옆에 있었으니 이 정도면 충분히 헤쳐나갈 수 있으리라!

         

       *** ***

         

       “하하하! 차 맛이 좋군요. 그야말로 일품입니다. 일품!”

         

       “하하하! 이 요녕에서만 나는 씨앗을 우려 만든 것입니다. 민감하기 짝이 없는 차인지라 조금만 덜 우려도 맛이 나지 않고 조금만 많이 우려도 떫은맛이 나 버리곤 하지요.”

         

       “크으, 그야말로 귀한 차로군요. 이런 차를 대접해 주시다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하하하하! 별말씀을요.”

         

       “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하!”

         

       모용연화는 웃음이 넘실거리는 현장을 둘러보았다.

         

       진짜 기뻐서 웃는 모용세가의 식구들. 그리고 겉으로는 호탕하게 웃으면서 속으로는 죽어가는 호천안.

         

       호천안의 옆에 있는 모용연화는 그 모습을 보면서 쓴웃음을 지었다.

         

       ‘어쩌다가 일이 이렇게 되었을까요…’

         

       모용서의 허락과 섬서분타 식구들의 응원을 받으며 호천안 일행에 합류한 모용연화. 처음부터 호천안과 합류할 생각으로 모용세가를 떠난 것이 아니었으니 세가에 돌아왔을 때 처리해야 할 일들이 좀 있었다.

         

       모용연화에게 호천안이란 무슨 일이건 척척 해내는 사람.

         

       그러니 자신이 없어도 모용세가 사람들과 잘 어울려 지낼 것이라 여기고 잠시 자리를 비웠다.

         

       헌데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급한 일들을 처리하고 돌아오니 모용세가에서는 모용씨들과 호천안이 술래잡기를 벌이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처음 보는 호천안의 허술한 면모가 신기했고 풀 죽은 호천안의 모습이 귀여웠으니 모용연화는 그저 그 모습을 보고 즐거이 웃었다.

         

       그 미소가 문제였을까. 아니면 자리를 비운 것이 문제였을까.

         

       며칠간 오붓한 시간을 보냈음에도 호천안은 계속해서 미안해했다. 진심으로 괜찮다고 말해 보았지만 도리어 호천안은 그런 모용연화의 태도에 안심하는커녕 더욱더 불편해하더니 결국에는 제 발로 모용세가 사람들과 자리를 마련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자, 차가 식기 전에 한잔 드시지요! 하하하하!”

         

       “예! 하하하하!”

         

       그 결과가 지금의 상태였다. 석상에서나 볼 법한 딱딱한 미소를 지으며 차를 넘기는 호천안의 눈에는 이미 생기라고는 한 점 찾아볼 수가 없는 상황. 수분기 한 점 없이 바짝 마른 생선포와 다를 바 없는 호천안의 눈을 확인한 모용연화는 걱정이 들었다.

         

       “대협, 너무 무리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런 모용연화의 염려에 도리어 기력을 짜내며 무리를 하는 호천안.

         

       “…무리라니, 이렇게 즐거운 자리인데 무리랄게 뭐가 있겠소? 하하하하!”

         

       “하하하하! 대협과 이 모용 모의 뜻이 일치하는구려!”

         

       모용연화는 더 이상 호천안을 만류해봐야 역효과가 날 뿐이라는 것을 깨닫고 설득의 대상을 바꾸었다.

         

       “가주님. 이제 그만 호천안 대협을 향한 친분공세를 거두어 주시지요. 억지로 관계를 형성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것은 안될 말이다.”

         

       모용연화의 요청에 모용창천은 고개를 저었다.

         

       “호천안 대협 입장에서야 본 세가의 가족들이 달려드는 게 좀 부담스러울 수야 있겠지. 허나 부담스럽다고, 불편하다고 피한다면 본가와 호천안 대협은 계속해서 서먹한 관계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다.”

         

       “그건…”

         

       모용연화는 모용창천의 말에 반박하지 못했다.

         

       “그리고 세가인들의 관심을 어찌 막겠느냐? 나 역시 호천안이라는 자가 궁금하기 짝이 없다. 연화 너와 무림을 지켜낸 무림의 영웅이라는 것은 소문을 들어 익히 잘 알고 있다만, 과연 네 짝으로서 어울리는 자인지는 소문만으로는 알 수 없는 일 아니겠느냐.”

         

       모용연화는 모용창천의 말에 이 사태의 본질을 깨달았다.

         

       신뢰.

         

       모용세가는 정말로 뇌검낭인 호천안이 믿을만한 자인지 확인해보고 싶었다.

         

       그리고 호천안은 모용세가에 자신이 믿을만한 자라는 점을 확인시켜 주고 싶었다.

         

       혁기린의 근신에 맞추어 돌아가야 할 일정. 그 한정된 시간 속에서 모용세가는 신뢰를 얻고 싶었고 호천안은 모용세가에 신뢰를 주기를 원했다.

         

       “하하하하!”

         

       “하하하하!”

         

       안 되겠다 싶어 도망쳤던 호천안이 부득불 다시 달려든 이유도, 모용연화가 말려도 계속해서 더 억지를 쓰며 모용세가 사람들과 어울린 이유도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모용연화가 잘해주면 잘해줄수록, 모용세가의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은 더욱더 강해졌을 테니까.

         

       모용연화는 멀리서 모용세가 식구들과 호천안이 어울리는 광경을 바라보았다.

         

       끊이질 않고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광경을 멀리서 바라보고 있자니 돌연 황실을 떠나기 전날 밤이 떠올랐다. 갑자기 정해진 본가행에 모용연화가 정신없이 짐을 챙기고 있을 때였다.

         

       흑묘는 그런 모용연화의 손을 잡고 당부했다.

         

       [선배는 말이죠. 사실 대단하기보다는 엉뚱한 사람이에요.]

         

       [그 누구도 해결할 수 없었던 문제를 척척 해결하지만 가끔은 도대체 왜 저러나 싶을 때가 있으니까요. 그럴 때는 연화 소저가 곧바로 정신 차리게 만들어 줘야 해요. 안 그러면 평생 그러고 있을 테니까요.]

         

       흑묘의 조언을 들은 모용연화는 물었다. 대체 그 때를 어떻게 구분하느냐고.

         

       그러자 흑묘는 웃으며 답했다.

         

       [때가 되면 연화 소저도 자연스럽게 알게 될 거에요. 고구마만 잔뜩 먹은 것처럼 속이 답답해질 테니까!]

         

       모용연화는 흑묘와의 대화를 떠올리고는 피식 웃었다. 고구마만 잔뜩 먹은 것처럼 속이 답답해진다라. 정말로 정확한 표현이었다.

         

       정녕 모용세가에 신뢰를 주고 싶었다면 이보다 더 간단한 방법이 없었을 터인데. 호천안은 그 방법을 떠올리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그러니 모용연화는 이 혼란한 상황을 정리하기 위해 모용세가의 인원들과 호천안이 어울리고 있는 장소로 가 입을 열었다.

         

       “연무장으로 가시지요.”

         

       *** ***

       

       뜬금없이 연무장으로 따라와를 당했다.

         

       나는 물론이고 나와 함께 있던 모용세가 사람들까지 모조리 이끌고 연무장으로 향한 모용연화. 연무장에서 수련하고 있던 비무무새 모용강을 비롯한 수련자들의 시선까지 우리에게 몰려들었다.

         

       그러나 모용연화는 아랑곳하지 않고 연무장으로 들어갔다.

         

       정확히 어느 자리에 멈추어 선 모용연화는 날 보고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보이십니까? 보통 세가에 있을 때는 이 자리에서 무공을 연습하고는 했지요.”

         

       “그렇소?”

         

       “예에. 지금도 무공이 좋긴 하지만 어렸을 시절에는 패도일휘검과 반연무월검의 매력에 푹 빠졌었거든요. 쌍극패월검을 완성하겠다고 하루종일 연무장에서 땀을 쏟았었지요.”

         

       나는 어쩐지 그 장면이 손쉽게 연상되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모용연화의 검술 실력은 보통이 아니었으니까. 깨달음을 얻기 전의 혁기린과 비슷한 수준이었으니 이름난 후기지수들 중에서도 상위권이었겠지.

         

       스르릉.

         

       모용연화가 제 검을 뽑아들었다. 그리고 이내 기수식을 취함과 동시에 검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쉬이익!

         

       그저 흥이 올라 휘두르는 검이었고 내공도 없이 펼쳐지는 일종의 춤이었다.

         

       검무.

         

       “호.”

         

       “그 사이 또 성취가 있었구나.”

         

       모용연화의 검무를 보며 감탄사를 터트리는 모용세가의 인원들.

         

       나는 그 감탄사를 반주 삼아 모용연화의 검무를 바라보았다. 사천낭인 시절, 그러니까 이류따리 시절 내가 본 검무란 그저 겉멋에 불과하다고 여겼다. 그리고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었다.

         

       분명 내가 그때 본 검무들은 그저 겉멋이었다. 단순히 그들의 경지가 일천했기에 하는 폄하가 아니다. 그 친구들은 사실 진짜 검무를 구현하기보다는 그냥 ‘내가 검무를 출 수 있을 정도로 잘 난 사람이다’라는 사실을 자랑하고 싶었겠지.

         

       그리 냉정하게 따지자면 지금 내가 보고 있는 모용연화의 검무는, 어쩌면 내가 처음으로 목도하는 검무일지도 모른다.

         

       그저 육체의 힘만으로 펼쳐지는 춤사위다. 사뿐사뿐 이어지는 검무는 미려하고 아름다웠지만 조금도 부드러워 보이지 않았다. 아니 도리어 단단하고 거세어 보였다.

         

       패도일휘검.

         

       무공이라는 영역을 벗어나서도 검 끝에 살아 숨쉬는 패도일휘검의 이치.

         

       결코 타협하거나 그 의지를 굽히지 않겠다는 강건한 마음.

         

       무학의 이치를 잡아줄 초식이라는 틀도, 내공이라는 힘이 없음에도 뚜렷하게 느껴지는 무학의 이치는 모용연화가 쌓아올린 패도일휘검의 경지를 증명한다.

         

       그러니 지금의 검무야말로 모용연화가 이 장소에서 자신의 마음속에 새기고 또 새기었던 패도일휘검의 정수겠지.

         

       이윽고 검이 변화한다.

         

       반연무월검.

         

       그와 동시에 내 마음은 안타까움으로 젖어들었다.

         

       앞서 펼쳤던 패도일휘검의 검무에 비하자면 반연무월검의 검무는 많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깨달음의 순간 모용연화는 반연무월검을 포기했으니까.

         

       모용연화가 검서분타를 구하기 위해 포기해버렸던 모용연화의 반쪽. 당이별론. 특별한 일에 쓰인 특별한 대책은 그 쓰임을 다하고 상처만을 남겼다.

         

       반주와 같은 칭찬 역시 잦아들었다. 섬서분타에서 무슨 일이 있었고, 모용연화가 어째서 쌍극패월검의 조화를 스스로 깨트렸는지 잘 알고 있을 모용세가의 사람들은 그저 조용히, 또한 묵묵히 모용연화의 반연무월검을 바라보고 있었다.

         

       가족임을 떠나 모용연화라는 한 사람의 무인이, 깨달음을 만나 어떤 선택을 했는가. 그 결과를 오롯이 긍정하고 지켜보는 무인들의 시선이었다.

         

       그 결과가 설령 가문의 목표인 쌍극패월검의 완성과 동떨어진 길일지라도 이들은 모용연화를 비난하는 일은 없겠지.

         

       그러나 어쩐지 마음이 술렁거렸다.

         

       나는 안다.

         

       모용연화의 반연무월검은 쇠락도 돌이킬 수 없는 상처도 아니다. 그저 뒤로 물러났을 뿐이다. 모용연화의 반연무월검을 회복될 수 있다. 다시 쌓아올리고 또 쌓아올리면 언젠가는 과거의 모용연화를 넘어설 수 있다.

         

       아니, 진정한 쌍극패월검의 조화를 이룩할 수 있다.

         

       모용연화에게는 그러한 가능성이 남아 있다. 그 사실을 이 모용세가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결코 모용연화는 상이별론에 취해 가문의 대업을 잊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시켜 주고 싶었다.

         

       그 때문일까.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이미 모용연화의 곁에서 검무를 추고 있었다.

         

       *** ***

         

       “허허, 녀석…”

         

       모용연화의 만남 이후 잠시 가문의 대소사를 처리한 뒤 다과회가 열렸던 장소를 방문한 모용창천은 그 자리를 치우고 있는 하인들을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갑자기 다과회가 끝날 상황은 아니었으니 모용연화가 강제로 이 자리를 파토냈다는 결론에 이를 수밖에 없었으니까.

         

       모용연화 그 아이의 고집이 도지기라도 한 것일까.

         

       “다들 어디로 갔는가?”

         

       “모용연화님께서 세가 분들과 호천안 대협을 이끌고 연무장으로 향하셨습니다.”

         

       …연무장?

         

       혹시 또 무슨 일을 벌인 것은 아니겠지. 모용창천은 서둘러 연무장으로 발걸음했다. 대저 둔감하기 짝이 없는 모용씨들과 달리 유독 번뜩이는 영민함을 보여주는 모옹연화였으나 그렇다고 해서 그 핏줄이 어디 가지 않는 것인지 가끔 마음을 먹으면 쇠심줄보다도 질긴 고집을 보여주는 이가 또 모용연화였다.

         

       이번 처사도 납득을 하지 못하고 사고라도 벌인 것일까.

         

       그런 걱정에 서둘러 연무장으로 향한 모용창천이 목도한 것은 모용연화의 검무였다. 대체 무슨 짓을 벌이고 있는 것인지 걱정이 끊이질 않았지만 모용창천 역시 한 사람의 무인. 그 역시 모용연화가 펼치는 패도일휘검의 검무에 빨려들었다.

         

       초절정의 경지라고는 믿기지 않을 수준의 검무에 모용창천은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어지는 반연무월검의 검무.

         

       그 검무를 감상하던 모용창천의 속내는 안타까움으로 물들었다.

         

       섬서분타를 살리기 위해 깨달음의 순간 반연무월검의 희생을 택했던 모용연화. 그 덕분에 혈교의 마수로부터 섬서분타의 방계들을 구할 수 있었지만…과연 그 깨달음이 쌍극패월검의 완성을 향했다면 모용연화는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었을까.

         

       한 명의 무인으로서. 또한 모용세가의 한 사람으로서 모용연화의 선택을 존중하지만 그 아쉬움만큼은 금할 길이 없었다.

         

       그 때였다.

         

       호천안이 성큼 앞으로 나섰다. 그러더니 이내 검을 뽑아들고는 검무를 추기 시작했다.

         

       모용연화의 검무에 흥이라도 난 것일까. 돌연 나선 호천안의 내심을 짐작하던 모용창천은 이내 눈을 크게 떴다.

         

       호천안의 검이 반연무월검을 그려냈기 때문이었다.

         

       어설프고 부족했으나 분명 호천안의 대검이 그리는 궤적, 품은 뜻은 반연무월검이었다.

         

       “어찌, 외인이 반연무월검을…?”

         

       어떻게 호천안이 반연무월검을 펼칠 수 있는가. 놀라 웅성거리는 이들과 달리 모용창천은 지금의 상황을 이해했다.

         

       ‘검무이기에 가능한 일이겠지.’

         

       내공이라는 힘도, 초식이라는 틀도 필요없는 검무이기에 그 뜻만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면 반연무월검을 검무로 풀어낼 수 있다.

         

       검무를 구경하던 모용세가 인원들의 웅성거림은 그리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호천안의 검무와 모용연화의 검무가 하나로 이어지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그 모습을 모용창천을 비롯한 모용세가의 인원들은 말없이 지켜보았다.

         

       ‘어설프기 짝이 없구나.’

         

       모용창천은 두 사람의 검무를 그렇게 평했다. 한 사람은 반연무월검을 잊었고 한 사람은 그저 반연무월검의 흉내에 지나지 않았으니 그러할 수밖에. 만천하에 그 이름을 떨치는 기재이자 화경 고수, 그리고 드넓은 중원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무가의 후기지수가 펼치는 겸무치고는 너무나 부족했다.

         

       그러나.

         

       아주 조금씩 나아진다.

         

       모용연화가 잊은 반연무월검을 알려주겠다는 듯이 간간이 호천안의 검이 이치를 담이 번뜩인다. 사람 키만한 대검으로 펼쳐지는 부드러운 움직임. 선행된 그 움직임을 모용연화가 따른다.

         

       선행되던 호천안의 검이 갈피를 잃는다. 어디까지나 그가 아는 반연무월검은 모용연화의 어깨 너머로 보고 느낀 것 뿐이었으니까. 육성진을 통해 교류하고 화경이라는 경지를 통해 부분부분 이해했을 뿐 반연무월검의 전체를 알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럴 때마다 모용연화가 앞으로 나선다. 호천안은 부끄러워하지 않고 그 뒤를 따른다. 흐름이 이어지고 다시 한번 호천안의 검에서 반연무월검의 이치가 번뜩인다.

         

       그렇게 조금씩.

         

       아주 조금씩 모용연화의 반연무월검은 발전해가고 있었다.

         

       ‘그렇군.’

         

       모용연화의 반연무월검은 꺾이지 않았다. 그저 퇴보했을 뿐이었다. 퇴보한 만큼 정진한다면 분명 언젠가 모용연화의 검은 쌍극패월검에 닿을 수 있다.

         

       분명 그 길은 멀고 험할 것이다.

         

       하지만.

         

       ‘자네가 돕겠지.’

         

       무공이란 무인의 혼이다. 그 스스로가 쌓아 올린 업이자 사람 그 자체이기도 하다. 서로서로 보듬어가며 높은 곳으로 향해가는 두 사람의 검무에 모용창천은 깨달았다. 모용연화의 반연무월검은 언젠가는 드높이 올라 있는 패도일휘검과 동등한 경지에 오를 것이고 그 조화를 갖추어 쌍극패월검으로 발전해 나갈 것이라고.

         

       두 사람은 검무를 통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하하하하!”

         

       모용창천은 웃음을 터트렸다. 우호를 다지기 위한 가식적인 웃음이 아니라 속 깊은 곳에서부터 우러나온 웃음이었다.

         

       이미 두 사람은 인생의 동반자였거늘 대체 무엇을 의심했던 것일까.

         

       그렇다면 두 사람의 웃어른으로서 해야 할 일은 하나뿐이었다.

         

       두 사람을 돕는 것.

         

       모용창천이 검을 뽑아들고 검무를 추기 시작했다. 천하에서 가장 완성된 반연무월검이 두 사람 앞에서 펼쳐졌다. 검무를 추던 호천안과 모용연화가 모용창천의 인도를 따른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모용씨들도 하나 둘 검을 뽑아들고 검무에 합류했다. 비록 자신의 만연무월검은 모용창천의 검에 미치지 못할 터였지만 그래도 두 사람에게 도움이 될지 모를 일이었으니까.

         

       그렇게 모용세가의 연무장에서는 끊이지 않고 검무가 이어졌다.

         

        *** ***

       

       사고쳤다!

         

       검무로나마 반연무월검을 펼쳤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서 든 생각이었다.

         

       대저 무림인이란 어떤 족속인가. 무공에 죽고 무공에 사는 족속들이다. 당연히 비전의 유출은 지극히 민감한 사안이다. 내가 반연무월검을 이해하게 된 것은 섬서분타에서 모용연화의 특훈을 도왔고 모용연화와 마음이 이어진 탓이지만 이유가 무엇이 중요할까.

         

       연무장에서야 다들 분위기에 취해 그냥 넘어간 듯 싶었지만 어떤 한 사람이라도 걸고 넘어진다면 내 입장은 상당히 곤란해질 수밖에 없다.

         

       아니나 다를까.

         

       그 날 이후 날 대하는 모용세가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대협. 기침하셨소.”

         

       “하하하하하! 예. 좋은 아침입니다!”

         

       앞으로 이어질 무지성 대화에 단전과 머리에 힘을 빡 주고 있었거늘 가볍게 목례를 한 뒤 갈 길 가버리는 모용성진. 비단 모용성진 한사람뿐만 아니라 마주치는 모든 모용씨들이 날 붙잡기는커녕 가벼운 인사만을 남겼다.

         

       그리 황망함을 감추지 못하고 모용세가를 떠돌고 있을 때 모용강과도 마주쳤다. 모용강은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인상을 팍 구겼지만 언제나와는 다르게 그 손은 검병을 잡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반연무월검이 제법이더군.”

         

       “예?”

         

       “흥!”

         

       심지어 비무무새인 모용강조차도 날 그냥 보내주었다! 그 모습을 멍하니 지켜보던 나는 온몸을 휘감는 불안감에 몸을 떨었다. 뭔가, 뭔가가 일어난다! 엄청난 파도가 온다아앗!

         

       “큰일 났소!”

         

       당장이라도 대비책을 세우기 위해 모용연화에게 달려가 미주알고주알 떠들었다. 눈을 휘둥그레 뜨고 내 말을 들어주던 모용연화는 갑자기 웃기 시작했다.

         

       “대협, 대체 무슨 말을 하시는 겁니까?”

         

       “어?”

         

       “어가 아닙니다. 대협. 흑묘 소저의 말이 정확히 들어맞는군요. 어찌 어제의 일을 그렇게 해석할 수 있단 말입니까?”

       

       아니 그럼 어떻게 해석을 해?

         

       다른 해석이 존재할 수 있는 건덕지가 있나?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리고 있자니 모용연화가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 모습은 어쩐지, 흑묘가 가끔 나를 보며 짓는 표정과 똑 닮아 있었다.

         

       “대협은 참으로 알 수 없는 분이십니다.”

         

       “미, 미안하오?”

         

       “미안할게 뭐가 있단 말입니까. 그래서 좋다는 말이었는데요.”

         

       …왜 갑자기 논리가 비약했지? 모용연화의 사고흐름을 따라갈 수가 없어서 눈을 껌벅거리고 있자니 모용연화가 다가왔다. 갑작스러운 다가옴에 놀라 살짝 몸을 뺐지만 이미 등받이가 달린 의자에 앉아있는 시점에서 모용연화에게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무엇 하나 특별함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저를 생각해주시고 있다는 뜻이니, 한 사람의 여인으로서 참으로 기쁩니다.”

         

       뭉클한 가슴의 감촉이 느껴지고 모용연화의 얼굴이 점차 가까워졌다. 나와 모용연화의 얼굴 사이에 한치쯤의 간격이 남았을 때 모용연화는 웃음을 터트렸다.

         

       …어지간히 멍청한 표정을 짓고 있었던 모양이다.

         

       “흑묘 소저께는 종종 어린아이를 보는 듯한 느낌으로 대협을 바라보고는 했지요. 그때마다 의문이었거늘 이제야 좀 그 심정을 알 것 같습니다.”

         

       “…무슨 의미요?”

         

       “무슨 의미긴요.”

         

       그저 앞으로 잘 부탁드린다는 뜻입니다. 낭군님.

         

       그리 속삭인 모용연화의 입술이 이내 내 입술 위로 포개졌다. 몸으로 느껴지는 모용연화의 체온. 콧속을 파고드는 분향 그리고 입술 위에 얹어진 입술의 감촉을 느끼면서도 여전히 내 머릿속은 정리되지 않았지만…

         

       이내 아무래도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용연화가 지금의 나를 좋아한다면, 뭐 좀 멍청하게 있어도 나쁘지 않을 테니까.

         

       찾아오는 이도 없을 테니 방해꾼도 없을 터.

         

       누구랄 것도 없이 나와 모용연화의 입술이 다시 한번 포개졌다.

         

       여름이 아니라, 봄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뽀뽀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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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n Outcast the Martial Arts Masters are Obsessed With

I Became an Outcast the Martial Arts Masters are Obsessed With

무협게임 속 고수들이 집착하는 낭인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became Ho Cheon-an, a second-rate warrior in the martial arts game [Murim Cheonha].

To survive, I had no choice but to give enlightenment.

Martial arts masters began to obsess over me.

In Murim Cheonha, where fame means difficulty, getting attention meant death.

Please, just go away.

Please, let me l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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