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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59

   – 한심한 남자구나.

   

   내가 눈을 뜨기 무섭게 솔라딘의 조각이 시비를 걸어왔다. 이 녀석이 이러는 게 하루 이틀 일이 아닌지라 가뿐히 무시하려 했지만 조각이 뒷말이 나를 멈춰 세웠다.

   

   – 노출 좀 있는 갑옷을 보았다고 코피를 흘리며 기절하다니.

   

   …아. 그랬지. 나는 겉옷 아래에 가려져 있던 그 녀석의 꼴사나운 갑옷을 보고.

   

   “진지하게 목을 매달고 싶어졌다.”

   – 저 나무라면 적당하지 않으냐?

   “매달리는 순간 나뭇가지가 부러질 것 같은데.”

   – 꼴사납게 흙바닥을 구르는 쪽이 더 처량하고 애처롭고 웃기잖나.

   “네 놈. 사실 악신의 수하였던 것 아니냐?”

   

   조각에게 날선 목소리를 냈지만 죽고 싶단 마음은 거짓이 아니었다.

   

   하필이면 그 루시 알른의 앞에서 그것도 녀석의 매도를 듣고서 정신을 잃어버린다니!

   

   이건 흑역사 정도로 끝날 일이 아니다! 자칫 잘못하면 나란 인간이 리나님이나 예술 교단의 사도님 수준으로 격하될 위기다!

   

   …생각해보면 스스로 죽는 방법은 목을 매다는 것뿐만이 아니군. 어찌하면 고통 없이 최대한 깔끔하게 죽을 수 있을지 고민해볼까.

   

   – 쯧. 이런 게 내 후손이란 게 믿기지 않는다. 주신의 사랑을 받는 그 꼬마아이나 네게 장난치길 좋아하는 꼬맹이가 주로 하는 말을 빌리자면 실로 개허접이구나.

   “그걸 부정하진 않겠다만. 변명은 하게 해다오.”

   – 지껄여봐라. 모조리 비웃어주마.

   “이번 일에는 분명 루시 알른 그 녀석의 죄과도 있다 생각하지 않으냐?!”

   – …뭐?

   “그 녀석은 너무도 무방비하다!”

   

   가끔 생각한다. 루시 알른은 자기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잘 모르는 게 아닐까하고 말이다.

   

   그녀는 너무도 무방비하다.

   

   주변의 신경을 쓰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바라볼지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에게로 향하는 시선에 짓궂은 대답을 돌려주기는 하지만 정작 그 말 안에 진심이 있는 경우는 없다.

   

   아니. 거의 없다고 하는 편이 옳으리라. 자신의 옆에 도사리는 여우나 자신의 미모를 찬양하는 사도에게 내뱉는 혐오에는 진심이 담겨 있으니까.

   

   옆에서 그걸 듣고 있는 입장에서도 식은땀이 흐르는 폭언의 연속을 어찌 그 둘은 가뿐히 넘기고는 해실해실 웃을 수 있는 것인지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다.

   

   이해하고 싶지도 않다. 그 심정에 자그마하게라도 공감하는 순간 인간에서 짐승으로 격하 당하게 될 듯 하니 말이다.

   

   하여튼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루시 알른은 지금 자신이 주변에 어떻게 비치는 지를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과거의 그녀는 멀리서 바라보면 아름답고 귀엽지만 도저히 다가가고 싶지 않은 무언가였다.

   

   근처에 다가서는 순간 가시라는 말로도 부족할 것들이 날아들어 사람의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버리니 그 외견을 마음 편히 감상할 수 있는 자는 존재치 아니했지.

   

   그렇기에 막 학원에 발을 들였을 당시 그녀의 주변이 텅 비었던 것이다.

   

   이런저런 사유로 루시 알른이란 인간에게 질려버린 자들은 또 다시 그녀와 엮이길 꺼려 도망치고, 그 정도로 루시 알른을 싫어하지 않는 자는 멀찍이서 바라보기만 한다.

   

   어쨌건 루시 알른이란 인간은 멀리서 바라보면 예술품 같은 모양새를 하고 있으니까.

   

   바꾸어 말하자면 예술품 이상이 될 수 없는 존재였단 것이기도 하지. 건드리는 순간 자신에게 저주를 내리는 물건을 소유하고 싶은 자는 없잖나.

   

   지금도 대개의 인간은 루시 알른에게 다가가지 않는다.

   

   예술 교단의 장신구로 인해 그녀에게 흥미가 생겼어도. 장신구에 담긴 축복이나 그녀가 지닌 신성이 있으니 지금의 그녀는 소문과 다른 사람이 된 게 아닐까 생각하면서도.

   

   과거의 루시 알른이 뿌려둔 가시들이 두려워서, 그녀의 장난스러운 붉은빛 눈동자에 사로잡히는 것이 무서워서, 예술품의 주변에 자리한 이들이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는 것이 걱정스러워서. 차마 그녀에게 접근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대개의 사람들은 루시 알른이란 인간이 얼마나 무방비한지 모른다.

   

   루시 알른은 타인에게 격의 없이 호의를 베풀며 접근한다.

   

   별 것 아니라는 듯 웃음을 흘리고 장난스러운 눈동자로 사람을 홀리고 거기에 잠시나마 정신을 빼앗기면 어느새 멀찍이 떨어져서 비웃음으로 내 몸을 훑는다.

   

   나뿐만이 아니다. 그녀는 자신의 주변에 있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장난감 취급을 하며 가지고 논다.

   

   그 과정에서 장난감의 마음이 얼마나 흔들릴지에 대해선 저언혀 생각하지 않는다. 의심도 하지 않는다. 기껏해 봐야 조금 화나게 만들었다 여기고는 키득거리는 게 끝이다.

   

   “방금 전 일도 그렇다! 그 녀석은 언제나 자기가 귀여우니 예쁘니 지껄여대지만 정작 타인이 자길 그렇게 볼 거라고 생각하질 않아! 고갤 갸웃거리는 꼴을 보고 있으면 내 쪽이 분통이 터진다!”

   

   아주 먼 옛날부터 루시 알른의 외견은 유명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가는 곳마다 사건을 터트리는 그녀가 꾸준히 사교계에 참석할 수 있을 리 있나.

   

   그 때에도 웃음만으로 상대를 홀리고 말로 상대를 찢어발기던 그녀는 최근 들어 한층 더 미를 더하고 있었다.

   

   예술이란 부분에 있어 한없이 까탈스러운 예술 교단의 사도가 괜히 그녀에게 경외를 표하는 것이 아니다.

   

   지나가는 누구에게 물어도. 심지어 루시 알른이란 사람을 증오하다 못해 죽여버리고 싶다 생각하는 이에게 물어도 대답은 똑같을 것이다.

   

   루시 알른은 아름답다. 여신이 현생했노라 불러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그런 녀석이 저. 저런 괴상망측한 갑옷을 입고 나타난 것이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내 아래에 파고들어선 기습을 가했다! 어떻게 버티란 말이냐!”

   

   마지막 매도만 아니었다면 난 아슬아슬하게 마음을 다잡았을 것이다. 여태까지 쌓아 온 내성이 있으니까.

   

   그렇지만 히죽 웃으며 내뱉은 매도가 모든 걸 무너트렸다.

   

   “저건 여우보다도 더 여우같은 녀석이다! 자신이 의도하지 않고 주변을 홀린다는 게 더 악질적이야!”

   

   쓰러지기까지 한 것은 나 혼자다만 흔들린 것은 전원이다.

   

   성녀님은 무너지려는 다리를 붙잡는 것이 한계인 것처럼 보였고 프레이 켄트는 무심한 체 했지만 정작 뒤에 감춘 손이 흔들리고 있었던 데다가 칼은 자기 주인의 추태를 보지 않기 위해 고갤 돌리면서도 힐끗힐끗 시선을 돌려댔으니.

   

   나만이 이상한 게 아니다! 오히려 이상한 쪽은 루시 알른 쪽이다! 그 녀석이 자신의 외견을 좀 더 의식했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터!

   

   – 그래서 저 꼬마아이가 전부 잘못한 거라고?

   “그건… 아니지.”

   

   왜 루시 알른이 저렇게 비틀렸는지 모르는 건 아니다.

   

   전해듣기로 그녀는 온갖 패악질 끝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사게 되었다고 했으니 타인이 자신에게 호의를 가질 거란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겠지.

   

   내가 어머님의 죽음에 관계된 사건으로 행복해져야 한단 말을 잊고 어머님의 이름을 드높이기 위해 필사적으로 발악했던 것처럼. 주변의 기나긴 미움이 그녀에게 사랑받을 수 있단 가능성을 앗아가 버린 것이다.

   

   “아니까 더 열이 받는 거다. 어디에도 불평을 할 수가 없잖나.”

   

   머리칼을 꾹 쥐며 한탄을 했더니 조각이 헛웃음을 흘렸다.

   

   – 이래서야 평생 저 아이의 무딤은 해결되지 않겠군. 외부의 사람은 무딤을 노르고 내부의 사람을 차마 무딤을 이야기해줄 수 없으니 말이야.

   “어쩌겠나. 최대한 오해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며 저 녀석의 장난감 노릇을 수행하는 수밖에.”

   

   언젠가 한 번쯤은 호되게 당할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우리만큼이나 눈치가 좋을 리 없잖나. 누군가는 크게 오해를 할 것이고 거기에 루시 알른은 호되게 당할 거다.

   

   …그 녀석을 곤란하게 할만큼 유능한 사람이 오해를 할 경우의 수가 존재할까 싶긴 하지만.

   

   투덜투덜거리며 몸을 일으킨 아서는 가까운 곳에서 들려오는 전투의 음성을 듣고 한숨을 내뱉었다.

   

   젠장. 또 한참 놀림을 당해야겠군. 그것도 루시 알른 뿐만 아니라 주변인들에게까지도.

   

   그 녀석들은 왕자에 대한 경의가 없다. 이래뵈도 왕족인데 주변 녀석들은 날 마구잡이로 때리기 좋은 상대 취급을 하니.

   

   언젠가 한 번쯤은 불경죄라는 것이 있단 사실을 새겨 주든가 해야지 원.

   

   – 또 쓰러질까 싶어 미리 조언을 하자면 지금은 다가가지 않는 편이 낫다.

   “방금 전은 사고였다. 완벽한 기습에 의한 사고 말이다. 한 번 보았고 호되게 당했으니 같은 것에 두 번 당하진 않는다.”

   

   애초에 루시 알른은 방금 전 자신의 모습을 훈련이라고 이야기했다.

   

   그 녀석이 마물 같은 불길한 존재를 상대할 때 허투루 말을 꺼내는 경우는 없다시피하니 그 괴상망측한 모습도 필요불가결한 무언가일테지.

   

   그러니 놀림 당할 걸 알더라도 가야한다.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시련은 가벼운 마음으로 넘어설 수 있는 종류가 아니니까.

   

   – 놀리려는 게 아니라 진짜 진지한 조언을 해준 것이다만.

   “조언을 해준다고? 네 놈이? 검에 마법을 두르는 법 이외에는 제대로 된 것 하나 알려주질 못했으면서?”

   – 헛소리라 생각하면 걸러들어도 된다만 마음의 준비는 해라. 내 후손이 여자들 앞에서 두 번이나 기절하는 건 보고 싶지 않다.

   

   조각의 표정이 퍽이나 진중했기에 난 그 이상 무어라 하지 않고 심호흡을 했다.

   

   루시 알른이 상식을 뛰어넘는 것은 언제나 있었던 일이다. 당장 나와 그녀가 얽힌 최초의 순간부터 그녀는 세간의 상식을 가뿐히 박살내버리지 않았나.

   

   그러니 이번에도 그 녀석은 내 상식을 가뿐히 박살낼 거다. 이 사실을 마음에 새기고 가도록 하자.

   

   이렇게 다짐을 하고서 소란이 이는 곳으로 향한 나는 조각이 왜 마음의 준비를 하라 했는지 이해했다.

   

   척박한 대지 위에서 요정이 춤을 추고 있었다.

   

   햇살을 닮은 따스한 신성으로 무대를 그리고.

   

   도저히 갑옷이라 부를 수 없을 무언가를 통해 시선을 끌고.

   

   장난스러운 눈웃음을 통해 그 시선을 붙잡아놓고.

   

   그 어떤 무용수보다도 아름다운 춤으로 유혹을 하고는.

   

   가벼운 걸음으로 뒤로 물러나는 그녀는 동화 속에 나오는 요정보다도 더욱 더 요정처럼 보였다.

   

   “동정왕자님. 드디어 깨어나셨네요?”

   “…어. 어어. 그렇다만.”

   “푸하핳. 허접은 죽었다 깨어나도 허접인가봐요? 그런 한심해빠진 표정이라니. 귀여워라♡”

   

   머리에 피가 솟는다는 느낌을 받고서 얼마 지나지 않아 눈 앞의 시야가 흐려진다.

   

   – 하이고. 이런 녀석을 어찌 자격에 어울리는 사람으로 키울까.

   

   옆에서 조각의 투정이 들려왔지만 난 거기에 대답할 수 없었다.

   

   “또 쓰러지는 거에요!?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개허접이시네. 이런 조루 왕자님을 제대로 써먹는 게 가능할까 몰라.”

   

   그보다 매마른 바닥의 차디찬 감촉이 나를 맞이해주었으니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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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페포포님! 응원의 후원 정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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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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