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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59

    폭주를 하기엔 상당히 이른 시각.

    멋드러진 푸른색 바이크가 어느 한 조용한 골목길에 들어섰다.

    -우르릉—, 탁탁탁……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속도로 마치 유영을 하듯 거리를 거닐던 그 바이크는, 이내 어느 닫혀있는 인형점에서 멈췄다.

    그 바이크에 타고 있는 건 두명의 여성.

    그것은 바로, 톰이 남긴 자료를 챙기기 위해 아침에 인형점을 나섰던 시에나와 루크였다.

    -찰칵, 탁!

    그녀는 뒷좌석에 앉은 루크가 내리기 편하도록 킥스탠드를 세워 바이크를 살짝 기울이며 말했다.

    “루크. 도착했어, 내려.”

    “음. 꽤 빠르군.”

    루크는 자신이 바이크를 몰 줄 안다는 사실이 상당히 의외였던 모양이지만, 현장에 자주 투입되는 경찰이라면 바이크 운전쯤은 웬만해선 할 줄 안다.

    종종 용의자를 추격할 때에 경찰용 바이크를 이용하곤 하니까.

    그러니 몇십년을 경찰로 굴러온 자신이 바이크 운전을 할 줄 아는 건 그다지 신기할 일도 아닐 것이다.

    그러는 사이, 루크는 헬멧을 벗기 위해 무던히 노력을 쏟아붓는 중이었다.

    시에나는 헬멧을 반쯤 벗은 채 낑낑대는 루크를 돌아보며 물었다.

    “뭐가 맘대로 안되니? 벗는거 도와줄까?”

    뭐, 아무래도 헬멧은 익숙하지 않았을것이다.

    루크는 오늘 처음으로 오토바이 헬멧을 구매했으니까.

    루크는 즉답했다.

    “아니! 필요없다…!”

    루크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투덜거리자, 시에나는 하는 수 없이 핸들에서 손을 떼서 팔짱을 끼고 몸체에 기대며 말했다.

    “천천히 해, 기다려줄테니까.”

    이런 걸 보면 역시 애는 애구나 싶달까.

    뭐랄까, 양말 혼자서 신어보겠다고 고집피우는 어린애 같은 느낌?

    그렇게 생각하니 뭔가 귀엽네.

    그래도 저렇게까지 힘들 이유가 있나?

    대충 힘으로 쑥 빼면 되는데, 뭐가 그렇게 힘든거지?

    머리도 조그만게.

    하지만 루크의 의도는 그게 아니었다.

    시에나가 막 벗겼다간 과연 정전기와 마찰로 머리가 어떻게 엉켜들게 될지, 굳이 상상할 필요도 없었으니까.

    그렇게 루크가 뒤에서 헬멧을 벗으려 애쓰는 사이, 시에나는 바이크를 내려다보며 방금 전 물품보관함에서 있었던 일들을 떠올렸다.

    —-

    그렇게 새벽에 겨우 톰과 연락을 취하고 난 후, 321번이 새겨진 보관함 앞.

    이 역 앞의 보관소는 평소에도 자주 보이고, 이용하기도 했던 보관소인지라 찾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벌써 톰이 다녀갔는지 보관함은 일단 비밀번호로 잠겨있었다.

    “톰, 이 부지런한 녀석.”

    잘하면 그냥 마주쳐서 자료를 건네받을 수 있지 않으려나 하고 생각했는데, 결국 비밀번호를 입력해야하나.

    시에나는 곧바로 기본적인 비밀번호라 할 수 있는 0000과 1234를 입력해봤지만, 당연히 보관함은 열리지 않았다.

    포기하지 않고 평소 자주 사용하던 비밀번호도 두어개 넣어봤지만, 역시 열리지 않았다.

    다이얼이나 열쇠가 달려있는 거라면 한번 열어볼 시도라도 하겠는데, 보관함은 감각이나 기술만으로는 절대 해체할 수 없는 현대식 마법입력판을 탑재한 물건이었다.

    뭐, 요즘은 다 이런걸 쓰긴 한다.

    고전적인 방식에 비하면 어느 칸이 비어있는지 중앙에 달린 화면으로 알려줘서 알아보기도 쉬운데다, 열고 닫는 것도 편하니까.

    그래도 이럴 땐 아날로그한 방식이 그리워지는데…….

    그렇게 몇번의 입력실패가 지속되자, 그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던 루크가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왜 그러지? 그에게서 비밀번호를 듣지는 못했나?”

    루크의 물음에 시에나는 멋쩍게 웃으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사실은, 그때 하필 시간이 다 되는 바람에 듣지 못했어.”

    “뭐? 잔돈이 없었으면 얘길 하지.”

    루크가 어이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시에나를 바라보자, 그녀는 루크의 시선을 피하며 조금 쭈그러든 목소리로 대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끼리는 평소에도 자주 쓰는 번호가 있었으니까, 이번에도 당연히 그건 줄 알았지…….”

    설마 평소 자주 쓰던 비밀번호에서 패턴을 바꿨을까 하고 안일하게 생각했던게 실수였다.

    원래 경찰서 기본암호는 다 2580이었을텐데.

    당연하지만 여기서 역무원을 불러 열어달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인지라, 시에나는 곤란한 듯 이마를 누르며 중얼거렸다.

    “음, 역시 다시 연락을 해봐야하나?”

    그렇게 중얼거리며 또 뭔가 집어넣을만한 4자리수 나열이 없을까 고민하던 중, 루크가 그녀의 어깨를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

    “번거롭게 그럴 필요 없다. 잠시만 비켜보거라.”

    “응?”

    물품보관함의 암호해제 정도는 루크에게 어렵지 않았다.

    암호화된 룬문자의 패턴만 해석해서 숫자에 대입할 수 있으면, 회로에 마지막으로 입력된 숫자배열따윈 바로 알아낼 수 있었으니까.

    뭐, 실은 4자리수 숫자배열정도야 굳이 그럴 것도 없이 컴퓨터를 이용한 무차별 대입만으로도 금방 뚫릴테지만, 가끔 여흥으로 머리를 풀어주기도 해야하는 법이다.

    -삑, 삑, 삑, 삑—

    그렇게 몇번 무작위로 번호키를 눌러 마력시에 읽히는 최소정보로 마법회로에 사용된 룬문자의 규칙성을 읽고 숫자를 유추해 대입시켜보길 몇번.

    루크는 곧 사물함의 암호화패턴을 해독해서 톰이 입력했던 것으로 보이는 숫자 4자리의 정체를 알아낼 수 있었다.

    ‘정답은 0824로군.’

    비밀번호를 알아낸 루크는 거침없이 비밀번호를 입력했고, 사물함은 즉시 찰칵!하는 소리와 함께 잠금장치가 풀렸다.

    “열렸구나.”

    “오, 재주 좋은데? 대단해!”

    신기한 재주를 보인 것 치곤 태연한 루크의 반응에 시에나는 그 몫까지 대신 감탄하며 박수를 쳐줬다.

    “근데 비밀번호가 뭐였어?”

    “0824.”

    “어머, 0824? 내가 왜 그 생각을 못했지?”

    시에나는 ‘왜 진작 그걸 넣어볼 생각을 안했을까!’ 하는 표정으로 가볍게 자신의 이마를 쳤다.

    비밀번호를 이미 알고 있었던듯한 시에나의 반응에, 루크는 의아함을 담아 물었다.

    “그게 무슨 숫자길래?”

    시에나는 바로 대답했다.

    “그건 내 생일이야.”

    8월 24일, 그것은 공교롭게도 그녀의 생일이었다.

    그런 그녀의 반응에 루크는 눈썹을 들어올리며 말했다.

    “오, 생일이 8월 24일인가? 좋은 날에 태어났군 그래.”

    8월의 탄생석과 탄생화를 생각하면 시에나와도 꽤나 어울린다고도 볼 수 있다.

    페리도트와 글라디올러스 모두 인간관계와 성실, 도덕을 상징하니까.

    게다가 8은 2를 3번 곱한 수로 나름대로 마법적인 안정감도 있었고, 그걸 또 키릴문자의 획수로 따지면–

    하지만 그렇게 루크의 생일을 처음 들은 마법사라면 고질적으로 떠올리게 되는 그런 잡다한 상식들은 이어진 시에나의 의외라는 듯 묻는 말에 끊어졌다.

    “뭐야, 내 생일인거 알아서 때려맞춘 거 아니었어?”

    그러자 루크는 전혀 알지 못했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니. 그대가 말하기 전까진 몰랐다만. 난 그냥 보관함의 마법 암호체계를 역산해서 풀었을 뿐이야.”

    “허, 그건 또 놀랍네.”

    어, 그게 적당히 운이 좋았던게 아니라 순수한 계산이었다고?

    솔직히 어느쪽이든 놀라운 재능이긴하다.

    그 재능, 부디 그동안 나쁜 곳에 써먹지 않았길 바래야지.

    자신은 루크를 믿는다.

    “아무튼, 그럼 톰이 무슨 자료들을 남겨뒀나 볼까-”

    그렇게 생각하며 시에나가 보관함을 열어 들여다봤을 땐, 조금 놀랐다.

    “응?”

    왜냐하면, 자료가 있을거라고 생각한 보관함에는 웬 생뚱맞은 물건이 들어있었기 때문이었다.

    “이건…, 바이크 헬멧과 열쇠…?”

    —-

    잠시 후, 이제 겨우 헬멧을 벗은 루크가 헬멧을 원망 섞인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었다.

    루크는 헬멧을 쓰고 벗느라 엉망이 된 머리를 손으로 정리하며 중얼거렸다.

    “후, 내가 차라리 투구를 쓰고말지.”

    “하하, 수고했어.”

    대체 헬멧 안감에 방마코팅은 쓸데없이 왜 들어가있는 거람?

    방마코팅이 있으면 기본적으로 마나 조작의 세밀함이 많이 줄어들고만다.

    이래서야 머리카락 하나하나에 방어막을 둘러 보호하는 방법도 사용할 수 없다.

    가게의 가장 싸구려 헬멧조차 빠짐없이 전부 들어가 있는 걸 보면 아마 현대 헬멧의 제작과정에 일정수준의 방마코팅이 필수적인 모양인데, 이런 애매한 방마효과로 대체 뭘 하겠다는 건지 모르겠다.

    루크의 투덜거림에 시에나가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바이크는 자체는 어땠어? 감상 좀 들려줘봐.”

    “음, 그건 꽤 좋았네.”

    바이크의 존재 자체는 이전에도 거리를 오고 가면서 몇번 마주친 덕분에 알고 있었다.

    직접 타본 것이 이번이 처음이었을 뿐.

    다른 사람들이 타는 걸 볼 때는 별 생각 없었는데, 시점이 달라지니 감상도 상당히 다르더라.

    예전에 한번 타봤던 롤러코스터보다 훨씬 더 흥미진진하게 느껴졌달까, 오죽하면 도착했다는 그녀의 목소리가 약간의 아쉬움을 들게했을 정도.

    자신도 나중에 하나 구해볼까?

    대충 자전거랑 비슷한 감상일거라 생각했는데, 바이크의 속도감은 자전거따위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것이었다.

    잘 짜여진 마법공학의 산물을 조종한다는 것이 뭔가 재미있어보이기도 하고.

    다만, 한가지 걸리는 점은…….

    루크는 헬멧을 원망스러운 눈초리로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헬멧이 없었다면 더 좋았을텐데.”

    만일 교통사고가 발생해 두개골이 박살나더라도, 자신은 죽지 않을 것이다.

    몸에 잔류하는 불사의 개념 일부가 아니더라도, 헬멧따위보다 단단한 실드가 육신을 두르고 있을 테니까.

    아무리 빠르게 처박혀도 털끝 하나 상처입지 않겠지.

    그런데 시에나는 처음 자신에게 억지로 헬멧을 사서 씌웠을 때처럼 여전히 단호했다.

    “아까도 말했지만, 그건 절대 안돼.”

    “헬멧 미착용은 불법이니까?”

    “당연하지. 넌 헬멧 미착용으로 단속되는 사람이 하루에도 얼마나 많은지 모르지?”

    “하지만 그런 문제라면 환상으로 헬멧을 쓰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할 수도 있는데…….”

    “그래도 안돼! 안들키면 불법이 불법이 아니게 되는거니? 법은 지키라고 있는 거란다. 예르나도 그렇게 말할걸.”

    루크는 마침내 예르나까지 언급하는 시에나의 말에 결국은 한발 물러서지 않을 수 없었다.

    예르나라는 엘프는 루크의 약점이었으니까.

    “그냥 해본 말에 잔소리는. 알겠네, 바이크 세워두고 들어오게. 난 화장실에서 잠시 머리좀 만지고 돌아올테니.”

    그렇게 루크는 잠깐 투덜대며 사라졌지만, 그건 어른이자 전직 경찰로서 마땅히 해야 할 당부였다.

    그나저나, 이런 건 대체 얼마 쯤 하려나…….

    시에나는 바이크를 몰 줄만 알지, 바이크시장은 잘 몰랐다.

    경찰용 오토바이 말곤 타본 경험도 없었고. 

    그런데 이 바이크는 뭐랄까, 경찰용 바이크와는 느낌이 엄청 달랐다.

    분명 두명이 올라탄 상태인데도 엄청 가볍게 느껴질 정도로 가속력이나 제어성능이 뛰어났고, 딱 만져봤을 때 느낌이나 타봤을때 감각이 재질부터 다르다는 게 딱 느껴지는 것 같았으니까.

    그리고 사물함에 함께 넣어준 헬멧도 가게에서 들어보니 꽤나 비싼물건이라는 것 같았다.

    심지어 이건 엘프의 귀 수납공간이 따로 있는 엘프용 헬멧.

    엘프용이면 자기가 쓰던 것도 아닐텐데, 얘는 대체 뭐 이렇게 좋은 걸 사뒀대?

    경찰이 무슨 떼돈 버는 직업도 아닌데.

    톰은 쪽지에 ‘부모님이 바이크 타는 걸 좋아하지 않으셔서 본가에 가져갈 수는 없으니, 그동안 선배가 잘 써주길 바란다’고 써놓긴 했지만, 아마 그건 다 자기 부담 갖지 말라고 하는 소리일 것이다.

    그런데 비밀번호를 내 생일로 맞춰놓은 걸 보면 이건 생일선물로 생각해달란 얘긴가?

    뭐, 생각해보면 톰한테 이번년도 생일 선물을 안 받기는 했다만…….

    괜찮다고 했는데, 혼자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나보다.

    이거, 나중에 돌려주면서 뭔가 답례라도 해야겠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바이크 괜히 다시 넣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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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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