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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59

        

         

       불이 지나간 자리는 항상 앙상하고 을씨년스럽다.

       아름다운 색이었을 것들은 녹고 타서 까맣게 굳어버리고, 쓸모가 있었을 물건은 고물로도 쓰지 못할 쓰레기가 되어버린다.

       한때 사람 내음이 풍겼을 공간에는 코를 찌르는 탄내가 풍기고, 잘못하여 숨을 크게 들이쉬기만 하여도 폐 속을 한 번 훑고 지나가는 유독한 공기가 연신 기침하게 만든다.

       콜록콜록, 콜록콜록. 폐를 쥐어짜고 목이 아파져 올 때까지 기침을 하고 나서야 간신히 괜찮아졌다 치면, 그 무렵에는 코의 점막 안쪽에 연기가 들러붙기라도 한 것처럼 계속해서 맡기조차 싫은 냄새가 계속해서 느껴지고, 머리가 아파지고 눈살이 찌푸려지게 된다.

       거기에 불로 인해 산산이 부서진 창문으로 불어오는 바람에 휘날리는 저 잿더미의 향연이라니.

       고운 모래가 바람에 흩날리듯 고운 재 역시 하늘하늘 움직인다.

       눈에, 코에, 입에 들어가고, 새까만 바람을 일으키며 온갖 곳에 내려앉는다.

         

       강렬한 빌딩풍에 실려서 씨앗이라도 뿌리려는 것일까?

       민들레가 잔뜩 피어있는 밭에 강렬한 바람이 휩쓸고 지나가면 온 천지가 민들레 씨앗으로 뒤덮이게 되든, 새까만 재 역시 씨앗처럼 사방에 퍼지며 달라붙고, 내려앉고, 지저분하게 사방으로 퍼져나간다.

       그리고 그 자리에 계속해서 눌러앉겠지.

       누군가가 청소를 하기 전까지.

       혹은 누군가의 몸에 달라붙어 또 다른 여행을 떠나기 전까지.

         

       이러한 피해는 쉬이 그냥 넘길 수가 없는 것이 아니라.

       마땅히 그 범위에 있는 이들은 분노를 터뜨리고, 짜증을 내고, 항의하기 마련이다.

       어서 청소하라고.

       어서 정리하라고.

       아니면 뭐라도 씌워서 재가 날리는 것을 막기라도 하라고.

         

       그렇게 짜증을 내고, 요구하고, 난리 치고- 하다못해 자신이 직접 나서서라도 어떻게든 하기 위해 애를 써야만 할 것이다.

         

       하지만 본래라면 그래야 할 풍경이, 이 빌딩에는 없었다.

       화재가 막 일어났음에도, 재가 사방으로 퍼져나가고 있음에도.

       시민들은 그 누구도 짜증을 내지 않았고, 건물에 들어가서 청소하겠다는 이들도 나서지 않았다.

         

       뉴욕, 뉴욕, 뉴욕.

       이 거대하고 찬란한 도시에 봉사단체가 몇이거늘.

       아무도 나서지 않는다는 것은 명백히 이상한 일일 것이다.

         

       그래.

       예를 들자면…. 그 건물에 위험이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거나 하는 등의 일이 있어 접근하지 않는다고밖에 볼 수 없겠지.

         

       “불멸의 기둥을 세우사 오 신이시여 그 은혜가 하해롭기 그지없나니 소금 기둥이 찬란한 하얀 빛을 발하듯 이 불멸의 기둥의 빛이 바래지 않는 한 그 영광은 계속해서 이 땅에 전해져 내려올 것입니다. 신이시여, 신이시여. 유일하게 오롯이 존재하는 분이시여 영원히 빛바래지 아니하고 쉬이 닳지 아니하며 뜨거운 불길 속에서도 형체를 유지할 이 기적의 기둥에 손길을 더하사 이 자리에 임하시어 영광의 빛을 내려주어 방황하는 양들이 한가로이 눈을 감고 안식에 취할 수 있도록 하옵소서….”

         

       보라.

       저 건물의 안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를.

         

       영어와 라틴어를 뒤섞어서 말하는 듯한 저 찬송의 말을.

       성경을 읽는 것 같기도 하고, 찬송가를 부르는 것 같기도 하고, 방언을 내뱉는 것 같기도 하다.

       분명히 이 땅에 퍼져있는 종교인 기독교와 관련이 있는 것임은 분명하나, 묘하게 뭉개져서 이질적으로 들리고- 어쩌면 이교적인 느낌까지 드는 저 암송을.

         

       저 암송만 듣게 된다고 할지라도 지나가는 이들은 느끼게 된다.

         

       아, 이곳은 위험한 곳이구나.

       저곳은 가까이해서는 안 되는 곳이구나.

         

       본능에서부터 느껴지는 그러한 감각은 쉬이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렇기에 대다수 사람은 저 흘러나오는 자그마한 소리만 듣고도 황급히 자리를 떠나게 된다.

         

       그리고 그 본능조차 이겨내는 호기심을 갖는 이들은.

       기어코 저 빌딩에서 일어난 일을 알아내고자 하는 이들은, 저 소리가 불러오는 섬찟함을 이겨내고 안으로 접근하고자 하지만-

         

       “이봐요, 저 안으로 들어가면 안 됩니다.”

         

       “예? 왜요?”

         

       “저 안에 귀신이 돌아다닌다고 합니다.”

         

       그렇게 호기심에 접근하려는 이들은 누군가의 제지를 받는다.

       그와 마찬가지로 들어가려다가 제지당했을 사람일 수도 있고, 어디선가 소문을 듣고 온 이들일 수도 있으며,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사람들에게 조언해주는 ‘착한 사람’일 수도 있겠지.

         

       안으로 들어가려는 이들은 필히 누군가의 제지를 받고, 멈추고, 이야기를 듣게 된다.

         

       “듣기로는 저 건물에 무슨 미친놈들이 쳐들어왔다고 합니다. 테러나 그런 건 아니고…. 가끔 총기 난사하는 미친놈들 있지 않습니까? 그런 놈들이 떼거리로 들어왔다고 합니다.”

         

       “아이고. 쯧. 또 여럿 죽었겠네요?”

         

       “아뇨. 그게, 다행스럽게도 그렇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아무도 죽지 않았고, 다쳐서 실려 간 것도 한 명뿐이라고 해요. 그나마도 어디 다쳐서 그런 게 아니라, 화재 때문에 유독가스를 너무 들이마셔서 그렇게 된 거라고….”

         

       “예? 그게 되나…? 아, 빈 건물에 들어간 겁니까?”

         

       “음. 밤에 들어가긴 했는데, 그래도 꽤 사람이 많았다고 합니다. 아시지 않습니까? 이 월 스트리트가 어떤 동네인지.”

         

       “하긴 밤에 사람이 없을 리가 없는 동네죠.”

         

       그리고 그 이야기는 처음에는 평범한 소문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시작된다.

       그러다가 어느 정도 친밀감이 형성되었을 때, 그때 슬슬 본성이 튀어나오게 된다.

       비밀이라는 것을 도무지 감출 줄 모르는 수다쟁이의 본성.

       숨겨놓은 것을 파헤치고 끄집어내어 퍼뜨리고, 그것을 증거로 삼아 ‘내가 이렇게 영향력이 있고, 똑똑하고, 이런 비밀까지 알 정도로 대단한 사람이다.’라고 자랑하고 싶어 하는 그 심리가 작동하게 되는 것이다.

         

       “이게 말입니다. 이건 좀 비밀스러운 이야기인데, 크흠.”

         

       “비밀스러운 이야기? 그게 뭡니까?”

         

       “내가 아무한테나 이런 이야기를 해주는 게 아닙니다. 그쪽이 저 안으로 들어가면 큰일이 날까 봐 하는 이야기니까, 잘 들으십시오.”

         

       그렇게 낮춰진 목소리로, 귓속말을 속삭이는 것처럼 비밀스럽게 이야기가 나온다.

         

       “그게, 이 사건에 주술사가 끼어있다고 합니다.”

         

       “예? 주술사요?”

         

       그리고 듣게 되는 것이다.

       이 사건에 주술사가 끼어있다는 것을.

         

       “드라마 보면 꼭 나오는 그 주술사?”

         

       “예. 그 주술사입니다. 듣기로는 거- 건물 주인이 뭔가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고 하더군요. 식스 센스? 뭐 그런 거 있지 않습니까. 오감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그런 오묘한 감각 말입니다.”

         

       “예. 식스 센스. 알지요.”

         

       “불길함을 느꼈겠지요. 아니면 뭐, 꿈에 천사가 나타나서 위험을 경고했을 수도 있겠고 말입니다. 그래서 건물 주인이 말입니다, 주술사에게 가서 부탁했다고 해요.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으니까 주술을 좀 써달라. 건물과 사람을 보호할 수 있도록 힘을 좀 써달라, 이렇게 말입니다.”

         

       “그래요? 허, 무슨 TV 쇼에서나 나올법한 이야기로군요.”

         

       “그리고 그 주술사는 그 부탁을 흔쾌히 들어주었지요. 뭐, 나쁜 일 하는 것도 아니고 사람 좀 구하겠다고 부탁을 한 건데 그리 매몰차게 거절하면 예? 주술사가 아니지 않습니까. TV에서 하는 드라마들 보세요. 거기 나오는 주술사들 보면 나쁜 일에는 손 안 대고, 좋은 일 하는 사람들 앞에만 나타나지 않습니까? 제3세력은 될 수 있어도 악의 편은 될 수가 없는 캐릭터가 바로 주술사 아닙니까. 정의를 외면하지 못하는 겁니다, 주술사라는 능력자들은.”

         

       “음, 그렇지요. 그래도 좀 괴팍하게 나오기는 하지 않습니까?”

         

       “그게 포인트입니다. 이게 참, 이 건물 주인이란 사람이 만난 주술사가 말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시작으로 정보가 술술 풀리게 된다.

       ‘건물 주인’이 만났다는 주술사에 대한 자세한 정보가 말이다.

         

       “놀라지 마세요. 갓 성인이 된, 솜털이 뽀송뽀송한 어린애라고 합니다.”

         

       “예? 갓 대학에 가거나 독립해야 할 나이라고요? 그게 맞습니까?”

         

       “예. 이게 어디서 알았는지는 말씀드릴 수는 없는데, 신빙성은 높다고 보시면 됩니다. 아니, 당장 저 건물을 지켜보기만 해도 알 수가 있어요. 저 건물 안에 그 주술사가 있는데, 식사 시간이 되면 나와서 뭘 사 먹거든요. 그때 보면 알겠지만, 와. 성인은 맞는 건지 의문이 드는 얼굴입니다.”

         

       “그냥 어려 보이는 거 아닙니까?”

         

       “아, 어려 보이기는 하지요. 저 안에 있는 주술사가 동양인인데…. 동양인이 좀 어려 보이는 경향이 있기는 한데 말입니다. 갓 성인이 된 게 맞아요. 이건 확실한 정보입니다. 못 믿겠으면 주술사가 나왔을 때 나이를 물어봐도 되고.”

         

       “아, 예 뭐…. 그렇게 장담하실 정도라면 사실이겠지요.”

         

       그리고 주술사에 대한 정보가 충분히 풀리게 되면, 저 건물에 접근해서는 안 되는 이유에 대한 자세한 이유도 함께 풀린다.

         

       “그래서 말입니다. 갓 성인이 된 주술사가 괴팍해야 얼마나 괴팍하겠습니까? 아시겠지만, 사회에 첫발을 디딘 사람들은 좀 어수룩하고 귀엽고 그런 느낌이 있지 않습니까?”

         

       “그렇지요.”

         

       “저 주술사도 마찬가지인 거지요. 그래서 저 안에서 저렇게 성경을 부르고 찬송가를 부르고 있는 겁니다.”

         

       “…잠깐만요. 그런데 귀신이 나온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면 그거 설마….”

         

       “하하. 그거야 뭐. 주술사라고는 하지만 그…. 갓 성인이 된 사람에게 완벽함을 요구할 수는 없는 거 아니겠습니까.”

         

       “뭐, 실수라도 한 겁니까?”

         

       “그게 물어보니까, 음. 건물 주인이 좀 요구를 과하게 했다고 합니다. 근데 이게 또, 몇 번 말리기는 했는데 쉽게 그 의지를 꺾을 수가 없었다고 하더군요. 결국 건물 주인의 뜻대로 해줬다고 하는데…. 뭐 알잖아요. 금융 쪽에서 일하는 놈들 혓바닥이 얼마나 현란한지. 아무리 주술사라고는 하지만 사회 경험도 없는 사람이 그걸 버틸 수가 있었겠습니까?”

         

       “그렇죠. 아, 그래서 그 요구대로 해줬는데…. 일단 효과는 봐서 미친놈들을 쫓아내기는 했다. 그런데 그 여파가 아직도 남았다…. 이거군요. 흠. 얼마나 강한 주술을 걸어줬길래….”

         

       “그렇죠, 그겁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귀신이 돌아다니고 있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그 주술사는 그 보안을 위해 깔아놓은 주술을 해제하기 위해 저러고 있는 거고 말입니다.”

         

       “아, 그래요? 흠. 어린 주술사라…. 흠. 흥미로운 이야기였습니다. 말씀 잘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퍼져나간다.

       동양에서 온 어린 주술사.

       주술 실력은 있지만 사회 경험이 없어서 제 뜻대로 휘두를 수 있을 것 같은 주술사의 존재가.

       어린만큼 다른 주술사들처럼 괴팍하지 않고, 은근히 자기 뜻대로 휘두를 수 있으며, 때에 따라서는 저렴하게 의뢰를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주술사에 관한 이야기가….

         

       그렇게 퍼져나간다.

         

       어린 주술사의 존재를 머리에 각인시키고, 주술사가 저 불타버린 빌딩에 혼자 있는 것을 자연스럽게 여기게 되고-

       그렇게 자연스럽게.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알리바이가 만들어진다.

       박진성이라는 주술사에 대한 알리바이가 말이다.

         

         

         

        * * *

         

         

         

       그렇게 가짜가 진짜가 되고.

       더미가 박진성의 알리바이를 증명하며 건물에 눌러앉은 그 시각.

         

       “신주님. 혹시 술 좋아하세요?”

         

       진짜 박진성은 리세와 함께 분위기 좋은 바(Bar)에 발을 디디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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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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