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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6

       

        

        

        

        

        

        어찌 보면 당연한 말이겠지만, 시가전을 잘 하는 것과 좋아하는 건 엄연히 다른 것이었다.

        

        애초에 전장을 그리워하는 이들은 있어도 좋아하는 이들은 없는 판에, 내가 시가전을 좋아할 리가 없었다. 다크 존이 과거의 도시를 바탕으로 한 게임이 아니었다면 난 FPS를 손도 대지 않고 살아갔을 터였으니.

        

        아무튼 그런 상황에서, 과거, 나를 포함한 팀원들 사이에서 도는 농담 하나가 있었다.

        

        세상에서 제일 싫은 전장은 첫째도 시가전이고 둘째도 시가전이나, 그 중 으뜸은 적들이 나보다 높은 곳에 있을 때 치르는 시가전이라고.

        

        거의 입 속으로 웅얼거리듯, 심지어는 시청자조차 들을 수 없을 정도로 작게 중얼거렸다.

        

        

        

       “이 지랄같은 곳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네….”

        

        

        

        연구시설 내부로 들어가는 입구.

        

        들어오자마자 우리를 반기는 것은 그야말로 현대 미술관이나 다름없는 독특한 유선형 구조의…뭐라고 해야 하나, 곡선형 건물을 층층히 쌓아 만든 내부 건물이었다.

        

        어느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지만 – 사방팔방이 엄폐 가능한 발코니에 숨을 곳도 많고, 1층 바닥을 한 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구조라 그야말로 공격자들의 무덤이라 할 수 있는 곳이었다.

        

        이곳이 연구시설이라 다행이지, 만약 십자포화를 상정하고 만든 잘 무장된 요새였다면 로켓포를 한 열다섯 개는 들고 왔어야만 할 것이었다.

        

        

        

       “…그냥 들이박을 건 아니죠?”

        

       “AI 수준을 감안하면, 한 번 시선을 끈 다음 다가오는 적들을 하나씩 자르는 게 좋아 보이네요. 입구 근처에서 대기합시다.”

        

        

        

        총을 사용하는 현대적인 전투에서는 그리 어울리지는 않는 단어였지만, 유인과 거리조절은 시가전이라는 카테고리에선 그야말로 필수적 요소였다.

        

        특히 소규모의 인원으로 돌파에 난항을 겪는 지점을 어떻게든 뚫고 나가야만 할 때 더더욱 유효했는데, 결국 쉽게 말하자면 적에게 유리한 지점에선 발을 빼고, 내가 유리한 지점으로 적을 유도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잠시 후.

        

        시끄러운 소리와 함께 건 드론과 UGV를 이끌고 적들이 오기 시작했다. 

        

        

        

       “여의치 않으면 다시 앞마당으로 빠지면 되니, 탄 걱정 하지 말고 쏘세요.”

        

        

        

        투두두두두!

        

        고관통탄이 허공을 시원하게 가르며 방탄복을 박살내고 연약한 살덩이를 꿰뚫자, 은엄폐조차 하지 않고 무지성으로 달려오던 적들은 그 속도를 그대로 유지하며 바닥에 얼굴을 처박았다. 

        

        난이도가 그다지 높지 않아서 그런지 대응사격도 느렸고, 소산 및 은엄폐조차 그러했다. 또한 하모니의 실력도 내가 생각하던 것보다 상당했기에 제거는 어렵지 않았다.

        

        동일 과정을 몇 차례 더 반복하고는 수북히 쌓인 시체를 건너, 최대한 적 화력에 덜 노출되는 기동로를 확인했다.

        

        전방에 보이는 계단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가는 게 좋은 선택일 듯싶었다.

        

        

        

       “제 뒤로 바짝 따라붙으세요.”

        

       “네!”

        

        

        

        천장과 벽면에 붙은 사이렌 소리와 섞이는 강렬한 총성.

        

        십수 발의 탄환이 아슬아슬하게 몸을 피해가기도 하고, 이카루스 기어의 나노머신이 제공하는 방호막에 가로막히기도 하며 들려오는 공기를 찢는 살벌한 소음.

        

        탄환과 돌의 부서진 파편이 사방으로 튀어오르는 가운데, 간신히 엄폐물 뒤에 몸을 숨긴 후 자연스럽게 다음 루트를 고른다. 방호벽은 앞으로 대략 8발 정도 맞으면 깨져버릴 예정이었다.

        

        적의 화력이 우리보다 좋은 이상 한 자리에 가만히 머무르는 건 좋은 선택이 못 되었기에, 스퀴즈 신호를 보낸 후 다시 뛰기 시작했다.

        

        

        2층으로 올라가는 완만한 나선계단을 뛰어오르는 사이, 대략 절반 이상에 도달했을 때 기다렸다는 듯 정면에서 샷건을 든 적 하나가 얼굴을 내비친다.

        

        사격으로 응수하기엔 내 등반 속도가 너무 빨랐다.

        

        거의 반사적으로 오른쪽으로 회피함과 동시에 반 박자 느리게 샷건의 총구에서부터 불꽃이 솟아오르고, 열두 발의 납구슬이 쇄도했다.

        

        왼쪽 팔로 샷건맨의 가슴팍을 밀어제낌과 동시에 오른손으로 얼굴을 틀어잡고선 강하게 벽으로 밀어붙혔다.

        

        

        

       ───쾅!

        

        

        

       “커헉, 극…!”

        

        

        

        전력으로 밀어붙힌 적의 뒤통수가 사무실의 콘크리트 벽과 격돌하자, 무언가가 부서지는 듯한 심상찮은 소리와 함께 적은 그대로 절명했다.

        

        아마 이 게임이 좀 더 현실적인 시체를 구현해놨더라면 벽면에는 피와 허여멀건 액체가 동시에 섞인 뭔가가 진득하게 묻어있지 않을까.

        

        아무튼 죽었으니 그걸로 끝이었다.

        

        

        

       -ㅁㅊ

       -와 ㅅㅂ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선생님 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저희들이 잘못했습니다

       -하모니 뒤에서 경악의 눈빛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쯤되면 적이 불쌍하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한 번 가시가 되어 안쪽으로 파고든 나와 하모니는 빠지기는커녕 본격적으로 내부를 휘젓고 다니며 적들을 적들(이었던 것)으로 뒤바꾸었다.

        

        그 과정에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한 번 적들을 몽땅 치우니 스크립트가 진행되기 시작했다.

        

        

        

       -[ISO : 아직까지 살아있는 걸 보니 기쁘군.]

        

       -[ISO : 좋은 소식을 주지. 물론 반어법적인 말이지만. 너희들의 이카루스 기어를 통해 주변을 스캔한 결과, 옥상에 제어실로 보이는 공간과 위성 안테나 세 기를 확인했다.]

        

       -[ISO : 그곳에서 안테나 제어권과 접속 권한을 획득하게 된다면, 아르테미스의 현 상황 파악과 더불어 더 많은 위성의 사용이 가능해지겠지. 요컨대 오퍼레이터의 지원이 앞으로 더 수월해질 거란 소리다.]

        

       -[ISO : 건투를 빌지.]

        

        

        

       “얘네들은 진짜 현장 요원 없으면 어떻게 살까요?”

        

       “아하하.”

        

        

        

        원래 필드 에이전트가 다 그렇지, 뭐.

        

        여하간, 건물 안에 들어가면 당분간 눈을 못 볼 거라고 얘기를 했건만, 이렇게 되니 조금은 뻘쭘한 게 없잖아 있었다. 다행히 하모니는 별 신경 안 쓰는 듯했지만.

        

        

        앞길을 가로막는 적들을 모조리 움직이지 않는 조형물로 만들어주면서, 계단을 오르고 올라 눈이 쌓이고 있는 옥상으로 도달했다.

        

        안테나는 이미 제멋대로 동작 중이었고, 이들을 통괄하는 제어실 주변은 적들로 가득했다. UI에 뜨는 알람을 보아하니 한 명은 제어실에서 기기를 조작하고, 다른 한 쪽은 바깥을 돌아다니며 직접 안테나에 접속하는 역할일 듯했다.

        

        당연하게도 궂은 일은 내 몫이었다.

        

        

        

       “안에서 기계들 좀 만지고 계세요. 바깥 청소는 제게 맡겨주시고.”

        

       “어…네. 괜찮으시겠죠, 뭐.”

        

        

        

        그 이상의 대화는 필요치 않았다.

        

        총구가 불을 뿜었다.

        

        

        

        

        

        

        

        

        

        

        

        

       “아, 형. 지금 바빠요? 통화 가능?”

        

       “아이구. 요즘 폐지에서는 네트워크도 터지는 휴대폰도 나오나?”

        

       “아니, 그래서 지금 형이랑 딜하고 빡랭크 돌리잖아.”

        

        

        

        스마트폰 너머로 들리는 목소리.

        

        그는 다름아닌 2군 프로 팀의 코치이자, 동시에 레덱스와 인텔, 그래픽카드와 각종 키카드를 찾아 짐승처럼 돌아다니던 카토를 미확인구역에서부터 건져낸 – 속칭 그의 인맥 중 하나인 러스였다.

        

        본래부터 실력이 상향평준화되어 프로와 최상위권 게이머들의 구분이 비교적 모호한 에이펙스 프레데터의 특성과, 싫어도 다양한 정보를 알게 되는 스트리머의 특징이 합해져, 카토는 자연스럽게 프로의 정보도 어느 정도 꿰고 있었다.

        

        러스는 바로 그런 점에서 알게 된 인물이기도 했다.

        

        

        

       “아무튼 그래서 뭔 일이냐? 티어 2는 올라갔고?”

        

       “어으. 그건 진짜 눈 감고 해도 올라가지. 전 시즌 마감이 티어 1 571LP였는데. 내가 빡겜하면 바로 챌린저지.”

        

       “혓바닥은 청산유수야, 아주 그냥. 그래서 티어 2 승급전 때 머리에 빵꾸나셨고?”

        

       “하, 아니…그건 진짜….”

        

        

        

        할 말이 없었다.

        

        어쨌든 설렁설렁 플레이하다가 얻어터진 것도 사실이고, 그 후에 나름 정신을 차려서 빡겜을 했지만…그 이후에도 그 유저한테 한 번도 제대로 이기지 못했던 것도 마찬가지로 사실이었다.

        

        더군다나 여태까지 그 유저를 제대로 보지도 못했다. 총구를 내놓고 사격을 할 수 있는 시점까지 도달했더니, 자기가 방아쇠를 당기기도 전에 미친 정확성의 사격이 먼저 날아오는데.

        

        까놓고 말해서, 유진이라는 유저는 그 티어에 머무를 이유가 없는 사람이었다. 요컨대 카토 자신은 느닷없는 자연재해에 휘말린 거나 다름없었다.

        

        적어도 그는 그리 생각했다.

        

        

        

       “장난이야, 임마. 니가 했던 승급전 보니까 그럴 만하더만. 요즘 인터넷 사방팔방에서 걔 이름만 들리는 이유가 괜히 있는 게 아니더라.”

        

       “그렇지? 거봐. 내가 못하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이 잘 하는 거라니까.”

        

        

        

        때마침 자연스럽게, 러스가 화제를 자신이 원하던 방향으로 환기한다.

        

        유진.

        

        인생을 갈아넣어 그것으로 유명세를 얻고 수익과 가치를 창출하는 진짜 프로게이머들보다는 못한 감이 조금은 있다고 하더라도, 그럼에도 카토는 어디 가서 당당하게 게임을 좀 한다고 이야기할 수 있었다.

        

        근데 저 사람이, 그런 그를 정면에서 몇 번이고 간단하게 박살내버렸다.

        

        

        따라서, 이제부터가 본제였다.

        

        

        비록 한 명의 게이머로서는 졌다고 할 수 있었으나, 곧 있을 아시아 예선전을 감안한다면 – 거시적인 관점에서 볼 때는 이는 분명한 호재였다.

        

        정말 혜성처럼 등장한 인물이고, 동시에 스크림조차 해보지 않은 사람이기에 섣불리 판단하기엔 이른 감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언할 수 있었다.

        

        저 유저는 분명 이번 아시아 예선전에 여러모로 거대한 파장을 불러일으키게 될 것이었다.

        

        자신이 연락한 이유도 바로 그것 때문이었다.

        

        

        

       “아무튼, 러스 형. 요즘 스크림 자리 많나? 대회랭 시즌 말이잖아. 고착도 어느 정도 됐을거고, 싹수 있는 애들 좀 없어?”

        

       “없을 리가 있나, 올해도 쟁쟁하지. 네가 아는 프로팀 애들은 지금쯤 죄다 지들 1군 2군도 모자라서 사람 죄다 긁어모아 스크림 돌리고 있고, 모셔가려는 애들도 속속 나온다. 요즘은 프로 쪽에서 먼저 스크림 요청 주는 판에.”

        

       “그래? 나는 왜 그 유저가 스크림 돌리는 거 한 번도 못 봤지?”

        

       “스크림 전략 누출 때문에 스트리밍 절대 못하는 거 알면서 그러냐, 너는. 어휴, 옛날에 날라다니던 카토그래퍼 어디갔어?”

        

       “아니, 그건 아는데.”

        

        

        

        그러면서 하나둘씩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았다.

        

        여태까지 자신이 전부 챙겨보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유진의 방송을 어느 정도 챙겨본 결과…요즘은 스크림 연락이고 랭겜이고 나발이고, 그냥 하모니라는 타 스트리머랑 합방하기 바빴다.

        

        게다가 다른 영상 다시보기를 돌려보아도 스크림의 S자도 보이지 않는 상황.

        

        불길한 기운이 스멀스멀 퍼져나간다.

        

        

        

       “그냥 이 사람, 연락 다 씹고 하고 싶은 것만 하는 것 같은데….”

        

       “…그도 그렇긴 하네.”

        

        

        

        연락이 안 갔을 리가 없다.

        

        특히나 프로와 맞붙어도 어느 정도 승산을 장담할 수 있는 카토를 몇 번이고 쥐잡듯이 뚜까팬 유저라면 더더욱.

        

        애초부터 아시아 예선전을 목표로 돌리고 있으니만큼, 스크림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 리도 없을 터.

        

        그렇다는 것은….

        

        

        

       “…야. 이 사람 설마 귓말이랑 친구요청 전체차단 해놨냐?”

        

       “…아마?”

        

        

        

        당장 카토 자신도 방송으로 프라임 구독과 도네이션 5만원을 동시에 박아서, 제발 메시지좀 받아달라는 말로 간신히 친구 요청 승인을 받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아니, 잠깐.

        

        어떻게 내가 당한 일이 남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고 있었던 거지?

        

        

        

        

        

        

        

        

        

        

        

        한편, 그 시각.

        

        

        

       <[공식]Xi IMPRESSIVE 님이 50,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유진 유저님, 승급전을 통해 다크 존 에이펙스 프레데터 아시아 예선전에 참가할 수 있는 자격을 획득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저희 구단에서 여러 번 스크림 참가 요청 메시지를 보냈으나, 메시지 차단 등의 이유로 보지 않으신 것으로 사료되어 방송 중 부득이하게 이러한 방법을 통해 의사를 전달하게 되었습니다. 참가해주신다면 정말로 감사드리겠습니다.

        

        

       “Xi IMPRESSIVE 님, 5만 원 후원 감사합니다…네, 확인해보도록 할게요.”

        

        

        

        …이게 뭐시여?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유진특)악질인거 지만 모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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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Have Returned, but I Cannot Lay down My Gun

I Have Returned, but I Cannot Lay down My Gun

귀환했지만, 총을 놓을 수는 없습니다
Score 4.1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Just the fact that I came back couldn’t be the end of every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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