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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6

        

         끼긱… 끼긱….

         

         명령에 따라 상주 인원이 완전히 소거된 HA 층에 신경을 긁는 소음만이 울려 퍼진다.

         군화 밑창이 바닥을 비비며 착용자의 몸을 조금씩 전진시킨다.

         

         그 주체는 당연히 징수 부대.

         한데 그들은 자사 시설 한가운데에 있음에도, 매끄럽게 작전을 수행하기는커녕 당장 침입자의 위치조차 제대로 특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직도 시스템 접근은 먹통인가?”

         

         – 최대한 노력 중이다. 하지만… 애당초 독립된 네트워크였던 데다가, 직원들이 대피하면서 접속을 아예 차단했는지 난항을 겪고 있다. 박사를 찾는 대로 시스템 복구를 요청하도록. –

         

         “……염병하기는!!”

         

         지금…! 침입자가 어디 있는지 특정해야 한다니까, 태평한 소리나 늘어놓는 지휘부 엔지니어를 향해 마이크를 끄고 악담을 퍼부었다.

         

         쓸데없이 출중한 내부 설계 때문에 간헐적으로 미세한 진동만 느껴질 뿐, 적의 규모나 무장 상태 그 어느 것도 확인하지 못하는 상황이 최전선에 투입된 병사로서 달가울 리가 없었다.

         

         하다못해 보안 카메라의 회선만 따올 수 있어도 이 지랄은 안 났을 텐데, 전문가라고 거들먹거리던 주제에 뭐하나 똑바로 하는 게 없는 놈들이라고 속으로 씹어 댔다.

         

         “…어이, 너무 불안해 하는 거 아니야? 너까지 괜히 그러면 분위기가 안 좋아진다고.”

         

         “괜히면 다행이지….”

         

         말꼬리를 흐리는 그는, 분대내에서도 감이 좋기로 유명했다.

         내기를 하다가도 발을 빼야 할 타이밍은 항상 귀신같이 알았고, 좆 같은 임무는 명령이 내려온 순간부터 눈치챘다.

         

         그런 직감이 맹렬하게 경고하길… 현재 이 지하층은 절대적인 사지였다.

         

         책임자 그리샤의 광기로 번들거리던 눈동자가 뇌리를 스쳐 지나간다.

         아무리 상급자의 지시라지만, 터무니없는 사정에 말려들게 된 건 아닐까… 하는 의심은 진즉 피어났고.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시점부터는 아주, 많이, 존나게 안 좋은 느낌이 가시질 않았다.  

         

         마치… 누군가가 계속 이쪽을 지켜보고 있는 듯한 꺼림칙함.

         오염과는 거리가 먼 환경임에도 내딛는 걸음마다 끈적한 무언가가 달라붙어, 깊게 들어오는 걸 막아서는 불쾌함.

         

         그나마 든든한 건, 관문에 있던 병력이 거의 모조리 투입됐기에 미지의 적과 우선적으로 교전할 확률이 낮다는 것 정도…?

         

         – …여기는 4번 승강기 담당 분대, 흔들림이 점점 가까워지는 것 같다. 타겟을 발견하면 곧바로 이어서 교신하겠다. 이상. –

         

         – 잠깐, 수술실 안에서 뭔가 움직이는 걸 확인했다. 고밀도 열에너지가 감지된… *&*^&(*…?! ……!! –

         

         이건… 전파 방해?

         목적을 알 수 없는 테러리스트치고는 꽤 준비한 게 많다고 여겨졌다.

         

         – 잘 안 들리^&%^… 다시 한번 말#^%……. –

         – 씹^*&……. –

         

         귀가 저릿해지는 잡음이 지분을 늘려가더니 이내 채널 전체를 잡아먹었다.

         

         지하에 있는 부대원 및 지휘부 간의 소통이 단절된 상황에 저절로 등골이 오싹해졌으나… 다르게 본다면 이건 파라다이스의 병력을 감당하기 힘든, 궁지에 몰린 상대 쪽에서 낸 얕은 꾀.

         

         불리한 만큼 각개 격파를 노리고 싶은 모양인데… 그게 생각처럼 쉬웠다면 메가 코프는 진작 망했으리라.

         

         철컥!! 딸깍…!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징수 부대 전원이 사주 경계태세에 돌입했다.

         헬멧과 각자의 임플란트가 제공하는 감지기능을 최대로 곤두세우고, 다가오는 모든 수상자를 배제하고자 장전된 총을 복도를 향해 겨눴다.

         

         “진동은 여전히 먼 곳에서 느껴지는데… 아직 오퍼레이션 룸 내부에 남은 직원이 있었나? 차라리 잘 됐군, 카메라를 쓸 수 있겠어.”

         

         …인기척? 아니면 생체 반응?

         

         뭔가를 감지한 듯한 동료가 조심스럽게 7번 수술실이라고 적힌 방을 향해 다가갔다. 그러자 별다른 마찰음도 없이 자연스럽게, 문이 옆으로 비키며 방문자를 환영했다.

         

         그런데… 이 구역 시스템이 마비되었다면서 용케도 조명이나 센서 같은 편의설비는 정상적으로 가동한다고 여긴 찰나.

         수확 구역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던 다른 부대원이 중얼거리는 말이 들렸다.

         

         “…? 거기 문은 자동문이 아니지 않았….”

         

         콰드득!

         

         주의고 나발이고 할 틈도 없었다.

         벌렸던 입을 닫아버리듯, 차단문이라는 이빨이 선행한 부대원의 몸에 거세게 틀어박혔다.

         

         벽과 문 사이에 끼어 잔인하게 으스러진 사지가 경련하는 게 눈에 들어왔다.

         전원이 반사적으로 응전하려 했으나… 그 대상이 모호했다. 뭐, 문? 차단문이라도 쏴서 분쇄해야 하나? 그런다고 저게 살아나진 않는다. 

       

         

         아니, 애당초 이걸 공격받았다고 할 수 있나? 지랄 난 시스템의 오류로 인한 사고라고 보는 게 더 설득력 있는 최후였기에 판단이 늦었다.

         

         콰드드득!!

         

         다시 한 번, 크게 벌어진 문이 허망하게 무력화된 부대원의 확인사살을 마쳤다.

         

         이제야 그들은 경찰이었던 침입자 이외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었다.

         잠시간 벌어졌던 틈새로 보인 기계의 시뻘건 안광.

         

         하지만 길에 널린 자갈에 말을 건다고 대답이 돌아오지는 않는 것처럼.

         사람이 인공지능도 없는 철덩어리를 정면으로 마주 본다고, 그것과 눈이 마주쳤다고는 하지 않는다.

         

         허나 바보 같은 표현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그는 수술 기계안에 도사린 무언가를 봤다는 감각을 떨쳐낼 수 없었다.

         

         …현대전을 수행하는 주체가 기업이고. 그 정수가 드로이드나 개조인간, 초호화 장비라면.

         현대전의 악몽은 다른 게 아니었다. 상응하는 비대칭 전력이 없으면 변변한 대항조차 힘든 이계의 악마들.

         

         “넷 해커다—! 위치불명!! 이 머저리 새끼들은 시설이 아예 탈취당했는데 대응도 안 하고 뭐하는…!!

         “애미 씨발, 다 박살내!! 죽기 싫으면 보이는 건 그냥 싸그리 부수라고!!”

         

         특별한 비명이나 단말마도 죽은 이에겐 사치였다.

         눈부신 빛줄기가 그대로 지나가면 헬멧에 못 보던 고리모양 낙인이 찍힌 부대원의 육체가 허물어진다.

         

         “수류탄 투척!! 엄폐해 이 새끼들아…!”

         

         본색을 드러낸 인형의 집이 손님들을 맞이하기 시작했다.

         구획 조명이 미친듯이 깜빡이며 시야를 교란했고, 조금이라도 기동성이 있는 기계들이 모조리 기지개를 펴며 잠에서 깨어났다.

         

         드로이드조차 아닌 온갖 잡다한… 청소 로봇 같은 기기까지 멋대로 움직이는 풍경은 흡사 술자리에서 가십거리로나 떠들던 기계의 반란처럼 보이기도 했다.

         

         “……어처구니가 없군.”

         

         대체 관문에 이 정도 공세를 걸기 위해 몇 명의 해커가 동원된 걸까? 가상 세계의 전문가가 아닌 그들로서는 짐작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응전하는 지휘부 엔지니어들이 덜 무능하기를 간절히 바랬을 따름이다.

         

         

         

         ★ ☆ ★ ☆ ★

         

         

         

         “으… 아…!! 이 양심 없는 새끼들아!!”

         

         수의 폭력이라는 건 정말 더럽고 치사하고 원론적이면서도 손해보는 게 없는 전술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할 말은 아니라고? 웃기지 마라, 여기 있는 게 의식체가 아니었으면 난 이미 코피를 줄줄 흘리며 쓰러졌을 테니까.

         

         어쩌면 현실의 모세혈관은 과로를 견디지 못하고 벌써 다 파열했을지도 모르고.

         

         분명히 이 어둠은 내 본거지나 다름없는 공간인데, 자꾸만 불쑥불쑥 자라나는 잡초들을 베어낸다.

         또 한편으로는 내가 구현한 것과 미묘하게 달라진 물체가 있다면 가차없이 허물고 다시 빚어낸다.

         

         틀린 그림 찾기와 반응속도 테스트가 합쳐진 지옥.

         이 모든 게 전부 끊임없이 들어오는 통제권 탈취 시도라면 내 처지를 얼추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두 가지 게임을 동시에 진행하라면 인외의 영역에 근접한 내 뇌가 견딜 수 있었다.

         

         그러나 여기에 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도 끼얹는다면 어떻게 될까?

         

         “아이씨…! 수류탄을 못 봤네?!”

         

         지휘부 놈들이 걸어오는 수작을 찍어 누르면서도 통신 교란도 잊지 않는다.

         동시다발적으로 개시된 전투에 공격 명령을 내리고, 의료기기에 조준 시스템 같은 게 있을 리도 만무하니 일일이 발사각을 지정한다.

         

         급하면 급한 대로 충전 중이던 운반용 로봇의 배터리를 과부하한 다음 자폭테러범 마냥 놈들 한복판으로 돌진시킨다.

         

         쾅! 하는 굉음에 안심한 것도 잠시, 고폭탄에 의해 망가진 주력 무기인 수술 장비를 확인하자마자 해당 구획의 문부터 격벽까지 모조리 쳐닫고 전원도 내려버린다.

         

         꼬우면 다 때려부수고 탈출하시던가…!!

         

         콰광—!!

         

         …어, 미친. 지금 보니 디펜스 게임적인 요소도 한 스푼 첨가된 것 같다.

         

         적재적소에 필요한 자원을 투입해서 틀어막지 않으면 금세 돌파당하고 만다.

         보라, 방금 막 가둔 징수 부대가 화력을 집중해 벽을 통째로 허물고 또 빠져나왔다. 이 편의 수족이 파괴되는 만큼 저들의 숫자도 줄어가는 소모전 양상이 되었으나 전황은 아슬아슬했다.

         

         “조금만… 조금만 더…!!”

         

         빠르게. 조금 더 빨리. 더 효율적으로. 한계까지 연산을 몰아붙인다.

         꼭대기에서 다소곳이 앉아 명령을 내리는 걸로는 부족하다. 나라는 자아가 희미해질 수준까지 의식을 마구잡이로 쪼개 기계 안에 쑤셔 박는다.

         

         육신을 구성하는 세포 무리에 지정된 일을 하도록 속삭이는 것만 같았다.

         개인이면서 집단, 군체이자 완전체. 무슨 선문답 같은 수수께끼의 주인공이 된 기분이다.

         

         지이이잉—!!

         으득!!

         

         한층 정교해진 포대와 병사들이 기세가 꺾여가는 징수 부대를 밀어내고, 외부 침략에 흔들리던 심연이 굳건함을 되찾는다.

         

         여기까지 어찌저찌 이뤘음에도 조급한 마음이 가라앉지 않는다. 벽에 무력하게 기대고 있을 내 몸 걱정도 있었지만… 주된 원인은 헬레나.

         

         내가 어떻게 준비한 살상병기 일선을 부딪히기도 전에, 달려드는 앤을 상대하며 자리를 옮기던 그녀가 한 무리의 적들과 충돌해버리고 말았으니.

         

         강화 장갑의 힘을 빌어 초인을 억제할 수단이 생긴 앤과 공격력만은 위협적인 징수 부대의 조합은 상당히 거슬릴 게 분명했다.

         

         가령…… 저렇게, 피하기 어려운 궤도로 날아든 타격을 막느라 잠깐 멈춰선 사이에 총격 당하면…!

         

         “……이 죽어도 싼 새끼들.”

         

         다음에 일어날 일을 즉감한 헬레나가 빈정거렸고.

         

         무자비한 포화에 노출된 그녀의 몸이 허공을 날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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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전압축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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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Status: Ongoing Author:
No matter how many times I repeated the episodes, I couldn't clear the true ending of the open-world shooting RPG, Neo Haven. Just when I thought I finally cleared the hidden true ending... they want me to actually clear it without any help from the game system or save/load fe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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