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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6

    매표소 입구에 놓인 지도를 읽고 있는 문신투성이 여성이 보였다.

    입고 있는 복장, 사용하는 언어만 봐도 전혀 다른 문화권에서 살아왔다는 것이 느껴졌다.

    근 수백 년은 손님이 없던 정원에 나타난 손님.

    정원은 생소한 형태로 그 구성을 바꿨다.

    새롭게 나타난 자들은 전혀 다른 문화와 언어를 가지고 있었지만 그런 것들은 모두 사소한 차이점이다.

    전혀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것은 ‘오브젝트’의 취급이다.

    지금 도착한 손님들이 ‘오브젝트’라고 부르는 것에 대한 취급이 문제였다.

    무르다.

    한없이 취급이 무르다.

    그것에 대한 이해가 너무나 부족했다.

    “어이, 마네킹!”

    문신투성이의 손님은 고개를 돌리고, 나를 불렀다.

    “네, 무슨 일인가요? 손님.”

    상념을 지우고, 친절한 목소리로 답했다.

    사실 ‘오브젝트’의 취급보다 나에게 더욱 중요한 것은 저 여성이 테마파크를 통과하느냐 마느냐였다.

    ***

    하늘을 가득 메우는 폭죽.

    넓고 황량한 매표소. 

    기분 나쁜 스마일 동상.

    넓고 황량한 매표소 어디에도 사람 한 명 보이질 않았다.

    내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마네킹에게 물었다.

    “여기 나 말고도 들어온 사람이 많을 텐데 왜 한 명도 보이질 않는 거지? 그 녀석들이 아무리 상등신들이라도 한 명도 통과 못할 리가 없잖아?”

    “흐음, 아쉽게도 본 테마파크는 임시 오픈이라서 말입니다. 손님 별로 분리해서 대응하고 있지요. 손님들 간의 피가 끓는 경쟁은 정식 오픈을 기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결국 혼자서 이 테마파크를 통과해야 하는 건가?

    조금은 아쉬운 마음을 떨치고 스마일 동상 옆에 배치된 커다란 지도를 올려다보았다.

    스마일 회전목마, 스마일 셔틀버스 정류장, 스마일 롤러코스터, 스마일 드롭 타워, 스마일 바이킹, 스마일 관람차, 스마일 푸드 코트, 스마일 미로, 스마일 공포의 집….

    제일 먼저 확인해야하는 곳은 탈출로다.

    스마일 셔틀버스 정류장.

    지도를 살펴보는 나를 빤히 보고 있는 마네킹을 불렀다.

    “어이, 마네킹!”

    “네, 무슨 일인가요? 손님.”

    “길안내도 하는 거지? 셔틀 버스가 있는 곳부터 가자.”

    “흐음, 지금 가봐도 이용하지 못할 텐데 가보시겠습니까?”

    “그래. 상관없어 가보자.”

    마네킹은 왠지 별로 내키지 않는 분위기였다.

    셔틀버스 정류장에 뭔가 있는 건가? 

    셔틀버스 정류장을 향해 천천히 걸어가는 마네킹의 뒤를 따라갔다.

    ***

    셔틀버스 정류장은 상당히 테마파크와 동떨어진 곳에 존재했다.

    매표에서 이렇게나 떨어진 셔틀버스 정류장이라니….

    “셔틀버스 정류장이 이렇게 멀어도 되는 건가?”

    “아직 개장이 끝나지 않아서 그렇답니다. 정식 오픈 때는 제대로 구성이 될 예정이더군요.”

    마네킹이 정류장이랍시고 데려온 곳은 기묘한 곳이었다.

    끈적거리는 검은 진흙.

    머리가 아플 정도로 풍기는 석유 냄새.

    처음 보는 양식으로 지어진, 대리석을 층층이 쌓아 올린 건물.

    그리고 대리석 건물과 연결되어 있는 평범한 셔틀버스.

    정차 중인 셔틀버스는 마치 비행기처럼 탑승교로 건물과 연결된 점을 제외하면 서울에서 흔히 볼 법한 디자인의 버스였다.

    정류장의 이질적인 환경만큼이나 하늘도 완전히 달라졌다.

    테마파크와는 아예 다른 공간에 있는 것처럼 말이다.

    하늘을 메우는 폭죽도 이곳에서는 보이지도 않았고, 대신 이상한 것이 하늘을 가득 채웠다.

    6개의 달.

    형형색색의 달이 6개나 떠있었다.

    “흐음, 손님. 이쪽으로 오시죠. 셔틀버스 이용에 대해서 알려드리겠습니다.”

    대리석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나를 반겨준 것은 대가리였다.

    쇠로 만든 거치대에 사람들 머리가 잔뜩 걸려있었다.

    마치 볼링공처럼!

    ‘!’

    그리고 익숙한 머리가 보였다.

    멸치 녀석과 돼지 녀석의 머리.

    저 두 놈은 절대로 살아남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확인하게 되다니….

    “아, 놀라셨나보군요. 이 머리통들이 스마일 테마파크에서 사용되는 코인입니다. 코인 하나에 머리통 하나. 이런 식이죠.”

    마네킹은 머리 하나를 꺼내 통통 두들겼다.

    “셔틀버스는 유료로 이용할 시, 코인 10개가 필요합니다.”

    “그럼 저 전시된 머리통 10개를 가져가면 지금 당장 셔틀버스를 탈 수 있는 건가?”

    “아뇨 아뇨. 이건 비치된 코인입니다. 테마파크의 자산이죠. 현재 손님이 가진 코인은 지금 가지고 계신 본인의 머리통뿐입니다. 하지만 다행히 지금은 이벤트 중이니, 스탬프를 모두 모으면 코인이 없어도 셔틀버스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마네킹이 통통 두들긴 머리는 찌그러들더니 흉측하게 생긴 코인으로 바뀌었다.

    초대장을 주는 시점에서 살인 오브젝트 확정이라고 봤지만, 생각보다 더 괴상한 오브젝트였다.

    코인 10개.

    스탬프 9개.

    개수가 안 맞는 것 같은데 뭐 상관없나?

    ***

    옴뇸뇸. 

    식탁 위에 편하게 누워서, 이것저것 집어 먹고 있었다.

    의자 위에 앉으려고 해도 너무 낮아서 불편해.

    테마파크에 나 말고 다른 손님도 없는데, 의자 크기 정도는 나한테 맞춰야 하는 거 아닌가?

    아무튼 테마파크의 잘못이다.

    푸드 코트에서 즐거운 시간을 만끽하던 도중 변화가 느껴졌다.

    마네킹이 늘고 있어.

    마네킹은 나를 따라다니는 전담 마네킹 말고는 필요한 곳에만 소수 배치된 것 같았는데, 이제는 건물 주변에 잔뜩 모여들고 있었다.

    “손님, 푸드 코트에 손님만을 위한 VIP 시설을 준비했습니다. 한번 가서 보시겠습니까?”

    마네킹의 안내에 따라 들어간 곳에는 널찍한 공간이 있었다.

    그 안에는 나에게 익숙한 것들이 가득했다.

    TV. 볼풀. 침대. 간식. 게임기.

    내가 좋아하는 것들만 잔뜩 모아둔 공간이었다.

    “어떻습니까? 스마일 테마파크에서 준비한 VIP실입니다. 게다가 이쪽의 키오스크를 사용하시면 원하는 음식은 뭐든지 주문이 가능합니다.”

    왠지. 

    나를 여기에 계속 묶어두려는 의도가 느껴졌다.

    뭐, 그래도 별로 상관없지.

    질리면 그때 가서 생각해보면 될 일이야.

    그도 그럴게, 여기 마네킹들 너무 약해보이는 걸.

    키오스크로 팝콘을 주문하고, TV를 켰다.

    꽤 오랫동안 보지 못한 드라마가 나를 반겨주었다.

    그러고 보니 오브젝트 안에서도 TV가 나오네?

    ***

    우울하다.

    사신이가 없어진지 벌써 5일째.

    언제나 즐거웠던 출근이 이제는 싫어졌다.

    “예린아. 밥 먹으러 갈래?” 

    도리도리.

    요즘은 식욕도 없다.

    힘이 없어서 흐느적거리고 있으면 서아 언니가 갑자기 나타나곤 했다.

    그리고 주변을 배회하면서 뭔가를 적고 있는데, 뭘까?

    뭐냐고 물어봐도 웃으면서 보여주질 않는다.

    퇴근 시간이 되서 짐을 정리하고 있을 때, 갑자기 사신이의 기척이 느껴졌다.

    사실 사신이의 기척을 느끼는 건 당연히 불가능하겠지.

    착각일게 뻔했지만, 기척이 느껴진 곳으로 전력으로 달려갔다.

    도착한 곳은 사신이가 사라진 ‘테마파크 초대장 인형’ 격리실.

    이제는 7m에 육박하는 거대한 인형은 몸을 공처럼 말고 힘없이 케겍거리고 있었다.

    음, 뭔가 이상한데?

    공처럼 둥근 머리 위로 뭔가가 돋아나 있었다.

    안테나.

    그것은 커다란 안테나였다.

    왠지 저 안테나 너머에는 사신이 있을 것만 같았다.

    ***

    이곳은 시간이 모호해서 확실하진 않지만, 대충 3일쯤 지난 걸까?

    3일밖에 안 지났는데 지루하다.

    내가 지내던 격리실만큼이나 편안한 곳인데, 왜 이런 걸까?

    내 가슴 속에 있는 장작이 그 답을 알려줬다.

    주변에 사람이 없으니까 뭘 해도 재미가 없다.

    뭘 먹어도 즐겁지 않다.

    슬슬 나가야겠어.

    뚜방뚜방 걸어서 VIP실 문을 열자, 마네킹들이 잔뜩 있었다.

    “손님. 어디를 가실 생각이신가요? 현재 테마파크는 준비 중이라 이용하실 수가 없습니다.”

    마네킹의 손길을 따라 시선을 돌려보니, 푸드 코트를 제외한 놀이 공원이 사라져 있었다.

    대신 그 자리를 채운 것은 개미 떼처럼 많은 마네킹들이었다.

    스탬프가 찍힌 종이를 들이밀자, 마네킹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당연히 스탬프도 찍으실 수 없습니다. 대략 1개월 정도 기다려주시면 정식 개장을 하게 되니 그때까지 기다려주십시오.”

    내 몸속에서 타오르는 불꽃이 마네킹들의 적대감을 읽어 들였다.

    애매했는데, 이번에는 확실해졌다.

    안내를 해주던 마네킹은 자유의지를 가지고, 인류를 적대하는지 애매했다면. 

    이 내 앞길을 막은 마네킹들은 자유 의지가 없고, 인류에게 확실히 적대적이었다.

    손을 휘둘러, 앞을 막은 마네킹의 목을 잘라낸다.

    허약한 마네킹 따위는 내 앞길을 막을 수 없지.

    마네킹들의 파괴 조건은 [목을 자른다.]였다.

    목이 잘린 마네킹의 몸은 가루가 돼 흩어지고, 둥근 머리만 남아서 대굴대굴 굴러다녔다.

    그러자 푸드 코트 외부에서 우글우글 거리던 마네킹들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숫자라면, 나도 뒤지지 않아.

    내 발밑에서 황금 사신들이 만세 자세로 뿅뿅 나타났다.

    하지만 황금 사신들은 마네킹들이 달려들든 말든 내 몸에 붙어 있는 것을 우선시했다.

    발밑에서부터 나를 붙잡기 시작해, 점점 기어 올라와 머리끝까지.

    그렇게 황금 사신 고치가 되어버렸다.

    아니 너희들 잘 싸웠잖아. 

    왜 이러는 거야.

    상황이 변한 것은 마네킹이 황금 사신 고치를 공격한 순간이었다.

    마네킹의 주먹에 맞고 고치에서 떨어져 나가 날아가는 황금 사신들. 

    마치 둥지를 잃어버린 아기 새처럼 처량한 표정으로 날아가 벽에 처박혔다.

    그 순간 모든 사신들이 고개를 번쩍 들고 마네킹들을 쳐다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작된 것은 학살이었다.

    황금 사신의 물결이 마네킹들을 갈아버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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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ul Object Story

Seoul Object Story

서울 오브젝트 이야기
Score 9.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Humans, once the masters of Earth, were losing their place to the inexplicable phenomena known as Objects. And this is a story about becoming an Object and living worry-free in the Seoul of such a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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