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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6

   대뜸 싸워보자는 이야기를 들었음에도 난 그리 당황하지 않았다.

   

   프레이는 원래 이런 캐릭터니까.

   

   머릿속에 들어있는 거라고는 검과 싸움밖에 없는 미친년.

   

   다른 사람의 감정은 신경도 쓰지 않고 자신이 바라는 대로만 움직이는 마이 페이스.

   

   싸워 볼 가치가 있을 것 같다 싶으면 대뜸 대련을 신청하는 인간.

   

   그리고 내가 그리 좋아하지 않던 캐릭터.

   

   단적으로 말해서 난 프레이를 싫어했다.

   

   제멋대로 행동하며 주변 사람을 휘둘러 대는 것도 싫었고,

   

   순진무구한 얼굴을 한 채 독설을 내뱉고는 무슨 잘못을 했냐는 냥 고갤 갸웃거리는 것도 싫었고,

   

   그 무엇보다 싫었던 건 게임 상 프레이의 성능이 너무도 구졌단 사실이었다.

   

   프레이의 스펙이 구진 건 아니었다.

   

   훗날 검성의 자리에 오를 프레이는 소울 아카데미의 근접 캐릭터 중 최강이라 부를 만 했다.

   

   그럼 뭐가 문제냐.

   

   프레이는 자신이 꼴리는 대로 움직인다.

   

   유저가 조종을 하건 지시를 하건 그냥 자기 마음대로 행동을 한단 말이다.

   

   프레이 관련 업적 때문에 얘를 파티에 데리고 다니다 얘가 저지른 트롤링 때문에 파티가 전멸했던 게 몇 번이던가.

   

   압도적인 성능에 마음을 빼앗겼다는 말 들어본 적 있는가?

   

   난 프레이의 끔찍한 성능에 그녀를 미워하게 됐다.

   

   단언컨대 프레이라는 캐릭터는 소울 아카데미 최악의 캐릭터 중 하나였다.

   

   게임이 현실이 된 지금이라 해서 프레이의 성격이나 스타일이 달라질 것 같진 않았다.

   

   그래서 난 그녀와 가까워 지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었다.

   

   파티에 들이고 싶은 생각은 더더욱 없었다.

   

   안 그래도 아그라의 저주 때문에 변수가 넘쳐나는데 얘까지 데리고 다니라고?

   

   그건 자살행위야. 차라리 혼자 다니고 말지.

   

   호감도 작이라도 쉬웠더라면 퀘스트를 클리어 하기 위해서라도 노력을 해봤겠지만 얘는 호감도 작도 힘들단 말이야.

   

   “내 말 안 들렸어?”

   

   내가 답을 하지 않는 게 의아했는지 프레이가 고갤 갸웃거렸다.

   

   게임 상에서도 일러스트 하나는 끝장나게 뽑았다고 생각을 했는데 현실이 되니까 장난이 아니네.

   

   보석을 박아 넣은 것 같은 눈도.

   

   건드리면 흘러내릴 것 같은 머리카락도.

   

   바깥을 돌아다니는 걸 그렇게 좋아함에도 티끌 하나 없이 새하얀 피부도.

   

   예전에는 외모도 성능이라면서 프레이를 빨아대던 사람들을 잘 이해할 수 없었는데 지금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녀는 아름다웠다.

   

   프레이의 얼굴을 정면에서 본 사람이라면 그 누구도 그녀의 얼굴을 잊을 수 없을 정도로.

   

   나와 같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의 시선이 프레이에게 꽂힌 걸 보면 나만 이렇게 생각하는 건 아닌 듯 했다.

   

   정작 본인은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게 관심을 두는 것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지만.

   

   ‘들었어요.’

   “들었어. 허접 검사.”

   

   프레이는 허접 검사야?

   

   진짜 무슨 기준으로 이름이 정해지는 건지 모르겠네.

   

   왜 누구는 별명대로 가고 누구는 아닌 거야?

   

   이번엔 별명대로가 아니라서 고맙긴 해.

   

   칼도라이라든가. 싸패영애라든가. 파티분쇄범이라던가.

   

   좋은 의미로 불러지는 별명이 아무것도 없으니까.

   

   허접 검사정도면 나쁘지 않지.

   

   “응? 허접? 나?”

   

   ‘네.’

   “그럼 여기 너 말고 다른 사람이 있어?”

   

   “으음. 난 허접 검사구나? 처음 들어보는 별명.”

   

   자신을 무시했음에도 불구하고 프레이는 별 감흥이 없는 것 같았다.

   

   다른 사람이 어떤 식으로 생각하건 부르건 아무 상관도 없다는 거지?

   

   역시 게임이랑 똑같네.

   

   “그건 됐고 대답. 나랑 싸워보자.”

   

   ‘싫어요.’

   “내가 왜 허접 검사랑 싸워야 해?”

   

   “재밌을 거야.”

   

   ‘전 그렇게 생각 안 해요.’

   “미안한데 난 허접 검사한테는 관심 없거든?”

   

   “그래? 그래도. 음.”

   

   얘는 내 말을 듣기나 하는 걸까.

   

   벽에다 대고 일방적으로 말을 하는 느낌이 들어서 가슴이 답답했다.

   

   루시의 몸에 깃들고 나서 다른 사람과의 대화에서 밀린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는데 오늘은 달랐다.

   

   귀를 틀어막고 제 할 말만 하는 사람에겐 메스가키 스킬의 번역이고 뭐고 아무런 의미도 없었던 것이다.

   

   “그럼 내가 허접이 아니란 걸 알려주면 되는 거지?”

   

   프레이가 그 말을 내뱉은 순간.

   

   <여아야!>

   

   철벽이 외쳤다.

   

   방패를 들라고.

   

   요 몇 달간 피를 토할 정도의 훈련을 반복해 온 내 몸은 생각하는 것보다 먼저 움직였다.

   

   속으로 기도문을 외워 팔위에 신성의 방패를 만들어 낸 후 철벽이 고하는 바에 따라 방패를 움직였다.

   

   채앵!

   

   프레이가 내지른 검이 방패에 막혀서 튕겨 났다.

   

   그녀의 붉은 색 눈이 가만히 나를 노려본다. 그 안에 담겨 있는 감정은 분명 흥미였다.

   

   어린 아이가 재밌는 장난감을 발견한 것만 같은 흥미.

   

   “와. 막았네?”

   

   ‘정신 나갔어요?!’

   “허접 검사! 너 돌아버린 거야?! 여기서 검을 휘두르면 어쩌잔 거야!”

   

   “막았으니까 괜찮은 거 아냐?”

   

   무친련.

   

   내가 이래서 얘랑 관련되기 싫었어.

   

   프레이가 검을 휘두름에 따라 철벽이 끊임없이 위험을 고한다.

   

   저 하나하나가 살수라고.

   

   검을 놓치는 순간 살갗이 베여나갈 것이라고.

   

   속으로 기도문을 외어 스스로에게 버프를 건 나는 검을 막아내면서 틈을 기다렸다.

   

   프레이는 분명 나이에 비해 강했지만 그래봐야 알른 가문의 기사들에게 비할 바는 아니었다.

   

   내 앞에 있는 게 칼이었고 그가 진심으로 나를 박살 낼 생각을 했다면 난 이미 목이 날라 갔을 걸.

   

   “알른 영애! 뒤로 물러나요!”

     

   그렇게 버티던 중에 조이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난 그 말을 듣자마자 프레이의 검을 튕겨냄과 동시에 몸을 물렸다.

   

   그 순간 나와 프레이를 가로 지르는 얼음벽이 하나 세워졌고 그 위로 신성이 내려 벽을 더욱 견고하게 만들었다.

   

   조이와 페이비의 합작품인가.

   

   “괜찮으세요?”

     

   언제 다가온 것일까 페이비가 걱정스러운 눈길로 나를 살피며 물었다.

   

   제가 다쳤을까봐 걱정되어서 와주신 겁니까?

   

   갓 성녀님. 저한텐 당신밖에 없습니다.

   

   자꾸 허접이라 그래도 절 걱정해 주시다니.

   

   당신의 자비로움에 어찌 감사를 표해야 할까요.

     

   ‘네.’

   “물론이에요. 허접 성녀님. 제가 저런 금수한테 밀릴 것 같아요?”

     

   메스가키 어로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더니 페이비가 쿡쿡 웃었다.

   

   이젠 허접 성녀 소리에도 익숙해지셨나 보네요.

     

   “켄트 영애. 이게 뭐하는 짓이죠?”

   “내가 왜?”

   “교실에서 칼부림을 벌이시다뇨.”

   “허접이 아니란 걸 증명해야했어.”

   “그게 말이 되는 소리에요?”

     

   페이비와 떠들던 중 얼음벽 너머로 조이와 프레이가 대화를 나누는 소리가 들렸다.

   

   대화가 이어질수록 조이의 목소리는 점점 날이 섰지만 프레이는 한결같이 태연했다.

   

   조이가 진심으로 화내면 엄청 무서운데 그 앞에서도 태연히 대꾸하다니. 역시 프레이야.

   

   저대로 내버려두면 조이가 진짜로 폭발할 것 같았기에 난 벽을 지나쳐 두 사람에게 다가갔다.

     

   ‘조이.’

   “얼빵 영애.”

   

   “당신 또 얼빵 영애라고.”

   

   ‘내기에서 이겼잖아요.’

   “내기에서 진 얼빵 영애가 말이 많네요.”

   

   “으….”

     

   지금쯤이면 아카데미 입학시험 성적 확인했을 거 아냐.

   

   그럼 내기에서 발린 것도 알고 있을 테니 얌전히 얼빵 영애가 되었단 걸 인정하시지!

   

   분한 듯 날 바라보는 조이에게서 시선을 떼고 프레이를 바라보았다.

     

   “계속 할거야?”

   

   ‘아뇨.’

   “안 할 거야. 허접 검사.”

   

   “에.”

     

   내가 거절하자 프레이가 진심으로 아쉬워했다.

   

   얘 진짜로 내가 마음에 들어버린 것 같은데?

   

   기껏해야 싸울 맛 나는 샌드백 정도로 생각하고 있을 걸 알지만 흥미를 가진 이상 무슨 짓을 해도 안 놓아 줄 텐데.

   

   귀찮게 됐네.

   

   아무 말도 없이 풀어주면 또 나랑 싸우고 싶다면서 달려들겠지?

   

   일단은 그것부터 못하게 목줄을 걸어 놓자.

   

   ‘프레이.’

   “허접 검사”

   

   “응?”

   

   ‘저랑 다시 대련하고 싶어요?’

   “나랑 다시 싸우고 싶어?”

   

   “응! 물론!”

   

   여태까지 들었던 대답 중에서 가장 활기찬 대답이네.

   

   다른 질문에도 이렇게 대답을 해줬으면 참 좋았을 텐데.

   

   ‘그럼 다신 이런 짓 하지마요.’

   “그럼 다신 이런 멍청한 짓 하지 마.”

   

   “왜?”

   

   이 ‘왜’라는 질문에서 일반적인 상식으로 대답을 해선 안 된다.

   

   프레이는 정상과는 한없이 먼 사람이니까.

   

   그 어떤 사람이 자신의 앞에 있어도 자신의 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에게 상식을 요구해봐야 무어가 달라지겠는가.

   

   여기서 내가 택해야 하는 대답은 프레이의 세계에 맞는 대답이다.

   

   게임 속의 주인공이 프레이에게 맞춰주었던 것처럼 나도 프레이에게 맞춰줘야 한단 거지.

   

   ‘프레이 당신은…’

   “허접 검사 넌 나랑 싸우고 싶은 거잖아.”

   

   “응!”

   

   ‘그러면…’

   “그렇다면 서로 최선의 준비를 하고 제일 좋은 장소에서 싸우는 게 낫지 않아? 아님 이렇게 기습을 하는 게 아니면 이길 자신이 없는 허접인거야?”

   

   내 이야기를 들은 프레이는 눈동자를 굴리더니 이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맞네. 너 엄청 똑똑하다.”

   

   납득한 것 같으니까 이제부턴 무작정 나를 습격하진 않겠지.

   

   대신에 주기적으로 얘랑 대련을 해줘야겠지만 그건 내 훈련을 겸한다고 생각하자.

   

   얘 정도면 대련의 상대로 괜찮은 사람이니까.

   

   “저기 대련 언제할 거야?”

   

   ‘내일하죠…’

   “내일. 오늘은 이걸로 만족해 허접 검사. 짐승같은 너랑 다르게 난 힘들거든?”

   

   “으응. 좋아. 알겠어. 내일인거야?”

   

   내 대답에 만족을 한 듯 프레이가 고갤 끄덕이자 조이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불쌍왕자라고 부르는 것 때문에 짜증나 있을 텐데도 날 신경 써주다니!

   

   넌 역시 좋은 사람이야!

     

   ‘고마워요. 조이.’

   “수고했어요. 얼빵영애.”

   

   “하. 신경 쓰지 마요. 그보다 켄트 영애. 다음엔 행동에 주의해주세요.”

   “응?”

     

   자신이 뭘 잘못했냐는 듯 대꾸하는 프레이를 본 조이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더니 얼음벽을 거두어 들이곤 자리를 떠났다.

   

   와. 진짜 살벌하다.

   

   저런 표정을 보고도 고갤 갸웃거리는 프레이는 진짜 별종이야.

   

   내가 할 말은 아니겠지만.

   

   자 이걸로 대충 상황도 해결 됐고 나도 내 자리를 찾으러 가볼까.

   

   최대한 교수의 눈에 띄지 않는 자리로 가자.

   

   만약에 나를 지적해서 무언가 질문이라도 했다간 험한 말이 튀어나올 게 분명하니까.

   

   내가 발을 뗀 순간 가만 나를 살피던 프레이가 내 뒤를 따라 왔다.

   

   ‘프레이…’

   “허접 검사. 왜 내 뒤를 따라오는 거야?”

   

   “그럼 안 돼?”

   

   프레이의 순진무구한 눈동자를 보자니 할 말이 마땅치 않았다.

   

   안 될 거야 없지.

   

   그냥 네가 내게 관심을 보이는 게 귀찮을 뿐인 걸.

   

   제기랄. 얘한테 싫으니까 꺼지라고 할 수도 없고.

   

   하아.

   

   ‘맘대로 해요.’

   “맘대로 해. 허접 검사.”

   

   “응. 그럴게.”

   

   자기한테 도움되는 내용만 빠릿빠릿하게 대답하는 거 진짜 열 받네.

   

   내가 적당한 자리를 찾아서 앉자 프레이는 당연하다는 듯 내 옆에 자리를 잡았다.

   

   그렇게 내가 마음에 들었니?

   

   방금 전에 때려 보니까 샌드백이 마음에 들었나 보구나.

   

   근데 그럼 뭐하니.

   

   네 호감도 70을 찍으려면 너한테 검에 대한 깨달음을 줘야 하는데.

   

   물론 방법은 없는 건 아닌데 그건 2학년이 되어서나 가능한 방법이란 말이지.

   

   기말고사까지 호감도 70 두 명을 만들어야 하는 내 입장에서 프레이의 호의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고!

   

   자리에 앉자마자 창밖을 바라보며 제멋대로인 리듬으로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프레이를 보고 있자니 머리가 아팠다.

   

   으으.

   

   얘 조건이 괴악하지만 않았어도 호감도 70 한 명을 얻는 거였는데.

   

   아쉽다. 진짜.

   

   그래도 내 옆에 앉아줄 사람 한 명이 생긴 게 어디냐.

   

   텅 비어있어야 했을 양 옆 중 하나가 채워진 거에 만족하자.

   

   *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교수가 반으로 들어왔고 그는 입학식 날에 선생님들이 으레 하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수업의 일정이라던가, 학교 생활에 대한 당부라던가 뭐 그런 것들 말이다.

   

   소울 아카데미라는 게임을 하며 지겹도록 들어보았던 이야기였기에 그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고 있으려니 머잖아 교수의 설명이 끝났다.

   

   “그럼 이걸로 오늘의 입학식을 완전히 마치겠습니다. 아침부터 다들 고생하셨습니다.”

   

   입학식의 일정은 그걸로 끝이었다.

   

   이제부터는 무얼 해도 괜찮은 자유시간.

   

   좋아. 소울 아카데미의 고인물로써 챙겨야 할 것들을 가지러 가볼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많은 관심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더 재밌는 글 쓸 수 있게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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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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