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56

   EP.56

     

   어인들의 왕국 크리티아스.

   왕국이 건립된 지 어언 100년이 되는 해, 멸망은 예고도 없이 그들을 찾아왔다.

     

   「차원. ■■■■의 테스트를 시작합니다.」

     

   치직.

     

   땅이 갈라졌다.

   하늘이 열리고 괴물이 나타났으며 어인들은 끝을 알 수 없는 미지의 공세에 멍하니 허공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 여러분들 건투를 빕니다!

     

   스스로를 도우미라 칭한 다양한 짐승들이 모든 어인들에게 ‘임무’라는 이름으로 생존을 명령했다.

     

   그리고 그것은 그저 한 명의 왕국을 살아가던 백성에게도, 그들을 가장 높은 곳에서 바라보며 통치하던 왕에게도 똑같이 해당됐다.

     

   「왕이시여! 피하셔야 합니다!」

     

   크리티아스의 검.

   왕실 기사단장이자 왕의 보좌관이었던 청린은 상황이 발생하자 곧장 왕의 집무실로 달음질했다.

     

   「이, 이게 어찌…」

     

   허나 이미 왕은 숨이 끊어져 있었다.

     

   그의 시신은 목이 꺾인 채, 집무실의 구석에서 처량하게 식어가고 있었고 때마침 그를 후려친 낯선 괴물은 집무실에 나타난 새로운 사냥감을 바라보며 눈을 번뜩이고 있었다.

     

   스릉.

     

   분노한 청린은 검을 뽑아 그 자리에서 괴물과 싸웠다.

   자신의 살점이 뜯겨 나가고 온몸의 뼈가 박살났지만 개의치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자신을 돌볼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는 말이 더 어울릴지도 몰랐다.

     

   「너희 같은 괴물 따위가! 우리의 왕을…!」

     

   그의 왕은 성군이었다.

   단 한 번도 자신의 사리사욕을 위해 백성들을 착취한 적도 없던 왕.

   어인들에게 이빨을 드러낸 어떤 세력들에게도 굴복하거나 패배한 적이 없는 강인한 존재.

     

   하지만 그런 왕이 너무도 허무하게 눈을 감았다.

     

   「으아아아!」

     

   청린은 괴물과의 전투로 크리티아스의 최초 각성자가 되었다.

     

   [튜토리얼 #1 클리어]

   [생존자들을 회복합니다.]

     

   그는 그를 따르는 어인들을 이끌었다.

   그들을 데리고 괴물들을 소탕했고 왕의 유지를 따라 자신을 따르는 자들과 함께 평화를 되찾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축하합니다. 생존하셨습니다.]

     

   그리고 청린의 끊임없는 노력으로 그들의 마음속에는 희망이란 씨앗이 싹을 틔웠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것은 멸망의 끝이 아닌 시작이었다.

     

   [탑의 영역으로 진입하십시오.]

   [거절 시, 사망합니다.]

     

   어인들은 동요했다.

   괴물들에 의해 수천, 수만의 어인들이 사망했고 그들의 가족과 친구들이 서로를 지키기 위해 희생을 선택했다.

     

   하지만 결국, 그들이 되찾았다 생각한 평화는 시스템이 던진 하나의 알림창에 물거품이 되어 버렸고 그 메시지 하나로 어인들은 분열되고 말았다.

     

   「이렇게 우리는 무릎을 꿇고 마는가……」

   「더 이상 무엇을 더 해야……

     

   그들은 좌절했다. 하지만 좌절 속에서도 초연하게 죽음을 기다리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살고 싶어……」

   「죽고 싶지 않아……」

   「알려주십시오…! 살기 위한 발버둥을…!」

     

   그들은 목숨을 구걸하고 있었다.

   구걸의 대상이 미지의 존재에 대한 굴복인지 그들을 지금까지 이끌었던 청린에 대한 절규인지 알 수 없었다.

     

   「어깨가……」

     

   청린은 왕이 죽은 이후, 처음으로 무릎을 꿇었다.

     

   「너무 무겁구나……」

     

   왕께서 계셨다면 어떤 선택을 하셨을까. 그분이 계셨다면 뭔가 달라졌을까.

   더 많은 어인이 살 수 있었을까? 아니, 어쩌면 미지의 존재에 맞설 방도를 찾아낼 수도 있지 않았을까?

     

   다시 생각해 보면 그것은 그저 이미 나락으로 가 버린 미래에 대한 불완전한 도피였다.

   그만큼 왕의 부재는 청린에게 있어 감당하기 힘든 일 중 하나였다.

     

   청린은 그의 정신적 지주이자, 어인들의 성군이었던 왕에게 지혜를 구하고 싶었다.

   늘 복잡한 고민이 생겼을 때, 그에게 깨달음을 준 것은 그의 왕이었으니.

     

   「……그러하다면.」

     

   그는 뛰어난 전사였지만 책사가 아니었다.

   그는 평생토록 조언자였으나 실질적인 결정권자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고민을 하던 그때, 청린의 눈에 들어온 한 명의 어린 어인이 있었다.

   머리에 금테를 두른 듯한 특별한 문양을 가진, 그의 형과 똑 닮은 어린 왕자.

     

   「왕자.」

   「예 숙부님.」

     

   청린에게는 왕이 필요했다.

   사람들을 이끌 합당한 권한을 가지고 그들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존재가 필요했다.

     

   그리고 자신의 길을 인도해 올바른 장소에 데려다줄 수 있는 길잡이가 그의 눈앞에 있었다.

     

   「지금부터 그대가 크리티아스의 왕입니다.」

     

   아니, 길잡이는 자신이 해도 무방했다.

   그저 자신이 배 위의 항해사로 길을 밝히면 그저 그곳으로 가 보자며 고개를 끄덕일 선장이 있는 것만으로 만족할 수 있었다.

     

   이날부터 금린은 어인들에게 왕으로 추대되었다.

   그리고 그를 중심으로 어인들은 탑을 오르기로 결심했다.

     

   「와아아-!」

     

   처음에는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청린은 자신이 짊어지던 어인들의 기대를 덜어낼 수 있었고 금린은 그들에게 보호를 받으며 왕의 후손으로서 자신의 역할을 톡톡히 할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청린의 기대가 박살이 난 것은 금린의 입에서 이 말이 나온 순간이었다.

     

   「……청린께서 선택해 주십시오.」

     

   청린은 당황했다.

   왕이라면 응당 신하의 첨언을 받아들이고 결국 스스로 판단을 내려 백성들을 이끌어야 하는 존재가 아니던가.

     

   「아닙니다. 하명하십시오. 당신은 우리의 왕입니다. 당신의 뜻대로 행하겠습니다.」

   「……저는 명령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때 청린은 깨달았다. 자신이 큰 실수를 저질렀다는 것을.

   그가 불안정한 범선의 앞에 내세운 것은 방향을 지시할 선장이 아닌 그저 행운을 바라는 선수상이었다는 것을.

     

   「왕께서 결단을 내려주셔야 모두가 움직일 수 있습니다.」

   「두렵습니다.」

   「그것이 왕이 짊어져야 할 무게입니다!」

   「너무 무겁습니다.」

     

   어린 왕은 두려워하고 있었다.

   수많은 어인들의 목숨이 자신의 손에 달렸다는 사실을. 그리고 자신의 부족함으로 꺼져 버릴 목숨들이 자신을 원망하게 되리라는 것을.

     

   청린이 두려워했던 것과 똑같은 형태의 두려움을 어린 금린이 가지지 않을 리가 없었다.

     

   「그래도…… 이겨 내셔야……」

     

   청린의 입이 더 이상 떨어지지 않았다. 자신도 이겨 내지 못한 고통을 어찌 이런 어린아이가 감당할 수 있다는 말인가.

     

   너무 늦게 깨달아 버린 잔인한 현실에 머리가 차갑게 식어갔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에게 자신의 짐을 모조리 떠넘겨 버렸다는 생각.

     

   하지만 이제 와서 무를 수는 없었다. 어인들의 관행상, 한 번 왕이 된 어인은 죽기 직전까지 그 자리를 내려놓을 수가 없었으니.

     

   「아직… 아직은 모르는 일이다…」

     

   그래서 청린은 포기하지 않기로 했다. 아직 어리고 부족하지만 그는 자신이 존경해 마지않던 형님의 핏줄이었으니……

   자신이 아직 발견하지 못한 왕의 자질이 숨어 있을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튜토리얼이 막을 내렸다.

   수많은 어인들의 희생으로 그들은 1층에 들어섰고 또 다른 어인들이 목숨을 잃으며 2층을 올랐다.

     

   2층의 주제는 개인의 성장.

   그는 인간이 주를 이루는 세상에 떨어져 그들의 창술을 익히고 물을 다루는 마법을 배웠다.

     

   피나는 노력 끝에 자신의 체력을 2층의 한계치까지 끌어올릴 수 있었고 그는 도우미의 말마따나 3층에서는 감히 그를 대적할 자가 없을 정도로 강해질 수 있었다.

     

   「이런 2층이라면 분명 왕께서도 성장하셨을 것이다.」

     

   그는 그런 기대를 품고 마침내 2층을 클리어했다.

   그리고 탑의 3층에 진입했을 때, 기대했던 바에 부응하는 한 층 더 강해진 동료 어인들을 마주할 수 있었다.

     

   하지만……

     

   툭.

     

   청린의 기대가 무색하게도 그의 왕은 아무런 발전을 이룩하지 못했다.

     

   「왕이시여.」

   「……네?」

     

   그는 다른 좌표의 플레이어와 부딪쳐 쓰러진 그의 왕에게 말했다.

   시작에는 억지가 있었지만, 어인의 왕이라는 이름을 짊어진 그대가 일말의 책임감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간의 노력을 조금이라도 보여 달라고……

     

   제발

     

   「……하명하십시오.」

     

   청린은 이를 악물었다.

     

   「무슨 명을 말씀이십니까?」

     

   발전하지 않는 왕.

   멸망 이후 자신이 저지른 최악의 실수.

     

   그리고 청린은 그의 왕과 부딪친 플레이어에게 창을 찔러 넣었다.

   그러고는 끝내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던 현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앞으로의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왕을 버려야 한다.

     

   ***

     

   어두컴컴한 밀림을 벗어나 내가 처음으로 보게 된 것은 광활하다는 말이 아쉬울 정도로 시야가 탁 트인 황금빛 사막이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 나의 머릿속을 맴도는 것은 시원하게 펼쳐진 모래 언덕도, 강렬하게 내리쬐는 태양의 볕도 아니었다.

     

   찌릿.

     

   ‘이 녀석이 책임감이 없다고?’

     

   3층에 있던 모든 플레이어가 금린이 어인들에게 소중한 존재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신성국의 성기사와 금린의 충돌로 어떤 소동이 벌어졌는지 모르는 사람이 없었을 정도니까.

     

   당연하게도 무능한 리더는 그룹의 약점이 된다.

   그리고 상대의 약점을 알게 된 상대는 무리를 해서라도 그곳을 노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게 된다.

     

   ‘흠집도 안 나는 갑옷을 찌를 바에 맨살이 드러나는 급소를 공격하는 게 확실하니까.’

     

   하지만 여기에서 오류가 발생한다.

     

   앞선 녀석의 이야기를 종합해 보자면 녀석은 현재 어인들에게 거의 버림을 받은 상황이었다.

   그 말인 즉, 녀석의 존재가 현재 3층에서 결코 어인들의 약점이 될 수 없다는 것.

     

   ‘약점이 아닌데 모두가 그곳이 약점이라 여긴다.’

     

   단체전이 시작되는 경우, 어인들을 상대하는 자들이 쫓게 될 것은 허상이다.

   어인들은 그들의 왕을 지키지 않을 것이며 엉뚱한 데에 힘을 쏟은 상대는 빈틈이 드러나 이미 전투 준비를 단단히 마친 청린을 상대할 수 없을 테니까.

     

   조금 전 들었던 이야기를 되짚어 보면 볼수록 녀석이 그려놓은 큰 그림에 감탄이 나왔다.

     

   녀석이 짓는 어설픈 웃음이 새롭게 다가온다.

   백성에게 섬김을 받는 자가 아닌 백성을 진심으로 섬기는 자.

     

   그의 백성들을 위해 희생할 각오를 마친 녀석에게는 이미 충분한 왕의 자질이 있었다.

   

다음화 보기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You to Climb the Tower? 누가 탑 오르라고 협박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sudden message arrived, heralding the end of humanity.

[Climb the tower. If you refuse, you will die.]

We are being threatened by a mysterious being.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