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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6

    <56 – 상급반 공통강의>

     

    문의 유혹에 초연했던 오크노디와 달리, 헤스티아는 끝내 유혹에 굴복했다.

    새벽 2시.

    잠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헤스티아는 기숙사 복도로 나왔다.

    그리고 기숙사를 순찰하던 여자교관에게 딱 걸렸다.

     

    “통행금지시간에 기숙사를 벗어나면 벌점 500포인트야. 포인트를 내기 싫으면 체벌실 감금 1일을 받는 방법도 있어.”

    “…죄송합니다.”

    “아직 나오지 않았으니까 봐주는 거야. 1학년 애기들한테 아카데미의 새벽은 위험하니까 빨리 돌아가서 잠이나 자.”

     

    외출은 저지당했지만 그렇다고 숨겨진 방에 대한 호기심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오크노디는 그걸 어떻게 알았을까? 그보다 왜 나한테 알려준 걸까?’

     

    혹시 오크노디는 새벽 2시 22분에 몰래 기숙사 밖에서 전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부른 건 아닐까?

    교관이 말한 대로 아카데미의 새벽이 그렇게 위험하다면 오크노디는 매일 새벽 숨겨진 방에서 자신을 기다리며 위험에 노출되지는 않을까?

     

    ‘그건 곤란해!’

     

    자신이 위험한 건 참을 수 있어도 오크노디의 위험함은 참을 수 없다.

    창문을 열고 기숙사 밖으로 몰래 나온 헤스티아.

    그런 그녀 앞으로 파밧 하고 하얀 조명이 켜지더니 기숙사 앞 경비초소에서 그녀를 비추었다.

     

    “왠지 나올 것 같더라니.”

     

    교관이 단말기를 내밀며 물었다.

     

    “포인트 낼래, 체벌실 하루 들어갔다 올래?”

    “포인트 낼게요…….”

     

    헤스티아의 새벽외출은 실패로 끝났다.

     

     

    * *

     

     

    네귀에딩딩딩. 네귀에딩딩딩. 네귀에딩딩…

     

    달칵.

     

    “끄으으으응.”

     

    마법시계로 설정한 알림을 끄자 잠이 싹 달아났다.

    화요일은 월요일에 비하면 비교적 게으름을 부릴 수 있는 날이다.

    시간표에는 여유가 있지만 그렇다고 정말로 게으름을 부렸다가는 성장치가 낮아져서 아카데미 재학도중 억까 이벤트에 당할 확률이 높아진다.

     

    ‘강의 컨텐츠는 기초. 동아리 컨텐츠는 심화. 아카데미 정기이벤트가 본판이지.’

     

    기프트 아카데미에서는 매주 플레이어와 NPC 모두를 대상으로 하는 특별한 이벤트가 발동한다.

    이번 주는 신입생의 주라서 아직 특별한 이벤트가 발동하지 않지만 다음 주부터 열릴 랜덤한 이벤트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미리 준비해둘 필요가 있다.

     

    “오크노디 안녕! 새벽단련 나왔구나?”

    “몸 좀 풀려구여.”

     

    돌핀팬츠 언니들이랑 가볍게 10km 새벽조깅을 마치고 한결 개운해진 몸으로 식당에 들렀다.

     

    [화요일 조식메뉴]

    -검은콩밥

    -소고기뭇국

    -시금치

    -오이무침

     

    “교도소 식단이냐고…”

     

    이건 무리다.

    도저히 먹을 자신이 없어.

     

    “고기반찬 어딨어!!”

    “이거 포인트 사기야!!”

    “아, 이럴 줄 알았으면 아침 굶을 걸!!”

     

    뭣 모르고 결제부터 박았던 어리석은 학생들의 탄식이 식당 안에서 새어나왔다.

    불쌍한 녀석들.

    이럴 때에 대비해서 플랜B를 마련해뒀어야지.

     

    “그래서 아침부터 요리를 해달라고?”

    “이사벨 언니 요리가 젤 맛있어!”

    “…주변 숲의 식생이야 미리 파악해두긴 했지. 조금만 기다려봐.”

     

    남자기숙사에서 지젤과 손오천까지 불러온 이사벨.

    먹는 입이 늘어서 내심 불만을 품기도 잠시.

    지젤의 캠프파이어 키트로 간단히 불을 붙여서 덕분에 편안한 아침식사를 즐길 수 있었다.

     

    “어라? 지젤아저씨. 키트는 어디서 구했어요?”

    “다 방법이 있죠. 아이는 몰라도 됩니다.”

     

    버섯 굽는 냄새에 이끌려 모여든 학생들은 손오천이 팔에 힘을 주며 위협했다.

     

    “맞고 갈래 그냥 갈래?”

     

    남학생들은 그 무식한 덩치에 겁먹고 물러났지만 여학생들은 역으로 한 걸음 더 다가왔다.

     

    “우리도 먹고시푼뎅…”

    “한입만주세효~”

     

    혀 잘린 것처럼 애교를 부리는 여학생들에게 손오천은 무지성으로 나무막대기를 휘둘렀다.

     

    “악!”

    “아얏!”

    “으하하. 이 몸에게 그딴 조잡한 애교가 통할 것 같으냐? 까불지 말고 썩 꺼져라.”

    “고자 같은 놈.”

    “쪼잔해.”

     

    인성논란이야 어쨌건 덕분에 음식구걸을 하는 다른 학생들에게 시달리지 않고 편안히 한 끼 식사를 만끽할 수 있었다.

     

    “오늘은 오전 오후에 상급반 공통강의가 하나씩 있군요.”

     

    화요일 1교시(9시~11시)

    -플라톤 교수(학술자, 에고아이템)

    -강의명 : 상급반 체력증진

    -강의분류 : 공통, 상급반

     

    화요일 3교시(14시~16시)

    -교장(올 클래스, 드래곤)

    -강의명 : 교장의가르침

    -강의분류 : 공통, 상급반

     

    사람 좋은 지젤도 과연 이 시간표를 보고 평소처럼 웃지는 못했다.

     

    “그 교장의 수업이라. 속이 쓰려지는군요.”

    “으하하. 동감이다. 그 괴물, 정말 말도 안 되는 기세였었지. 고향에서 숲의 괴물이라 불리던 드레이크가 어째서 아룡이라 불리는지 확실하게 알았다.”

     

    걱정해야 하는 건 그쪽이 아닐 텐데.

    플레이어 시절에 전부 들어본 강의였기에 대부분의 강의는 날먹이라 생각하지만 역시 화요일 1교시 필수강의만큼은 두렵다.

    이 앞, 조깅으로 10km 가볍게 달리고 온 정도의 체력으로도 감당할 수 없는 육체파 강의가 기다린다.

     

    “강의실이 산 앞이라고? 이상한 강의네.”

    “산의 맑은 기운을 느끼면서 숨쉬기 운동을 하는 건 어떻습니까?”

    “지젤 씨. 아무리 잘 풀려도 그렇게까지 형편 좋은 강의를 기대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하하. 단순한 희망사항입니다. 신체단련을 게을리한 저로서는 가급적 쉬운 강의면 좋겠지만요.”

     

    강의가 열리는 오미네산 초입.

    근육질의 조각상 교수가 공터에는 당연히 상급반에 속한 각 그룹의 에이스들이 모조리 모였다.

    전날에는 고른 강의에 따라 강의실에서 얼굴을 본 사람도 있고, 강의가 갈려서 복도에서만 얼굴을 보거나 어깨 너머로 누가 무슨 강의를 들었더라 하는 소문만 들은 인물들도 존재했다.

    그중 가장 혈색이 안 좋은 사람은 일단 안데르센 프레첼이었다.

     

    “너희들…… 마법학부의 <믿음 없이 신성술을 쓰는 법>만큼은 절대로 듣지 마라.”

    “왜요?”

    “하지 말라면 하지 마.”

     

    신앙의 힘없이 몸으로 고생하기 VS 마르크전사단에 귀의해서 신앙의 힘으로 날먹하기.

    악마적인 종교쟁이들의 강의가 1교시부터 본색을 드러냈나보다.

    덩달아 낚인 것으로 보이는 B그룹의 남학생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하아~? 자기가 들은 강의를 폄하하다니. 완전 최악 아니야~?”

     

    그런 남학생이 움찔하게 만드는 시원한 발성으로 공터 가득 울리는 목소리가 하나 있었으니.

    변방 여학생들의 정신적인 지주가 아카디아이듯이 제국 여학생들의 정신적인 지주로 자리매김하는 제국의 2황녀 <매스각키>가 그 주인공이었다.

     

    “우왓, 안데르센 공자를 면전에서 깠어.”

    “같은 강의를 들은 우리도 공자님의 체면을 생각해서 애써 앞담을 깐 적은 없는데.”

    “제국출신은 역시 변방의 눈치 따위 볼 것도 없다는 건가?”

    “그보다 키 너무 작지 않아?”

    “오크노디랑 별 차이 안 나는데?”

    “하아? 누굴 저런 꼬맹이 취급하는 거야! 제국의 황녀에게 무례하기는!”

     

    네 다음 145cm.

     

    “흥. 지도 조그만 주제에.”

     

    앞으로 몇 년 내로 따라잡을 예정인 꼬맹이다.

    제작사의 메스가키 할당제로 배정된 캐릭터로 성격은 당연히 메스가키.

    하는 짓도 메스가키스러운 황녀님이다.

     

    “뭐어? 거기 꼬맹이. 똑똑히 귀에 새겨둬. 너랑은 키 높이의 두 번째 숫자부터가 다르다고.”

    “전 아직 성장기거든요?”

    “이쪽도 성장기거든!”

     

    응 아냐.

    공식 프로필에 못 박힌 145cm-성장기 끝남-이야.

     

    “건방진 꼬맹이! 130cm주제에 까불지 마!”

    “133cm이거든요!”

    “매스각키 황녀. 언성을 높이기 전에 먼저 사과를 해야 하지 않나?”

    “하? 제가 뭘 사과해야 하죠?”

    “제국의 황녀는 타국의 공작가의 직계를 무시하고도 용케도 낯 두껍게 구는군.”

    “자기가 고른 강의의 교수를 무시하는 건 괜찮고~? 할 말 없죠? 바보죠? 자 논파완료♡”

     

    230cm일때도 킹받는 황녀라고 생각했지만 133cm로 보니까 더 킹받는 황녀다.

    아카데미 최단신 학생 주제에 자신보다 작은 학생이 나타났다고 우쭐대기는…!

     

    “제국 녀석들. 비겁하게 사실적시로 내 체면을 건드리다니. 오늘의 원한은 잊지 않겠다…….”

    “동감이에요. 몇 년 안 지나서 따라잡힐 성장기 끝난 단신에게 이런 모욕을 당하다니. 언젠가 혼쭐을 내주겠어요…….”

    “오크노디. 언젠가 때가 되거든 그대에게도 복수를 거들 기회를 허락하지.”

    “저도 황녀를 골탕먹일 기회가 되면 안데르센 공자님을 불러드릴게요.”

     

    나름 진지하게 안데르센 공자와 의기투합하고 있는데 주변에서 “귀여워” 같은 중얼거림이 들렸다.

    매스각키 황녀를 따르는 패거리들의 중얼거림인가 싶었는데 저쪽의 반응은 영 딴판이었다.

     

    “황녀님. 열 살을 갓 넘은 애기랑 싸우면 체통이 상하세요…”

    “이럴 땐 아이의 수준에 맞춰 놀아주지 말고 어른의 관록을 보여주세요!”

    “맞아요. 이러다 황녀님도 어린애 취급을 당할지도 모른다고요.”

    “무, 무엄하다! 제국의 황녀를 아이 취급 하다니!”

    “그럴지도 모른다는 소리죠. 저흰 안했거든요?”

     

    눈 가리고 아웅하는 황녀의 추종자들의 꼴을 보아하니 저쪽에서 나온 소리는 아니다.

    집중하고 소리를 분간하고 있으니 우리 A그룹 쪽에서 “조각상 눈이 움직이지 않았어?”, “김밥 먹고 싶다.”, “교수님은 언제와?”, “귀여워” 소리가 들렸다.

    찾았다.

    날 보고 귀엽다고 무시한 범인, 너구나!

    힘차게 돌아보니 뜻밖의 인물과 눈을 마주쳤다.

     

    “우왓. 눈 밑이 왜 그래요?”

    “아무것도 아니야…….”

     

    범인은 눈 밑이 검게 변한 헤스티아였다.

     

    “다크써클이 엄청나게 꼈잖아요.”

    “그냥 잠을 설쳐서 그래.”

     

    이 사람, 벽이랑 얼마나 오래 대화를 한 거야.

    그걸 다 나랑 대화한 거라고 생각할 텐데.

    실은 하나도 안 친한데 지 혼자 엄청 친하다고 생각하고 갑자기 내적친밀감을 드러내면 어쩌지?

    …어쩌긴 어째.

    친한 척 받아줘야 흑화이벤트를 막지!

    헤스티아가 한쪽 눈가를 손가락으로 훑는 모습에 이거다, 하고 윙크를 날렸다.

     

    “귀여워.”

     

    역시 이 인간이 낸 소리 맞잖아.

    정신이 반쯤 가출한 얼굴로 저러니까 좀 무섭다.

    일단 아는 척은 윙크면 됐겠지?

     

    “치사해.”

     

    그 모습을 본 아카디아가 투덜거렸다.

     

    “디. 어째서 저에게는 보여주지 않았던 윙크를 그쪽의 용병여자한테만 보여주는 거죠?”

    “눈에 먼지가 들어가서 그래요.”

    “에잇.”

    “아앗. 하지 말아요. 갑자기 부채로 흙먼지를 일으키는 짓 그만두세요.”

    “저기. 나까지 같이 맞고 있거든?”

    “이런. 미안해요, 이사벨양.”

     

    그런 느낌의 어수선한 분위기가 이어지기를 잠시.

    강의시간이 되자 교수님이 기척을 드러냈다.

     

    “우와악!! 도, 동상이 움직였다!!”

    “조각상이 포즈를 바꿨어!”

    “조각상이 아니다. 상급반 신체단련 강의로 너희들을 가르칠 플라톤 교수다! 두 다리로 서서 이 강의를 끝마칠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다!”

     

    학생들은 충격에 빠졌다.

     

    “왜, 왜 그런 짓을 하는 거죠?”

     

    겁에 질린 아카디아의 물음에 플라톤 교수는 사납게 대답했다.

     

    “그냥. 학생들이 걸을 힘도 없이 기어서 돌아가는 모습이 재밌으니까.”

    “악마다! 악마가 틀림없어!”

     

    아카데미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손꼽히는 몸이 힘든 강의가 시작됐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메스가키 할당제와 순수악 교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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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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