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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6

       소피아는 겨울이 그린 그림을 보며 피식 웃음을 흘렸다.

       물을 싫어한다 말했음에도 자신이 연못을 헤엄치는 그림을 그리다니.

       어린아이에겐 상어라는 이미지가 너무 강했던 걸지도 몰랐다.

       

       소피아는 손가락 끝으로 제 송곳니를 눌러 보았다.

       날카롭고 뾰족한 것이 폭력적이어서 항상 싫어했는데.

       아이의 눈에는 그것이 멋있었던 건가.

       그림속의 자신은 꽤나 당당하게 이빨을 내보이고 있었다.

       

       ‘참···’

       

       겨울은 그저 가호를 섭취한 인연으로 만나게 된 아이였다.

       어떻게 보면 비즈니스적인 만남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보면 볼수록 참한 아이다.’

       

       거친 수인족조차도 경악할 만큼의 학대를 당했다고 들었는데.

       아이는 인간을 무서워하면서도 무조건 피하지는 않았다.

       힘들어도 조금씩 다가서려는 모습이 어느 용맹한 모험가처럼 보이기도 했다.

       

       ‘···네가 나보다 낫구나.’

       

       물질보다는 사람이 중요하다고 했나.

       사람에게 그리 당했으면서도.

       살갗이 찢어질 듯한 풍파 속에서도 꺾이지 않는 아이의 모습에 존경심이 들 정도였다.

       

       정말로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아이다.

       소피아는 그만 인정하기로 했다.

       겨울과는 더이상 비즈니스 관계가 아니라는 것을.

       어쩌면 겨울이 평생 만들지 않겠다는 가족이 되어 줄 지도 몰랐다.

       

       “겨울아.”

       

       “네에.”

       

       “뭐 하느냐?”

       

       “저 이거 해 보고 싶은데, 어떻게 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겨울이 직사각형의 길쭉한 기계를 내밀어 보였다.

       소피아는 그것이 텔레비전을 키는 도구임을 잘 알고 있었다.

       

       ‘리모컨이라고 했나.’

       

       무슨 물건인지 아는데, 쓰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

       바보상자 따위에 시간을 할애하지 않은 탓이었다.

       

       그리고 방법을 모르는 건 겨울도 마찬가지였다.

       전생의 리모컨과 너무나도 큰 차이가 있었으니까.

       

       “일단 아무거나 눌러 보거라.”

       

       “네에···”

       

       꾹꾹.

       겨울이 리모컨 버튼을 하나씩 눌러 보았다.

       

       이걸 눌러 보아라, 저걸 눌러 보아라.

       자그마한 기계에 둘이 달라붙어 열중하는 그때.

       지잉 거리는 소리와 함께 겨울의 귀가 쫑긋 거렸다.

       

       “켜졌다!”

       

       “해냈구나.”

       

       겨울과 소피아의 시선이 텔레비전 화면을 향했다.

       영화관에서 볼법한 거대한 크기의 텔레비전이었다.

       

       이제 막 켜진 텔레비전은 영화 채널에 고정되어 있었고.

       때마침 거대 괴수가 엑스트라를 잡아먹기 위해 입을 쩍 벌리고 있었다.

       

       “악!”

       

       “흡···!”

       

       “갹!”

       

       갑작스러운 화면에 겨울과 소피아가 몸을 튕겼다.

       곁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던 레비나스도 깡총 뛰어올랐다.

       

       

       **

       

       

       화면을 켜자마자 나온 게 괴수 영화일 줄이야.

       나는 쿵쿵 뛰는 가슴 위로 손을 올린 채, 소피아를 돌아보았다.

       

       “소피아 괜찮아요?”

       

       “···괜찮다.”

       

       정말로 괜찮으려나.

       나이가 나이인지라 너무 큰 충격을 받으면 안 될 텐데.

       걱정스러운 눈으로 그녀를 돌아보았지만, 호흡이 조금 빨라진 걸 제외하면 나빠 보이진 않았다.

       

       “갑자기 괴물이 나와서 놀랐네요.”

       

       뛰어난 수인족의 육체라서 그럴까.

       놀랐을 때의 움직임이 평범한 인간과는 너무나도 달랐다.

       

       “인간의 문명은 아직도 어렵구나.”

       

       하아.

       소피아가 한숨을 내쉬는 순간.

       

       “으갸악!”

       

       레비나스가 비명을 지르며 주방을 향해 달려갔다.

       가서 달래줘야 하나 고민했으나, 주방에는 한여름이 있었으니까.

       주방에 있는 그녀를 믿어보기로 했다.

       

       “응? 무슨 일이야?”

       

       “지, 집에 괴물이 나왔다···!”

       

       “괴물?”

       

       청각에 집중해서일까.

       멀리 떨어진 주방에서의 대화가 전부 들려왔다.

       

       ‘레비나스도 텔레비전은 처음인가.’

       

       하기는.

       처음 영화가 만들어졌을 때.

       너무 놀란 사람들이 영화관을 도망쳐 나갔다고 했을 정도니까.

       그보다도 훨씬 선명한 화질로 흉포한 괴물의 모습을 보았으니, 놀라 도망치는 게 당연했다.

       

       “괴물이 사람을 잡아먹었다! 이제 왕도 잡아먹힌다! 위험하다!”

       

       “그, 그럴 리가···?”

       

       타다다닷.

       빠른 발소리와 함께, 주방 쪽에서 한여름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크게 뜬 눈으로 나와 소피아를 둘러보더니, 텔레비전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텔레비전 속에는 거대 괴물이 사람들을 마구잡이로 잡아먹고 있는 상태였다.

       

       “아.”

       

       한여름은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입을 벌렸다.

       뭔가 어색하게 헤헤 웃어 보이기도 했다.

       

       “겨울아, 저건 화면이라 괜찮아. 괴물이 나와서 겨울이를 잡아먹을 일은 없어.”

       

       “네, 네에···”

       

       나도 아는 건데.

       뭔가 억울하다.

       소피아를 돌아보았으나 그녀는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다.

       

       “많이 놀랐어?”

       

       “아, 아뇨. 그렇게 많이는 안 놀랐어요.”

       

       “그래?”

       

       한여름의 시선이 내 등 뒤쪽의 꼬리를 향했다.

       그쯤에서 내 꼬리털이 쭈뼛 솟아올랐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나는 다급히 꼬리를 붙잡고는 허벅지 위에 올려 두었다.

       허나 이미 늦었다는 것을 모르진 않았다.

       어설프게 변명을 내뱉을 뿐이었다.

       

       “조금 놀랐어요.”

       

       “응. 겨울이가 텔레비전이 처음이었나 보구나?”

       

       “네. 처음인데 하필이면 괴물이 나왔네요.”

       

       이번 삶에선 텔레비전이 정말 처음이었으니까.

       절대로 거짓말을 한 건 아니니라 할 수 있었다.

       

       “어른인 본녀도 놀랄 정도였으니까. 애들은 더 했겠지.”

       

       “아···”

       

       애들이라니.

       조금 불만이 생겼지만, 그녀의 나이에 비한다면 나는 갓난아기나 다를 바 없었다.

       불평하지 않고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다.

       

       “수인족 아이들은 본능이 앞서는 경우가 많으니 항상 조심해야 한다.”

       

       “본능이요?”

       

       “그래, 사나운 종족이었다면 몸이 먼저 움직여 저 텔레비전이라는 걸 부쉈을 테지.”

       

       “생각도 전에 몸이 먼저 반응한다는 건가요?”

       

       “정확하다.”

       

       한여름의 질문에 소피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한여름은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하나 싶더니, 쿡쿡 웃어 보였다.

       

       “우리 애들은 놀라기만 했네요.”

       

       “사나운 애들은 아니니까.”

       

       욕을 하는 게 아니라는 건 알겠는데, 뭔가 오가는 대화가 듣기 부끄러웠다.

       나는 대화의 흐름을 바꾸기 위해 서둘러 주방을 가리켰다.

       

       “저, 저기, 주방에서 뭐 하는 거예요?”

       

       “언니 샤브샤브 만드는 중.”

       

       “샤브샤브요?”

       

       “응. 전골 같은 건데 원하는 건 아무거나 넣어 먹을 수 있다?”

       

       내가 샤브샤브가 뭔지 모른다고 생각했던 걸까?

       한여름이 이런저런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그걸 가만히 귀담아듣고 있던 레비나스가 자리에서 폴짝 뛰어올랐다.

       

       “정말로 아무거나 넣어 먹을 수 있는 거냐?”

       

       “응. 일반적으로 전골에 넣어 먹을 수 있는 거라면.”

       

       “그럼 레비나스도 이것저것 넣어 먹을래!”

       

       레비나스가 현관 밖으로 달려나갔다.

       그녀가 넣어 먹을 무언가를 구하러 갔다는 걸 모르진 않았다.

       

       “곧 점심시간인데···”

       

       “제가 찾아올게요.”

       

       “응. 그럼 부탁할게?”

       

       “네. 다녀올게요.”

       

       

       **

       

       

       여명 길드에는 한켠에는 상담실이 존재했다.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큰 직종인 만큼, 전문적인 심리 상담사가 상주하고 있었다.

       

       정유나는 상담실 의자에 앉아 제 스마트폰 화면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속에 겨울이 그렸던 그림이 찍혀 있었다.

       

       “정유나님?”

       

       “아, 네···”

       

       상담사라서 그럴까.

       태도가 부드럽고 온화하다.

       자신의 문제로 상담을 받으러 온 것도 아닌데, 벌써 마음이 풀리고 있었다.

       

       “궁금한 게 있어서 찾아오셨다고 했죠?”

       

       “네. 아이의 상태가 많이 안 좋아 보여서요. 혹시 도움 좀 받을 수 있을까요?”

       

       “음··· 혹시 아이를 직접 데리고 오는 건 불가능할까요?”

       

       “네. 아직은 많이 조심스러운 상황인지라.”

       

       “그렇군요.”

       

       톡톡.

       상담사가 노트 위에 무언가를 적어 나가기 시작했다.

       그 능수능란한 손길에 정유나의 시선이 쏠렸다.

       

       “가장 궁금한 건 아이가 무슨 감정으로 이런 그림을 그렸냐는 건데요···”

       

       정유나가 조심스레 스마트폰을 내밀어 보였다.

       피가 흘리는 사람들과 무너져 내린 도시의 모습에 상담사 움직임을 뚝 멈췄다.

       

       “아이의 나이가 어떻게 되나요?”

       

       “이제 여덟 살이에요.”

       

       “여덟··· 혹시 아이가 게임을 좋아하나요? 아니면 사람이 죽는 잔인한 영화를 보았다든가.”

       

       “어···”

       

       겨울이가 게임을 하지는 않지.

       영화를 볼 환경도 아니었고.

       정유나는 상담사를 향해 고개를 저어 주었다.

       

       “게임도 영화도 아닌데 이런 그림을 그린다···”

       

       “네. 그리고 아이가 이런 말도 했어요.”

       

       “어떤 말을요?”

       

       “자기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이렇게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정유나가 그림 속 뒤틀린 사람들을 톡톡 두드렸다.

       그 모습에 상담사는 한참 동안 제 턱만 쓰다듬었다.

       

       “이게 만약 아이의 심리를 반영한 그림이라면···”

       

       “······.”

       

       “다행스럽게도 주변 사람들을 조금씩 믿고 있는 단계이기는 해요.”

       

       “아.”

       

       역시 그런가.

       다행이다.

       정유나가 안도의 한숨을 내뱉는 그때.

       상담사의 입에서 절망적인 발언이 터져 나왔다.

       

       “물론 좋은 상황은 아니에요.”

       

       “···그런가요?”

       

       “네. 저도 상담 일을 십 년 정도 했지만, 여덟 살 아이가 이런 그림을 그리는 건 처음 봤거든요.”

       

       상담사가 스마트폰 속 그림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거리낌 없이 피를 그리거나, 사람의 신체를 비틀고 절단한 게 절대로 여덟 살 아이의 상상력으로 그릴만한 그림이 아니었다.

       

       “워낙 안 좋은 일을 많이 당한 아이거든요.”

       

       “안 좋은 일이요?”

       

       “네. 집도 없이 길에서 살고, 쓰레기를 주워 먹고, 배가 꿰뚫려 죽어가는데도 주변 어른들은 비웃기만 했어요.” 

       

       “···누가 그런 미친 짓을 했어요?”

       

       상담 중엔 절대로 욕을 해선 안 된다.

       상담사는 그런 기본적인 원칙을 깰 정도로 놀라고 말았다.

       

       아이에게 손찌검만 해도 잡혀가는 세상에서 죽어가는 아이를 비웃다니.

       별세상 이야기에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였다.

       

       “그게···”

       

       상담사의 눈을 마주한 정유나는 고개를 푹 숙이고 말았다.

       그 미친 짓을 한 인간 중 하나가 바로 자신이었으니까.

       자신의 추악함에 눈시울이 붉어질 정도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댓글 추천 또한 정말 감사합니다! 언제나 힘이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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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Was Kidnapped By The Strongest Guild

I Was Kidnapped By The Strongest Guild

최강 길드에 납치당했다
Score 8.6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When I opened my eyes, I was in a den of mons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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