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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6

       서늘한 목소리와 함께 나타난 송수아. 그녀는 묘하게 힘이 가득한 걸음으로 내게 다가왔다.

       

       척!

       

       그리고 나를 보호하듯, 가녀린 등을 보이며 이성혁을 노려보았다.

       

       “송수아. 아는 사이야?”

       

       끄덕끄덕.

       

       조용히 고개를 움직인 송수아는 먼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는 듯 말했다.

       

       “아주 오래 전에 만난 적이 있었어.”

       “……그래?”

       

       이건 제법 신선한 정보였다. 본디 원작에서 <원소술사>란 신비주의 컨셉충이라는 말이 붙을 정도로 히어로 사회에서 두문불출하는 녀석.

       

       그런데 스치듯 퇴장하는 송수아와 이성혁 사이에 모종의 연이 있었다니.

       

       ‘그것도 그냥 인연이 아니라 악연인 것 같고.’

       

       휘이이잉-!

       

       기숙사 옥상은 어느덧 소복소복 새하얀 눈이 쌓였다. 마치 지금 송수아의 기분을 증명하는 것처럼 말이다.

       

       “역시 <비를 내리는>은 애송이에 불과해. 이렇게 감정적일 줄은 몰랐군.”

       

       피식 웃음을 터뜨린 <원소술사>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마치 자신과 송수아의 악연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것 같은 광경이었다.

       

       “송수아. 도대체 무슨 사연이 있길래 이렇게까지 반응하는 건데.”

       “으응…… 옛날에, 나를 저 남자가 찾아온 적이 있었어.”

       “옛날?”

       “응! 나랑 유리가 아카데미에 막 입학했을 때. 평소처럼 학교를 마치고 귀가하는데, 저 남자가 내게 찾아와 말했어.”

       

       <비를 내리는> 송수아. 평소 상큼발랄한 성격과 그에 걸맞는 이미지를 가진 그녀는 적대감 가득한 어조로 내뱉었다.

       

       “유리와 친하게 지내지 말래. 그게 할 소리야?”

       

       ……겨우 그거 때문에? 라는 말이 목젖까지 올라왔지만,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참아냈다.

       

       ‘저 녀석은 뭔가 알고 있는 건가.’

       

       천천히 상황을 되짚으면 <원소술사>의 행보는 지극히 기이했다. 대뜸 나를 찾아온 것도 그렇고, 다른 ‘랭커’들이 이 자리에 모일 걸 예상이라도 한 것 같지 않나.

       

       더군다나 송수아와 한유리의 우정을 갈라놓으려고 들었던 과거는 어떠한가. 적어도 녀석은 ‘일성’이 꾸미는 음모를 먼 과거부터 알았다고 여기는 편이 좋았다.

       

       “이봐, <원소술사>.”

       “말해라.”

       “‘예지력’같은 거라도 있는 거냐?”

       “예지력?”

       “그래. 네가 말하는 걸 보니 그런 의문이 들었다. 네 능력은 ‘마나’를 기반으로 한 마법. 허나 미래를 아는 사람처럼 구니 의문이 들 수밖에.”

       “비슷하다. 내게는 미래를 엿볼 수 있는 수단이 있거든.”

       

       이런 미친.

       

       안그래도 마나를 기반으로 한, 현실세계의 법칙을 깡그리 무시하는 불가해한 힘 ‘마법’을 다루는 <원소술사>다. 그런데 저따위 사기적인 능력까지 가지고 있었단 말인가.

       

       “정확히 말하자면 내 본신의 능력이 아니다. ‘예언’계열 능력자와 긴밀한 사이라고 말해두는 편이 좋겠군.”

       

       짧게 말을 이은 <원소술사>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곳엔 불길한 흑색의 게이트가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게이트 너머의 괴물이 아직 준비가 덜 되었다는 것처럼.

       

       “저, 저기 미안한데…….”

       

       그런 기묘한 침묵을 깨트리는 놈이 하나 있었다.

       

       Z급 랭커이자, 이명은 <신속>. 조금 전까지는 거리의 몬스터를 신나게 사냥하던 놈이 엉거주춤 돌아와 있었다.

       

       “진지한 대화를 하는 것 같으니 나는 이만 돌아갈게.”

       

       랭커 중에서도 국가권력급이라 칭송 받는 1위와 5위가 갑작스레 나타난 덕분일까?

       

       <신속>은 더없이 비굴… 아니 정중한 말투로 읍했다. 누가 보면 같은 히어로 아카데미의 학생이 아니라 은퇴한 원로 히어로를 대하는 것 같네.

       

       “그건 힘들어.”

       “뭐? 왜?!”

       

       허나 <현상거절>은 <신속>의 퇴청을 윤허하지 아니했다.

       

       아니 이게 아니라.

       

       “이제 곧 시작될 거니까.”

       “……뭐가?”

       

       내 목소리에 최영웅은 천진난만한 얼굴로 되물었다. 정말 머리가 꽃밭인 녀석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 지금 이 상황을 보고도 그런 소리가 나온다니.

       

       슥.

       

       한심한 소리를 내뱉는 최영웅의 모습에 나는 말 없이 손가락을 들어 하늘을 가리켰다.

       

       “저기서 곧 엄청난 놈이 튀어나올 예정이거든.”

       “서, 설마 저거……?”

       

       게이트에서 잡몹들이 쏟아져 나온 것과 동시에 사냥을 시작한 최영웅은 턱을 덜덜 떨었다.

       

       그리고.

       

       “이미 도망치기 늦었어.”

       

       폴폴 풍기던 한기를 거둔 송수아 역시 굳은 얼굴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럴거면 왜 그리 경계심을 곤두세운 걸까. 설마하니 이성혁이 무언가 해코지라도 할 줄 알았던 건지.

       

       ……이건 너무 자의식 과잉인가?

       

       * * *

       

       몸이 뜨겁다.

       

       머리가 지끈거리고, 바싹 마른 입술은 이성을 잃게 만드는 것 같았다.

       

       “으으윽!”

       

       자신이 정신을 잃었던 걸까?

       

       천천히 몸을 일으키던 한유리는 전신 가득한 격통에 신음을 흘렸다.

       

       “……여기는?”

       

       어렵사리 자리에서 일어난 한유리는 자신이 환한 빛이 가득한 방에 누워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코를 간질이는 아로마 향기, 부드럽게 흐르는 클래식 음악.

       

       그래, 이곳은 그녀의 가문…… ‘일성’이 운영하는 호텔 스위트 룸이다. 일전에도 몇번이나 묵었던 기억이 있어 어렵지 않게 그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학생회 건물에 있던 자신이… 어째서 이곳에 있단 말인가?

       

       마지막 기억을 떠올린 한유리는 잘게 몸을 떨었다.

       

       믿었던 ‘일성’은 자신을 이용했다. 아니, 이용했다고 말하는 것이 옳은지도 모르겠다. 스스로도 모르게 아주 오래 전부터 그녀는 일성의 검은 계획을 적극적으로 돕던 사람이었으니.

       

       ‘그 검은 물질.’

       

       한유리는 얼마 전, 서울로 출장 갔었던 일을 떠올렸다.

       

       간만에 재회한 ‘일성’의 식구들은 그녀를 환한 미소로 맞이해주었다. 그리고 곧장 호화로운 저녁 만찬이 시작되었고, 든든한 식사 이후에는 일성의 지배자인 할아버지와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었다.

       

       그리고.

       

       할아버지는 그녀에게 한가지 부탁을 건넸다. 최근 중국에서 발생한 게이트의 조사 도중 확보한 물질. 그 물질의 창조를 부탁한 것이다.

       

       꾸욱.

       

       한유리는 한치의 의심도 없이 능력을 개방했다. 그 검은 물질이 무엇이고, 어디에 사용하는지,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알 생각도 없이 할아버지의 뜻을 이룬 것이다.

       

       그 결과가 이렇다. 믿기지 않게도 일성은 그녀를 배신했다. 계획에 동참하지 않겠다는 그녀를 철저히 굴복시킬 생각을 하고 있겠지.

       

       그나마 다행인 건 그녀가 정신을 찾았다는 것이다. 이제 능력을 사용하고, 모두에게 위험을 알리면 되는 일…….

       

       철그럭!

       

       “……아?”

       

       이제 막 정신을 찾아 경황이 없었던 한유리는 이상한 사실을 하나 간파했다.

       

       그녀의 양 팔은 새하얀 사슬에 감겨있었다. 새하얀 병실 같은 방에 어울리는 그것은 쇠로 만들어진 것이 맞기나 한지, 쇳덩이 특유의 서늘함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 이게…… 뭐야!”

       

       철그럭! 철그럭!

       

       그제야 자신이 결박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한유리는 거칠게 팔을 움직였다. 허나 그 기묘한 사슬은 끊어지거나 풀릴 생각조차 않고 있었다.

       

       무려 Z급 히어로, 랭커인 한유리가 전력을 다해 몸부림치는데도!

       

       “으읏!”

       

       왜인지 모르게 마음이 다급해진 한유리는 능력을 사용하기로 마음 먹었다.

       

       어떤 것이든 상관 없었다. 이 사슬을 끊고, 정체를 알 수 없는 기괴한 흰 밀실을 나갈수 있다면.

       

       흠칫!

       

       하지만,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아?”

       

       능력을 개방하고, <재창조>라는 이명처럼 창조의 힘을 발휘하려던 그녀의 바램은 산산히 부서졌다.

       

       “능력을…… 쓸 수 없어?”

       

       어째서인지 <재창조>는 그녀에게 대답하지 않았다. 히어로로 각성한 순간부터, 지금까지 눈을 깜빡이는 것처럼 간단히 발휘하던 힘을 쓸 수 없던 것이다.

       

       [ 우리 딸, 유리야. ]

       

       그러던 순간.

       

       믿기지 않는 목소리가 방 천장에서 울렸다. 확신할 수 없으나 천장에 스피커가 매립되어 있는 걸까? 그 목소리는 따듯하게 자신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아…… 빠.”

       

       한유리는 울분을 토해내는 것처럼, 고작 두 음절의 단어를 곱씹어 내뱉었다.

       

       한유리의 아버지이자, 일성의 황태자 한석구. 그녀가 생각하기에 자신의 억류에 가장 큰 원흉으로 짐작되는 남자.

       

       [ 미안하구나. 계획에 동참할 수 없다는 네 뜻에 이럴 수밖에 없었단다. ]

       

       한석구는 평소의 아버지처럼, 따스한 말로 한유리에게 말했다.

       

       으득!

       

       그 섬뜩한 괴리에 한유리는 이를 악물었다. 사랑한다, 언제나 행복하렴. 그런 말로 자신을 응원하던 아버지가 맞는 걸까? ……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지독한 배신감에 몸서리쳐졌다.

       

       “도대체 무슨 생각인 거죠? 제가 마신 차에 도대체 뭘 탄 거고.”

       

       잠자코 생각을 정리하던 한유리는 한석구의 의중을 떠보았다.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무언가 거대한 음모를 꾸민다는 건 그녀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무언가…… 그 음모의 명확한 실체는 아직 알 수 없었기에 한 행동이었다.

       

       [ 크크큭! ]

       

       허나 돌아온건 기괴한 웃음이었다.

       

       [ 크하하하! 크하하하하하하! ]

       

       부르르.

       

       마치 미친 사람처럼 광소를 터뜨리는 한석구. 그 소름끼치는 음성에 한유리가 몸을 떨던 때.

       

       [ 우리는 성공했어. ]

       [ 너는 곧, 신인류의 여왕이 될 수 있을 거란다. 우리 딸. ]

       

       여왕?

       

       섬뜩한 그 단어가 한유리의 가슴에 비수가 되어 꽂혔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방문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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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 Hiding My Power at Hero Acade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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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tus: Ongoing Author:
Hero. Everyone admires them as they wield supernatural powers that defy the laws of physics. The ability I possess is to 'reject' those pow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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