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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6

       아니지.

        

       아니지아니지아니지.

        

       이러면 쿨뷰티 컨셉은?

       

       여기서 진실에 대해서 당장 다 불어버릴 생각은 없다. 하지만 내가 진실에 대해서 알고 있다는 사실을 말한 이상, 아주 조금이라도, 그러니까 내가 사실에 대해서 알고 있을 수밖에 없는 분위기를 조금이라도 만들어내야 미아 크로우필드가 납득하고 넘어갈 수 있을 거다.

        

       ‘이럴 때 무슨 표정을 지으면 되는지 모르겠습니다’는 어떻게 되는 거지?

        

       나는 그 짧은 시간 동안 맹렬하게 머리를 굴렸다.

        

       역시 시간을 돌리는 편이 나을까? 한 2주 정도 그냥 돌려서 다시 시작해?

        

       그런데 그러면 그 2주 동안 내가 다시 컨셉을 유지하며 지내는 것이 가능할까?

        

       차선책은 있을까? 나는 열심히 머릿속을 굴리며 ‘쿨뷰티’의 이미지를 깨 먹지 않으며 지금 이 상황을 벗어날 방법을 모색해보았다.

        

       그리고,

        

       “또한, 당신이 보았던 그 모습들은……연습, 입니다.”

        

       되지도 않는 말을 내뱉고 말았다.

       

       어떻게든 말을 돌려서 관심을 돌릴 생각이었는데, 문자 그대로 헛소리를 하고 말았다.

        

       ……아니, 아무리 할 말이 없어도 연습이라니? 그것도 표정 연습도 아니고 하품이나 코훌쩍이는 연습이라니, 듣는 사람도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할만한 이야기였다.

        

       아무리 상대가 조금 맹한 구석이 있는 미아 크로우필드라고 해도—

        

       “……연, 습?”

        

       ……아닌가?

        

       내 뒤를 미행할 정도로 나름대로 철두철미한 성격이긴 했다. 그냥 미행한 것도 아니고, 아마 여러모로 신경을 쓰고 준비한 뒤에 내 뒤를 밟았을 것이다. 침대 밑에 이런 준비를 해두었던 것을 보면 더 그렇게 생각되기도 했고.

        

       하지만, 그럼에도 상대는 미아 크로우필드.

        

       어렸을 때부터 주변에 친구 없이, 자기 엄마한테 황제에 대한 증오를 주입받으며 자란 애였다.

        

       어떤 의미에서는 원작의 클레어와 비슷하게 자라난 아이이기도 했다. 물론 그 결과물은 달랐지만.

        

       나름대로 계획도 세울 줄 알고, 무려 황제를 적대한다는 점에서 자기 자신을 숨길 줄도 알고 마법 실력도 출중하지만, 사람과 관계를 맺는 데는 여러모로 어색하다는 말이다.

        

       “그렇습니다. 연습입니다.”

        

       게임에서 나오는 미아 크로우필드의 인물 카드를 떠올린 나는 한 번 이대로 밀어붙여 보기로 했다. 어차피 정 안되면 다시 시간을 돌려 이야기를 처음부터 시작해도 될 일이니까.

        

       그래, 지금 당장 유리한 쪽은 내 쪽이다. 적어도 미아 크로우필드의 손에 지팡이가 들려있지는 않았으니까.

        

       “저는…….”

        

       나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아마 그것만으로도 내 표정에는 큰 변화가 생길 것이다. 평소에는 그조차 거의 하지 않는 무표정이었으니까. 이런 표정을 본 사람이 있다면 아마 제이든이나 루카스 둘 중 하나일 거다. 아니면 둘 다거나.

        

       “저는,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을 잘 모릅니다.”

        

       나는 입에 침도 바르지 않고 사기를 쳤다.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긴 개뿔, 방 안에서 침대를 뒹굴거나 달달한 걸 먹으며 칠칠치 못한 표정을 짓거나 했으니 오히려 나는 엄청나게 감정적인 인간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시간을 돌려서 없던 것으로 만들긴 했지만.

        

       어떻게든 남들 앞에서는 무표정, 무감정한 인간을 연기하려고 했지만…… 아카데미에 다니기 시작하며 여러모로 많이 풀어져 버린 모양이다. 이렇게 대놓고 들키기까지 했으니까.

        

       “하, 하지만 내가 본 그 모습은—”

        

       “연습입니다.”

        

       나는 얼굴에 철판을 깔았다.

        

       솔직히 진짜로 속아줄지는 모르겠다. 그저 내가 게임 속에서 보았던 미아 크로우필드의 그 모습을 믿고 하는 말일 뿐이다.

        

       “갑작스럽게 제가 얼굴에 표정을 드러내 보이면 주변 사람들이 당황하게 될 테니까요.”

        

       실제로도 당황했다. 앨리스야 내 표정을 읽어내고 있긴 했지만, 그렇다고 내가 대놓고 실실 웃는 표정을 보였던 것도 아니었다. 지난번에 파르페를 먹으며 보였던 표정에 다른 사람들이 엄청나게 당황했던 것을 보면 더 그렇다.

        

       “꾸벅꾸벅 졸았던 게…… 연습……?”

        

       미아 크로우필드가 멍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젠장, 그게 있었네.

        

       꾸벅꾸벅 조는 모습이나 하품하는 모습을 굳이 연습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다. 차라리 웃는 얼굴이나 우는 얼굴을 연습한다면 또 모를까.

        

       문제는, 내가 이미 그렇게 밀고 나가기로 생각하고 얼굴에 철판을 깔았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사실 지금 나에게는 이런 말 외에는 시간을 돌리는 것 말고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시간을 돌리지 않기 위해서 얼굴에 철판을 깔고 있는 거고.

        

       “……저의 연습에는 단순히 표정만 포함되는 것이 아닙니다.”

        

       “…….”

        

       일단 미아 크로우필드가 나의 말을 경청하는 것 같은 분위기라, 나는 계속해서 천천히 말을 이어 나갔다.

        

       “표정만 바뀐다고 사람이 사람답게 보이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제가 웃는 표정을 짓는다고 가정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눈을 최대한 그대로 둔 채 입술 양 끝만 살짝 끌어올렸다. 미아는 나의 표정을 보고 어깨를 흠칫 떨었다.

        

       “어떻습니까? 자연스럽게 보이는지요.”

        

       “……아뇨, 전혀 그렇게 안 보이는데요.”

        

       미아 크로우필드는 소름 끼친다는 듯 뒤로 두 발자국 정도 물러서다가 문에 등이 닿아 어깨를 흠칫 떨며 놀랐다.

        

       그렇다면 다행이었다. 일부러 최대한 어색해 보이도록 지은 표정이었으니까. 그저 어색해 보이는 것뿐만이 아니라, 입은 웃고 있는데 눈은 웃지 않는 소름이 끼치는 표정이라면 더 좋다. 그래야 최대한 ‘어색하다’는 분위기를 확실하게 전달할 수 있을 테니까.

        

       ……좋아, 혹시라도 써먹을 일 있으면 이 표정을 다른 사람한테 똑같이 써먹도록 하자.

        

       “표정은 얼굴의 여러 부위가 제대로 움직여야 지을 수 있는 것입니다. 웃는 얼굴에는 입 모양 뿐만이 아니라 눈의 모양도 중요합니다. 그리고 단순히 웃는 얼굴 하나뿐만이 아니라 미소 짓는 얼굴이나 폭소하는 얼굴이 다른 법입니다. 특히 폭소하는 얼굴에는 소리도 중요하죠. 연습하던 것이 있는데, 지금 보여드릴까요?”

        

       “아, 아뇨, 그러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은데요…….”

        

       미아 크로우필드는 소름 끼친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

        

       음, 의도하긴 했는데 저런 표정으로 바라보면 또 조금 슬픈데.

        

       미아 크로우필드는 이런 게임에 나오는 여자 캐릭터답게도 매우 미소녀였으니까. 실제로도 그 묘하게 어벙한 성격이 우울한 배경 스토리와 겹쳐 갭을 만든 덕분에 꽤 인기 있는 캐릭터이기도 했다.

        

       “……표정의 난이도는 이렇게 어렵습니다. 그러니, 저는 그보다는 다소 단순한 ‘행동’을 먼저 익히기로 한 것입니다. 의자에 앉아 꾸벅꾸벅 조는 모습이나, 하품 같은 것은 굳이 표정을 바꾸지 않아도 어떻게든 따라 할 수 있는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

        

       여전히 의혹이 완전히 가시지 않은 것 같아 보였지만, 그래도 내가 한 마디 한 마디 말도 안 되는 설정을 늘어놓을 때마다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좁혀지던 미간은 이제 보이지 않았다.

        

       “보통 사람이라면 그 시간에 보일법한 모습을 똑같이 보이도록 연습하고 있었습니다. 당신이 본 저의 모습은 그때의 모습이겠죠.”

        

       아제르나 전기의 설정은 아니었지만, 다른 만화에서 본 적 있는 설정이기도 했다. 평소에 다른 사람들처럼 똑같이 행동하던 로봇의 행동이, 사실은 학습된 모습을 따라 하고 있었을 뿐이라는 것. 주인공은 그 로봇의 행동을 보고 절망하고…… 하드 SF 애니메이션이었는데, 보고 있으니 점점 우울해져서 끝까지 다 보지는 않았다.

        

       “…….”

        

       미아 크로우필드는 나를 한동안 가만히 보았다.

        

       그리고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를 믿어줄까?

        

       사실 믿어주지 않아도 이상하지는 않다. 애초에 나는 미아 크로우필드 기준으로 봤을 때 절대로 믿어줄 만한 상대가 아니었으니까. 자기 아버지를 죽인 사람을 온전히 믿어줄 사람이 있다면 그쪽이 오히려 더 이상하리라.

        

       하지만, 반대로…… 믿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도 하다.

        

       미아 크로우필드는 나의 그 모습을 보고 몹시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었다. 피도 눈물도 없는 살인마여야 하는 내가 다른 보통 사람들과 똑같이 감정을 가지고 있는 존재라고 생각하겠다고 한다면…… 그것도 대단히 아량이 넓은 행동이다. 2차세계대전 당시 연합군이었던 사람이 나치를 보고 ‘이들도 인간이다’라고 생각하는 것과 다름없으니까.

        

       ……나는 당시에 미아 크로우필드의 아버지를 보고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을 정도로 감정이 격해져 있었으니까. 미아 크로우필드도 나와 동일한 감정을 느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

        

       그런데 그런 와중에 상대가 ‘그건 사실 나의 인간적인 모습이 아니라 위장된 모습이다’라는 것을 밝힌다면, 오히려 이쪽을 더 믿고 싶어 하지 않을까?

        

       “…….”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한 채 굳어져 있는 미아 크로우필드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내 오른손을 내밀었다.

        

       제자리에서 펄쩍 뛸 정도로 깜짝 놀란 미아 크로우필드는 나의 손을 보더니 입을 살짝 벌렸다.

        

       나는 손에 쥐고 있던 권총을 미아 크로우필드 쪽으로 건네고 있었다. 그것도 총구가 미아 크로우필드를 향하는 것이 아니라, 손잡이가 향하도록 해서.

        

       만약 그녀가 이 권총을 그대로 받으면 나를 바로 쏴버릴 수 있도록.

        

       ……뭐, 그렇다고 내 머리를 한 번에 날려버릴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다.

        

       미아 크로우필드가 결국 클레어를 죽이지 못했던 건, 그 천성이 사람을 죽이기에는 적합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몹시 소심하고, 친구 없이 자란 미아 크로우필드는 사실 내면에서부터 자기와 친하게 지내줄 사람을 원하고 있었으니까.

        

       클레어는 주변 사람들에게 여러모로 틱틱거리기는 했고, 말하는 것마다 비꼬아대는 성격이긴 했지만…… 지금의 클레어를 보면 알 수 있듯, 그건 그런 상황에서 자라며 성격이 망가져서 그랬을 뿐, 사실 본성 자체는 그렇게 나쁜 아이가 아니었다.

        

       그렇기에 ‘자기 때문에 아버지를 잃은’ 미아 크로우필드를 어느 정도 동정하고 있었고, 그 감정이 행동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미아 크로우필드가 자기 아버지를 죽인 원수를 알았을 때 쯤에는 이미 클레어와 너무 매우 친해져 있었다. 심지어 클레어도 ‘좋아, 네가 그렇다면 나를 공격해보던가’라는 대사를 하기도 했고. 당시에는 비꼬는 것처럼 들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지만, 실제로는 진심이기도 했다.

        

       하지만 미아 크로우필드는 결국 클레어를 죽이지 못했다.

        

       내가 권총을 건네는 것은 그런 상황을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미아 크로우필드에게는 정황 증거까지는 있어도 확실한 물증도 없고, 나라는 확신조차 제대로 가지지 못하고 있다.

        

       이걸 받는다고 나를 쏘지는 않을 거다.

        

       ……뭐, 쏜다고 해도 즉사만 아니라면 시간을 돌릴 수 있었고.

        

       미아 크로우필드는 떨리는 손으로 권총을 받았다.

        

       그리고 멍하니 나를 보았다.

        

       “만약 지금 저를 죽여야겠다는 확신이 있다면 저를 쏘십시오.”

        

       “…….”

        

       미아 크로우필드는 그저 입만 뻐끔거릴 뿐이었다. 대답이 돌아오지는 못했다.

        

       “언젠가, 당신도 그 상황에 대한 진실을 모두 알게 될 날이 오겠죠. 만약 그 상황에서도 저를 죽여야겠다고 생각하신다면, 좋습니다. 저를 쏘더라도 저는 그 총알을 피하지 않겠습니다.”

        

       “……그냥…… 그냥, 지금 알려줄 수는 없는 건가요……?”

        

       “지금 당장은 안 됩니다. 당신은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 않습니다.”

        

       “…….”

        

       나의 대답에 미아 크로우필드는 입술을 깨물었다.

        

       “혹시라도, 당신이 받아들일 준비가 다 되었는데도 진실을 깨닫지 못한다면, 그때는 제가 직접 알려드리도록 하죠. 그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

        

       미아 크로우필드가 고개를 푹 숙였다.

        

       나는 천천히 걸어서, 조심스럽게 그 옆을 지났다.

        

       다행히 문 앞에 가서 등짝에 총알이 박힌다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휴.

        

       “……아, 그리고.”

        

       나는 고개를 살짝 돌리고 말했다.

        

       “연습에 대한 일은 다른 분들께는 ‘비밀’로 해주셨으면 합니다. 아직 ‘완성’된 연기는 아니니까요.”

        

       “……네, 그렇게 할게요.”

        

       힘없는 대답을 들은 뒤, 나는 다시 고개를 앞으로 돌렸다.

        

       그리고 문을 열고 나왔다.

        

       심장이 세게 뛰고 있었다.

        

       솔직히 환호성이라도 지르고 싶기는 했지만—

        

       —이번에도 들킬 수는 없지.

        

       나는 평소와 똑같은 걸음걸이를 유지하려 노력하면서, 내 방을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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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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