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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6

    눈을 뜨자 보이는 익숙한 자색 눈동자.

    루크는 그 눈동자의 주인이 누구고, 어째서 여기에 있는가 생각하자, 금방 얼굴이 부끄러움으로 열이 오르는걸 느낀다.

    루크는 한탄하듯 중얼거리며 이불을 뒤집어쓴다.

    그렇게하면 당장 시선을 피할 수 있으니까.

    “……결국, 그대를 부르고야 말았군…….”

    ‘원치않는 꾀병으로 보호자까지 부른다니, 이 무슨 민폐란 말인가.’

    이불을 머리까지 뒤집어써서 뾰족한 삼각형의 동물귀만 이불 밖으로 드러나는 모습에, 예르나는 피식, 웃어버렸다.

    “몸은 좀 괜찮아?”

    “처음부터 괜찮았다. 그런데, 어째서 여기에 있는게지? 사냥주간이라 바쁘다고하지 않았더냐……?”

    “뭐. 바빴었지, 이제 돌아갈까?”

    “돌아가다니?”

    루크가 멍하니 묻자, 예르나가 대답했다.

    “학교 진작에 끝났어, 루. 지금은 오후 8시야.”

    “뭐라……?”

    도대체 자신이 얼마나 잤길래?

    평소라면 분명 중간에 깨었을텐데, 이번엔 왜?

    침대가 너무 폭신한 탓인가? 아니면 주변이 너무 조용했던 탓? 그것도 아니면, 실제로 피로가 쌓인 상태였나?

    루크는 혼란스러웠으나,

    -꼬르르륵…….

    배꼽의 시계는 완벽하게 작동했다.

    예르나는 그 소리에 피식, 웃으며 말했다.

    “루크, 오늘은 밥 먹고 들어갈까.”

    “그……러지.”

    ——– 

    “…….”

    예르나는 아까전, 보건교사가 전해주었던 루크의 혼잣말들을 떠올렸다.

    제가 들으려고 한건 아니지만요, 라고 하면서.

    그녀는 학생들의 심리상담도 겸했다.

    따라서, 루크가 중얼거린 말들은 그냥 지나치기엔 그 내용이 너무나 신경쓰여, 작은 메모지에 루크가 잠결에 중얼거린 말들을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옮겨두었다고 한다.

    그때는 별일 아니라고, 루크가 보는 책에 나오는 내용이라고 대충 넘기기는 했지만…….

    예르나는 루크가 볼 수 없는 각도로 살짝 몸을 돌려서 메모지를 펼쳤다.

    그러자 보이는 글자들.

    ‘그립군, 그대같은 실험체는 흔치 않았지.’

    실험체라……. 혹시 같은 처지인 아이가 있었던건가.

    그야 그렇겠지. 목적을 갖고 인체실험을 했을텐데, 그 피해자가 단 한명일거란 예측은 너무 낙관적인 일이다.

    ‘하아,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좋을텐데.’

    후회, 어쩌면 당연한 반응일지도.

    실험을 당하기전으로 돌아가고싶다는 소망임이 분명하다.

    ‘그때 내가 더 완벽했다면, 그대가 그렇게 죽을 필요는 없었겠지.’

    가엾게도.

    루크는 같은 처지였던 아이의 죽음이 자신의 탓이라 생각하고 있는듯 했다. 어쩌면, 예전에 다이튼의 집에서 떠올렸던 그 아이일까.

    그때의 루크는 분명 웃었지만, 사실은 속에서 크게 곪아 씻을 수 없는 상처로 남은것이 분명하다.

    사람은 아플때 가장 감정적으로 되니까.

    “예르나? 뭘 그렇게 보고 있는게지?”

    “아, 아니야. 아무것도!”

    예르나는 루크의 질문에 화들짝 놀라서 메모지를 주머니에 쑤셔넣었다.

    그 모습이 루크는 꽤 이상하게 보였지만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본인이 아무것도 아니라는데 구태여 물어볼 이유는 없기에.

    루크는 그런생각을 할 시간에, 눈앞에 차려진 요리에 조금 더 집중하기로 했다.

    김이 모락모락나는 튀긴 고기요리.

    보기만해도 바삭한 식감이 전해져오는 것 같아 침이 꼴깍, 넘어간다.

    루크는 나이프를 손에 쥐고, 조심스럽게 가른다.

    그 안에는 잘 익힌 돼지고기와 치즈가 들어가있었는데,

    치즈는 마치 흘러내리듯 속에서 빠져나와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

    적당한 크기로 그것을 잘라 후우, 후우, 하고 식힌다. 얼마나 식혀야 뜨겁지 않을까. 이 몸이 되면서 뜨거운것은 잘 먹지 못하는데 말이다.

    최대한 식히는게 제일이겠지만…….

    그러기에는 음식의 자태가 너무나도 고혹적이다.

    결국 루크의 인내심은 금세 바닥났다.

    덜 식힌 조각을 소스에 푸욱 담그고 입안에 머금자, ‘파삭!’하고 부서지는 튀김옷 안에, 쫄깃하게 씹혀오는 치즈가 느껴졌다.

    ‘정말 맛있어…….’

    정녕 이 시대의 사람들은 모두 이런걸 먹고 산단 말인가!

    대체 튀긴 고기에 치즈를 넣을 생각은 어떻게 한걸까?

    가장 먼저 이 요리를 고안해낸 사람은 천재가 분명하다.

    어떻게 매번 새로운 요리를 발견할때마다 새로운 즐거움이 생겨나는겐지!

    이미 뜨겁다는건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꿀꺽.

    요리에서 나온 기름이 식도를 미끄럽게 하는걸까.

    눈 깜짝할새에 입안의 고기가 온전히 삼켜지고말았다.

    “후아…….”

    식사로 쾌감을 느껴본게 얼마만인지.

    이런 풍성한 식감이라니, 이것은 생애 최고의 요리다.

    루크가 얼굴에 너무나 환한 미소를 머금는것을 바라보며, 예르나는 씨익 웃었다.

    “그렇게 맛있니?”

    “아주 훌륭해……! 이, 이 음식의 이름이 뭐라고 했었지?”

    “치즈돈가스야.”

    “호오, 치즈 돈가스……! 정말로 맛있구나!”

    루크는 싱글벙글 웃다가 문득, 예르나의 테이블을 보았다.

    아무것도 없다.

    고기를 먹지 못하는 예르나가 이 식당에서 먹을만한 메뉴는 기껏해야 양배추 샐러드뿐이었는데, 그것마저 시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헌데, 예르나. 그대는 먹지 않아도 괜찮은가?”

    “나는 신경쓰지 마. 이미 먹고 왔으니까.”

    거짓말이다.

    그냥 입맛이 없을 뿐이니까.

    예르나는 루크에게 미안함이 불쑥 솟는다.

    이렇게 먹는걸 좋아하는 아이한테, 그동안 통조림같은거나 줬다니, 하는 생각이었다.

    “미안해. 내가 그동안 먹을것도 제대로 못 준거같네.”

    루크는 크게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 않다네, 예르나. 그대가 사준 통조림은 정말로 맛있었으니까. 사실은……. 그대 몰래 몇개 꺼내먹기도 했을정도로 좋아한다네.”

    예르나는 루크가 밤중에 몰래 서랍을 뒤적거려 통조림을 까먹는것을 상상했다.

    그거 참 귀여웠겠네.

    예르나는 슬며시 웃었다.

    “그러니?”

    “그래. 그대도 참, 그동안 겨우 그런 생각으로 그렇게 심각한 표정을 하고 있던겐가? 그런걸로 미안해할 거 전혀 없다네.”

    “아, 그래. 그렇지.”

    겨우 그런일로 표정이 굳어진건 아니지만…….

    일부러 루크에게 떠들만한 내용은 아니니 조용히 입을 다문다.

    지금은 그저 웃음이면 될테니까.

    “얼른 먹으렴. 식으면 맛 없으니까.”

    사실은 먹어본적 없어서 이런 류의 음식에 대해서 잘 몰라 식으면 정말 맛이 없어지는 지는 잘 모르겠지만, 듣기로는 그렇다고 하더라.

    ———

    예르나는 한번의 전투를 끝낸 후 다프네와 의견을 일치시켰다.

    루크의 배후엔 ‘분명히’ 뭔가 있다고.

    그 결과, ‘증인보호프로그램’을 신청할 필요가 있다는 결론이 나왔다.

    루크는 실험탓인지 트라우마 탓인지, 기억이 온전하지 않으므로 직접적인 증인은 아니지만…….

    적어도 신분을 인간이 아닌종족으로 등록할수는 없지 않겠는가.

    검사결과를 받아본 담당심사관 레이첼도 경악했을 정도다.

    단순한 수인화시술의 흔적인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으니까.

    덕분에 루크의 공식적인 신분은 이제 ‘수인혼혈’이다.

    또, 언제든 말만하면 모든 흔적을 지운채 완전히 새로운 곳에서 생활할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되면 임시보호자인 예르나와는 떨어져야할지 모르지만.

    “루, 혹시 나중에라도…….”

    식사를 마치고 배를 문지르고있던 루크는 예르나의 갑작스런 부름에 문득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그녀의 표정은 이루 말로할 수 없을정도로 무거웠다.

    “……할말이 있다면 꼭 말해줘, 언니는 언제나 네 편이니까.”

    예르나는 그렇게 말하곤 힘겹게 웃어보였다.

    걱정? 후회? 연민? 온갖 감정이 범벅된 웃음이었다.

    “그래……? 그거 고맙구나.”

    예르나가 대체 왜 그러는지 모르는 루크는, 갑자기 왜 그런 반응인지 곰곰히 생각해봤다.

    ‘내가 무슨 할 말이 있는것처럼 보였던것인가……?’

    그러고보니, 아까부터 계속 속이 더부룩하긴 했다.

    그렇게 기름진것을 너무 과하게 먹어서겠지.

    아이의 위장은 너무 작은것이 아닌가 싶다.

    진짜 잘못하면 넘어올지도 모를 정도.

    ‘내가 그렇게 힘들어보였던겐가. 정말 부끄럽군…….’

    과식으로 힘들어하는걸 들킨것이 굉장히 부끄러워져서, 루크는 예르나의 시선을 피했다.

    부끄러움에 식은땀마저 흐를 정도다.

    그렇게 이마를 타고 흐른 땀이 눈가에 들어갔는지, 눈가도 따가웠다.

    스윽스윽, 눈가를 비비고나니, 예르나가 자신을 더욱 안쓰러운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예르나……?”

    “응?”

    루크가 나를 대체 왜 그렇게 보는겐가, 라고 말하려는 순간.

    ‘우욱.’

    과식의 대가가 기어이 찾아오고야 말았다.

    ‘이거 참 미치겠군, 앞으로는 과식은 절대 하지 말아야겠어.’

    “……잠시, 화장실 좀…….”

    “어……? 그, 그래. 다녀와.”

    루크는 새하얗게 질린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뛰어간다.

    한편, 루크의 새하얗게 질린 표정을 본 예르나는 자신의 말실수에 자신의 입이 방정이라며 머리를 테이블에 박았다.

    ‘그치만 아까 그거, 분명 뭔가 할말이 있어보였어.’

    하지만 직전에 멈칫하고는 도망쳐버렸다.

    너무 경솔했다.

    아직 어린아이인데, 그런 말을 했다고 바로 속마음을 털어놓기는 당연히 힘들텐데.

    루의 도움이 되고싶었는데, 언제나 이런식이지.

    “……이번엔 진짜 잘 해보고 싶었는데…….”

    이번엔 그때랑 달랐으면 했다.

    루크는 그렇게 되지 않았으면 한다.

    ‘화장실에서 루는 분명 울고있겠지.’

    예르나는 테이블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래.”

    지금은 어른이 가서 달래줘야할 때다.

    혼자서 울고있을 루크를 떠올리며 화장실에 들어간 예르나는, 경악했다.

    ‘루가 없어.’

    잠겨있는 칸도 없다. 

    완전히 사라진것이다, 루크가!

    “루? 대체 어디있어?”

    설마, 도망친걸까?

    내가 그런말을 해서?

    내가 루에게 부담감을 지워버린건가?

    예르나는 타닥, 밖으로 뛰쳐나갔다.

    쏴아아아……. 

    아직 비가 내리는 밤, 아이가 대체 우산도 없이 어디로 사라진걸까.

    무조건 찾아야한다.

    ———

    “후아, 이제야 좀 살겠구나.”

    루크는 한결 가벼워진 위장이 꽤 만족스러웠다.

    헌데, 처음에 우물로만 생각했던 이것이 변기였다니.

    쓸때마다 참 이상한 기분이라 얼굴이 붉어지고만다.

    수도꼭지를 들어올려 손을 씻고있자니, 들어오던 한 남자가 화들짝 놀라며 밖으로 나갔다가, 잠시후 다시 들어오면서 외쳤다.

    “임마! 넌 여기로 오면 안되지, 여긴 남자화장실이잖아!”

    음, 이 시대엔 화장실도 남과 여를 나눠두었단 말인가?

    문 앞에 무슨 이상한 문양같은게 남자와 여자를 가리키는 것이었던 모양이다.

    “이런, 실수했군. 정말 미안하다.”

    거듭 사과하며 자리로 돌아와보니, 예르나는 자리에 없었다.

    ‘휴대폰과 짐은 다 두고간것을 보면……. 그녀도 화장실에 간건가. 뭐, 기다리면 오겠지.’

    대수롭지않게 생각한 루크는 자리에 앉아 기다렸다.

    째깍째깍.

    하지만 가게가 문을 닫아야 할 시간까지, 예르나는 돌아오지 않았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예르나 어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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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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