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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6

     

    파티장의 상층 귀빈실.

     

    카밀라는 커튼 틈새로 무도회장에서 춤추는 귀족들을 내려다보았다.

     

    검은 눈동자에는 한껏 경멸을 담았다.

     

    “여기 계셨군요, 황비님.”

     

    친근하지만 경박한 목소리로 그녀를 부르며, 게오르크 2황자가 호위기사들과 함께 귀빈실로 들어왔다.

     

    카밀라는 반갑게 그를 맞았다.

     

    “게오르크, 협상이 끝나셨나 보군요.”

     

    “작년 아비의 타계 전까지 평범한 영애였던 아가씨가 제대로 가주 역할을 하겠습니까. 그 백작가의 채굴권은 토진궁 차지입니다.”

     

    “역시 유능하군요. 차기 황제에 걸맞은 승계권자는 게오르크, 당신뿐임이 틀림없어요. 점점 더 확신이 드는군요.”

     

    “음, 황비님이 미리 준비해주신 덕에 작업 치기 쉬웠습니다.”

     

    게오르크가 자리에 앉으며 와인잔을 손에 들었다.

     

    “황비님도 참 인맥이 넓으시단 말이지요. 광산 근처에서 마물 폭주 사건이 발생한 덕에 백작가가 먼저 제 바짓가랑이를 붙잡아오지 않았습니까. 어떻게 하셨습니까?”

     

    “후후, 제 마법을 이해할 수 있겠어요?”

     

    “하하, 주제넘는 일이겠지요. 황비님은 분명 분신 마법의 유일한 구사자셨죠?”

     

    분신 마법.

     

    마법사 본인과 완전히 동일한 개체를 현현하는 마법이다.

     

    모습만이라면 환상 마법으로도 재현하여 눈을 현혹할 수 있다.

     

    카밀라의 분신은 완벽한 복제를 만들어내는 점에서 초월적이며 유일한 마법이었다.

     

    분신 역시 카밀라와 동일한 마법을 쓸 수 있고, 지식을 습득하며 경험을 축적한다.

     

    다시 하나로 합쳐졌을 때는 그만큼 발전해있다.

     

    “궁에서 쓰시는 건 한 번도 못 봤군요. 어려운 마법인가요?”

     

    “어렵지요. 이제는 제자들도 있고, 쓸 필요가 없어서요.”

     

    “제자분들 덕분에 토진궁 체면도 살았지요. 궁정마법사는 귀하지 않습니까.”

     

    “제가 궁에 들어올 때는 더 귀했어요. 폐하께서 황실에 마법사를 적극 기용하신 건 제 간언 덕이었지요. 텔레포트 게이트 덕에 제국의 발이 얼마나 빨라졌나요.”

     

    “그런 훌륭한 대마법사를 월광궁 같이 촌스러운 곳에 모셨다니, 폐하도 너무하시네요.”

     

    카밀라가 잠깐 콧잔등을 찡그렸다.

     

    “하하, 화내지 마세요. 저는 폐하와 달리 마법에 매우 호의적입니다. 쓸 수 있는 병사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지 않겠습니까.”

     

    게오르크가 호쾌하게 웃었다.

     

    “제가 황제가 되면 황비님 의견대로 마법사 부대도 기사단만큼 육성할 테니까요. 폐하께서 왜 마법을 경계하시는지 모르겠단 말이죠.”

     

    “미지의 힘처럼 보이셨던 모양이에요. 아셀라를 얻을 때까지만 해도 정복전쟁을 계속하실 생각이기도 했고요.”

     

    카밀라가 황실에서 밀려난 이유는 그것이었다. 전쟁을 멈추고 마법을 통제하기로 한 황제의 방침에 따라서였다.

     

    “황비님은 마법을 널리 퍼트리고 싶다고 하셨던가요.”

     

    “맞아요. 게오르크, 그대의 방침은 제 이상과 아주 적합하지요.”

     

    “아셀라가 말을 안 듣는 말괄량이로 커버려서 속상하시겠습니다?”

     

    “아셀라.”

     

    카밀라가 눈썹을 파르르 떨었다.

     

    입을 다문 채 코로 심호흡을 하며 아셀라에 대해 생각한 카밀라는 차가운 분노를 혀 위에 담았다.

     

    “말했지요, 게오르크. 마법사 군대가 쓸 마법을 만들기 위해선 대마녀의 혼이 필요합니다.”

     

    “아셀라를 언젠가 굴복시키면 그만인 일 아닙니까?”

     

    “시간이 부족해요. 아셀라가 그것을 완전히 통제하게 되면 영영 되찾을 수 없어요.”

     

    “그럼 어떻게 하시게요?”

     

    “간단한 방법이 있답니다.”

     

    게오르크는 카밀라의 침묵에서 숨은 의미를 깨닫고 헛웃음을 흘렸다.

     

    역시 마법사들은 마법에 대한 집착이 비정상적으로 강하다.

     

    아무리 그래도 최후의 수단이겠지. 자기 배를 갈라 낳은 혈육이지 않나.

     

    그리 생각한 게오르크가 농담하듯 물었다.

     

    “어떻게, 암살 일정이라도 잡으셨습니까?”

     

    카밀라는 기괴하게 한쪽 입꼬리만을 치켜들었다.

     

     

     

    ***

     

     

     

    “꺄아아악―!!”

    “무슨 일인가?!”

    “공작 각하께서 쓰러지셨어요!”

     

    음악이 흐르던 파티장은 순식간에 아비규환으로 변했다.

     

    지금까지 경계태세만 유지하던 호위기사들은 검을 빼들고 각자 자신의 주군을 둘러싸 보호한다.

     

    “선생님!”

     

    여태 그림자처럼 한 발짝 떨어져 있던 타냐가 즉시 내게 달려왔다. 아셀라의 호위기사 셋도 함께다.

     

    “황녀님을 먼저 보호해!”

     

    “예!”

     

    아셀라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가슴이 급하게 들썩이는 게 호흡이 가파르다.

     

    주치의로서 아셀라를 살펴야 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지금 쓰러져서 바닥을 구르는 서부 대공은 제국에 공을 세운 귀인이자 아셀라가 처음 정치적 아군으로 포섭한 인물이다.

     

    그가 죽으면 큰 문제가 된다.

     

    ‘과호흡, 근육경련. 신경작용제 중독 현상과 똑같아.’

     

    진단 스킬이 알려준 대로다.

     

    말하자면 살충제를 통째로 삼킨 것이나 다름없다.

     

    ‘흑마술로 만든 독주다.’

     

    [맹독함정] 배드엔딩 확률이 증가했었다.

     

    아셀라가 흑마술사들을 시켜 푼 독에 세상이 멸망했던 엔딩이다.

     

    “공작 각하!”

     

    공작의 호위기사들이 철그럭거리며 급히 달려왔다.

     

    “치유사! 치유사는 없나!”

    “이미 호출했습니다!”

     

    그들은 바닥에서 꿈틀거리는 공작을 보고는 새하얗게 질려버렸다.

     

    “흑마술이다! 1분 안에 목숨을 앗아가는 괴사 주술이 분명해! 치유사 도착까지 얼마나 걸리나?!”

    “저, 적어도 3분 이상은…!”

    “이럴 수가!”

     

    기사들이 땀을 뻘뻘 흘렸다. 주변 귀족들도 입을 틀어막고 경악한다.

     

    “맙소사, 오늘 같은 경사에 어째서 이런 일이…!”

    “흑마술사가 어떻게 황궁으로 들어왔지?”

    “빨리 피해야 해요!”

     

    파티장은 브레이크가 풀린 트럭처럼 집단패닉으로 직진한다.

     

    나는 환자에 집중했다.

     

    가스성이면 몰라도 이 증상은 효과적으로 치료할 수 있다.

    양복 안쪽에 넣어놓은 두 개의 주사기.

    해독제다.

     

    “잠깐, 지금 무슨 짓이십니까? 공작 각하께서 떨어져 주십시오!”

     

    내가 쪼그려 앉아 공작에게 다가가려 하니 호위기사가 당황하며 저지했다.

     

    즉시 타냐가 이글거리는 눈빛을 뿜어내며 그를 압도했다.

     

    “이분은 황가의 주치의 고트베르크 선생님이오. 주군을 잃기 싫다면 비켜주시오.”

     

    “주, 주치의셨군요. 부탁드립니다…!”

     

    호위기사가 즉시 물러난다.

    나는 이미 준비를 마쳐놓은 상태였다.

     

     

    [응급처치C가 발동합니다]

     

     

    몸이 먼저 반응해 공작의 바지 정장 허벅지 부분을 찢는다.

     

    첫 번째 주사기. 아트로핀의 캡을 제거해 수직으로 가져간다.

     

    톡, 버튼을 누르면 바늘이 튀어나와 아트로핀이 주사된다.

     

    표시해둔 눈금까지 액체가 줄어들 때까지 이어간다.

     

    “지금 뭘 하고 계신 거지?”

    “신성력이 안 보이는데….”

     

    내 행동을 의아해하는 귀족과 기사들은 무시한다.

     

    ‘먹혀라.’

     

    “…허억, 허억!”

     

    공작의 호흡이 조금씩 정상으로 돌아왔다.

    딱딱하게 굳어가던 그의 근육도 이완됐다.

     

    아트로핀은 중독에 의한 반응을 완화해 치료할 시간을 벌어준다.

     

    ‘즉사는 막았어. 진짜 치료제는 이쪽.’

     

    두 번째 주사기를 꺼낸다.

    옥심. 마찬가지로 버튼을 눌러 주사한다.

     

    해독제가 주사되고, 기다린다.

     

    상태창에 알람이 떴다.

     

     

    [처방 C가 발동합니다]

     

     

    내 치료의 효과가 상승했다는 메시지였다.

    옥심이 독을 분해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후우.”

     

    그제야 나는 긴장을 풀고 이마의 땀을 닦을 수 있었다.

     

    “허억, 허억… 으윽, 대체 무엇이.”

     

    공작이 간신히 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고비는 넘겼습니다. 운이 좋으셨군요.”

     

    “3황녀 전하의… 주치의….”

     

    “예, 접니다. 거기, 공작 각하를 누울 수 있는 장소로 모셔드려.”

     

    “아, 알겠습니다!”

     

    그의 호위기사들이 급히 공작을 안아든다.

     

    요청을 받은 치유사들도 도착해 공작에게 주문 시전에 들어갔다.

     

    “공작님은 괜찮으셔요?”

    “주치의님이 목숨을 구하셨어요!”

     

    파티장에서 다른 피해자는 나오지 않았다.

     

    “주의 드립니다. 파티장의 어떤 액체에도 입을 대지 마십시오!”

     

    치료를 마친 나는 자리에서 일어서서 그 자리의 전원에게 경고하고 타냐와 함께 아셀라에게 돌아갔다.

     

    “황녀님, 괜찮으십니까?”

     

    “으, 응. 공자, 너는….”

     

    “치료는 성공적입니다. 공작은 괜찮을 거예요. 독이 피부에 묻으셨을 수도 있으니 우선 소독할게요.”

     

    떨고 있는 아셀라의 팔을 잡았다.

    알코올이 닿자 차가웠는지 움찔거린다.

     

    “여기는 위험합니다. 황녀님은 자리를 피하시지요.”

     

    “…아냐.”

     

    아셀라는 입술을 깨물면서도 강한 결심을 보였다.

     

    “황궁에서 일어난 독살 사건이야. 황족이 가장 먼저 내빼면 그림이 뭐가 되겠어. 다른 귀족들이 대피할 때까지 남아야 해.”

     

    “그렇게까지 안 하셔도….”

     

    “내게 독주를 준 시종은 잡았어?”

     

    이미 아셀라의 의지는 확고했다.

     

    모든 귀족이 지켜보는 자리에서 공작과 승계권자가 독살당할 뻔한 사건이다.

     

    황실의 명예 실추를 막기 위해서라도 진상을 밝혀 범인을 강력히 처벌해야 한다.

     

    “마음은 이해 갑니다만 황녀님, 지금은 신변을 돌보셔야 합니다.”

     

    “공자, 그만 토 달아. 타냐 공, 슬란, 독을 탄 시종을 쫓아.”

     

    타냐가 내 눈치를 보았다. 지금 그녀가 자리를 비우면 내 호위도 비게 된다.

     

    그래도 아셀라의 호위기사 두 명이 남으니 일단은 괜찮다.

     

    “네리아도 챙겨야 하니 보리스와 합류하면 돼. 타냐, 황녀님 명령을 따라줘.”

     

    “알겠습니다.”

     

    기사들이 떠나고, 나는 아셀라를 향했다.

     

    “황녀님, 왜 이렇게 고집을 부리세요.”

     

    “고집이라니. 지켜보는 눈이 이렇게 많잖아. 내가 어떻게 해야 하겠어?”

     

    “독살의 목표가 공작인지 황녀님인지도 아직 몰라요. 황녀님이 목적이라면 아직 적의 위협에 노출되어있단 말입니다.”

     

    “황가의 일족이라고 안전한 울타리 안에서만 있을 순 없어. 헤이케도 전장에 직접 출정하잖아.”

     

    “그렇다고 선봉에 나서서 직접 검을 휘두르진 않잖습니까. 무모함과 용감함은 달라요. 옥체를 지키셔야죠.”

     

    “왜 자꾸 그렇게 애 취급하는데!”

     

    “주치의니까 걱정하죠!”

     

    나도 모르게 언성을 높여버렸다.

     

    내가 강하게 나올 줄은 몰랐는지 아셀라는 다문 입술을 비죽 내밀었다.

     

    나도 몰랐다. 조금 욱해버렸다.

     

    큰일 났네, 화났나.

     

    “…목표는 내가 아닐 거야.”

     

    아셀라가 조금 자신 없는 투로 뭐라 웅얼웅얼거리기 시작했다.

     

    “그랬으면 굳이 이 자리를 노릴 이유가 없어. 공작이 공작령을 벗어나고 외부에서 접촉할 수 있는 지금이 기회였겠지. 이해관계가 얽힌 다른 귀족이 흑마술사를 몰래 들여왔을 테고….”

     

    그때 내 상태창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No. 086 그림자의 암살자 37% → 75%]

     

     

    “아뇨, 타겟은 황녀님입니다.”

     

    “뭐?”

     

    나는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괜찮아요. 이 엔딩은 피할 방법을 알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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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주치의는 악녀를 고치고 도망쳤다
Score 3.6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Becoming the physician of the villainess who brought about the world’s destruction, I tried to escape to survive, but the reactions were str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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