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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6

       셀리는 이빨 자국 하나 없이 무사한(?) 한스를 끌어안고 엉엉 울었다.

       

       멍하니 있던 또 다른 포로에게 해독제와 최하급 회복 포션을 먹였고.

       

       미약 중독에 해독제가 효과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포션 쪽은 확실히 효과가 있었는지 멍 자국 정도는 빠르게 가라앉더라.

       

       그사이에 우리는 잡은 홉 고블린을 해체해 돈이 될 만한 것들을 갈무리했고.

       

       하나하나는 아이언 울프에 비해 약하고, 그만큼 부산물의 값어치도 저렴하지만 이렇게나 많이 잡으면 꽤 비싸게 팔리겠지.

       

       …거기에 홉 고블린의 전리품은 놈들의 몸뚱이뿐만이 아니었다.

       

       “리디아 님. 이거 모험가들의 장비인 거죠?”

       

       “응. 고블린은 돌이랑 나무는 다뤄도 철까지는 못 다뤄.”

       

       “생각보다 많이 죽었나 보네요.”

       

       놈들이 창고처럼 쓰던 건물에서 발견한 모험가 장비는 총 9명 분량. 통상적으로 3~4인이 하나의 파티를 이루니, 셀리의 파티를 포함해 3개의 모험가 파티를 전멸시켰다고 보면 되겠지.

       

       “…홉 고블린이 그렇게 위험한 놈들인가요?”

       

       “모든 모험가가 요나 같은 건 아니니까.”

       

       하긴. 나는 홉 고블린의 습성을 알고, 어느 정도의 문명과 체계 속에서 살아가는지도 정확히 알고 있다.

       

       거기에 가챠 능력에서 뽑은 스킬은 물론, 좋은 장비까지 두르고 있지 않는가.

       

       이것만 해도 1층 모험가 상위 10퍼 안에 드는 수준인데, 내게는 여차할 때 도와줄 리디아까지 있다. 즉, 좀 더 안심하고 과감하게 파고들 수 있다는 소리.

       

       주인 잃은 투구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자니, 리디아가 내 어깨를 툭툭 두드려 주었다.

       

       “너무 신경 쓰지 마. 어차피 미궁에서는 오늘도 무수히 많은 사람이 죽어. 그중 일부를 눈앞에서 봤을 뿐이야.”

       

       “그건 그렇죠.”

       

       미궁의 설정 중에는 1층이 가장 사망률이 높은 층이라는 설정이 있다.

       

       다른 층은 이전 층을 클리어하거나, 클리어한 동료의 주도로 들어갈 수 있지만.

       

       1층만큼은 아무런 조건 없이 누구나 들어갈 수 있다.

       

       그만큼 많이 들어가지만, 그만큼 많이 죽어 나가는 것도 당연한 계층이 바로 1층이다.

       

       거기에 1층은 모험가에게 필요한 공통적이면서도 필수적인 스킬을 단련할 수 있도록 나름의 ‘목적성’이 느껴지는 곳이기도 하고.

       

       방랑 고블린을 상대로는 살아있는 생물을 죽이는 방법을 익히고, 혼 래빗 상대로는 파티 플레이를 익힌다.

       

       아이언 울프 상대로는 몬스터를 공략하는 방법을 배우고, 홉 고블린 상대로는 자신보다 월등히 많은 물량을 이겨내는 법을 배우며.

       

       아직 만나진 못했지만 자이언트 멘티스 상대로는 모든 면에서 자신보다 강한 상대를 어떻게 쓰러뜨릴지…레이드의 기초를 몸에 때려 박는다.

       

       그 외에도 미궁의 어디에서나 통용되는 기본적인 규칙, 길을 찾는 방법 등등.

       

       전투 이외의 부분에서도 익히게 되는 것들이 한둘이 아니고.

       

       만약 제때 이것들을 배우지 못한다면? 간단하다. 그 자리에서 죽는 거지 뭐. 1층이라도 미궁은 미궁. 만만한 곳이 아니거든.

       

       그래서 2층 수준만 돼도 한사람분의 모험가로 인정받는다는 설정도 있다. 일단 기본은 되어있어야 1층을 클리어할 수 있으니 말이다.

       

       괜히 리디아가 나를 1층 정도는 클리어시킨 뒤에 짐꾼으로 부려 먹겠다는 말을 한 게 아니란 말이지. 

       

       아무튼 그렇다 보니 머리로는 알고 있다. 미궁은 목숨을 걸고 그 대가로 벌어오는 곳이라는 걸.

       

       하지만 이렇게 흔적만 남기고 정말로 죽어버린 사람을 보자 마음이 무거워지는 것도 사실이다.

       

       나는 지금껏 굉장히 순조롭게 미궁을 공략하며, 사실 모험가는 개꿀 직업이 아닐까 싶었으나.

       

       실제로는 그렇게 해피해피한 일터가 아니라는 것을 뒤늦게 체감했다. 이제와서 겁먹고 멈출 생각은 없지만.

       

       조금 처진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런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리디아 님.”

       

       “전리품 자체는 기본적으로 우리의 것. 다만, 길드에는 제대로 신고해야 해. 신원을 특정할 수 있는 물건이 있다면 보여주기도 해야 하고.”

       

       “아하? 우리가 죽인 건지 아닌지 확인하는 작업인가요?”

       

       “응. 같이 들어갔다가 눈앞에서 다른 파티가 전멸한 경우가 없지는 않겠지만, 대부분은 죽은 지 꽤 시간이 지난 뒤에야 발견되거든. 길드 측 실종자 명단과 간단히 대조해 보는 거지.”

       

       “대조라니…설마 모든 명단을 다 뒤져본다는 그런 무식한 짓은 아니겠죠…?”

       

       컨트롤 f가 없는 세상의 대조 작업이라니. 생각만 해도 정신 나갈 것 같은데.

       

       하지만 정작 리디아는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요나. 잊었어? 길드는 신전 쪽에서 운영하는 기관이야.” 

       

       “헉! 설마 사람은 많으니 얼마든 갈아 넣을 수 있다는 건가요!? 그러다 쓰러져도 치유하면 그만이고! 이 악독한…!”

       

       “아니, 큰돈을 들여 마법으로 검색 시스템을 구축했다는 뜻이었는데. 그 의뢰금 덕에 마탑이 30층은 높아졌다는 소문이 있을 정도야.”

       

       “…흠흠. 역시 성직자들. 돈보다 억울하게 죽는 사람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노력하시는군요!”

       

       “요나가 왜 그렇게 신전에 가기 싫어하는지 조금 알 것 같아.”

       

       불경한 것을 보기라도 한 것처럼 눈을 가늘게 뜬 리디아. 그런 그녀의 시선을 살살 피하며 마지막 전멸한 파티의 유산을 전부 수습했다.

       

       장비도 장비지만, 마석이 잔뜩 들어있는 주머니도 하나 발견했으니 꽤 짭짤할 거다.

       

       다른 몬스터 부산물은 고블린들이 썼는지 어디에도 보이질 않았지만.

       

       혹시 몰라 텅 빈 바닥을 꾹꾹 밟아보며 숨겨진 공간 같은 게 없나 찾아보는 사이. 리디아가 대충 무거운 장비류가 잔뜩 든 가방을 짊어지고 있었다.

        

       “들어주셔서 고마워요 리디아 님. 저 혼자였으면 절반도 못 가져갔을 텐데.”

       

       한스와 이름 모를 또 다른 포로는 셀리에게 어떻게든 옮기라고 시킬 예정이니 물건은 우리끼리 어떻게든 해야 했거든.

       

       내 감사 인사에 리디아는 평소의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그야 이건 내 돈이기도 하니까 당연하지.”

       

       “…네?”

       

       “요나. 모험가끼리의 셈은 정확해야 해. 홉 고블린 부락의 절반은 요나가 암살했지만, 나머지 절반은 내가 죽였어. 그러니까 당연히 전리품의 권리도 반반.”

       

       “큭!”

       

       분하지만 맞는 말이라 반박할 수가 없군. 대신 조금 다른 주제를 꺼내기로 했다.

       

       “리디아 님. 일전에 말했던 1층의 계층 수호자. 그거 슬슬 준비할까 하는데 도와주실 수 있으세요?”

       

       “???”

       

       “이번에 얻은 장비가 생각보다 강하더라고요. 이 정도면 계층 수호자한테도 확실한 데미지를 입힐 수 있을 테니 도전해봐도 좋을 것 같아서요.”

       

       “…아니. 잠깐. 그거 그냥 포부라던가 막연한 목표 같은 거 아니었어?”

       

       “아닌데요? 완전 진심이었는데요? 계층 수호자 불러내는 법도 벌써 짐작이 가는데요?”

       

       “…보통이라면 헛소리하지 말라고 했을 텐데 요나가 하는 말은 어쩐지 진짜 같단 말이지.”

       

       “엣헴!”

       

       “칭찬 아냐.”

       

       “또또. 쑥스러워하시기는! 말은 그렇게 하시면서 도와주실 거 다 알아요!”

       

       “뭐어. 1층의 계층 수호자가 정말 있다고 쳐도, 혼자 쓰러뜨릴 수 있으니 상관없지만.”

       

       계층 수호자는 일종의 보스다. 당연히 해당 층의 다른 몬스터보다는 훨씬 강하고, 단순한 강함이 아니라 까다로운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경우도 많지만.

       

       아래로 내려갈수록 적의 수준이 점점 높아지는 미궁의 특성상, 기껏해야 2~3계층 위의 몬스터와 비슷하거나 좀 더 강한 정도다.

       

       그러니까 1층의 계층 수호자는 3~4층의 몬스터 수준이라는 소리.

       

       고위 모험가인 리디아에게는 그리 어려운 상대는 아닐 것이다. 예상했던 대로.

       

       “도와준다는 소리죠? 고마워요! 일단 자세한 건 나중에 이야기하기로 하고 이제 슬슬 나가보죠.”

       

       “응.”

       

       결국 비밀공간 같은 건 없었기에 그냥 아쉬운 마음으로 창고를 나왔다. 그곳에는 어색한 표정으로 한스를 업고 있는 셀리와, 여전히 정신이 돌아오지 않은 포로가 있었다.

       

       “셀리! 저 형도 들 수 있겠어요?”

       

       “…노력해 보겠습니다.”

       

       비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꾸벅인 셀리가 한스를 고쳐 업었다. 힘줄이 잘리긴 했지만 팔뚝과 허벅지는 멀쩡하니 어찌어찌 잘 버티는 모양.

       

       한스가 조심스레 멍한 표정의 남자에게 손을 뻗어 공주님 안기 자세로 들어 올렸다.

       

       저러면 미궁에서 나갈 때까지 팔이 버틸까 싶지만…뭐, 내가 고생하는 것도 아니니 알아서 하겠지.

       

       “그럼 바로 돌아갈까요 리디아 님?”

       

       “앞장서.”

       

       “넹.”

       

       여력이야 남아있지만, 짐도 가득하고 사람도 많으니 그냥 돌아가는 게 맞겠지.

       

       잠시 길을 걷다가 작은 목소리로 리디아에게 물었다.

       

       “그나저나 이제 저분들은 어떻게 하나요?”

       

       “우선 길드에 신고. 셀리와 한스는 몸을 다치긴 했어도 정신은 멀쩡하니 알아서 잘 살아야지. 하지만 저 남자는 조금 달라.”

       

       “완전히 망가진 것 같으니 혼자 알아서 살라고 놔두면 큰일 나겠죠.”

       

       “응. 그러니까 신전에 맡겨야 해. 미궁에서 크게 다친 사람을 돌보는 것도 신전의 역할이니까.”

       

       “…꼭 가야 해요?”

       

       “꼭 가야 해.”

       

       “리디아 님이 저 대신 가시는 건?”

       

       “나한테 다른 남자를 맡기는 게 싫다고 하지 않았어?”

       

       “그럼 셀리 씨를 시키죠.”

       

       “몸값은 안 받으려고?”

       

       “크으윽…!”

       

       미궁에서 발견한 부상자를 살려서 신전에 입원시키면 몸값을 받을 수 있다.

       

       물론 이게 무슨 인신매매 같은 건 아니다. 일종의 수고비라고 해야 하나?

       

       우선 신전에서 먼저 값을 치르고, 치료를 받고 멀쩡해진 환자가 신전에서 일하며 그 돈을 신전에 갚는 방식이다.

       

       이런 제도라도 있어야 짐 덩어리인 부상자를 미궁에 버리는 게 아니라 제대로 살려서 지상으로 복귀하지 않겠는가.

       

       가끔 치료받아도 죽는 사람도 있고, 살아나더라도 후유증이 심해 돈을 갚을 여력이 안 되는 경우도 있지만.

       

       그 정도는 신전 측에서도 감안하고 데려온 사람에게 수고비를 건네는 거다. 어쨌든 살릴 수 있으면 살려야 하지 않겠는가.

       

       사랑의 여신을 모시는 이들답게 박애의 정신이 넘쳐나는 사람들이거든.

       

       “…어쩔 수 없네요. 같이 가요.”

       

       “응. 잘 생각했어.”

       

       이단 심문관이 그렇게 한가한 직책은 아니니 마주치는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혹시 카렌을 만나면 어쩌다 싶어 한숨만 쉬는 것도 잠시.

       

       문득 뒤편의 셀리 일행에게 시선이 갔다.

       

       여전히 아무런 반응도 없는 이름 모를 포로야 그렇다 쳐도, 한스를 등에 업은 셀리의 모습은 죽다 살아난 사람치고 너무나 어두웠으니까.

       

       그러고 보니 셀리는 패닉에 빠져 자기 대신 잡아먹을 사람으로 한스를 지목했지.

       

       지켜주겠다 약속한 연인을 지키지 못해 고블린에게 더럽혀지는 모습을 본 기분은 어떠할까.

       

       아무리 패닉에 빠졌다고는 하나 그런 연인을 자기 대신 제물로 바쳤다는 죄책감은?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모르는 연인이 자신의 등에서 고맙고 미안하다며 엉엉 우는 것을 보는 것은 어떤 느낌인 걸까.

       

       잘린 힘줄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고급 포션, 혹은 신전의 오랜 치료가 필요하다.

       

       어느 쪽이건 막대한 돈이 들어갈 텐데, 셀리에게 이를 지불할 능력이 있을 것 같진 않고.

       

       허면 평생동안 움직이지 못하는 연인을 돌봐야 한다는 소리인데….

       

       그럴 때마다 자신의 죄악을 마주해야 하는 것은 어떤 심정일까. 예전처럼 연인을 순수하게 사랑할 수 있는 걸까.

       

       나는 그 답을 알지 못한다.

       

       그저 저 둘의 미래가 그럭저럭 살만하기를 바랄 뿐.

       

       “아.”

       

       오랜만에 글을 쓰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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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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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셀리는 이빨 자국 하나 없이 무사한(?) 한스를 끌어안고 엉엉 울었다.


       


       멍하니 있던 또 다른 포로에게 해독제와 최하급 회복 포션을 먹였고.


       


       미약 중독에 해독제가 효과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포션 쪽은 확실히 효과가 있었는지 멍 자국 정도는 빠르게 가라앉더라.


       


       그사이에 우리는 잡은 홉 고블린을 해체해 돈이 될 만한 것들을 갈무리했고.


       


       하나하나는 아이언 울프에 비해 약하고, 그만큼 부산물의 값어치도 저렴하지만 이렇게나 많이 잡으면 꽤 비싸게 팔리겠지.


       


       …거기에 홉 고블린의 전리품은 놈들의 몸뚱이뿐만이 아니었다.


       


       “리디아 님. 이거 모험가들의 장비인 거죠?”


       


       “응. 고블린은 돌이랑 나무는 다뤄도 철까지는 못 다뤄.”


       


       “생각보다 많이 죽었나 보네요.”


       


       놈들이 창고처럼 쓰던 건물에서 발견한 모험가 장비는 총 9명 분량. 통상적으로 3~4인이 하나의 파티를 이루니, 셀리의 파티를 포함해 3개의 모험가 파티를 전멸시켰다고 보면 되겠지.


       


       “…홉 고블린이 그렇게 위험한 놈들인가요?”


       


       “모든 모험가가 요나 같은 건 아니니까.”


       


       하긴. 나는 홉 고블린의 습성을 알고, 어느 정도의 문명과 체계 속에서 살아가는지도 정확히 알고 있다.


       


       거기에 가챠 능력에서 뽑은 스킬은 물론, 좋은 장비까지 두르고 있지 않는가.


       


       이것만 해도 1층 모험가 상위 10퍼 안에 드는 수준인데, 내게는 여차할 때 도와줄 리디아까지 있다. 즉, 좀 더 안심하고 과감하게 파고들 수 있다는 소리.


       


       주인 잃은 투구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자니, 리디아가 내 어깨를 툭툭 두드려 주었다.


       


       “너무 신경 쓰지 마. 어차피 미궁에서는 오늘도 무수히 많은 사람이 죽어. 그중 일부를 눈앞에서 봤을 뿐이야.”


       


       “그건 그렇죠.”


       


       미궁의 설정 중에는 1층이 가장 사망률이 높은 층이라는 설정이 있다.


       


       다른 층은 이전 층을 클리어하거나, 클리어한 동료의 주도로 들어갈 수 있지만.


       


       1층만큼은 아무런 조건 없이 누구나 들어갈 수 있다.


       


       그만큼 많이 들어가지만, 그만큼 많이 죽어 나가는 것도 당연한 계층이 바로 1층이다.


       


       거기에 1층은 모험가에게 필요한 공통적이면서도 필수적인 스킬을 단련할 수 있도록 나름의 ‘목적성’이 느껴지는 곳이기도 하고.


       


       방랑 고블린을 상대로는 살아있는 생물을 죽이는 방법을 익히고, 혼 래빗 상대로는 파티 플레이를 익힌다.


       


       아이언 울프 상대로는 몬스터를 공략하는 방법을 배우고, 홉 고블린 상대로는 자신보다 월등히 많은 물량을 이겨내는 법을 배우며.


       


       아직 만나진 못했지만 자이언트 멘티스 상대로는 모든 면에서 자신보다 강한 상대를 어떻게 쓰러뜨릴지…레이드의 기초를 몸에 때려 박는다.


       


       그 외에도 미궁의 어디에서나 통용되는 기본적인 규칙, 길을 찾는 방법 등등.


       


       전투 이외의 부분에서도 익히게 되는 것들이 한둘이 아니고.


       


       만약 제때 이것들을 배우지 못한다면? 간단하다. 그 자리에서 죽는 거지 뭐. 1층이라도 미궁은 미궁. 만만한 곳이 아니거든.


       


       그래서 2층 수준만 돼도 한사람분의 모험가로 인정받는다는 설정도 있다. 일단 기본은 되어있어야 1층을 클리어할 수 있으니 말이다.


       


       괜히 리디아가 나를 1층 정도는 클리어시킨 뒤에 짐꾼으로 부려 먹겠다는 말을 한 게 아니란 말이지. 


       


       아무튼 그렇다 보니 머리로는 알고 있다. 미궁은 목숨을 걸고 그 대가로 벌어오는 곳이라는 걸.


       


       하지만 이렇게 흔적만 남기고 정말로 죽어버린 사람을 보자 마음이 무거워지는 것도 사실이다.


       


       나는 지금껏 굉장히 순조롭게 미궁을 공략하며, 사실 모험가는 개꿀 직업이 아닐까 싶었으나.


       


       실제로는 그렇게 해피해피한 일터가 아니라는 것을 뒤늦게 체감했다. 이제와서 겁먹고 멈출 생각은 없지만.


       


       조금 처진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런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리디아 님.”


       


       “전리품 자체는 기본적으로 우리의 것. 다만, 길드에는 제대로 신고해야 해. 신원을 특정할 수 있는 물건이 있다면 보여주기도 해야 하고.”


       


       “아하? 우리가 죽인 건지 아닌지 확인하는 작업인가요?”


       


       “응. 같이 들어갔다가 눈앞에서 다른 파티가 전멸한 경우가 없지는 않겠지만, 대부분은 죽은 지 꽤 시간이 지난 뒤에야 발견되거든. 길드 측 실종자 명단과 간단히 대조해 보는 거지.”


       


       “대조라니…설마 모든 명단을 다 뒤져본다는 그런 무식한 짓은 아니겠죠…?”


       


       컨트롤 f가 없는 세상의 대조 작업이라니. 생각만 해도 정신 나갈 것 같은데.


       


       하지만 정작 리디아는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요나. 잊었어? 길드는 신전 쪽에서 운영하는 기관이야.” 


       


       “헉! 설마 사람은 많으니 얼마든 갈아 넣을 수 있다는 건가요!? 그러다 쓰러져도 치유하면 그만이고! 이 악독한…!”


       


       “아니, 큰돈을 들여 마법으로 검색 시스템을 구축했다는 뜻이었는데. 그 의뢰금 덕에 마탑이 30층은 높아졌다는 소문이 있을 정도야.”


       


       “…흠흠. 역시 성직자들. 돈보다 억울하게 죽는 사람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노력하시는군요!”


       


       “요나가 왜 그렇게 신전에 가기 싫어하는지 조금 알 것 같아.”


       


       불경한 것을 보기라도 한 것처럼 눈을 가늘게 뜬 리디아. 그런 그녀의 시선을 살살 피하며 마지막 전멸한 파티의 유산을 전부 수습했다.


       


       장비도 장비지만, 마석이 잔뜩 들어있는 주머니도 하나 발견했으니 꽤 짭짤할 거다.


       


       다른 몬스터 부산물은 고블린들이 썼는지 어디에도 보이질 않았지만.


       


       혹시 몰라 텅 빈 바닥을 꾹꾹 밟아보며 숨겨진 공간 같은 게 없나 찾아보는 사이. 리디아가 대충 무거운 장비류가 잔뜩 든 가방을 짊어지고 있었다.


        


       “들어주셔서 고마워요 리디아 님. 저 혼자였으면 절반도 못 가져갔을 텐데.”


       


       한스와 이름 모를 또 다른 포로는 셀리에게 어떻게든 옮기라고 시킬 예정이니 물건은 우리끼리 어떻게든 해야 했거든.


       


       내 감사 인사에 리디아는 평소의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그야 이건 내 돈이기도 하니까 당연하지.”


       


       “…네?”


       


       “요나. 모험가끼리의 셈은 정확해야 해. 홉 고블린 부락의 절반은 요나가 암살했지만, 나머지 절반은 내가 죽였어. 그러니까 당연히 전리품의 권리도 반반.”


       


       “큭!”


       


       분하지만 맞는 말이라 반박할 수가 없군. 대신 조금 다른 주제를 꺼내기로 했다.


       


       “리디아 님. 일전에 말했던 1층의 계층 수호자. 그거 슬슬 준비할까 하는데 도와주실 수 있으세요?”


       


       “???”


       


       “이번에 얻은 장비가 생각보다 강하더라고요. 이 정도면 계층 수호자한테도 확실한 데미지를 입힐 수 있을 테니 도전해봐도 좋을 것 같아서요.”


       


       “…아니. 잠깐. 그거 그냥 포부라던가 막연한 목표 같은 거 아니었어?”


       


       “아닌데요? 완전 진심이었는데요? 계층 수호자 불러내는 법도 벌써 짐작이 가는데요?”


       


       “…보통이라면 헛소리하지 말라고 했을 텐데 요나가 하는 말은 어쩐지 진짜 같단 말이지.”


       


       “엣헴!”


       


       “칭찬 아냐.”


       


       “또또. 쑥스러워하시기는! 말은 그렇게 하시면서 도와주실 거 다 알아요!”


       


       “뭐어. 1층의 계층 수호자가 정말 있다고 쳐도, 혼자 쓰러뜨릴 수 있으니 상관없지만.”


       


       계층 수호자는 일종의 보스다. 당연히 해당 층의 다른 몬스터보다는 훨씬 강하고, 단순한 강함이 아니라 까다로운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경우도 많지만.


       


       아래로 내려갈수록 적의 수준이 점점 높아지는 미궁의 특성상, 기껏해야 2~3계층 위의 몬스터와 비슷하거나 좀 더 강한 정도다.


       


       그러니까 1층의 계층 수호자는 3~4층의 몬스터 수준이라는 소리.


       


       고위 모험가인 리디아에게는 그리 어려운 상대는 아닐 것이다. 예상했던 대로.


       


       “도와준다는 소리죠? 고마워요! 일단 자세한 건 나중에 이야기하기로 하고 이제 슬슬 나가보죠.”


       


       “응.”


       


       결국 비밀공간 같은 건 없었기에 그냥 아쉬운 마음으로 창고를 나왔다. 그곳에는 어색한 표정으로 한스를 업고 있는 셀리와, 여전히 정신이 돌아오지 않은 포로가 있었다.


       


       “셀리! 저 형도 들 수 있겠어요?”


       


       “…노력해 보겠습니다.”


       


       비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꾸벅인 셀리가 한스를 고쳐 업었다. 힘줄이 잘리긴 했지만 팔뚝과 허벅지는 멀쩡하니 어찌어찌 잘 버티는 모양.


       


       한스가 조심스레 멍한 표정의 남자에게 손을 뻗어 공주님 안기 자세로 들어 올렸다.


       


       저러면 미궁에서 나갈 때까지 팔이 버틸까 싶지만…뭐, 내가 고생하는 것도 아니니 알아서 하겠지.


       


       “그럼 바로 돌아갈까요 리디아 님?”


       


       “앞장서.”


       


       “넹.”


       


       여력이야 남아있지만, 짐도 가득하고 사람도 많으니 그냥 돌아가는 게 맞겠지.


       


       잠시 길을 걷다가 작은 목소리로 리디아에게 물었다.


       


       “그나저나 이제 저분들은 어떻게 하나요?”


       


       “우선 길드에 신고. 셀리와 한스는 몸을 다치긴 했어도 정신은 멀쩡하니 알아서 잘 살아야지. 하지만 저 남자는 조금 달라.”


       


       “완전히 망가진 것 같으니 혼자 알아서 살라고 놔두면 큰일 나겠죠.”


       


       “응. 그러니까 신전에 맡겨야 해. 미궁에서 크게 다친 사람을 돌보는 것도 신전의 역할이니까.”


       


       “…꼭 가야 해요?”


       


       “꼭 가야 해.”


       


       “리디아 님이 저 대신 가시는 건?”


       


       “나한테 다른 남자를 맡기는 게 싫다고 하지 않았어?”


       


       “그럼 셀리 씨를 시키죠.”


       


       “몸값은 안 받으려고?”


       


       “크으윽…!”


       


       미궁에서 발견한 부상자를 살려서 신전에 입원시키면 몸값을 받을 수 있다.


       


       물론 이게 무슨 인신매매 같은 건 아니다. 일종의 수고비라고 해야 하나?


       


       우선 신전에서 먼저 값을 치르고, 치료를 받고 멀쩡해진 환자가 신전에서 일하며 그 돈을 신전에 갚는 방식이다.


       


       이런 제도라도 있어야 짐 덩어리인 부상자를 미궁에 버리는 게 아니라 제대로 살려서 지상으로 복귀하지 않겠는가.


       


       가끔 치료받아도 죽는 사람도 있고, 살아나더라도 후유증이 심해 돈을 갚을 여력이 안 되는 경우도 있지만.


       


       그 정도는 신전 측에서도 감안하고 데려온 사람에게 수고비를 건네는 거다. 어쨌든 살릴 수 있으면 살려야 하지 않겠는가.


       


       사랑의 여신을 모시는 이들답게 박애의 정신이 넘쳐나는 사람들이거든.


       


       “…어쩔 수 없네요. 같이 가요.”


       


       “응. 잘 생각했어.”


       


       이단 심문관이 그렇게 한가한 직책은 아니니 마주치는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혹시 카렌을 만나면 어쩌다 싶어 한숨만 쉬는 것도 잠시.


       


       문득 뒤편의 셀리 일행에게 시선이 갔다.


       


       여전히 아무런 반응도 없는 이름 모를 포로야 그렇다 쳐도, 한스를 등에 업은 셀리의 모습은 죽다 살아난 사람치고 너무나 어두웠으니까.


       


       그러고 보니 셀리는 패닉에 빠져 자기 대신 잡아먹을 사람으로 한스를 지목했지.


       


       지켜주겠다 약속한 연인을 지키지 못해 고블린에게 더럽혀지는 모습을 본 기분은 어떠할까.


       


       아무리 패닉에 빠졌다고는 하나 그런 연인을 자기 대신 제물로 바쳤다는 죄책감은?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모르는 연인이 자신의 등에서 고맙고 미안하다며 엉엉 우는 것을 보는 것은 어떤 느낌인 걸까.


       


       잘린 힘줄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고급 포션, 혹은 신전의 오랜 치료가 필요하다.


       


       어느 쪽이건 막대한 돈이 들어갈 텐데, 셀리에게 이를 지불할 능력이 있을 것 같진 않고.


       


       허면 평생동안 움직이지 못하는 연인을 돌봐야 한다는 소리인데….


       


       그럴 때마다 자신의 죄악을 마주해야 하는 것은 어떤 심정일까. 예전처럼 연인을 순수하게 사랑할 수 있는 걸까.


       


       나는 그 답을 알지 못한다.


       


       그저 저 둘의 미래가 그럭저럭 살만하기를 바랄 뿐.


       


       “아.”


       


       오랜만에 글을 쓰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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